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이지혜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바로 옆자리의 어머니 때문.
가족마다 쓰라고 방이 하나씩 배정되었다.
덕분에 이지혜는 실로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자게 된 것.
그러나.
그게 좋기보단 오히려 불편함이 먼저 들었다.
“······.”
방송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니, 방송이기에 더더욱 이 어색한 공기를 참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건 이지혜의 어머니, 장세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왜 그래. 잠이 안 와?”
장세란이 슬쩍 물었다.
그러나 이지혜는 대답하지 않고 자는 척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이지혜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카메라가 24시간 돌아간다고 해도.
잠깐 새벽에 바람 쐬는 걸 가지고 뭐라 하진 않을 테니.
“하아.”
이지혜는 민박집 마당에 있는 마루로 걸어갔다.
힘없이 앉은 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때.
“누나. 무슨 일이예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놀란 이지혜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유진아. 안 자고 뭐해?”
“태훈이랑 아빠랑 재오 형이랑 모여서 끝말잇기를 했거든요. 제가 10연승 했어요.”
자랑하듯 말하는 유진.
아무래도 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야, 서운하다. 누나도 불렀어야지.”
그나마 촬영 중 가장 즐거웠던 때가 바로 장보러 갔을 때다.
그렇게 마트에서 장을 본 게 얼마만일까?
아역배우가 되기 전에나 몇 번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 기억이 있다.
게다가 연기하는 순간을 제외하곤.
유진은 항상 이지혜를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유진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진태훈도 귀엽고.
톱아이돌인 재오도 소탈해 동네오빠처럼 느껴졌으니.
“에이, 내가 더 서운해요! 누나한테.”
“뭐야. 네가 왜 서운한데?”
“누나가 고민이 있어도 말을 안 해주니까요.”
유진의 대답에 속을 간파당한 기분이었다.
이지혜는 곧 힘없이 웃으며 유진의 옆에 걸터앉았다.
“유진아.”
“네?”
“넌 아빠랑 되게 사이 좋아 보이더라.”
“넵. 제가 아빠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유진.
“어떻게 하면 아빠랑 그렇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
“음,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아빠도 저도 서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솔직하게?”
“네. 우리 아빠가 눈물이 많잖아요? 하지만 그래서 자랑스러워요. 아빠가 우는 건 다 저를 위한 눈물이라는 걸 알거든요. 우는 거만큼 솔직한 게 어디 있어요?”
유진에 관해선 뭐만 하면 눈물을 쏟는 박태종이지만.
그 외의 일에선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 9살짜리 애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지혜는 그게 한없이 부러워졌다.
“그렇구나. 부럽네. 난, 난 부모님이랑 좀 어색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힘겹게 말을 꺼내는 이지혜.
“왜요?”
“그러게. 왜일까?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점점 일이 많아지면서, 가족들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어. 그런데 내가 책임져야할 것들도 늘어만 가.”
이지혜는 부모님이 미운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도 이지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하니까.
그러나.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이지혜가.
정작 가족들에겐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그를 알아주지 못하는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
그게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것.
“누나. ‘날아가’ 좋아하죠?”
그때.
유진이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그러나 동시에 정곡이기도 했다.
“누나 MP3 들을 때마다 그 노래만 듣잖아요.”
유진에겐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거늘.
이지혜는 마치 비밀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누구의 팬이 된 건 처음이었으니까.
“지금 불러줄까요?”
“어?”
라디오 이후 한 번도 ‘날아가’ 라이브를 한 적 없는 유진이다.
그런 유진이 직접 노래를 불러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응. 듣고 싶어.”
근심 걱정 대신, 유진의 노래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한 이지혜.
그런 이지혜의 기대에 호응하듯.
유진은 고개를 움직이며 스스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곧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날아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몸이 가벼워져
난 이제 날아올라
마치 자장가라도 불러주듯 잔잔한 느낌.
그러나 이 새벽엔 더 없이 잘 어울렸다.
모든 아픔들
모든 고민들
무거운 것들을 벗어던지고
저 별을 향해
날아올라
이지혜는 소리 내지 않고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유진이 겸연쩍게 웃었다.
“새벽이라 목이 잠겨서 제대로 못 부른 것 같아요.”
“아냐. 진짜 좋았어. 고마워, 유진아. 정말 고마워.”
MR도, 마이크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직접 귀에 와닿는 노래였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이지혜의 가슴을 울렸다.
“‘날아가’ 가사처럼 누나도 고민을 다 벗어던졌으면 좋겠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그럼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 다른 사람들도 누나를 도와줄 거예요.”
“음. 정말 그럴까?”
“그럼요!”
그 말을 들은 직후.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이지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하하. 내가 동생한테 상담을 받다니.”
“상담이라뇨? 전 그냥 누나 얘기를 들어준 것밖에 없는데요.”
“······너 진짜 9살 아니지?”
“네, 사실 저 9살 아니에요. 사실 30살 넘게 먹은 아저씨거든요!”
“하하하. 진짜 그럴 것 같아.”
이지혜는 유진의 볼을 한 번 쓰다듬어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는 이제 자야겠다. 고마워, 유진아. 잘 자.”
“네, 누나. 잘자요.”
방으로 돌아가는 길.
이지혜는 왜 자신이 ‘날아가’에 그토록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통화할 일이 있어도 괜히 걱정을 끼칠까, 속으로 꾹 담아뒀다.
점점 침묵하는 일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가족들과도 소원해지게 된 것.
그만큼 걱정과 고민을 혼자 껴안고 살던 이지혜.
‘하지만 날아가를 듣는 순간만큼은 해방감을 느꼈어.’
그리고 이제, 정말 그 짐을 내려놓을 때였다.
어머니가 있는 방문 앞에 섰을 때.
잠시 고민하던 이지혜는 곧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이지혜의 목소리에 장세란이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이지혜가 자리를 비운 이후.
장세란도 전혀 잠에 들지 못했다는 것.
“나 할 말이 있어. 지금 아니면 말 못 할 것 같아.”
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장세란의 얼굴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는 이지혜.
“실은 나, 너무 힘들어.”
*
아침이 찾아오고.
가장 먼저 일어난 재오가 아침을 먹기 위해 세 가족을 깨웠다.
비몽사몽한 진태훈 모자와 비교적 멀끔한 유진, 부스스한 박태종.
그런데 이지혜와 장세란의 몰골이 유독 심했다.
“두 분,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재오가 물었다.
이지혜 모녀의 눈가가 모두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
아마 밤새 속에 있는 얘기를 터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그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저리 심하게 부은 것이겠지만.
“저희 집안 내력이에요. 자고 나면 얼굴 붓는 거.”
이지혜는 어색하게 농담을 했다.
그러자 장세란이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아이, 얘가 무슨 그런 얘기를 해. 우리 그런 거 없어요.”
“왜? 맞잖아, 엄마.”
이지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 딴엔 농담을 건넨 모양.
그러자 장세란은 뒤늦게 웃었다.
물론 아직 조금 어색해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어제보단 조금 편안해보였다.
‘다행이네.’
그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유진.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무너지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힘든 일이 있어도 일부러 더 내색하지 않았던 모양이네.’
유진이 겪었던 미래.
그곳에서 청춘스타로 잘 나가던 이지혜에게 큰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이지혜가 소속사에게 전속계약 무효 소송을 진행한 것.
[“완전히 노예계약서였다” 배우 이지혜의 폭로! 소속사 상대로 전속계약 무효소송]
[이지혜 측 “정산도 밀리기 일쑤, 소속사가 과도한 스케줄을 강요······건강까지 망쳤다” 주장]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때면 이런 스캔들을 피하고 싶을 텐데.
소송을 진행할 만큼 이지혜의 몸과 정신은 꽤 피폐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사 측의 지연전술로 인해 소송은 상당히 지지부진해졌고.
그 기간 동안 이지혜의 존재감이 상당이 옅어졌다.
게다가 소속사의 언플 때문에 온갖 루머가 생성되기도 했고.
그 리스크를 안고 캐스팅하려는 곳이 없어 작품 출연도 뜸해졌다.
가장 핫한 시절을 그냥 날려버린 셈.
‘하지만 만약 소속사 문제를 일찍이 해결한다면, 훨씬 더 좋은 배우가 되겠지.’
유진 입장에서는 배우 쪽에 든든한 인맥이 하나 생기는 셈이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있었다.
전생의 유진 역시 다르면서도 비슷한 문제를 겪지 않았나.
‘나도 아버지에게 제대로 표현을 못했지. 아버지를 떠난 보낸 후에야 평생을 후회했고.’
부디 이지혜만큼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랐다.
물론 이지혜가 나대준의 밑에서 받은 억압과 상처는 무척 깊을 터.
모든 게 쉽사리 해결되진 않겠지만, 이게 출발선이 될 것이다.
“으음? 왜 그래, 유진아.”
잠에서 덜 깨 부스스한 얼굴로 묻는 박태종.
갑자기 유진이 손을 포개온 것이다.
“그냥요. 사랑한다구요!”
생각나는 김에 재차 박태종에게 애정을 표하는 유진.
그러자 박태종이 흠칫 놀라더니.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빠. 안 울기로 했잖아요!”
박태종이 이번 <별을 보러 떠나요> 촬영에 임하며 세운 각오.
‘촬영 중에 절대로 울지 않는다’였다.
방송 첫 출연인데 칠칠맞게 우는 모습을 보일수 없다나.
여태 잘 버텼으나 마지막, 유진의 기습에 무너지는 모습.
“흐, 흐읍. 아, 아빠는 울지 않아. 절대로······그냥 눈곱 떼는 거야. 흐윽.”
기대했던 모습이 터지자 제작진은 엄청 기뻐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눈이 퉁퉁 부은 사람이 세 명으로 늘어났다.
간단한 클로징 장면 촬영을 끝으로.
예능 <별을 보러 떠나요>의 촬영이 끝났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난 직후.
김오태는 유진과 이지혜에게 다가와 격한 악수를 건넸다.
“지혜 씨. 고마워요. 덕분에 프로그램 밀도가 아주 꽉꽉 찼어. 그리고! 이야, 유진아. 너 진짜 대박이다. 아저씨랑 작업 좀 자주 하자. 알았지?”
유진을 통해서는 예능적 재미를.
이지혜를 통해선 기획 의도였던 아역배우들만의 고민, 그리고 감동코드까지 잡아냈다.
김오태 입장에선 꽤 만족스러웠던 촬영인 모양.
그러는 사이 부모들도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자주 연락하잔 말을 주고받았다.
김오태PD에게 눈도장도 찍고, 인맥도 넓혔다.
여러모로 얻어가는 게 많은 촬영이었다.
“유진아!”
진태훈에게 사인을 해주고 보낸 직후.
재오가 유진에게 다가왔다.
“형! 고생 많았어요. 형 덕분에 더 재밌는 여행이었어요.”
“나도 우리 스승님이랑 여행 온 기분이라 엄청 재밌었어. 끝말잇기를 그렇게 오래 해본 것도 처음이고.”
정말 재밌었는지 킬킬대며 웃는 재오.
“근데 유진아. 형이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어떤 얘기요?”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재오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부탁에 관한 거야.”
*
주역 매니지먼트 사무실엔 낯선 사람이 앉아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쓴 퀭한 얼굴의 남자.
‘너드’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김상헌 씨. 이번에 저희 넙튜브 영상 편집자에 지원해주셨죠.”
맞은편의 차동석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퀭한 인상과는 달리.
두 눈이 열정으로 아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 스펙이 꽤 대단해.’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임에도.
꽤 유명한 영상제작 업체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샘플로 보내온 영상도 편집이 꽤 수준급이었고.
확실한 실력자라는 뜻.
‘이 정도 인재가 왜 우리 회사에?’
차동석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경력이 굉장히 다채롭네요.”
“네. 다 건 바이 건 계약직으로 일했던 거라서요. 여태 프리랜서로 활동했습니다.”
“그렇군요. 흐음. 웹드라마 제작? 이건 뭐죠?”
경력란에 쓰여있는 것을 보고 차동석이 물었다.
“말 그대로 웹상에 공개하는 드라마입니다. TV채널이 아니라, 인터넷에 공개하는 드라마죠.”
“아, 그렇군요. 반응이 괜찮았나요?”
“아뇨. 그닥. 아, 편집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대본이 별로였거든요.”
적극적으로 제 잘못이 아니라 말하는 김상헌.
아무튼.
차동석은 그 웹드라마라는 것에 끌렸다.
‘이거 잘만 하면 꽤 재밌겠는데?’
바로 유진의 넙튜브 채널에 웹드라마를 올리는 것.
배우라는 아이덴티티도 살리면서.
유진의 넙튜브 채널 자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투자 대비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도 미지수지만.
어차피 넙튜브는 길게 보고 준비하는 홍보수단이니 급할 것은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이력서를 보니 실력이 무척 좋으신 것 같은데, 왜 굳이 아역배우의 넙튜브 영상편집자에 지원하신 겁니까?”
아예 그냥 대놓고 물어보는 차동석.
사실 처음 이력서 스캔본을 메일로 받았을 땐 장난인 줄 알았다.
주역 매니지먼트가 품기엔 너무 스펙이 좋은 사람이었으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김상헌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재미요?”
“네. 박유진 배우의 모든 필모그래피와 넙튜브 영상을 모두 챙겨봤습니다. <유별난 친구들>, <날개>, <리플레이>, 그리고 공익광고까지. 전부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죠.”
그의 눈동자에 깃든 강한 흥미.
김상헌은 조금 흥분했는지 말하는 속도도 꽤 빨라졌다.
“이 업계에서 나름 여러 일을 해봤지만, 그런 아역배우는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고, 어떻게 그렇게 성공가도만을 달릴 수 있는지. 그 매력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차동석은 김상헌을 빤히 바라보았다.
DV엔터 아역팀 팀장도 맡아봤을 만큼 차동석은 여러 사람을 봐왔다.
때문에 김상헌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기보단 직접 부딪쳐보는 스타일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궁금한 건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프리랜서로 잘 나가는 와중, 굳이 우리 회사에 들어오겠다는게 그 증거야.’
유진에 대한 흥미.
그게 김상헌을 주역 매니지먼트로 이끈 것.
차동석은 곧 김상헌의 이력서를 책상 서랍에 챙기며 말했다.
“그렇군요. 면접은 여기까지입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그럼 이만.”
돌아갈 때는 또 퀭한 얼굴로 복귀하는 김상헌.
여러모로 특이한 남자임은 분명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잠시 후.
유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집에서 쉬어도 되는데. 왜 사무실로 왔어?”
“아저씨랑 사모님 보고 싶어서요.”
“허허, 이 녀석. 장난끼가 많은 것 같으면서도 말은 참 예쁘게 해. 아주 요물이야, 요물.”
유진은 <별을 보러 떠나요>를 끝내고 바로 사무실로 온 것.
박태종은 오늘 오전까지 반차였기에, 배달일을 하러 출근한 상태였다.
“그래서, 촬영은 잘 했고?”
“넵! 엄청 재밌었어요. PD님이 저보고 또 언제 같이 하재요.”
“오, 진짜? 오태 그 녀석, 립서비스는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잘했다, 잘했어. 목 마르지? 솔의 눈물 마실래?”
“넵! 감사합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우셨어? 안 우셨어?”
“촬영 막판에 결국 울었어요! 근데 PD님이랑 작가님들이 되게 좋아하시더라구요.”
유진에게 솔의 눈물을 쥐여주고.
자신은 딸기우유를 마시는 차동석.
그렇게 촬영에 대한 썰을 풀며 대화하니 시간이 금방 갔다.
“아, 맞다. 실은 저, 촬영하다가 섭외 받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하는 유진.
“섭외? 무슨 섭외?”
“재오 형이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해달래요.”
“뮤직비디오?”
“네.”
그 말을 들으며 딸기 우유를 마시던 차동석.
그러다 잠시 후.
푸웁!
마시던 딸기 우유를 그대로 뿜어버렸다.
덕분에 가죽 소파에 딸기 우유가 다 튀었다.
평소라면 펄쩍 뛰었을 차동석이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뭐,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유진이 불쑥 던진 말.
그게 훨씬 대박이었으니까.
“그거 진짜야? 어딜 출연해달라고 했다고?”
믿지 못하는 차동석에게.
유진은 천진하게 대답해주었다.
“빅터 신곡 뮤직비디오에 출연해달래요! 이거 해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