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9화 (19/237)

19화

촬영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형. 첫 대사 한 번 해보세요.”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자, 시이작.”

“······괜, 찮아? 많이 덥, 지?”

“다시.”

“괜찮, 아? 많, 이덥지?”

“다시요.”

“야, 이걸 언제까지······.”

“다시 한 번 해보세요.”

뜬금없이 재오를 찾아온 유진.

거기에 더 뜬금없는 요구를 해왔다.

‘얘 대체 뭐야?’

평소라면 무시했을 재오였으나.

거듭된 NG로 인해 절박한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저도 모르게 유진의 말에 따랐다.

아역배우도 배우니까, 뭐라도 조언을 해줄까 싶어서.

“다시.”

“으음, 다시.”

“다시 한 번 해보세요.”

그러나.

유진은 계속 같은 대사만 반복시킬 뿐.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똥개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하자는 거야?’

짜증이 치밀어올라 소리라도 지르려던 재오였으나.

‘잠깐만.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스멀스멀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기억.

‘맞아. 옛날에 연기 선생님들도 이렇게 반복 읽기를 시켰는데. 모든 해답은 대본 안에 있다고 했어. 이 캐릭터가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 그걸 이해하고 연기해야 한다고.’

나름 배우 지망생이었던 재오다.

연기 수업을 안 받아봤던 게 아니다.

하지만 재오는 왜 그 가르침을 흡수하지 못했나?

바로 과도한 의욕이 모든 걸 앞지르는 스타일이기 때문.

게다가 지금은 톱아이돌이라는 부담감까지 더해진 상태.

좋은 연기가 나올 리 만무하다.

‘그때 선생님들은 대본을 보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라고 했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

오래된 공책을 꺼내보듯, 옛 가르침들을 떠올린 재오.

곧 심호흡을 내뱉으며 몸의 힘을 뺀 뒤.

차분히 대본을 다시 살펴봤다.

'그래,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지금 내 캐릭터는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절하고 착한 교사. 그런데 자신이 맡은 아이가 더운 날씨에도 계속 긴팔을 고집하고 있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팔을 걷거나, 옷을 갈아입지 않고. 선생님으로서 당연히 걱정이 되겠지.'

특별히 힘을 줄 부분은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되는 일.

그러자 자연스레 대사가 흘러나왔고.

“괜찮아?, 많이 덥지?”

그러자, 재오의 대사 톤이 훨씬 나아졌다.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

유진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고.

“와아, 잘해써요! 형아. 그 느낌을 절대 잊지 말아요.”

짝짝 박수까지 쳐주는 유진.

그러자 재오는 시원한 해방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형아! 저랑 연기할 때 제 눈을 봐주세요.”

“네 눈?”

“네.”

그 말의 의미를 몰랐던 재오였으나.

촬영장에서 유진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맞아. 선생님들이 연기는 호흡이라고 했지. 상대방이 내보내는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고.’

유진이 연기하고 있는 불안하고 공허한 눈동자.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오케이! 재오 씨, 좋았습니다!”

그렇게 오케이 사인을 받고서.

재오는 난생 처음으로 연기의 희열을 느꼈다.

마치 데뷔 이후 첫 1위만큼이나 감격스러울 정도.

‘그 애는 대체 뭐지? 계속 대사 연습만 시킨 것도, 눈을 보며 하라는 것도. 다 내가 배웠던 연기 방법이랑 다를 게 없어. 그런데 왜? 왜 저 애가 하란대로 하니까 잘 되는 거야?’

유진은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으나.

그 어떤 조언보다 효과적인 가르침을 준 셈.

“너, 너 이름이 뭐라고?”

“박유진이요!”

재오는 유진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고사리 같은 손이지만.

지금 재오에겐 그 어떤 것보다 든든했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

공익광고 촬영 종료 이후 몇 주 뒤.

신문과 인터넷 뉴스 연예란에는 한 소식이 들려왔다.

<[단독]아이돌 빅터의 재오, 아동학대 근절 공익광고 노 개런티 출연······비주얼도 인성도 완벽한 ‘개념돌’>

<보건복지부 홍보대사 재오. 공짜로 공익광고 출연! 개념찬 행보 눈길>

<“아동학대가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빅터의 재오가 말하는 소망>

<개념돌 재오가 출연 중인 2박3일,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 기록!>

아직 광고가 공개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빨리 소식이 퍼졌나?

이 모든 것은 유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광고 촬영 종료 당시.

“감독님! 저 광고 찍었다고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요?”

“미안하지만 안 돼요. 광고가 공개된 이후엔 해도 되고.”

구학준이 대답했다.

계약서에 비밀유지조항도 삽입되어 있고.

“음, 아쉽다. 영화처럼 광고 미리 홍보하면 재밌을 텐데!”

유진이 넌지시 던진 말.

구학준은 거기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영화처럼 광고를 홍보한다고?”

“네! 우리 광고, 영화 같으니까요. 우리 반 여자애들도 재오 형아가 나온다는 거 들으면 광고 찾아볼 텐데!”

“광고를 찾아본다라. 흠.”

발상의 전환.

구학준은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공익광고를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다가.

즐겨보는 드라마 시작 전에.

상영 직전의 영화관에서.

그저 틀어주면 보게 되는 것.

‘이를 거꾸로 뒤집어서, 대중들로 하여금 공익광고를 찾아보게 만들자?’

빅터 재오의 첫 광고.

거기에 노 개런티.

화제성은 차고 넘친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진짜 영화처럼 포스터도 만들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고.”

광고가 지닌 영화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것.

보건복지부 측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재오의 노 개런티 출연 소식을 필두로.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공익광고를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빅터 재오가 출연하는 광고, 일반적 공익광고와 다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영화 같은 퀄리티······기대하셔도 좋을 것”>

<재오의 아동학대 근절 공익광고, 숏 버전과 롱 버전 두 개로 나온다······대중들의 관심집중!>

거기에 발맞춰 서림미디어와 보건복지부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점 광고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갔다.

특히 그룹 빅터의 팬들은 어마어마했는데.

광고가 언제 송출되는지 물어보려고 보건복지부에 단체로 전화를 한 것.

<보건복지부 “광고 송출일정, 확정되면 공지할 것······아동학대 근절에 대한 관심 감사”>

<공익광고의 트렌디한 마케팅! 호평 쏟아져>

<공익광고 하나에 쏠린 대중들의 눈길······전문가들 “아동학대 근절 홍보에 큰 도움 될 것”>

시작도 전에 좋은 기획이라며 호평이 자자했다.

이 모든 게 유진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어린애들이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를 잘 내곤 한다지만······이건 좀 대박인데? 광고 마케팅으로 먹고사는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야.’

쪼들리는 예산과 재오의 발연기로 고통받던 구학준.

그를 구원해준 것이 바로 유진이 아닌가.

‘게다가 발연기만 계속 하던 재오가 갑자기 연기력이 좋아졌어. 박유진이랑 같이 돌아온 이후로. 박유진, 걔는 대체 뭘 한 거지?’

재오의 연기를 바로잡아주고.

광고 홍보방식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주고.

실로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셈.

“어때요? 우리 유진 배우님 최고죠?”

수림캐디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학준에게 유진을 추천한 게 수림캐디 아니었나.

“그래, 대박이다. 하지만 아직 안 끝났어. 이제부터 영혼을 갈아 넣어보자고, 한 번.”

눈을 빛내며 불타오르는 구학준.

이젠 서림미디어가 실력을 보여줄 차례였으니.

“해외 광고제 수상도 한 번 노려보자고! 알겠냐?”

구학준이 손뼉을 치며 직원들에게 외쳤다.

*

한편.

드라마 <유별난 친구들>의 촬영장.

주인공 일행 분량을 먼저 촬영 중이기에.

유진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꼬맹아.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말했잖아요. 그 형아한테 연기 가르쳐줬다고.”

“그니까 어떻게?”

“그건 비밀!”

차동석과 유진은 아침부터 위의 대화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집요하게 캐내려는 차동석과.

말해줄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유진.

“아니, 이 아저씨한테도 안 가르쳐주는 거야? 아저씨 섭섭해? 너 재오 형아가 소중해, 이 아저씨가 소중해?”

얼마나 궁금했는지.

이젠 유치하게 나오는 차동석이었다.

“아조씨가 더 소중하죠. 그치만 재오 형아랑 약속했거든요! 친구들 사이에 비밀은 꼭 지켜야하는 거잖아요. 그쵸?”

하지만 결국 차동석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비밀이라는데, 아이를 상대로 언제까지 꼬치꼬치 물을 수 없으니까.

“그럼 이거만 물어보자. 너 촬영장에서 계속 재오랑 붙어있었잖아. 걔 어떻든?”

“음. 바보 같지만 착한 형이에요!”

유진도 재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톱클래스의 아이돌이니 깐깐하거나 오만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재능은 없어도 엄청난 노력파였다.

연기 열정이 과하게 넘칠 뿐.

재오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회귀 전 나와 정반대인 사람이야.’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레 연기하고 싶던 유진.

과도한 의욕으로 어떻게든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재오.

‘그런 사람들은 기본기를 형성해주고, 몸에서 힘만 빼줘도 훨씬 좋아지지.’

회귀 전.

나름 베테랑 배우로서.

무수히 많은 지망생들과 무명 배우들을 알고 있던 유진이다.

재오 같은 부류의 연기자도 적잖이 알고 있었고.

‘하지만 재오 같은 애들은 직접적인 조언이 잘 통하지 않는 부류야.’

이해하기 보단 행동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기 때문.

결국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유진이 재오에게 계속 대사 연습만 시켰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뭐,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는 셈이지.’

하지만 어떤 사실은 비밀일 때 더 가치 있는 법이다.

“음? 무슨 일이 있나?”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같아 밖으로 나온 두 사람.

“아, 유진아!”

누군가 유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주위로 스태프들은 물론 배우까지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설마하니.

“재오 형아?”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남자.

재오였다.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

“뭐야, 재오가 지금 유진이한테 인사한 거야?”

“설마 유진이 만나러 온 건가?”

“왜? 두 사람이 어떻게 알고 지내는 건데?”

“그런데 재오 실물 생각보다는 별로인 것 같은데?”

“그러게. 유진이 때문에 눈이 높아졌나.”

저마다 웅성대는 스태프들을 뒤로 하고.

재오와 유진은 짧게 악수를 나눴다.

“재오 형아. 무슨 일이예요?”

“해외 스케줄 때문에 공항 가는 길이었는데, 마침 촬영장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너 연기하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그럴 시간은 없네.”

“TV로 보면 되죠. 온플러스에서 해요.”

“직접 보고 싶었단 말이야.”

첫 만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재오는 가식 없이, 훨씬 편하고 담백하게 유진을 대하고 있었다.

“아, 맞다. 실은 이거 주고 싶어서 왔어.”

재오는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유진에게 내밀었다.

거절하지 않고 받아드는 유진.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출고가가 80만원이 넘는 고급 휴대폰이었다.

“우와, 이거 요즘 광고하는 롤리팝 캔디폰이다!”

“너랑 연락하고 싶은데, 너 개인 휴대폰 없다며? 그래서 하나 사 왔어. 거기에 내 번호 저장해뒀고.”

“고마워요. 재오 형아 최고!”

빅터의 재오가 자신과 연락하기 위해 선물해준 휴대폰.

즉.

재오와 유진만의 핫 라인이나 다름 없다.

그것만으로도 유진에겐 이 휴대폰의 가치가 매우 컸다.

‘앞으로 개인 인맥이 생기면 이걸로 연락하면 되겠네.’

든든한 아군을 만들어놓는 것 또한 중요하니.

빅터의 재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인맥이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나중에 빅터 콘서트 하면 티켓 보내줄게.”

“진짜요? 와. 친구들한테 나눠줘야겠다.”

“네가 와야지, 널 초대하는 건데. 친구들이 오면 어떻게 해?”

“전 빅터 노래 모르거든여!”

“······형 상처받았어.”

“뻥이예요. 꼭 갈게요, 재오 형아!”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이가 서로 뒤바뀐 것만 같은 모습이다.

재오는 형을 대하듯.

유진은 동생을 대하듯 하고 있으니.

든든한 형과 어딘가 어수룩한 동생 같달까?

“야, 재오야. 비행기 시간 놓치겠다! 얼른 와!”

멀리서 소리치는 조실장.

“어, 알았어!”

그렇게 자리를 떠나려던 재오가 잠시 멈칫하더니.

“아, 맞다. 유진아. 너 <생생 연예정보통>이라는 프로그램 알아?”

“네! 일요일 밤에 SBW에서 하는 거잖아요.”

“이번 주 일요일에 본방사수해. 알았지? 꼭이야.”

왜냐고 물을 새도 없이.

바쁜 걸음으로 멀어져 밴에 탑승하는 재오.

그가 떠나고 난 뒤의 촬영장.

다들 놀란 얼굴로 유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재오랑 그렇게 알고 지내는 거냐.

그렇게 묻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응? 왜 그러세요?”

하지만.

유진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 촬영해야죠!”

*

한 주간의 연예계의 소식을 전하는 <생생 연예정보통>.

<생생 인터뷰>는 그 4번째 코너다.

한 주에 한 명씩 연예계의 핫한 인물을 초대.

인터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최고의 남자 아이돌 그룹, 빅터의 엔딩요정을 맡고 계시는 재오님을 모셨습니다.”

붉은색 머리띠의 여자 리포터가 소개하자.

은발 머리의 재오가 의자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빅터의 재오입니다. 이렇게 생생 연예정보통에 나올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이야. 실물로 뵈니까 훨씬 잘생기셨네요. 진짜 저기서 들어오시는데 후광이 막 번쩍번쩍거리는 느낌이었어요.”

“하하. 부끄럽네요. 진짜 전구라도 등 뒤에 달고 올 걸 그랬나 봐요.”

“그건 좀 참아주시죠!”

리포터의 능수능란한 진행.

그리고 예능으로 다져진 재오의 언변.

두 가지가 시너지를 발휘했다.

빅터의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

멤버들과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되었고.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갈 무렵.

“아,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최근 화제가 되었던 노 개런티 출연. 보건복지부 홍보대사로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공익광고에 출연하셨다고요.”

리포터의 말에 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로 인해 한 분이라도 아동학대 근절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매우 의미있는 일일 거라 생각해서요.”

“외모와 유머, 거기에 인성까지 갖추셨네. 역시 완벽하십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이 첫 광고 출연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야, 이거 참 의외네요. 재오 씨 같은 톱스타가 광고 출연이 전무했다니! 첫 번째 광고 촬영이 공익광고라는 것도 참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제 영향력을 좋은 곳에 쓰고 싶었어요. 보건복지부에서 좋은 제안을 주셔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딛은 것 같습니다.”

두 손을 모으며 공손한 태도로 대답하는 재오.

TV로 보기에 재오는 개념 찬 청년, 그 자체였다.

완벽한 이미지 메이킹.

“정말 멋있으십니다. 첫 광고 촬영 후기가 궁금하네요. 혹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주제도 주제고, 첫 광고 촬영이다 보니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실수가 많아서 관계자분들에게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많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끝마친 것 같습니다.”

“역시 뭐든지 처음은 어렵고 힘든 법이죠. 그럼 현장에서 재오 씨에게 제일 도움을 준 사람, 한 명만 꼽자면요?”

그 질문에 재오는 아, 하고 탄성을 냈다.

“네. 당장 딱 한 명이 생각나네요. 그분께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 그분이 누군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아역배우 박유진 군입니다.”

재오의 대답에 리포터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역배우가요? 이거 의외의 대답인데요?”

“저와 그 친구가 붙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제가 헤매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많이 해줬습니다.”

“들을수록 더 궁금해지는데요? 혹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재오가 곤란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죄송해요. 그건 유진이와 저만의 비밀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제가 약속과 비밀은 꼭 지키는 사람이라서요.”

“이거 더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이 자리를 빌어 박유진 군에게 영상편지 하나 어떠세요?”

“지금요? 하하. 쑥쓰러운데. 그래도 해볼게요.”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응시하는 재오.

곧 그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유진아. 유진이 덕분에 깨닫는 게 많더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 조만간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우리 계속 연락하고 지내자. 고마워!”

“네, 재오 씨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 큰 도움을 준 모양이네요. 그럼 박유진 군이 재오 씨의 연기 스승이라고 봐도 될까요?”

“하하. 물론이죠.”

리포터는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었으나.

의외로 진지하게 대답하는 재오.

“그럼 <생생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재오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사하며.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드는 리포터와 재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인터뷰지만.

[??? 재오가 언급한 아역배우 누구임?

ㄴ 박유진이라는데?

박유진? 커뮤 돌아다니다 그 이름 본 것 같은데?

헐!! 요즘 존잘 아역이라고 인터넷에 짤 도는 걔??]

그 파급력은 실로 엄청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