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김오태PD의 새로운 도전······아역스타 위주 예능. 과연 통할까?]
최초 기사가 떴을 때만 해도.
<별을 보러 떠나요>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
유진과 이지혜의 출연, 재오의 합류까지 있었음에도.
아역스타 위주의 여행 프로그램이 과연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것.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렸을 때는.
[김오태PD 신작 예능 <별을 보러 떠나요> 시청률 12% 달성······파일럿 예능의 새로운 신화]
[아역스타 위주의 프로그램이라 실패할 것이란 예측을 뒤엎다]
[박유진에게 이런 면이? <별을 보러 떠나요>에서 뜻밖의 리더십으로 하드캐리]
[배우 박유진도, 아들 박유진도 모두 매력폭발! 지금 시청자들은 유진앓이 중!]
재오와 유진 콤비에 대한 기대감.
미니시리즈 <호구>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
거기에 예고편을 통한 이지혜 눈물 어그로까지.
그 모든 게 합쳐져 예상 밖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성공이 낳은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ㅁㅊ놈들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한테 그런 짓을 해?
당장 소속사 명단이랑 대표 이름 다 까발려야함
나대준 대표인지 뭐시긴지 밤길 조심해라 내가 찾아가서 죽여버릴테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음?
얼마나 힘들었으면 방송에서 저리 울었을까...가슴이 아파온다
진짜 지혜가 펑펑 울면서 말하는 게 보이는데 같이 울었어. 저 어린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지혜가 어머니에게 털어놓은 충격적 사실.
그에 대중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
[재오 오빠가 나온 광고 상받았다길래 좋아했는데 좋아할 일이 아니었네... 아동학대는 현실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런 일이 있다니 진짜 충격;;]
심지어 유진과 재오가 출연한 공익광고가 상을 받았고.
그 소식으로 인해 광고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타이밍.
때문에 아역배우 혹사는 아동학대와 맞물려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지혜 소속사 사이트, 접속폭주로 마비됐다. 혹사 논란에 분노한 대중들]
[배우 이지혜 前 소속사 대표, 혹사 논란에 침묵 중······공식입장 아직 없어]
[<별을 보러 떠나요>로 촉발된 논란! 아역배우 혹사, 사실 업계에 만연하다?]
[아역배우 출신 A씨의 폭로 “광고 촬영 당시 코코아 먹고 토하고를 반복······지옥 같았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없어”]
[유명무실한 아역배우 보호법.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그 논란은 점차 연예계 전체로 번져갔다.
심지어 이지혜 뿐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폭로가 터져나온 것.
그만큼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소속사들이 더러 있었던 셈이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덮고 넘어간, 연예계의 추악한 일면이었다.
[각종 대형 기획사들, 아역배우 혹사 정말 없었나? 대중들의 해명 요구에 진땀]
[“아역배우 혹사 없었다” 발표에도 계속 터지는 피해자들의 폭로······진실게임의 향방은?]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대중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아역배우를 거느린 덩치 큰 연예기획사들은 해명에 온 힘을 쏟아야만 했다.
그렇게 칼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여유로운 회사가 있었으니.
“난리도 아니네, 진짜.”
모니터 앞에서 기사들을 검색하던 차동석.
혀를 쯧쯧 차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DV 엔터 쪽도 털리고 있는 모양인데? 아니, 이 새끼들은 나 나간 뒤로 정신을 못 차렸나?”
아역배우 처우에 관해 항의하다 DV 엔터에게 토사구팽당한 차동석이다.
이런 문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근데 자기야. 자기는 여기까지 내다보고 판을 짠 거야?”
“어느 정도는.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장미소 역시 기사들을 살펴보는 와중이었다.
이지혜로부터 촉발된 혹사 논란.
그 불씨가 번지리라곤 예상했으나 이렇게까지 타오르리라곤 장미소도 예측 못했다.
“그만큼 다들 쉬쉬했던 문제가 드디어 터진 셈이지. 잘 됐어. 이 참에 한바탕 갈아버려야지.”
“하긴, 그 말도 맞아. 그 나대준이라는 인간은 마지막까지 추하더라. 그런 놈들 죄다 콩밥 먹여야지.”
차동석의 말대로.
[이지혜 前 소속사 대표 “이지혜, 대형 기획사 이적하려 의리 저버려······진실은 곧 밝혀질 것”]
나대준 측은 최후의 발악으로 언론 플레이를 시도했다.
그러나.
[단독! 배우 이지혜, 주역 매니지먼트에 둥지 틀었다! 같은 아역배우인 박유진과 한솥밥]
[이지혜 “주역 매니지먼트로의 이적, 박유진이 큰 영향 끼쳤다······힘들 때 알아봐준 고마운 아이”]
[배우 이지혜, 의외의 선택! 대형 기획사가 아닌 박유진의 소속사 선택한 이유? “행복하게 연기하고 싶어서”]
마치 그에 대비했다는 것처럼.
이지혜의 주역 매니지먼트 합류 소식이 기사화됐다.
이로 인해 나대준의 논리는 힘을 잃었고.
오히려 역풍이 불어, 시민단체에게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와 근데 유진이 대체 뭐임?
지혜 위로해주면서 날아가 부르는거 보고 눈물쏟음 ㅠㅠㅠㅠ 진짜 유진이는 아기천사가 아닐까?
별떠 보니까 진짜 애가 눈치도 빠르고 리더십도 있더라 한참 동생인데도 이지혜가 믿고 의지하는 이유가 있음
유진이는 혹사 당하는 거 아니겠죠? ㅠㅠㅠ 진짜 그러면 안돼
ㄴ 이지혜가 거기로 이적한 거 보면 그럴 일 없을 듯 ㅇㅇ
ㄴ 나 업계 관계잔데 주역 매니지먼트 사장이 진짜 진국임 계약할 때마다 아역보호 조항이랑 이런 거 다 집어넣고 배우 보호가 1순위임 사장 본인이 박유진 매니저 노릇하는 중이고
ㄴㄴ 하 진짜 다행이다 ㅠㅠㅠ 지혜도 거기 가서 행복하게 연기했으면 좋겠다
유진이 덕분에 지혜도 용기낸 거지 진짜 큰일했다
순철옹한테 알린 것도 박유진이라며?? 진짜 애가 완전 똘똘하네... 자기 일 아니라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일련의 사건 덕분에 유진의 주가가 한층 더 치솟았다.
<별을 보러 떠나요>에서 이지혜에게 보여준 따뜻한 모습.
거기에 원로배우 이순철에게 이지혜 문제를 상담하는 등.
어린아이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게 알려졌으니.
[아역배우 박유진 “아동학대 근절 캠페인 홍보대사로서 할 일 다했을 뿐”]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유진은 “누군가의 애정 어린 관심 한 번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며 자신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혜 누나가 그런 아픔을 겪었다니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앞으론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라며 이지혜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유진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 뒤로는 더 평가가 좋아졌다.
[박유진 사진이 어디 있죠? 제 눈에는 빛밖에 안 보이는데
유진이 천사 혼혈 맞음 반박 안받음
ㄴ 22222
ㄴ 333333
ㄴ 44444
ㄴ 혼혈은 무슨 ㅋㅋ 저정도면 순도 100% 천국 태생임 어쩜 저리 완벽하냐?
진심 요즘 아역배우 혹사논란 보고 인류애 사라질 뻔했는데 유진이 보고 다시 충전한다... 유진이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아역배우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화제성을 가진 유진이다.
그 때문에 근거없는 비방과 루머 등이 떠돌기도 했으나.
이번 일은 그것들을 일순 잠재워버릴 정도의 선한 영향력이었다.
“저, 사장님. <별을 보러 떠나요> 정규편성 되겠죠?”
잠자코 있던 이지혜가 물었다.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려해, 당분간은 차동석과 장미소가 이지혜를 밀착마크하기로 했고.
그 때문에 주역 매니지먼트 사무실에 머무는 중이었다.
“어. 오태 꺼고, 파일럿 치고 엄청 흥했으니까.”
“정규로 가면 혹시 저 거기 출연해도 될까요?”
“괜찮겠어? 너 당분간은 쉬기로 했잖아.”
그동안 강제로 쉼없이 달려온 이지혜.
미니시리즈 <호구>가 끝난 이후엔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몸과 마음을 차분히 치유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함.
“아뇨. 그 프로그램은 출연하고 싶어요. 엄마랑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지혜에게 그 프로그램은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좋은 기회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그래, 알았어. 오태한테 말해놓을게.”
“그런데 유진이는 참여 안 할까요?”
“어. 할 생각 없대.”
차동석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 녀석은 연기 욕심이 대단하니까.”
*
“그림 한 번 봐봐. 지금 파도 너무 쎄진 않지?”
“네! 적당해요.”
“조명팀! 이리 좀 와봐. 세팅 다시 해야겠는데?”
빅터의 신곡 ‘첫사랑’의 뮤직비디오 촬영날.
촬영은 강원도 강릉에 있는 주문진해수욕장에서 이뤄졌다.
비수기이기에 촬영을 위한 협조도 모두 구해놓았고.
영화 촬영을 방불케하는 장비와 스태프의 수.
과연 톱 아이돌 빅터다운 스케일이었다.
“······.”
그리고 그곳에 뚱한 얼굴로 앉아있는 한 소녀.
키즈모델 김선미였다.
잡지 촬영 도중 UB엔터 쪽 사람 눈에 띄어 이번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게 되었다.
완전히 비주얼만 보고 뽑은 캐스팅.
“선미야. 얼굴 풀어야지.”
김선미의 어머니가 달래듯 말했다.
“빅터 오빠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거잖아. 기쁘지 않아?”
어머니의 말대로.
김선미는 빅터의 광팬이었다.
김선미의 방안에는 빅터의 포스터로 도배가 되어있을 정도.
그렇다면 어째서.
빅터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지금, 이리도 뚱해있는가?
‘빅터 오빠들이랑 같이 찍는 건 줄 알았는데.’
바로 김선미의 생각과 다른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
‘게다가 왜 하필 걔랑 찍어야 해?’
김선미의 최애 멤버는 재오였다.
그래서일까.
최근 재오와 자주 콤비를 이루는 박유진이 못마땅했다.
어린아이다운 유치한 질투심 때문.
‘재오 오빠에 대해 검색 좀 하려고 하면 쟤가 같이 나와. 무슨 세트메뉴도 아니고!’
그런데 하필.
오늘 김선미의 상대역이 바로 그 박유진이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
귀신도 제 말하면 온다고.
마침 김선미에게 인사하러 찾아온 유진.
오늘은 순수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따로 메이크업을 받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잘난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안녕? 네가 오늘 내 파트너구나? 잘 부탁해.”
“······.”
유진이 살갑게 굴었음에도.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하는 김선미.
“미안해요. 선미야, 얼른 인사 해야지!”
“전 괜찮아요! 아무래도 선미가 낯을 가리나봐요. 그럼 이따 촬영할 때 보자!”
유진은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옆에서 계속 얼쩡거렸으면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말이다.
‘흥, 눈치 하나는 좋네.’
그리고 잠시 뒤.
“그럼 오늘 찍을 장면 설명 들어갑니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두 아역배우를 불러모았다.
“김선미 배우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첫사랑이니까. 너무 헤벌레한 거 말고. 은은하게 웃으면서도 한껏 예쁜 느낌. 뭔지 알죠?”
추상적인 주문에 김선미의 머릿속은 어지러워졌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 박유진 배우는 진짜 첫사랑에 빠진 감정을 표현해주시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느낌.”
“네! 알겠습니다.”
반면.
유진은 당차게 대답했다.
‘정말 뭘 알고 대답하는 거야?’
그렇게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하아.”
한숨을 내뱉는 김선미.
어린아이지만, 김선미도 엄연히 모델 활동 중인 프로였다.
슛이 들어가면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집중하는 법 정도는 알았다.
‘그래도, 오늘따라 집중하기 힘들 것 같아.’
“자, 하이. 액션!”
그렇게 감독의 신호에 따라.
마음을 다잡고 유진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어?’
커다란 위화감에 휩싸였다.
마치 1초만에 눈앞에 있는 사람이 뒤바뀐 느낌이랄까?
아역배우 박유진은 사라지고.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년이 있을 뿐이었다.
곧 유진이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김선미에게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것처럼 경직된 모습이지만.
그걸 애써 이겨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 다가가려고.
‘연기에 엄청 쉽게 몰입하네.’
김선미가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유진이 곧 수줍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맞잡자, 유진이 배시시 웃었다.
“······헤헤.”
‘손에 땀이 나잖아? 이것도 연기야? 아니면······.’
유진이 정말 잔뜩 긴장한 것 같은 느낌.
그게 생생히 전해졌다.
뮤직비디오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때문에 대부분은 다른 어떤 소리도 들어가질 않는다.
즉, 연기자 입장에선 대사라는 무기 없이 표정으로만 승부를 봐야하는 것.
그리고 유진은 그것을 매우 쉽게 해내고 있었다.
‘감독님이 말한 대로야.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느낌.’
김선미 쪽을 계속 흘끗거리던 유진.
곧 김선미와 눈이 마주치자, 매우 해맑게 웃었다.
흑심도 계산도 없는.
그저 순수한 기쁨이 깃든 미소.
‘······!’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김선미는 강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컷!”
그때, 감독의 NG 사인이 떨어졌다.
“김선미 배우! 지금 너무 헤벌쭉 웃고 있거든요?”
“네? 제, 제가요?”
감독의 지적에 제 얼굴을 매만져보는 김선미.
도무지 믿기지 않아 모니터링까지 해보았는데.
“······아.”
정말이었다.
촬영에 들어간 내내, 김선미의 입꼬리는 서서히 올라가더니.
유진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아주 헤벌쭉 웃고 있었다.
“여기서 김선미 배우가 너무 좋아하면 안 돼! 좀 더 자제하고, 신비로운 느낌으로. 알았죠?”
“······넵.”
창피한지 얼굴이 새빨개진 김선미.
달콤한 대사 한 마디 없었다.
그러나 김선미는 유진이 내뿜는 감정에 휩쓸려버렸다.
심지어는 정말 유진이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씨, 자꾸 심장이 콩닥거려!’
김선미는 슬쩍 옆의 유진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
“음? 왜 그래, 선미야?”
그러나.
아까 한껏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볼 땐 언제고.
한없이 평범한 표정의 유진.
‘어떻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마치 0고백 1차임을 당한 기분.
유진이 보여준 방금 보여준 멜로 연기.
그게 유진을 싫어하던 김선미의 마음마저 뒤흔든 것이다.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한편.
“아, 망했다.”
멀찍이서 유진의 연기를 관찰하던 재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좌절했다.
유진은 재오의 아역.
그 때문에 유진의 연기를 참고하려 온 것이었는데.
“저 연기를 대체 어떻게 따라가지?”
참고는 무슨.
재오는 아주 커다란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