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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그녀를 살리는 방법 (193/199)


193화. 그녀를 살리는 방법
2022.11.07.


모체가 죽자, 숲의 경계를 뒤덮고 있던 페스티스들이 순식간에 힘을 잃고서, 바짝 메말라서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느새 숲의 경계를 가리고 있던 안개도 잦아지면서, 미로 같았던 길이 뚫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티어들과 연락을 취하던 칼렌은 마침내 근처에서 카마리와 이사나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카마리 경! 단장님!”

이사나는 무사한 칼렌의 모습에 안도했고, 카마리도 칼렌을 살피며 말했다.


“다들 무사한 겁니까?”

“계속 신호가 잡히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이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들 무사한 것 같습니다.”

그때, 이사나는 저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바짝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 끝에 나타난 것은 알렉드라와 다른 루베르였다.

이사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알렉드라와 루베르가 함께 있는 모습에 놀라움을 겨우 감췄다.


‘설마 포르티셰 공이 루베르를 도와준 건가?’

알렉드라는 이사나를 알아보고서 그에게 다가왔다.


“피오레 공은?”

“숲의 경계에 빛이 되돌아온 걸 보면, 가주님과 대공 전하께서 해결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이사나의 말에 알렉드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은 즉, 직접 만나거나 보진 않았다?”

“지금부터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시간의 숲으로? 숲이 열렸다는 건가? 아직 저쪽은 안개가 자욱한데?”

“그렇다고 무작정 밖에서 기다릴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시도해봐야지요.”

숲의 기운이 불규칙하다며, 일단 페르소가 먼저 알아보기 위해 숲의 경계 안쪽으로 출발한 상태였다.

이사나와 카마리도 다들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곧장 페르소의 뒤를 쫓을 생각이었다.


“시간의 숲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어.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

이사나는 뜻밖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그들에게로 세스가와 마하가 다가왔다.

알렉드라는 굳어진 표정으로 곧장 세스가에게 예를 갖추었다.


“세스가 황자 전하.”

“포르티셰 공, 무사했군. 다행이야.”

“프리메가 다시 공격을 개시하는 것입니까?”

알렉드라의 목소리에 한껏 날이 서 있자, 세스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투는 끝이다. 더는 그럴 필요 없으니까. 솔라 기사들이 항복했어. 우리도 더는 분쟁을 원하지 않아. 시간의 숲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이제야 양국 모두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니.”

황제군이 항복했다는 말에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그 말은 즉, 아스란 황제가 시간의 숲을 포기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할 황제가 아니기에, 알렉드라는 불길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들으시는 것이 어이없으시겠지만, 황제군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폐하를 만나 뵈셨습니까?”

세스가는 알렉드라의 말에 한층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아스란 황제 폐하는, 행방불명이시다.”

“행방불명이라니…….”

알렉드라는 이를 악물고서 곧장 이사나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황제 폐하를 찾도록 하겠다.”

“포르티셰 공작 각하…….”

“황명을 어기고자, 내전까지 생각했지만. 그래도 폐하를 모시고 솔라리스로 돌아가서 제대로 절차를 밟은 뒤, 황위를 바꿔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알렉드라는 무척이나 냉정하게 말했으나, 그의 속내는 그래도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아스란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다하고 싶었다.

이사나는 그런 알렉드라의 속내를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와 가주님에 관한 건 제게 맡겨주십시오.”

알렉드라는 서둘러 기사들을 불러 모았고, 세스가는 그런 알렉드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프리메 기사들이 그대들을 도울 것이다.”

“그건…….”

“향후, 프리메는 솔라와의 지속적인 평화를 원하니까. 우리의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세스가는 마하에게 눈짓했고, 마하는 곧장 알렉드라와 기사들을 이끌고 프리메의 진지로 향했다.


“그래서. 지금 시간의 숲에 클리오 대공과 피오레 공이 들어있다는 건가?”

세스가가 입을 열자, 이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들어간 거지? 마하와 내가 계속 숲을 살폈지만, 불안정하긴 해도 열린 건 아니야.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아니면 곧 열리는 건가.”

이사나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으로 돌아갔다.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열쇠라면, 대체 숲은 어떻게 여는 겁니까? 이제 와 숲을 여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숲은 열릴 겁니다. 이미 대공 전하께서 그렇게 선택하셨으니까. 그게 옳은지, 아닌지는 열려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때, 소냐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아이냑과 모습을 나타냈다.

아이냑은 무사한 이사나의 모습에 안도하며, 다른 루베르들의 모습을 살폈다.


“소냐.”

소냐는 어쩐지 무거운 표정으로 이사나와 세스가에게 다가갔다.


“그대는 뭔가를 아는 것인가? 대체 열쇠가 되어서 숲을 여는 게 무슨 의미인 거지?”

이사나 대신 세스가가 먼저 물었고, 소냐는 그 어떤 답도 하지 못하다가, 이내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러자 세스가와 더불어 다들 당황하여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이사나는 뒷골이 섬뜩해지면서, 소냐를 붙들고서 목소리를 높였다.


“돌아오시는 건가?”

“이사나 경, 뭐 하는 겁니까!”

카마리가 격해진 이사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사나는 소냐를 붙잡은 손에 힘을 빼지 않고서 더 거칠어진 목소리로 외쳤다.


“가주님과 대공 전하께서 다시 돌아오시긴 하는 거냐고!”

“이사나 경, 지금 그게 무슨…….”

카마리도 불안해진 표정으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소냐는 여전히 두 눈동자 가득 눈물이 차오른 모습으로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돌아오십니다.”

“…….”

“단 한 분만은, 분명히.”

 

***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부상을 살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부상은 훨씬 심각해서, 아멜리아는 차마 손으로 건드리지 못한 채,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아요? 어떡해…… 많이 아프죠?”

하지만 이클리트는 역시나 자신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멜리아의 상처만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괜찮은 겁니까?”

“나는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 일단 여기서 얼른 나가요. 나가서 치료해야 하니까.”

뭔가, 아직은 끝이라는 실감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아멜리아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우리 이제 다 끝난 거죠? 그렇죠?”

너무 당연하고 쉬운 대답을 그가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이클리트가 대답하지 못한 채,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아멜리아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그가 뭔가를 자신에게 숨기고 있을 때.

차마 거짓말을 하진 못하고, 그답지 않게 움츠리고 만다.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해.’

“……끝났습니다.”

겨우 내뱉은 한마디에 아멜리아는 한껏 가라앉은 어조로 되물었다.


“왜 날 보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날 안 보잖아.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예요? 처음부터 여기 오는 내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죠? 그렇죠?”

“…….”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멜리아는 자꾸만 심장이 초 단위로 쿵쿵, 불안하게 들썩였다.


“일단 나가요. 뭘 숨기는지, 나가서 들을래요. 일단 이 숲을 나가서…….”

아멜리아가 그의 손을 붙잡고 당겼으나,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마 이클리트를 마주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서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야만 했다.


“얼른, 얼른 나랑 같이 나가요, 제발…….”

끝내, 이클리트가 아멜리아가 잡은 손을 스르르 풀고서, 나직이 읊조렸다.
 

 


“나는 이 숲을 열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숲이 열려야, 마법을 되찾고, 내가 강해질 테니까.”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나는 이 숲에서 나갈 수 없어요.”

숲에서 나갈 수 없다니.

아멜리아는 두려운 마음에 소리가 막혀버렸다.

여기서 더 물으면, 그는 숨기지 않고 대답할 테니까.

그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두려운 진실을, 마주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클리트는 그녀가 묻지 않아도, 그녀를 바라보며 끝내 그가 한 잔인한 선택을 속삭였다.


“내가 이 숲을 열어야 당신이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살 수 있어.”

 

***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이클리트 앞으로 클로에가 걸어왔다.

이클리트는 뜻밖에 그녀가 나타나자, 묘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띠며 입술을 열었다.


“황후, 폐하?”

클로에는 단숨에 이클리트와의 거리를 좁혀와서는 천천히 그의 뺨을 감쌌다.

이클리트는 멈칫했지만, 그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너무 뜨겁고 따뜻해서,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그 손길에 기대고 싶어지자 그의 눈동자가 더욱 불안하게 흔들렸다.


“황후 폐하, 당신이 여기 어떻게…….”

“내가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내가 정말로 미안해…….”

애써 담담하려고 했던 클로에의 목소리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때처럼 이클리트를 꽉 끌어안았다.


“너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둬서, 이렇게 오랫동안 내버려 둬서 미안하구나. 곁에 제대로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이클리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이, 내 어머니였던 겁니까?”

클로에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 어머니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를 안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클리트도 더는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품에 닿은 클로에에게서 느껴지는 떨림에 자신의 심장이 몹시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뒤바뀌었고, 잘못되었다는 것이.

이클리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클로에를 천천히 붙잡고서, 눈을 마주했다.


“저는 다른 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단 하나, 제가 숲의 열쇠가 정말로 맞습니까?”

클로에는 이클리트의 물음에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단번에 깨닫고서, 삼키는 숨이 조금씩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을 감추거나, 숨길 수 없었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넌 정령이 원하는 화합 끝에 태어난 열쇠다. 네가 아멜리아, 그 여인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점점 더 열쇠는 완성되었지. 열쇠는 결국 지키는 힘. 사랑이란 감정은 그 지키는 힘을 가장 강하게 품고 있으니까.”

“그럼 시간의 숲을 열게 되면, 세상에 마법이 돌아올 테니. 제 힘은 더 강해지는 겁니까? 더 강해져서, 지킬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지금 이클리트가 지키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그 하나 때문에, 자신의 잘못된 과거나 존재 이유는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멜리아, 그 여인을 살리고 싶니?”

클로에가 마침내 정확하게 묻자, 이클리트의 표정이 간절해졌다.


“방법이 있습니까?”

“그 여인의 생명을 이어주고 있는, 심장에 핀 제비꽃.”

클로에가 단번에 그 제비꽃을 입에 담자, 그의 동공이 크게 부풀었다.


“그 제비꽃을 아시는 겁니까?”

“나보단 네가 더 잘 알아야지. 그 여인의 심장에 제비꽃을 피운 사람이 바로 너니까.”

“나라니…….”

“그 여인의 어머니는 엄청난 마나 때문에 자신의 심장이 버티지 못하는 걸 알고, 그 운명이 자신의 딸에게도 이어질 걸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딸의 심장에 씨앗 하나를 심었지. 조금이라도 그 생이 길어질 수 있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클로에의 말에 이클리트는 로사가 남긴 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누구도 심장에 심은 씨앗을 피울 힘이 없었다. 누구도 간절하고, 절실하게 그 여인을 살리고자 하지 않았으니까. 그럴 만한 힘을 가진 이도 없었고.”

“그래서, 제가 피운 거군요.”

“그래. 그날, 죽은 그 여인을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네가. 너도 모르는 사이, 절실한 갈망과 이끌림으로 그 제비꽃을 피운 거다. 그 여인을 너무나 사랑하여, 네 모든 걸 다 주고 싶다는 그 마음이. 그 여인의 생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지게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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