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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중요한 건 단 하나 (152/199)


152화. 중요한 건 단 하나
2022.06.17.


클로에는 쓰러진 쉐리를 지나쳐, 황궁 뒤편에 자리한 깊은 호숫가에 다다랐다.

그녀는 저 멀리 시간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붉게 변한 눈동자를 더욱 크게 떴다.

그녀의 눈엔 시간의 숲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모든 것이 보였다.

바람도, 공기도, 햇살도 전부 들떠 있는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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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열쇠의 완성이 머지않았군.”

이제 준비해야 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순간을 기꺼이, 맞이해야 했으니까.

클로에는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고서 천천히 호수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에드조프가 클로에의 손을 붙잡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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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마마!”

클로에는 싸늘한 눈빛으로 에드조프를 응시했다.

에드조프는 클로에의 붉은 눈동자와 더불어 자신을 향한 온기 없는 눈빛에 온몸으로 오한이 스쳤다.

정말로, 자신이 알고 있던 어마마마의 모습은 단 한 조각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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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다 알았으면서. 뭘 더 원해서 날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지?”

심장을 그어 내리듯 박히는 목소리에 순간 에드조프는 말문이 막혔다.

클로에는 그 모습에 더 냉랭하게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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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되고자 나조차 원하는 거니? 나조차 네 곁에 두고 이용하길 원하는 건가?”

그런데도 에드조프는 클로에를 잡은 손에 힘을 풀지 못했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내내 가슴께에 알 수 없이 막혀 있는 감정의 진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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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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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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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마마를 원해요. 당신이 사실 수인이었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내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의 어머니다.

그 하찮은 계집이 아니라, 수인이라고 해도 황후인 그녀가.

그녀만이 자신의 어머니다.

이대로 이클리트에게 빼앗길 수 없었다.

단 하나도!

클로에를 잡은 손에 힘을 가하는 에드조프를 보면서, 클로에는 날카로운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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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넌 그저 내 아들을 위한 도구였는데.”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에드조프의 머리 위로 섬뜩하게 쿵,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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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하지만 클로에는 더는 감추지 않고서 에드조프의 손을 치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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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이클리트를 위해 널 내 아들인 척한 거다. 이제 곧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내 아들이 세상에 드러난 것처럼, 너 역시.”

클로에의 붉은 눈동자가 에드조프의 피부에 닿자, 에드조프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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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마구 문지르며, 숨을 헐떡였다.

피부가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뱀의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클로에는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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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상에 드러나겠지. 가여운 것. 너도 누군가의 복수의 도구로 태어나, 그 속에 결핍밖에 없구나. 그래. 널 가엽게 여겨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주마.”

클로에는 살짝 몸을 숙여서는 피하고자 하는 에드조프의 턱을 잡고서 눈을 마주했다.

에드조프는 빨려들 것 같은 그녀의 눈동자 앞에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저항 따위, 애초에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온몸으로 들러붙는 위압감에 절로 무릎을 꿇은 채, 그녀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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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뱀에게도 이용당하지 말고. 가짜와 진짜에 얽매이지 말고. 이 저주받은 이 황실에도 연연하지 않은 채, 이제라도 자유롭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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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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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그 목숨이라도 부지할 테니.”

그 한마디를 남긴 채, 클로에는 다시금 호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에드조프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러다 호수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 몸이 얼어붙었다.

잘게 부서지는 물그림자 너머, 검은 날개가 호수 전체를 삼키고 있었다.

에드조프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공포에 어느새 타들어 갈 것 같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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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정체가 뭐야…… 그냥 수인이 아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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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똑바로 볼 수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니,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에드조프는 제대로 숨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애써 누르고 있던 증오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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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용당한 거라고? 복수의 도구? 그년한테? 아니. 내가 이용하는 거야. 전부 내가 이용하는 거라고! 이클리트 그놈이 끝이지. 나는 아니야. 만들어진 것도 그놈이야!”

나는. 나는 이미 진짜가 되었다.

이 황실을 차지하는 것도, 이 제국을 손에 쥐는 것도 머지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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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아. 나는 그놈과 달라!”

 

***

이클리트가 클로에 황후의 친아들이자, 클로에 황후가 수왕이라니…….

이 엄청난 진실 앞에 모두가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는 겨우 시선을 내리깔고서, 초상화에 쓰인 다른 문구를 발견했다.

-나는 텅 빈 달을 남기니, 반드시 해를 피워라.

찬란한 태양이 달을 비춰, 달 없는 밤을 깨우리라.

그리하면 정령이 춤추며 반드시 숲이 열리리라.-

아멜리아는 문구를 읽자마자 해와 달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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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 시간의 숲의 열쇠를 말하는 거겠지?’

분명 소냐가 그랬다.

해는 인간이고, 달은 수인을 뜻한다고.

해와 달이 하나가 되어 달 없는 밤을 깨우게 되면, 숲의 봉인이 열린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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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황후 폐하와 황제 폐하의 화합이, 대공 전하를 열쇠로 만들었다는 거야?’

그 말은 즉.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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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서 열쇠인 걸까.’

아멜리아는 필사적으로 희망을 붙들면서, 암호 같은 말들을 더듬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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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에 황후 폐하의 기억이 지워지면서,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대공 전하를 보호한 것 같아. 그 보호라는 건 힘의 봉인. 처음에 대공 전하께 수인의 힘이 없어서 폐하께서 북부로 버렸다고 했으니. 하지만 그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봉인된 대공 전하의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거고.’

그렇다면 열쇠의 완성이 머지않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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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서 정말로, 열쇠였구나…….’

그 사실 하나에 불안하게 흔들리던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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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루시아가 걱정스럽게 그녀를 부르자, 아멜리아는 정신 차리고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보는 헤이츨과 루시아를 향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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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뭐가 되었든, 바뀌는 건 없어요. 나는 황제 폐하에게서 대공 전하를 구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공 전하는 또 상처받게 될 테니까.”

루시아는 지난날, 어린 이클리트가 눈밭에서 죽어가던 모습을 떠올렸다.

드러난 진실 앞에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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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전언은 전부 거짓이고, 황실이 대공 전하를 이용하고 있다는 거군.”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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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또 아프게 할 수 없어요. 수왕의 아들이든, 다른 무엇이든, 다 필요 없어요. 내게 그분은 그저 이클리트 라이엇 클리오 대공 전하이고, 나의 남편이며…….”

가장 중요하고 변하지 않을 단 하나.

아멜리아는 순간 치미는 감정을 가다듬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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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난 그분을 구할 겁니다.”

 

***

이사나가 슬그머니 걸음을 돌려서 별장을 빠져나오자, 카마리가 그의 뒤를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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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는 거지?”

이사나는 등을 돌린 채,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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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갈 때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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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지금 루베르로 돌아다니는 건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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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니까, 움직여야 합니다.”

이사나의 냉랭한 말에 카마리를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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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동정은 끝났고, 이제 무자비한 현실과 전쟁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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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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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다간 루베르는 솔라에 또다시 학살당할 겁니다. 카마리 경 말대로 나는 루베르고, 루베르로 돌아가야 합니다. 카마리 경이 지켜야 할 것과 내가 지켜야 할 건 다른 겁니다.”

결연한 이사나의 목소리에 카마리는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분노와 복수를 담아 최후의 적까지 사살한다는 루비의 진정한 의미를 지금껏 품고 왔듯이.

그는 루베르 왕족으로서, 이제 더는 피하지 않고 자신의 희생을 각오한 채 그들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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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조심하십시오.”

카마리의 말투가 다시 달라졌다.

이사나는 그 목소리에 잠시 움찔했으나, 돌아보지 않고서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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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리 경도 부디 몸 건강하길…….”

이사나는 카마리를 남겨둔 채, 걸음을 옮겼다.

그의 표정은 지독히도 냉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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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에 황후가 수왕이었다니. 역시, 황궁으로 가야 한다.’

복수해야 할 모두가 그곳에 있었으니.

수왕도. 수왕의 핏줄도. 특히 솔라 제국, 이 끔찍한 황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또다시 희생이 필요하다면, 이사나는 부디 그 희생이 자신의 선에서 끝나길 간절히 바랐다.

***

아멜리아가 떠나고, 루시아와 헤이츨이 떨어진 천장 조각 앞에 남아 있었다.

헤이츨은 이제야 클리오 대공의 어머니에 관한 기록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번 일은 황제가 발표한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닌, 황실이 개입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클로에 황후의 친아들이 클리오 대공이라면, 바스티얀 대공의 친어머니는 또 알 수가 없어지니까.

게다가 수인이 이토록 황실에 깊이 얽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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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폐하께서는 뭘 어디까지 알고 개입되어 있는 걸까.’

헤이츨은 무거운 숨을 삼키며, 품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지금의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그 모습에 헛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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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 와중에 역사를 기록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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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가 할 일이니까. 혼란스러울수록,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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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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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평소처럼 해야 하는 겁니다. 나의 할아버님이 그러하였듯.”

헤이츨은 계속 기록하면서, 조심스럽게 루시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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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은 대공 전하께서 반인반수라는 걸 다 알고도 선택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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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피에 루베르가 있었어요.”

펜을 쥔 헤이츨의 손이 순간 굳어졌다.

헤스틴 전 공작에게 루베르 피가 섞여 있었다니…….

루시아는 이 엄청난 비밀을 그저 무심히 더듬었다.

헤스틴 가문의 사람들은 루시아에게 아이도 죽이고, 남편도 죽였다며.

처음엔 미망인이라고 비하하며, 그녀를 손가락질했다.

물론 루시아는 실력으로 공작가를 차지했고, 미망인이라는 말도 콧방귀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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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좋네. 영원히 내 남편과 함께해보지, 뭐.’

  
일부러 종종 검은 드레스도 입으면서, 남편을 추모하는 척 헤스틴 가문 사람들을 비웃곤 했다.

오늘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 없는 가문의 비밀을 털어놓으니, 어쩐지 조금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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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를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이 세상에서 반대편으로 밀려나, 차별받는 게 어떻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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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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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알고도 그분을 괴물 취급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니 빚이 있죠.”

루시아는 진심으로 바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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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행복해지길 바라요. 그래야, 내 남편의 한도 풀릴 것 같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루시아는 자신답지 않은 구질구질한 상념을 지우며, 헤이츨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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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이, 아니 우리 폐하께서 몹시 엄청난 사건을 숨긴 채, 지금껏 움직인 것 같네요. 그러니 우리 다섯 공작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폐하께서 솔라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가 솔라를 지켜야 하니까.”

헤이츨은 루시아의 말에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라를 건국한 건 황실만이 아니다.

다섯 공작가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헤이츨은 깨진 유리 조각을 바라보며, 떨리는 숨을 삼켰다.

솔라의 다음 태양이, 저 유리 조각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부서져 버렸다.

그렇기에 그의 펜 역시 이후 어떤 역사를 기록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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