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7화 (27/237)

27화

“수고하셨습니다!”

순천에 있는 영화 촬영장.

방금 막 촬영이 끝났는지.

철수하려는 움직임들이 부산스러웠다.

그 중 한 명.

어려보이는 여자가 매우 바삐 움직이고 달려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스태프들에겐 꼬박꼬박 인사했고.

곧 한 승용차 앞에 도착했다.

“이지혜. 빨리 타. 바로 라디오 하러 가야 하니까.”

차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말했다.

“네.”

이지혜라 불린 여자는 차에 올라탄 뒤 겨우 숨을 골랐다.

이지혜.

올해로 16살, 중학교 3학년이다.

곧 담배를 대충 버린 뒤 운전석에 타는 남자는.

이지혜의 로드 매니저다.

“근데 저 분장 지워야하는데.”

영화촬영 이후 곧장 달려온 이지혜다.

영화분장이 그대로 얼굴에 남아있었다.

“시간 없다. 차 안에서 지워.”

쌀쌀맞게 대답하는 매니저.

이지혜는 한숨을 푹 내쉬며 가방을 뒤적였다.

‘하아. 진짜 요즘엔 쉬질 못하네.’

이지혜는 계속 조단역 생활만을 계속해오다가.

이번에 퓨전 사극에서 여주인공 아역을 맡은 덕에 주가가 조금 뛰었다.

덕분에 찾는 곳이 많아졌고. 스케줄은 포화 상태다.

15세 이상은 아역배우 보호법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소속사는 쉴틈 없이 이지혜를 굴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괜히 실수하지 마.”

백미러를 흘끗거리며 말하는 매니저.

그 목소리는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적당히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잘 웃고. 특히 박유진 걔 괜히 건들지 마. 작품홍보만 적당히 해.”

“네. 알아요.”

새삼 저런 주의를 들을 것도 없다.

이지혜는 어려서부터 아역배우 생활을 해왔다.

행동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박유진이라고 했나.’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8살짜리 아역배우.

케이블 드라마 하나로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왔고.

유명 아이돌과도 엮여 한창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지혜는 별로 부럽지 않았다.

왜냐?

‘걔도 이제 엄청 구르겠네.’

이지혜가 경험한 연예계는 아이에게도 가혹한 곳이었으니까.

유진과 비슷한 나이에 키즈모델로 데뷔.

어려서부터 고생한 이지혜다.

아역배우 보호법조차 없던 시절.

학교도 빠지고 사진 촬영, 영화, 드라마 등을 연달아 찍었다.

좀처럼 이름값이 오르지 않아 다작을 해야했기에.

이지혜의 집안이 꽤 어려운 상황이라.

한푼이 아쉬운 이지혜의 부모님도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름값이 생긴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어.’

오히려 이때 치고 올라가야한다며 더 많은 일이 쏟아졌다.

여유로움이란 연예계와 상극인 단어다.

‘TV로 봤을 땐 그냥 뭐든 멋있어보였는데.’

지금 보다도 어린 시절.

TV에 나오는 멋진 연예인, 배우들을 흠모했다.

나도 저들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런 두근거림으로 시작했던 일.

그러나 지금은 그런 두근거림마저 마모되었다.

하루하루 기계처럼 일하는 기분.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이지혜다.

‘그 애도 결국 나처럼 될까?’

오히려 이른 나이에 큰 성공을 겪었기에.

앞으로 더 험난한 길만 있을지도 모를 일.

이지혜는 그게 걱정됐다.

‘웃기네.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해.’

클렌징 티슈로 대충 분장을 지운 뒤.

이지혜는 눈치를 보다가 주머니 속의 MP3를 꺼냈다.

그녀의 유일한 취미인 음악감상.

그중에서도 요즘 이지혜가 흠뻑 빠져있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노래였는데.

[이번에 새로 개봉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라는데. 거기서 영상 하나 풀었거든? 근데 퀄리티 대박임 ㄷㄷ 노래도 엄청 좋음]

시작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나의 글이었다.

[제목이 <날개>? 좀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한데

좀 옛날 냄새남ㅋㅋ

국산 애니?? 믿고 거르지 ㅋㅋ

김치워리어 시즌2 아님?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휘즈니 보고 말지]

처음엔 영상도 보지 않고 조롱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상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압도적인 호평이 쏟아졌다.

그렇게 입소문을 점점 타기 시작한 것.

[연출이 진짜 미쳤다.

진짜 보컬 청아하다... 내용도 모르는데 내 마음을 후벼파네

근데 영화 하이라이트를 이렇게 공개해도 됨? ㄷㄷ]

영상은 말 그대로 하이라이트.

큰 위기에 빠졌으나 시련을 극복한 주인공 솔.

마침내 각성을 하고서 날개 없이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4분여의 짧은 영상에 담긴 솔의 성장 스토리.

거기에 ‘날아가’ 보컬의 짙은 감정전달이 어우러진 영상이다.

이 하이라이트만으로도 단편 뮤지컬을 보는 기분.

덕분에 여태 관심도 받지 못했던 영화 <날개>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조금씩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선공개 영상) 뮤지컬 애니메이션 <날개> 하이라이트 – 날아가

조회수 – 7,217]

하지만 기반이 미약해서일까.

아직까지는 미풍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짧은 영상으로 벌써부터 매니아층이 형성될 정도.

[근데 이 노래 누가 부른 거야?

가수 정보가 아예 없네

성우가 부른 것 같은데? 목소리가 엄청 어린데.

어린 뮤지컬 배우 쓴 거 아님?]

주요 장면과 노래를 공개했으나.

정작 제작사인 블루컬쳐 스튜디오는 가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풀지 않았다.

뮤지컬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네티즌 수사대를 결성.

열심히 탐문에 나섰으나.

결국 누군지 알아내는데는 실패했다.

‘누가 불렀을까.’

이지혜 역시 궁금했다.

‘날아가’는 바쁜 스케줄 속, 이지혜의 유일한 안식처였으니.

MP3 파일로 추출해 들을 정도다.

온종일 일에만 찌들어 있는 갑갑한 상황.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해방감이 느껴졌다.

소년미가 물씬 풍기는 순수한 목소리까지.

한창 생각이 많을 중학교 3학년의 감성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 예전의 내가 생각나.’

8살 무렵.

TV를 보며 연예인들을 따라했던 시절.

그리고 키즈모델 제의를 받고 데뷔하기까지.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해도.

그때의 두근거림은 미약하게 남아있었다.

‘날아가’를 들을 때면.

그 두근거림이 조금이나마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모든 아픔들, 모든 고민들. 무거운 것들을 벗어던지고 저 별을 향해 날아올라.”

혼자 조용히 불러보는 이지혜.

한곡 반복재생으로 ‘날아가’를 들으며 쪽잠을 청했다.

*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SBW 라디오국.

출입을 위해 크레파스팀 작가가 미리 마중을 나와있었다.

“아휴. 우리 지혜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허리를 숙이는 매니저.

이지혜를 대할 때와는 딴판이다.

연예계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겉과 속이 달라야 한다.

그 사실을 이지혜도 알고 있지만.

새삼 저런 모습을 보면 불쾌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나도 다를 게 없지만.’

“안녕하세요! 이지혜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이지혜 역시 표정을 싹 바꾸고.

쾌활하게 인사했으니까.

작가를 따라 녹음부스 밖 대기실에 다다르니.

미리 도착해 있었는지, 한 꼬마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누나! 전 박유진이예요!”

밝게 인사하는 유진.

그런 유진을 보자마자 이지혜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와. 움짤 보정 심하게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실물이 더 미쳤네.’

유진의 미모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움짤들은 실물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연예계 생활을 해오며 잘나고 예쁜 사람들은 많이 봐온 이지혜다.

그런 그녀조차 놀랄 정도의 외모.

“그래, 안녕? 누나는 이지혜라고 해.”

“알아요! 누나가 나온 드라마랑 영화 봤어요.”

“정말? 고마워.”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이지혜는 유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엄청 바쁠 시기인데, 내가 나온 걸 어떻게 챙겨봤겠어.’

저 8살짜리가 벌써 처세술이라도 익힌 건가 싶었는데.

“저 라디오는 처음이라 떨려요. 누나는 라디오 해본 적 있어여?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고 하던데. 와, 라디오 진행도 진짜 힘들겠다! 그죠?”

그냥 붙임성이 좋은 아이인 모양인지.

초면인 이지혜에게도 살갑게 다가왔다.

‘엄청 활기찬 애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제 모습이 생각나는 이지혜였다.

‘엄마가 그랬는데. 나도 어린시절에 엄청 까불이었다고.’

처음 연예계에 들어왔을 때도 모두를 진심으로 웃으며 대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 일에 데이고, 사람에 데였다.

덕분에 벌써부터 웃음을 잃어버린 이지혜.

‘이 꼬마만큼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유진은 계속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아. 누나. 오늘 노래 뭐 불러요?”

“나? 이효원의 ‘사랑일 뿐야’ 부를거야.”

“와, 누나 노래 되게 잘하나보다!”

“그럼 넌 뭐 부를 건데?”

“음, 저는······.”

그때.

“이제 라디오 시작합니다! 게스트분들 준비해주세요!”

문득 시간을 보니 시작 직전이었다.

슬슬 녹음부스로 들어가려는데.

유진이 이지혜를 콕콕 건드렸다.

“누나. 우리 구호 외치고 들어가요.”

“구호?”

“넵! 자, 여기 손 올리고. 제가 아자아자 하면 누나가 파이팅! 하고 외쳐주세요.”

손등을 내미는 유진.

이젠 그런 게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지혜는 슬쩍 몸을 뺐다.

“뭘 그렇게까지.”

“얼른요오.”

하지만 유진이 채근하자, 못이기는 척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정말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자아자!”

“파, 파이팅.”

그렇게 둘만의 구호를 외친 두 사람.

“흐음. 목소리가 작지만, 그래도 봐줄게여!”

누구 마음대로 봐주고 말고 하는 건지.

유진이 뻔뻔하게 말하자.

이지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잘 해봐요, 누나. 파이팅!”

이지혜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건 오랜만에 진심으로 짓게 된 미소였다.

부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착석 후.

헤드폰을 쓴 뒤 대본을 체크하는 유진과 이지혜.

잠시 후.

ONAIR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누구나 어린 시절을 겪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갖고 있는 추억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기억,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갔을 때의 기억, 처음으로 교복을 입었을 때의 기억. 모두 어린시절은 특별하고도 애틋하게 추억하고 계실 텐데요.”

발라드 뮤지션인 박형광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되는 오프닝 멘트.

“그리고 여기, 조금 특별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는 분들을 모셨습니다. 박형광의 크레파스, 아역배우 특집! 박유진 배우님과 이지혜 배우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지혜입니다.”

“넵! 안녕하세요!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

둘의 인사를 시작으로.

라디오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와. 실시간 채팅창이 지금 난리가 났는데요? 특히 박유진 배우님! 누나팬, 이모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와, 이거 보면 돼요? 짱 신기하다! 제 팬이라구요? 감사합니다아!”

유진은 제 앞의 노트북을 바라보며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박형광의 말대로.

채팅창에는 유진을 연호하는 청취자들이 가득했다.

“자, 그럼 박유진 배우님의 근황이 궁금한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재오 씨랑은 연락 자주 해요?”

“넵. 열심히 학교 다니고, 영화도 촬영하고, 그랬어요.”

“영화요? 혹시 어떤 영화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앗! 그건 아직 비밀이에요.”

매우 자연스럽게 재오 얘기를 흘려버린 유진.

아무튼.

채팅창이 유진 얘기로 가득하니.

토크도 자연스레 유진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말 엄청 잘하네. 더듬지도 않고.’

이지혜는 틈틈이 리액션을 하며 유진을 관찰했다.

첫 라디오라 떨린다더니.

실전에 강한 타입인 걸까, 아니면 그냥 약한 척을 한 것일까?

그렇게 라디오가 진행되던 중.

모처럼 날아온 공통질문.

“두 분은 오늘 초면인 걸로 알고 있는데. 서로 작품을 본 적이 있나요?”

“아, 네. 출연하는 드라마 봤습니다. 굉장히 귀엽던데요.”

사실 이지혜는 <유별난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니까.

덕분에 이런 형식적인 대답 밖에 할 수 없었고.

“박유진 배우님은요?”

“네! 저 누나가 나온 영화랑 드라마 다 봤어요. 이번에 나온 그 재밌는 사극! <군주의 가면> 봤어여. 그리고 그거 말고도 옛날에 찍은 <비열한 동네>랑, <게이머즈>. <웰컴 투 동대문>도 봤고! 아. 시청연령? 그거 때문에 아빠랑 같이 봤어요.”

그에 반해.

이지혜의 출연작을 줄줄이 꿰고 있는 유진.

‘내 작품을 다 봤다는 게, 진짜였어?’

이지혜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몇 년 전에 찍은 작품.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까지 언급해줬으니까.

[울 유진이 아는 것도 많아 ㅠㅠㅠ

와 영화 드라마 다 챙겨보는 모양이네요

유진군 신나서 얘기하는 거 너무 귀여워요

유진이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나?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칭찬일색.

박형광의 편안한 진행 덕인지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라디오는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

“네! 아역배우들도 피해갈 수 없는 크레파스의 고정 코너죠. 게스트의 노래를 들어보는 시간! ‘뮤직 라이브’ 코너입니다.”

마지막 코너가 다가왔다.

대기하고 있던 작가가 유진에게 노래 전용 마이크를 건넸다.

“박유진 배우님. 어떤 노래를 부를 건가요?”

“음,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날아가’라는 노래요! <날개>라는 만화에 나오는 노래예요.”

그 선곡을 들은 이지혜가 흠칫 놀랐다.

그 모습을 본 박형광이 이지혜에게 물었다.

“어? 이지혜 배우님도 이 노래 알아요?”

“네, 아. 네. 인터넷에서 봤거든요.”

조금 당황해 대답하는 이지혜.

‘나도 저거 부르려다 까였는데.’

사실 오늘 이지혜가 부르고 싶던 노래도 ‘날아가’다.

그러나 제작진 측에서 만류하여 결국 다른 노래로 바꿨는데.

‘저 애도 이 노래를 좋아하나?’

마치 동지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날아가’에 대해 얘기를 나눌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라디오가 끝난 뒤.

유진과 ‘날아가’에 대해 몇 마디 나눌까 싶을 정도.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뭔가 몸에 힘이 도는 것 같아.’

그 사실만으로 몸에 활력이 도는 이지혜.

한편 채팅창의 반응은.

[와 요즘 이걸 유진이가 부른다고요?

??? 이게 무슨 노래인데요?

요즘 인터넷에서 핫하던데 이거

날개 OST라는 그거 맞죠?

유진이가 날아가를 불러?? 이모 설레서 죽을 것 같아 ㅠㅠ

ㅋㅋㅋ 제목만 들으면 뭔가 딱 초등학생들이 부를만한 노래 느낌

날아가? 난 처음 듣는데. 혹시 동요인가요?]

두 가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날아가’를 아는 부류와 모르는 부류.

그만큼 아직 많이 알려진 노래는 아니었다.

“아, 음. 그럼 한 번 불러볼게여!”

그렇게.

‘날아가’의 반주가 흘러나오고.

가볍게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유진.

나는 날개 없는 천사

여태껏 가라앉기만 했지

노래하는 유진의 목소리엔 긴장이 전혀 없었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노래.

그런데.

이지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보다 잘 부르네. 아니, 그것보다. 이 목소리.’

‘날아가’의 영상 속 이름없는 보컬.

그 목소리와 똑같았으니.

그러면서도 라이브답게.

훨씬 풍부한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저 별을 향해

날아올라

절정부의 고음도 훨씬 청아하게 들렸다.

그야말로 흠잡을 곳 없는 실력.

‘설마?’

이지혜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감사합니다아!”

노래를 마친 뒤 꾸벅 인사하는 유진.

박형광이 짝짝 박수를 보냈고.

이지혜는 라디오 중인 것도 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유진을 바라보았다.

“와, 박유진 배우. 엄청 잘 부르네요. 저는 처음 듣는 노래인데. 요즘 인터넷에서 조금 화제가 되었다고 하죠? 박유진 배우는 이 노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넵. 이거 제가 부른 노래거든여!”

그렇게 말하며 노래의 마지막 부분.

‘날아올라’ 파트를 짧게 불러주는 유진.

“청취자 여러부운! 제가 더빙하고 노래부른 국산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날개>! 많이 사랑해주세요오!”

그 말에 이지혜는 입까지 떡 벌어졌고.

채팅창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

뭐???????

유진이가 더빙을?

무슨 말임 지금? 나 약간 이해가 안 가

그러니까 뮤지컬 애니메이션에서 노래랑 더빙 둘 다 했다고??

뮤지컬 애니라고 했나?

날개? 처음 듣는데??]

‘날아가’를 모르는 쪽.

[???????

ㅁㅊㄴㅂㅇㅈㅂ 지금 무슨 상황임??

날아가가 유진이가 부른 거였다고??

진짜?? 진짜임??? 아니 라이브 들어보니까 진짜는 맞는 거 같은데

대박 미친!!!! 날아가 보컬이 박유진이었다니!!]

‘날아가’를 아는 쪽.

어느 쪽이든.

난리가 난 건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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