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6화 (16/237)

16화

광고제작사 서림미디어.

그곳에선 한 회의가 진행중이다.

무려 보건복지부의 공익광고 회의.

말만 들으면 젖과 꿀이 흐를 것 같은 이름.

광고 제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따내고 싶어할 것 같은 사업.

‘지상파는 물론이고, 영화관에서도 틀어주는 게 정부기관 공익광고니까.’

무엇보다 무려 정부기관이다.

제작사들에겐 대표적인 커리어가 된다.

덩달아 제작사도 유명해지고, 몸값이 뛰고.

‘따내기만 하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으니.

서림미디어의 구학준 대표는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참았다.

그리고 눈앞의 상대방을 향해 힘겹게 웃었다.

“말씀하신 사안들. 모두 확정된 거, 맞죠?”

“예. 다 픽스된 겁니다. 변동사항 없을 거고.”

그에 호응하는 남자.

배 나온 중년 아저씨로 보이지만.

실은 공익광고협의회 쪽에서 나온 공무원이다.

“다들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 보건복지부는 항상 돈이 없어요. 예산 쓸 곳은 많은데 돈이 안 들어온다니까? 술담배만 해도 그래! 주세, 담뱃세는 기재부가 다 먹고. 알콜중독자랑 흡연자들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해야한다고요. 세상에 뭐 이런 법이 다 있어요? 안 그럽니까?”

“하하. 네.”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해야할 건 이리 많으니. 참 서럽습니다.”

느닷없이 하소연을 시작하는 공무원.

‘어쩌라고’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오른 구학준이었으나.

“참 고생이 많으시군요. 이번 기회에 항의 좀 하셔서 예산 좀 더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도 출연자 예산 정도는 좀 넉넉해야 좋을 것 같은데.”

그도 광고제작사의 대표 아닌가.

클라이언트 상대는 늘상 하는 일이었다.

적당히 맞춰주는 척하며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에이. 이것도 다 피 같은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건데.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공무원.

쥐고 흔드는 스킬이 보통이 아니다.

‘설마 PPM(Pre Production Meeting, 사전제작회의) 단계부터 이런 난관에 부딪힐 줄이야.’

정부기관이라고 해서 돈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외주 사업보다 쥐꼬리만한 예산을 들고 왔다.

게다가 요구사항은 어찌나 많은지.

‘세금 운운하는 걸 보니, 역시 우리 같은 광고맨들 상대한 짬밥이 있네.’

저 공무원도 광고 제작사를 하루이틀 상대하는 게 아닐 터.

세금 아끼자는데 또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

구학준만 속이 타들어가는 중이다.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토리보드만 봐도 심금을 울렸어요. 영화 같은 분위기와 연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줄 겁니다.”

저 말을 저렇게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니.

구학준은 공무원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걸 제대로 봤으면 이딴 예산안을 들고 오지 않겠지!’

서림미디어가 입찰한 주제.

바로 아동학대 예방이었다.

여기서 서림미디어가 승부를 본 것은 바로 형식.

광고를 초단편 영화 같은 느낌으로 구성했다.

노리는 타이밍은 주로 드라마 방영 전.

혹은 영화관 상영 시작 직전이다.

시청자, 관객들이 바로 몰입하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

‘몰입하고 공감하는 것만큼 좋은 메시지 전달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이뤄지기 위해서 이뤄져야할 선결조건.

바로 출연자들의 연기와 분위기다.

짧은 시간 내에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구학준이 줄기차게 출연자 예산을 올려달라고 하는 것.

검증된 배우들을 통해 연출하길 희망했으니까.

이왕 정부기관과 일하는 거.

제대로, 좋은 광고를 뽑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또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만큼 배우의 연기력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든 필요성을 호소해보는 구학준이었으나.

공무원은 끄떡없었다.

“이건 광고지 영화가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서림미디어의 훌륭한 연출이라면 누가 와도 잘 해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출연자는 이미 빵빵하게 확보되었잖습니까. 아이돌. 그 누구더라?”

동석한 옆자리 부하직원에게 묻는 공무원.

부하직원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룹 빅터의 재오요.”

“예! 재오. 그래, 그 친구 요즘 잘 나간다던데? 그 친구 하나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듣자하니 저 재오라는 아이돌도 재능기부 형식이라 들었다.

그룹 빅터가 보건복지부 홍보대사였으니까.

‘주제가 아동학대인데 아이돌을 꽂아넣어? 배역도 애매한데. 게다가 연기경력도 전무한 애더만!’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으나.

어차피 눈앞의 사람들은 공무원.

그저 위에서 시키니 형식에 맞게 처리할 뿐인 사람들인 거다.

구학준이 부글부글 끓고있는 와중.

공무원은 태연히 손목시계를 흘끔거렸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그럼 모든 사항은 조정된 것으로 알고 가겠습니다. 괜찮겠죠?”

“하, 하하. 네. 알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서림미디어만 믿고 있겠습니다.”

“아, 예. 조심히 들어가십쇼!”

꾸벅 고개를 숙이며 공무원들을 전송한 구학준.

곧 문이 닫히고 그들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본 뒤.

“이런 미친!”

바로 사자후를 내질렀다.

“내가 다시 공무원이랑 일하나 봐라. 무슨 공익광고를 민원처리하듯 저렇게 만드냐? 저런놈들이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진짜 아오!!”

꾹꾹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는 구학준.

다른 직원들도 말만 안하지 똑같은 심정인 모양이었다.

“이따위로 굴면서 광고 퀄리티는 무슨 칸 국제광고제 수상작 수준을 바라고 있고. 양심이란 게 있는 놈들이야?! 어?!”

만약 광고 퀄리티가 영 안 좋을 경우 가장 타격을 받는 쪽.

바로 서림 미디어다.

세금 받아서 일하는 놈들이 퀄리티가 저 모양이냐고 욕먹고.

반응이 안 좋으니 정부기관 쪽에서 또 불러줄 일도 없고.

커리어가 흑역사가 되는 셈.

어차피 보건복지부로선 그냥 수많은 광고 중 하나일 뿐.

결국 서림미디어 측이 독박을 쓰는 구조다.

“역시 광고쟁이들에게 천국은 존재하지 않아. 남의 돈으로 꿀빨기? 젖과 꿀? 똥과 오줌이다. 퉤퉤!”

분노를 쏟아내며 씩씩대던 구학준.

하지만 그도 사회생활을 오래 했다.

결국 뾰족한 수가 없고.

저들의 요구에 따라야한다는 걸 알고 있다.

“플랜A는 폐기다. 플랜B로 가야겠다. 배우들 리스트 뽑아놨지?”

플랜A.

출연료 예산이 충분히 확보될 경우.

1순위로 섭외할 배우들에게 연락하는 것.

플랜B.

출연료 예산에 변동이 없을 경우.

가성비 좋은 배우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 아역배우 쪽 말인데요.”

그때 번쩍 손을 든 30대의 여자.

서림미디어의 캐스팅 디렉터인 김수림.

일명 수림캐디다.

“박유진으로 픽스하면 안돼요?”

“넌 또 그 소리냐? 박유진, 박유진 노래를 불러라.”

수림캐디가 유진을 민 게 처음이 아닌 듯.

질색하는 얼굴의 구학준.

“인터넷에서 반응도 꽤 좋고요. 갓 데뷔해서 페이가 그리 쎄지도 않을 것 같은데.”

“얼굴이 너무 잘나서 좀 그러지 않냐? 얼굴 잘난 아역들은 연기를 제대로 못 하던데. 하도 귀엽고 깜찍한 연기에만 길들여져가지고.”

구학준의 부정적 반응에 수림캐디가 발끈했다.

“우리 유진이 연기 잘하거든요? <유별난 친구들>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데.”

“언제 봤다고 우리 유진이래? 너 걔랑 알아?”

그러자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캐디님 요즘 그 드라마에 미쳤거든요. 회사에서도 일은 안 하고 계속 박유진 짤만 검색한다니까요?”

“일하면서 짬짬이 검색하는거거든? 그리고 검색해봤자 뭐 나오지도 않더라. 우리 유진이 빨리 유명해져야하는데!”

“하이고. 주책이다, 주책이야. 생전 안 그러던 인간이 왜 그래?”

평소 일에 찌들어 살아 텐션이 낮은 수림캐디다.

그런데 <유별난 친구들>을 통해 유진의 이모팬이 되어버린 이후.

유진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엄청난 텐션을 보여주는 것.

“캐디가 밀어붙이는데 이렇게 개무시할 거예요? 마침 거기 소속사에서 우리한테 프로필도 보냈다고요, 얼마 전에. 한 번 페이라도 물어보자고요. 비주얼 좋고, 화제성 좋고, 연기력 좋고. 이걸 놓치면 바보지.”

이렇듯.

수림캐디는 유진 캐스팅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공무원에게 시달린 탓일까.

지칠대로 지친 구학준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아오, 그럼 프로필이나 한 번 줘 봐. 괜찮으면 미팅이나 한 번 잡아보게.”

“여기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유진의 프로필을 들이미는 수림캐디.

그 모습을 보며 구학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캐스팅 디렉터를 이모팬으로 만들 정도라니. 걔가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하면 그러는 거야?”

“그럼 저랑 <유별난 친구들> 정주행하실래요? 제 노트북에 파일 다 있거든요.”

수림캐디의 눈이 반짝였다.

*

며칠 뒤.

차동석의 차가 멈춰선 것은 바로 유진의 집앞이었다.

잠시 후.

박태종, 박유진 부자가 차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아조씨!”

“어서오세요.”

운전석에서 백미러를 통해 두 사람을 확인한 차동석.

곧 그의 눈썹이 들썩였다.

“아버님. 혹시 일 끝나고 어디 가십니까?”

그러자 박태종이 멋쩍게 웃었다.

“그게. 정부기관 사람을 만난다고 하니까. 그래도 아버지인데 좀 잘 보여야지 싶어서.”

바로 박태종이 양복을 입고온 탓.

싸구려 양복인 건 당연하고.

오랜만에 입는 듯 어깨엔 먼지도 조금 묻어있다.

게다가 한 치수는 커 보이는.

말 그대로 아빠 양복이다.

“어떻게 좀 괜찮습니까?”

그래도 나름 양복을 입었다고.

자신감 있게 물어보는 박태종.

“예. 멋지십니다. 그런데.”

차동석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그. 광고 제작사와 계약관련 미팅이라, 아마 정부 쪽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를 증명하듯.

차동석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복장이었다.

“아. 그, 그렇습니까?”

그러자 뻘쭘해진 박태종.

얼굴이 새빨개지는 게 다 보일 정도였다.

슬쩍 양복 자켓만이라도 벗으려 했으나.

“괜찮아요. 아빠 짱 멋있어!”

그런 아빠를 위로하듯 엄지를 치켜세우는 유진.

그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자켓을 벗는 걸 그만 두었다.

“광고는 처음인데! 엄청 기대돼요.”

붕붕 발을 휘두르며 신을 내는 유진.

그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박태종이 차동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프로필 돌린지 얼마 안 됐다고 하지 않았나요? 원래 이렇게 연락이 바로바로 오는 건가요?”

차동석이 고개를 저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아역팀 맡았던 저도 처음 겪어보는 일입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광고라니. 허, 참. 진짜 꼬맹이는 상상을 초월하네요.”

“그,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무엇보다 얼굴 알리는데는 최고입니다. 공익광고라면 지상파, 영화관에서도 틀어줄 거고. 드라마나 영화랑 달리 촬영이 금방 끝나기도 하고. 여러모로 이득 밖에 없습니다.”

기업들의 광고와는 달리.

공익광고는 출연자의 인지도가 그리 중요하진 않다.

말그대로 공익을 위한 광고니까.

그래서 유진이 캐스팅될 수 있었던 것.

“우와, 그럼 <리플레이> 보러갔을 때 이 광고도 같이 나오면 재밌겠다. 그쵸?”

잠시 후.

차는 서림미디어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근처에 도착했다.

세 사람이 발걸음을 옮겨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쪽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저, 박유진 배우 소속사분들. 맞나요?”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서림미디어 캐스팅 디렉터, 김수림입니다.”

“아, 주역 매니지먼트 차동석입니다! 아니, 이렇게 마중을 나와주시다니.”

광고 회사가 무명 아역배우 마중을 나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차동석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수림캐디가 바쁜 눈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으니.

“바, 박유진 배우?”

“넵!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아!”

유진이 수림캐디 앞으로 걸어나와 꾸벅 인사했다.

그러자 수림캐디가 입을 틀어막았다.

마치 팬 사인회라도 온 것처럼 감동한 얼굴.

“지, 진짜 실물이 더 멋지고 잘 생기고 귀엽다. 드,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진짜 팬입니다.”

“정말요? 와! 감사합니다! 아빠, 아조씨! 들었어요? 저 팬 생겼어요!”

덜덜 떠는 수림캐디와 해맑게 자랑하는 유진.

‘<유별난 친구들>이 확실히 뜨긴 했네. 설마 광고업체 캐디가 저렇게 팬일 줄이야.’

광고 업계도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당연히 특정 연예인의 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가 아닌가.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까진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대하는 것이 원칙.

그러나.

수림캐디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성인배우라면 몰라도, 상대는 아역배우 아닌가.

마음이 훨씬 부드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악수라도 한 번만.”

“어? 악수요?”

유진이 되묻자 화들짝 놀라는 수림캐디.

“죄송해요. 갑자기 이러면 부담스러울 텐데······.”

“포옹도 되는데!”

“에, 네?”

수림캐디가 당황하는 사이.

총총 달려가 안기는 유진.

“팬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수림캐디의 얼굴은 그저 멍할 뿐.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도 분간이 안 가는 모양이다.

“······지금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응? 주그면 안대요! 자, 따라하세요. 심호흡. 후, 하. 후, 하!”

“맞다. <유별난 친구들> 보려면 살아야지. 그래서 말인데, 다음화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돼요?”

“죄송해요. 스포일러 금지예요.”

이럴 땐 또 칼같은 유진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차동석.

그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진짜 사람 홀리는 재주는 타고났네. 대체 비법이 뭡니까, 아버님?”

차동석은 그렇게 말하며 박태종을 바라았다.

그러나 박태종의 얼굴을 보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우리 유진이가······! 팬이 생겼다니. 크흑. 흑, 흐윽.”

아무래도 유진은 아빠를 울리는 재주도 타고난 모양이다.

그렇게 제법 소란스런 마중이 끝나고.

“서림미디어 대표이자 광고 프로듀서 구학준입니다. 이번 광고는 제가 연출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마주한 구학준.

그는 수림캐디보단 훨씬 드라이한 느낌이었다.

전형적인 광고 업계 사람이라는 인상이랄까.

광고에 대한 설명이 쭉 이어지다가.

“그리고 아이돌 스타, 그룹 빅터의 재오 씨가 참여할 예정이고요.”

“빅터의 재오? 그게 정말입니까?”

차동석이 화들짝 놀랐다.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룹 빅터의 인기와 파워를 잘 알고 있으니까.

‘이거 대박이다. 빅터의 팬들한테까지 꼬맹이의 얼굴이 자연스레 알려지겠는데?’

유진의 얼굴이 제법 오래 노출될 터.

게다가 공익광고라 수시로 지상파, 영화관에서 틀어줄 것이다.

“여기 계약서입니다.”

구학준이 내민 광고출연계약서.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고 있어 보기 수월했다.

유진 측에서 유심히봐야할 것은 하나.

‘출연료.’

차동석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유진은 이제 막 케이블 드라마에서 인기를 끄는 아역배우고.

공익광고의 출연료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들었기 때문.

그런데.

‘뭐야. 예상한 것보단 제법 높네?’

차동석이 생각보다 괜찮은 금액에 놀라고 있을 때.

“저희는 박유진 배우를 매우 높게 사고 있어요.”

수림캐디가 입을 열었다.

마치 조카 자랑하는 이모처럼.

차동석과 유진은 몰랐지만.

예산으로 공무원과 입씨름을 하던 구학준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유진의 출연료를 제법 챙겨줄 수 있었나?

“훌륭한 비주얼과 그걸 살리는 디테일한 연기력. <유별난 친구들>을 본 뒤로 PD님도 매우 흡족해하셨어요. 그쵸?”

“그래, 그래.”

반강제로 수림캐디와 함께 <유별난 친구들>을 시청한 것이 컸다.

드라마 속 유진의 연기를 보며.

그 잠재력을 인정한 것이다.

“이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아역이니까요. 이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훌륭한 연기자가 필요한 법이고, 저희로선 그게 박유진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서림미디어로선 한정된 예산에서 최대의 성의를 보인 것.

물론 이를 추진할 수 있던 건 수림캐디의 영향이 컸다.

그야말로 이모팬의 위력.

이내 곧 차동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유진은 박태종과 함께 도장을 잡았다.

그리곤 계약서에 꾹 찍었다.

“아빠.”

조금 얼떨떨한 얼굴의 유진.

마치 조금 벅차오른 듯한 얼굴이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몰랐지만.

노잼 연기자라 불렸던 박유진.

그가 처음으로 팬의 존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으니까.

“팬이 생긴다는 거, 진짜 좋은 거다.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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