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UB엔터테인먼트.
빅터 컴백 컨셉을 위한 마라톤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빅터의 멤버들 역시 모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중.
“잠시 쉬었다 합시다.”
조실장의 말에 갖게 된 휴식시간.
재오는 회의실을 슬쩍 빠져나와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자 반가운 문자가 한 통 보였다.
[발신자 : 박유진(스승님)
재오형 형도 별을 보러 떠나요 출연해요?]
문자를 확인한 빅터 재오는 피식 웃었다.
그는 곧 화려한 손놀림으로 답신을 작성했다.
[이제 곧 컴백 준비 해야하거든. 그 전에 마지막 예능 뛰는 거임
예능이긴 하지만 우리 스승님이랑 같이 여행간다니까 좋네 ㅎㅎ]
잠시 후 유진이 보내온 답장.
[저도 형이랑 같이 프로그램 해서 좋아요!]
그걸 보며 재오는 피식 웃었다.
곧 그는 메이트온 기능을 이용, 인터넷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박유진&하진무’의 완벽한 연기력······영화 <리플레이>, 30만 관객 돌파! <짐승>이 나간 자리를 독립영화 <리플레이>가 채우다!]
[독립영화의 이례적 흥행가도! 한국 영화 다양성의 신호탄일까, 배우 박유진의 파급력일까?]
[“상 받을만 했네” 배우 박유진에게 쏟아지는 찬사······역대급 아역배우의 미친 연기력]
[오프닝에만 나오지만 가장 강렬한 존재감! <리플레이> 속 박유진, 매혹적인 악인을 완벽히 소화해내다!]
물론 유진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기사들.
재오는 그게 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형, 뭐해?”
그때 재오의 옆에 앉는 사람.
금발에 머리를 장발로 기른 남자 아이돌.
빅터의 민혁이었다.
“무슨 휴대폰을 보고 아빠미소 짓고 있던데.”
“나 안 늙었다. 아빠미소는 무슨. 하다못해 삼촌미소라고 하던가.”
“아빠든 삼촌이든 나야 상관없는데. 그래서 뭐하고 있던 거야?”
“문자하고 있었지. 유진이랑.”
재오는 선뜻 유진과의 문자를 보여주었고.
민혁은 그를 쭉 읽어본 뒤 다시 돌려주었다.
“형이랑 같이 광고 찍었던 그 박유진, 맞지? 형 연기 스승이라며. 진짜 귀엽게 생겼던데. 아, 근데 그거 알아? 형 어렸을 때랑 박유진 얼굴 비교 사진 올라오는 거 알아? 투표 보니까 형이 완패던데.”
“시끄러워, 임마.”
빅터에서 재오는 가장 나이가 많았다.
팀에서 정한 리더는 따로 있지만.
모든 멤버가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랐다.
물론 따르는 것과 놀려먹는 건 별개였지만.
“그나저나 형. 이번에 예능 새로 들어간다며? 김오태PD님꺼. 형 보통 컴백 준비할 때 예능 안 뛰잖아?”
“어. 근데 어차피 파일럿이라 1회 촬영이면 끝나. 지장 없을 테니 걱정 마라.”
라디오 출연으로 MBS에 갔던 재오.
거기서 평소 알고 지내던 예능국 작가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김오태PD가 준비하는 신작에 유진이 참여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문을 들은 재오가 조실장에게 조사를 부탁했고.
이후 연락으로 이어진 것.
“형이 들어가고 싶다고 조실장님한테 졸랐다며? 그 박유진이란 애 때문이야?”
“맞아.”
재오는 쿨하게 인정했다.
“요즘 잘나가긴 하던데. 형이 엄청 띄워주더라? 뭐 아는 애야?”
“아는 애가 아니라, 내 스승님이시다. 너 유진이 나오는 작품 하나도 안 봤냐?”
“요즘 TV 볼 시간도 없잖아.
“걱정 마. 너도 조만간 보게 될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의뭉스럽게 웃는 재오.
아무래도 그 나름대로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
“여유롭게 기다리라고, 여유롭게.”
그 말에 재오를 빤히 바라보던 민혁.
“있잖아. 형 요즘 좀 변한 것 같아.”
“뭐? 내 얼굴이 삭기라도 했어?”
“그런 게 아니고. 사람이 좀 여유로워졌다고 해야하나? 전에는 뭐든 다급해보였는데 말이야.”
민혁의 말대로.
얼마 전까지의 재오는 그저 독기 뿐이었다.
아이돌로서 얼른 성공해서 연기를 하고 싶다.
그 생각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도통 회사에선 연기 트레이닝도 붙여주질 않았고.
빽빽한 스케줄에 연기 도전은 점점 어려워졌다.
하지만 공익광고 출연 이후.
회사에서도 트레이너를 붙여줬고, 연기를 배우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불만이 해소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여유가 생겼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이제 슬슬 들어가자.”
머쓱한지 목덜미를 매만지며 고개를 돌리는 재오.
그 모습에 민혁도 피식 웃었다.
“그래. 어휴. 오늘 회의도 새벽에나 끝나려나.”
“그렇겠지, 뭐. 아. 우리 뮤비는 어떻게 하려나?”
“요즘 트렌드가 미니 드라마처럼 찍는 거니까. 아마 그렇게 가지 않겠어?”
“역시 그렇겠지?”
“근데 그건 왜?”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재오는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
<별을 보러 떠나요> 촬영 당일.
이미 친분이 있는 이지혜, 재오가 함께 하니 재미도 분위기도 별걱정은 없었다.
다만 초면인 키즈모델 진태훈 쪽이 어떤 성격일까 궁금했다.
“안녕? 난 박유진이야. 잘 부탁해, 태훈아!”
“······.”
경계심 어린 눈빛.
아무래도 낯을 많이 가리는 모양이었다.
“얘, 태훈아. 형한테 인사해야지.”
“······안녕.”
어머니가 채근하고 나서야 대충 인사하는 진태훈.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한테 꼭 달라붙어있었다.
“자, 그럼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제작진을 대신해, 진행을 맡은 재오가 세 가족에게 여행지와 흐름을 설명해주었고.
이후 곧장 버스에 탑승한 세 가족.
그때부터 본 촬영은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이제부터 24시간, 세 명의 아역스타 그 가족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거니까.
“아, 아! 맞다. 치약이랑 칫솔 빼먹은 것 같은데.”
박태종은 역시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허둥대기 시작했으니.
“걱정 말아요, 아빠. 제가 챙겼어요.”
그걸 진정시키는 건 역시 유진의 몫이었다.
“그, 그렇구나. 고마워요, 유진아.”
“갑자기 왜 존댓말 써요, 아빠? 긴장 풀어요.”
그 모습을 보며 재오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재오 형! 안전벨트 제대로 매야죠.”
“응? 아, 미안.”
물론 재오도 웃을 처지가 아니었지만.
“엄마아.”
다른 쪽에서는 진태훈이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는 중이었다.
“왜 그래, 우리 태훈이?”
“나 배고파아.”
“그러게 아까 밥 먹으라고 했잖아.”
“아깐 배가 안 고팠는걸.”
그때.
“태훈아. 그럼 초코바라도 먹을래? 내가 가져왔는데.”
유진이 가방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반짝반짝 빛나는 진태훈의 눈동자.
“어? 진짜?”
“응. 너 다 먹어.”
잽싸게 초코바를 받아온 진태훈.
단 음식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고맙다고 해야지, 태훈아.”
“고맙습니다, 유진 형아!”
아까 경계심 많던 얼굴은 어디 가고.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제법 귀여웠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애교가 철철 넘치는 모양이다.
“그런데 유진아. 너 초코바 별로 안 좋아하잖아. 왜 챙겼어?”
유진의 옆자리, 박태종이 속닥거리며 물었다.
“아빠 먹으라고 챙겨온 거예요! 동생한테 준 거니까 괜찮죠?”
“응? 어, 으응.”
그렇게 꽤 화목해 보이는 두 가족과 달리.
“······.”
“······.”
유독 이지혜와 그 어머니, 장세란이 어색한 분위기를 풍겼다.
분명 서로 웃고 있지만, 인위적인 티가 확 난달까.
“버스 타는데 속 좀 괜 찮아? 멀미 안 해?”
겨우 다정하게 한 마디를 건넸으나.
“나 멀미 안 하는 타입인데.”
이지혜의 쌀쌀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재오가 주도하는 미니게임에서도 영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MT의 메카, 강원도 춘천.
촬영을 위해 적당한 민박집을 대여한 상태였다.
“저녁을 먹으려면 슬슬 준비해야할 것 같은데.”
“나 배고파아.”
진태훈이 칭얼댔다.
출발시간이 다소 애매했던 터라.
도착하고 나니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그럼 이제부터 부모님들은 저녁식사를 준비해주시면 되는데요.”
곧장 진행자 모드에 돌입한 재오.
김오태PD에게 지령을 들은 모양이다.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을 위해, 아역스타들은 저녁식사를 위해 장을 봐오면 됩니다. 단!”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출연자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음식을 만들 것인지는 알려줘도, 어떤 재료를 사오라고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만들겠다고 정하시면, 아역스타들이 알아서 그에 맞는 재료를 사와야 하는 거죠.”
재오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지는 부모들.
“그럼 잘못된 재료를 사오면요?”
“한정된 재료 안에서 잘 만드셔야겠죠? 이심전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 아역스타들의 센스와 부모님들의 요리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죠.”
그 뒤 가족들은 서로 모여 작전타임을 가졌다.
“태훈아. 너 먹고 싶다고 초콜릿 같은거만 사오면 안 돼. 알았지?”
진태훈의 어머니는 진태훈에게 주의를 주는 중이었고.
“······.”
이지혜 쪽은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 뿐.
“제가 알아서 잘 사올게요, 아빠! 먼저 밥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역시 유진은 여유가 넘쳤다.
박태종도 유진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보호자로서 아역스타들과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재오마저 빠져버리고.
어른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럼 일단 밥이라도 먼저 하고 있을까요?”
“그게 좋겠네요.”
자식들이 장을 봐올 때까지 미리 세팅을 해놓기로 한 것.
그렇게 서로의 일에 몰두하고 있던 그때.
“유진이 아버님. 어쩜 아드님을 그리 잘 키우셨어요? 요즘 아주 인터넷이 유진이 얘기로 난리잖아요!”
먼저 말을 걸어온 쪽은 진태훈의 어머니였다.
박태종은 흠칫 놀랐지만, 최대한 아닌 척하며 대답했다.
“자, 잘 키우긴요. 유진이가 스스로 잘 해내는 거죠. 못난 아빠 같아서 항상 미안한걸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아까 태훈이가 칭얼댈 때 초코바를 나눠준 거 보고 놀랐는걸요. 유진이 예의 바르고 싹싹하다는 얘기 자주 듣죠?”
“네? 네, 그렇긴 한데.”
“그런 건 다 가정교육의 영향이잖아요? 아버님이 잘 교육하신 거죠.”
칭찬을 받은 박태종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말을 들어볼 기회가 잘 없으니.
“아, 그리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 태훈이도 정말 애교가 철철 넘치던데. 어머니가 정말 사랑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머, 그렇게 보이나요? 호호!”
“우리 유진이도 그 나이즈음엔 애교가 정말 많았거든요. 그런데 8살때부터 좀 줄더라구요.”
“정말요?”
아들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두 사람.
역시 이 나이대 부모들은 자식 얘기로 친해지는 법이었다.
반면.
“······.”
의도적인지 아닌지.
무언가를 찾는 척하며,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이지혜의 어머니.
마치 제 딸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
한편 아역스타들 쪽.
걸어서 10분 거리의 대형마트에 도착했다.
“오늘 만들 요리는 고추장찌개, 삼겹살, 치즈계란말이, 잡채.”
이지혜가 부모들에게 전달받은 메뉴를 다시금 검토했다.
그리곤 재오를 향해 물었다.
“삼겹살이야 그냥 사면 되고. 저, 재오 오빠. 혹시 여기에 들어갈 재료들 아시나요?”
“에이, 알려줄 수는 없지. 아까 룰 설명한 거 못 들었어?”
“내가 봤을 땐 재오 형 레시피 몰라요.”
유진이 도발하자 재오가 곧장 반응했다.
“그럼 문제! 김치찌개를 끓일 때 김치를 볶아야 할까요, 볶지 말아야 할까요?”
“아하하! 제가 그 정도 쉬운 문제도 모를까 봐? 안 볶아도 되지! 김치를 왜 볶아?”
“땡! 묵은지가 아닌 이상 김치를 볶아야 깊은 맛을 낼 수 있어요. 와, 이거 완전 기본적인 건데!”
그러자 민망한지 헛기침을 해대는 재오.
아무튼.
재오가 레시피를 알든 모르든, 도움을 못 받는다는 건 똑같았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왜 다들 날 보는 거야?”
흠칫 놀라는 이지혜.
“누나가 제일 나이 많으니까요.”
“나, 나도 잘 모른단 말이야.”
아역들중에선 그나마 가장 연장자인 이지혜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바쁜 스케줄 탓에 매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언제 요리를 하고 있겠나.
“음, 우선 고추장찌개 재료부터 사요.”
“뭐야, 유진이 너 뭐 사야 하는지 알아?”
“조금은요!”
거침없이 척척 재료들을 고르기 시작하는 유진.
전생에 자취경력만 10년이 넘는 유진이다.
웬만한 음식 레시피는 이미 꿰고 있었다.
“누나, 파프리카 내려놔요. 오이도 패스. 그리고 들기름 말고! 우리 참기름 써야해요.”
그 덕에 이지혜의 헛발질을 사전에 차단했고.
“얘들아. 과자 사가자 과자. 이거 완전 맛있는데. 삔츠랑 깐쵸.”
“재오 형. 과자 놔두고 얼른 장바구니 들어요.”
몰래 과자를 고르는 재오를 혼내기도 했다.
“유진 형아 멋있다아.”
낯을 가리던 아까와는 달리.
이젠 유진의 옷가지를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는 진태훈.
본능적으로 누가 리더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자, 얼른얼른! 태훈이 배고프다니까 얼른 장보고 가요!”
7살, 9살, 17살, 그리고 성인 한 명이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9살짜리가 리더를 맡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
아무튼 그런 유진의 활약(?) 덕분에 괴식이 탄생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훈훈한 저녁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깊은 밤.
출연진들에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아도 되는 것.
“흐음.”
제작진은 한데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오늘 하루동안 찍은 촬영 내용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던 김오태PD.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재미, 분량. 모두 박유진이 뽑아내고 있네.”
그 말에 강주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보러 갔을 때가 대박이었어요. 평소 귀여운 이미지랑은 다르게 리더십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다른 출연자들이랑 케미도 다 다르고.”
낯가림이 심하다는 진태훈도 유진 덕에 무리없이 융화되었고.
재오와는 형제 같은 케미를 내뿜었다.
다만 유진이 형이고, 재오가 동생 같은 느낌이었지만.
아버지 박태종과의 호흡은 그야말로 발군.
허둥대는 모습이 잦은 박태종과 그를 완벽히 커버하는 유진의 모습은 충분한 재미를 뽑아냈다.
특히 저녁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할 때도 유진이 요리를 주도하고, 박태종은 쩔쩔 매며 그를 거드는 모습이었으니.
“귀여운 줄만 알았던 아역의 반전매력, 뭐 이렇게 포장하기 좋겠네.”
“이거, 하다 보니 완전 박유진 특집이 된 것 같네요. 확실히 요즘 왜 빵 떴는지 알 것 같아요.”
김오태도 그 말에 동의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는지 침음을 흘렸다.
“또 무슨 고민 있어요?”
“아니, 너무 웃고 떠드는 분위기잖아. 색다른 그림 하나 추가하면 좋을 텐데.”
나쁠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다.
이래서야 그냥 일반 여행예능 프로와 다를 게 없는 것.
기껏 아역배우와 그 부모를 섭외했는데 말이다.
“정규편성까지 가려면 어그로 쎄게 한 번 끌어야하는데.”
“자연스러운 그림 뽑겠다고 코너도 최소한으로 짜신 게 선배님이잖아요.”
“나야 박유진이 이렇게 멱살 잡고 끌고 갈 줄은 몰랐지.”
김오태가 그린 그림.
그건 진행자인 재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연예계 위상으로 보나, 현재 나이로 보나.
아역스타들이 촬영 중 믿고 의지할 곳은 재오라 생각했으니.
게다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이미지를 가진 재오가 아닌가?
그런 재오가 토크나 진행을 주도하고.
아역들은 부모들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재오에게 상담한다.
때문에 김오태는 재오에게도 은근슬쩍 그런 쪽으로 진행하라 주문했다.
“그런데 정작 그 재오도 박유진이랑 같이 놀고 있으니.”
물론 그 덕에 나름 소소한 재미는 뽑았지만.
결과적으론 최초 계획과는 어긋난 셈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디어 좀 내봐.”
“제가 무슨 도깨비방망이에요? 휘두르면 뚝딱하고 나오게.”
그렇게 제작진이 고민에 빠진 그때.
”응? 누구지?“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슬쩍 고개를 내민 강주란이 그 정체를 확인했다.
“선배. 이지혜가 숙소 밖으로 나왔어요.”
“화장실은 안에 있는데. 뭐지?”
“걱정되네요. 이번 촬영 때 유독 텐션도 낮던데.”
라디오 등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이지혜도 센스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달리 침묵하는 모습이 많았다.
집중하질 못하고 무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느낌?
“카메라 붙을까요?”
“아니. 마당 쪽에 카메라 설치해뒀으니까. 잠깐 두고 보자고.”
두 사람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이지혜는 곧 마당에 있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누나. 안 자고 있었어요?”
잠시 후, 유진이 나타났다.
그리곤 자연스레 이지혜의 옆에 자리 잡았다.
“유진아. 너는 안 자고 뭐해?”
“태훈이랑 아빠랑 재오 형이랑 모여서 끝말잇기를 했거든요. 제가 10연승 했어요.”
“야, 서운하다. 누나도 불렀어야지.”
“에이, 내가 더 서운해요! 누나한테.”
“뭐야. 네가 왜 서운한데?”
“누나가 고민이 있어도 말을 안 해주니까요.”
훅 들어온 유진의 말.
이지혜는 순간 숨까지 멈추며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