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8화 (18/237)

18화

그렇게 찾아온 공익광고 촬영 당일.

촬영장으로 가는 길.

“그렇게 좋냐?”

운전 도중 백미러를 흘끗거리며 웃는 조실장.

재오가 대본에 거의 코를 박고 있었으니.

“내용은 좋은데. 역할이 뭔가 아쉽네. 대사도 더 많았으면 좋았을 걸. 너무 쉽잖아?”

턱을 괴며 중얼거리는 재오.

그 꼴이 꼭 톱스타 배우를 흉내 내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을 보며 조실장이 피식 웃었다.

‘쟤를 순수하다고 해야할지. 단순하다고 해야할지.’

이번 광고 속 재오의 배역.

바로 선생님 역할이다.

긴 팔을 입고 다니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걱정하지만.

끝내 아이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인물.

‘초단편에 개성이 강한 캐릭터도 아니야. 대사도 얼마 없고. 광고니까 당연히 바스트샷 위주로 배우의 감정을 세심하게 담겠지. 그런데 이게 쉬워?’

오히려 이러한 인물의 연기가 더 어렵다.

주어진 정보가 없는데다, 감정선이랄 것도 안 보인다.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드는 건 배우의 역량.

연예인이 아닌 조실장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재오만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역시. 배우니 연기니 하지만 다 겉멋으로 알고 있네, 저 녀석.’

배우 지망생이었던 재오.

오디션도 연기로 봤는데, 그런 그가 어째서 아이돌로 빠지게 되었나.

이유는 간단하다.

재오가 연기를 더럽게 못했으니까.

‘그때도 마스크는 꽤 훌륭했다고 하니까.’

재오가 오디션을 보러온 날.

회사 사람들이 대어가 굴러 들어왔다며 회식까지 했더란 소문이 있다.

비주얼이 딱 영화배우 상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그 대어가 때깔만 좋은 복어일 줄은 몰랐던 거야.’

비주얼 때문에 뽑아놓긴 했는데.

재오의 연기력이 생각보다 처참했던 것.

아무리 연기 선생을 붙여줘도 진전이 없었다.

‘재오 저 새끼는 연기시키면 안 돼! 절대!’

당시 재오의 오디션 심사위원이었으며.

현재 배우 쪽 총괄을 맡고 있는 부장이 조실장에게 외치던 말이다.

대체 얼마나 끔찍한 연기력이기에 다들 기를 쓰고 막는 건지.

재오의 연기를 본 적 없는 조실장도 궁금할 지경이다.

‘어차피 이제 곧 개인활동 끝나고 빅터 다음 앨범 준비해야하니까. 그거 하다보면 정신없어서 연기 얘기도 쏙 들어가겠지.’

광고가 잘 되면 연기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여태 이런 식으로 계속 재오를 조련해온 조실장이다.

아예 못하게 막아버리면 비뚤어질까 계속 희망고문을 해왔던 것.

‘넌 그냥 영원히 비주얼 아이돌로 남아라, 재오야.’

그런 생각을 숨기고서.

조실장은 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욕 앞선다고 막 그러지 말고. 특히 아역 상대할 때 조심해. 너 보건복지부 홍보대사야. 어린애가 NG 내거나 실수해도 절대 화내거나 하면 안 되고. 혹시 모르지만 기자들도 붙었을지도 모르니까.”

“알아, 알아. 내가 뭐 이런 일 하루 이틀 하나.”

조실장의 생각도 모르고.

재오는 그저 기세등등할 뿐이었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겠다!

그런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지경.

잠시 후.

재오를 태운 밴이 초등학교 앞에 멈춰섰다.

경기도 인근의 초등학교.

폐교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이 매우 깨끗했다.

이번 광고촬영을 위해 장소를 빌린 것.

“재오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림미디어 대표 구학준입니다.”

“그룹 빅터의 재오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힘차게 인사하는 재오.

그는 곧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저, 감독님. 근데 우리 리딩 같은 건 안 해요? 드라마나 영화 찍을 땐 그런 거 한다던데.”

“대사량도 얼마 없고, 형식이 초단편영화긴 하지만 결국 광고라서요.”

“아아, 그렇구나. 하하. 영화 같아서, 혹시나 했네요.”

예능으로 다져진 재오답게 붙임성이 좋았으나.

그걸 감안해도 재오의 텐션은 평소보다 훨씬 높았다.

전체적으로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

“그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곧장 촬영 들어가면 되나요?”

“아뇨. 아직 세팅할 게 남아있어서. 먼저 메이크업이랑 의상 세팅하고 계세요.”

빈 교실 중 하나를 대기실로 배정받고.

자신의 스태프들과 세팅에 들어가는 재오.

헤어컬러 스프레이로 머리색을 차분하게 바꾸고.

후줄근한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는 재오.

그러자 어느 정도는 젊은 초등교사로 보였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어른들이 득시글한 이곳에서.

어린아이 한 명이 총총 움직이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여!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아. 잘 부탁드립니다!”

“만나서 반가워. 난 재오야. 잘 부탁해요, 꼬마 친구.”

웃으며 유진과 악수하는 재오.

조실장의 조언대로.

아이들에겐 무조건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중이다.

애초에에 그룹 빅터는 초등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가 중.

초등학생은 팬미팅에서도 많이 만나봤다.

“우리 반 친구들이 형 팬이에요. 특히 여자애들!”

“정말? 고마워. 엄청 힘이 되네. 사인해줄까?”

“음, 아뇨. 전 괜찮아요! 나중에 제 친구들한테 해주세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재오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유진은 재오에게 ‘나 네 팬 아니야’라고 말한 것과 다름 없으니.

한 방 먹은 기분이었으나.

애써 웃어넘기는 재오다.

“형.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응. 얼마든지. 뭔데?”

“형 연기 잘해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재오.

그 반응은 재오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재오는 커다란 눈을 끔뻑일 뿐이다.

‘굳이 인사하러 온 것도 그렇고. 예의는 바른 것 같은데 또 당돌한 것 같기도 하고. 얘 뭐지?’

첫인상부터 오묘한 아이였다.

재오는 피식 웃었다.

“그럼. 잘하지.”

“오, 진짜요?”

“그럼. 형만 믿고 따라오면 돼. 알았지?”

오늘 촬영은 두 사람이 붙는 장면들 뿐.

즉,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하다.

연예계 선배이자 성인인 재오의 역할이 중요한 셈.

그런데.

대답을 들은 유진의 표정이 미묘했다.

애써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얼굴이었으니.

“넵! 형만 믿을게요. 그럼 이따 봐요. 바이바이!”

그에 대해 묻기도 전에.

손을 흔들며 나가버리는 유진.

“애가 아주 씩싹하네.”

“와, 근데 애가 진짜 잘생기고 예쁘게 생겼다. 인형인 줄 알았어요.”

스태프들이 유진을 보며 웅성거렸다.

‘그냥 예쁜 애 아무데서나 데려온 건 아니겠지? 내 연기에 방해만 안 되면 좋겠는데.’

재오는 괜한 걱정이 앞설 뿐이었다.

잠시 후.

서림미디어 측 스태프가 찾아왔다.

“이제 곧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이후 촬영장소로 이동한 재오.

구학준을 통해 구도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카메라 앞에 섰다.

오늘 이 촬영장을 씹어먹어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자, 그럼 아역 쪽부터 먼저 따겠습니다. 하이, 액션!”

구학준의 신호가 떨어지자.

섭외된 단역 초등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다.

잠시 후, 뒷문으로 긴팔을 입은 유진이 등장했을 때.

재오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학대당하는 아이를 표현해야지. 저건 그냥 평범한 초등학생이잖아?’

유진이 표현하고 있는 아이는 별다른 특성이 없었으니.

얼굴에 별다른 근심도 느껴지지 않고.

어깨만 조금 쳐졌을 뿐.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야, 왜 긴팔을 입고 있냐?”

“더워 죽겠다!”

단역들이 대사를 쳐도.

“······.”

주눅이 들거나 흠칫 놀라지 않는다.

그저 멍한 얼굴로 단역들을 바라볼 뿐.

재오가 보기에 지금 유진이 연기하는 건.

그저 조금 엉뚱한 아이.

딱 그 정도였다.

‘이걸 안 끊고 간다고? 아역이라고 그냥 봐주는 건가? 나참.’

그러나 구학준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쟤 대체 뭐야?’

구학준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각 테이크마다 유진의 연기가 미세하게 달랐으니.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유진이 입은 긴팔 옷은 점점 길어지고, 두꺼워져갔다.

그에 맞춰 조금씩 유진의 어깨가 움츠러들고.

걸음걸이에 망설임이 생겼다.

‘씬마다 학대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건가?’

눈빛 또한 마찬가지.

얼핏 보면 첫 장면과 같은 멍한 눈빛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멍한 눈빛이었는데, 갈수록 깊어져. 공허해진다는 걸······눈빛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야?’

마치 잿빛이 점점 짙어지는 것처럼.

바스트 숏으로 촬영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었다.

풀샷을 찍을 땐 또 그에 맞는 디테일을 보여줬다.

상처 부위를 저도 모르게 문지르고.

그럴 때마다 오한 때문에 몸을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대박이잖아?”

모니터 중이던 구학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 광고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듯한 흡인력이었다.

“야, 수림아. 너 안목 대단하다.”

“제가 아니라, 저 배우가 대단한 거죠.”

오늘 촬영장까지 따라나온 수림캐디.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 다음은 재오 씨 단독이랑, 두 분이 붙는 씬까지 쭉 가겠습니다.”

바삐 움직이는 카메라와 조명 스태프들.

유진 덕분에 그림이 훨씬 멋있어졌다.

덕분에 구학준까지 불이 붙은 상황.

이제 재오가 그 흐름을 이어받아야할 타이밍.

“네.”

재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의 첫 등장 장면.

바로 아이에게 다가가 건네는 다정한 대사.

‘그래도 탑티어 아이돌이니까. 평균은 하겠지?’

아니면 유진처럼 재오도 예상 외의 연기를 보여주려나?

처음과 달리 꽤 기대감을 가진 구학준이었다.

그런데.

“괜. 찮. 니? 많, 이. 덥지?”

대참사가 벌어졌다.

*

잠시 후.

“컷! 조금만 쉬었다 갑시다!”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나오는 말.

하지만.

‘첫 장면부터 이러면 앞으론 답이 없는데.’

유진이 느끼기에도.

재오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그나마 전파를 탄 게 양반이었네. 여태 찍은 걸 그대로 내보냈으면 진짜 타격이 심했을 거야.’

공익광고가 꽁트로 변모하게 생겼다.

대본이 품고 있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도.

광고가 전달하려는 묵직한 메시지도 모두 해치는 셈이니까.

“죄송합니다, 감독님.”

꾸벅 고개를 숙이는 재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했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한 모양.

‘하긴. 나한테도 자기만 믿으라니 뭐니, 그렇게 허세를 부렸는데.’

유진은 내심 눈치채고 있었다.

재오가 자신을 조금 깔보고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 재오가 입은 내상은 더 클 터.

“하하, 첫 촬영이라고 긴장했나보네. 편안하게 해요. 엄연히 따지면 영화가 아니라 광고 촬영이니까.”

구학준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차마 면전에서 욕을 할 수 없으니.

“오빠. 부담감 갖지 말고 해요.”

“맞아요. 마음 편하게. 응?”

온갖 스태프들이 붙어 케어에 나섰으나.

재오의 표정은 풀어지질 않았다.

‘멘탈케어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인 것 같은데.’

그때.

재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형. 나 잠깐만 혼자 있고 싶어.”

“야, 너 지금······쯧. 알았다. 대신 오래는 못 기다려. 보는 눈 많다. 스태프들 회의 끝나면 바로 돌아와야해. 알았지?”

재오는 터덜터덜 학교 뒤편으로 향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된통 개망신을 당한 셈이니.

부끄러움과 자괴감 등.

온갖 복합적 감정이 밀려들었을 터.

“재오 형아!”

그때.

유진이 나타났다.

*

“하아. 이걸 어쩌냐.”

구학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머리를 하도 쥐어뜯어서 산발이 다 됐다.

“이러다 해떨어지겠어요. 그럼 나중에 날 잡고 다시 해야 하는데.”

스태프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학준은 곧장 재오의 매니저, 조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스케줄 됩니까?”

“쉽지가 않습니다. 조정은 해봐야겠지만, 도무지 엄두가 안 나네요.”

탑 아이돌답게 재오의 스케줄은 꽉꽉 찼다.

이제와서 다시 날짜를 잡기도 쉽지 않은 일.

잠시 후.

스태프들은 긴급회의를 위해 따로 모였다.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 마라톤 회의였다.

“대사는 그냥 후시녹음으로 따고, 이대로 넘어가죠?”

“지금 대사만 문제야? 표정부터 몸 쓰는 거까지. 총체적 난국이잖아.”

그 말대로.

재오의 표정이며 몸짓까지.

하나하나가 어색함의 극치였다.

게다가 유진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 탓에.

재오의 연기가 심각하게 비교되고 있었다.

덕분에 구학준도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는 것.

“방법이 없어요. 여태 촬영한 것 중에 베스트 뽑아서 넘어가죠.”

“네 눈엔 여태 베스트랄 게 있었냐? 죄다 워스트였잖아.”

“그럼 그냥 재오 분량을 확 줄이는 건요? 뒷모습이나 풀샷으로만 찍고.”

“그럼 보건복지부에서 가만히 있겠냐? 무려 빅터의 재오를 데려왔는데, 왜 이따위로 썼냐고 따지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

머리를 벅벅 긁으며 괴로워하는 구학준.

“아오! 사주팔자에서 올해 이때쯤 귀인을 만날 거라고 했는데! 귀인은 무슨, 저게 뭐냐고! 공무원도 그렇고, 새로 만나는 인간마다 뒷목잡게 만드네 아주!”

속 시원하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재오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있다.

“박유진. 걔 연기만 봤을 땐 진짜 잘 뽑힐 것 같았는데! 마음 같아선 진짜 재오인지 뭐시긴지 빼버리고 싶네, 그냥!”

총체적 난국.

딱 그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감독님.”

그때.

재오가 유진과 함께 나타났다.

“어, 어! 재오 씨!”

방금까지 재오의 욕을 하고 있던 구학준.

괜히 멋쩍은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다시 가보겠습니다. 이번엔 잘 하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재오.

“맞아요. 이번엔 재오 형아 잘 할 거예요!”

유진이 옆에서 거들었다.

‘뭐야, 둘이서 얘기라도 나누다 온 건가?’

촬영장에서도 별다른 접점이 없어보이던 두 사람.

그런데 지금은 제법 찰싹 달라붙어있다.

특히 재오가 계속 유진을 흘끔거렸다.

뭔가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네. 그럼 바로 가죠.”

아무튼 빨리 촬영을 끝내야 하니.

구학준은 지체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여차하면 대사 치는 건 다 후시녹음으로 따면 돼. 그러니까 제발 표정이라도 좀 자연스럽게 해줘!’

속으로 그렇게 빌며 카메라에 집중하는 구학준.

“시작합니다. 하이, 액션!”

신호가 떨어지자 시작되는 재오의 연기.

오늘 수십 번은 반복한 장면이다.

그런데.

“괜찮아? 많이 덥지?”

재오의 연기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뭐, 뭐야. 갑자기 확 좋아졌는데?’

로봇이 읽는 것처럼 딱딱했던 대사처리.

그게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거기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다가가는 움직임. 모두 갑자기 자연스러워졌어. 환골탈태라도 한 거야?’

물론 객관적으로 좋은 연기라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흐름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흑역사라고 불릴 수준은 절대 아닌 것.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촬영 내내 재오의 시선은 계속 유진을 향해있었다는 것이다.

“컷! 오케이! 조, 좋습니다! 재오 씨, 지금 느낌! 잊지 말고 끝까지 갑시다!”

몇 시간만에 나온 오케이 사인.

물론 앞으로 촬영해야 할 분량이 남아있지만.

이대로만 한다면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을 터다.

“어? 아, 네. 감사합니다.”

얼떨떨한 얼굴의 재오.

본인도 스스로 어떻게 연기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뭐야. 진짜 되잖아?”

곧 재오는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윙크를 날렸다.

“거봐요, 형아! 내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효과만점이죠?”

마치 친구에게 게임 초필살기를 알려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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