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44화 (144/237)

144화

144화

[제50회 백룡영화제]

백룡영화제의 레드카펫.

그곳에 붙여진 별명은 ‘은하수’다.

신인상조차 주지 않는 영화제.

한 해 영화계를 빛낸 스타들만이 엄선해 모이는 곳이 바로 백룡영화제 아닌가.

그러니 별들이 레드카펫을 거닌다고 해서 은하수라 불리는 것.

그리고 스타들이 모이는 곳에.

찰칵! 찰칵! 찰칵!

연예부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것도 당연.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지는 그곳은 그야말로 빛무리가 가득했다.

“<데드맨> 배우들은 언제 와?”

그중에서도 단연 관심이 쏠린 것은 <데드맨>.

‘충무로 올스타즈’라고 불렸던 만큼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데다.

혼자 독보적 흥행을 기록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왔다!”

“저 차량 맞지?”

곧 차에서 내리는 한 사람.

클래식한 블랙수트로 훤칠함을 뽐내는 한권주였다.

“이야.”

“저게 애 아빠의 비주얼이야?”

곧 그는 차 안으로 손을 뻗었다.

에스코트해주려는 모양.

그를 지켜보던 기자들은 당연히 나은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권주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 안에서 나온 것은.

“어? 고석태잖아?”

바로 한권주의 동갑내기 친구, 고석태였다.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차량에서 내렸다.

한권주와 대비되는 블루 컬러의 수트.

그 모습을 보며 한권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히히.”

소리내어 웃으며.

이번엔 고석태가 차량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잡고 나온 건 나은주였다.

흰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는 그야말로 차갑고 도도해보이는 인상.

그런데 또 나은주가 차 안으로 손을 뻗는 게 아닌가?

“뭐야. 줄줄이 소세지야?”

그리고 나은주의 손을 잡고 내리는 건.

“박유진!”

“박유진이다.”

제법 길었던 머리를 정리하고.

대신 시크한 매력의 반깐 머리로 세팅한 유진.

단숨에 기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확실히 축하무대로 섰을 때와는 다른 모습.

2년 사이에 키도 많이 컸고.

얼굴도, 표정도 더욱 성숙해진 모습이다.

“다시는 안 해, 이런 짓.”

포토라인이 끝나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네 사람.

한권주가 복화술로 말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언제나 시크한 이미지를 유지했던 한권주 아닌가.

그런 그가 이런 개그성 퍼포먼스를 하는 게 낯간지러운 모양.

“왜? 나는 재밌는데. 가끔은 이렇게 관종처럼 굴어야 팬들도 좋아한다고.”

나은주가 쿡쿡 웃었다.

그동안 유지해왔던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에서 탈피.

이런 식으로 가끔 장난치는 것이 꽤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래. 가끔은 이런 이벤트도 나쁘지 않잖아?”

고석태 역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러자 나은주가 곧장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아까 석태 오빠 표정 봤어? 어우. 토할 뻔.”

“야, 은주야. 아무리 그래도 오빠한테 토할 뻔은 너무 심하지 않냐? 유진이가 뭘 보고 배우겠어?”

“아. 그런가? 그럼 그냥 속이 좀 안 좋았다는 쪽으로 수정할게.”

“은주는 나만 미워해!”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

“맞아요. 뭐 어때요. 재밌잖아요!”

에스코트하고, 또 에스코트 하고, 또 에스코트하고.

마치 줄줄이 소세지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등장.

이건 유진의 아이디어였다.

백룡영화제의 권위 때문에 매번 딱딱한 모습만 보였던 배우들 아닌가.

영화제는 축제인 만큼, 모두 즐겁게 즐기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우리 죽음조 엄청 잘 나가네? 3명이 수상후보라니.”

고석태의 말대로, 죽음조 4인방 중 3명이 수상 후보였다.

한권주는 남우주연상.

나은주는 여우주연상.

그리고 유진이 남우조연상에 각각 노미네이트되었다.

고석태만 쏙 빠진 셈이지만.

사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석태 오빠도 후보에 들었을 텐데, 하필 백룡이 쿼터제가 있어서.”

나은주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백룡영화제는 쿼터제가 존재해서, 수상 부문별로 한 작품당 하나의 후보만 뽑을 수 있다.

즉.

한 작품 내에서 두 명의 후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

이 때문에 고석태가 아닌 유진이 혼자 후보에 오른 것이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생각할 때.

유진의 연기가 고석태보다 더 나았다는 평가라는 뜻이다.

“상관없어. 어차피 이번엔 수상 욕심도 없었거든.”

고석태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가 후보에 올랐다면 오히려 더 이상했을 거야.”

영화제 개막 전 불어닥쳤던 아역부문 신설 논쟁.

그 당시에 고석태도 정말 자기 일처럼 화를 냈다.

만약 유진이 아닌 자신이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라갔다면, 백룡을 보이콧할 생각마저 갖고 있었으니.

“우리 꼬맹이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후보에 오르겠냐.”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고석태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연기를 대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죽음조 사람들을 누구보다 아끼는 따뜻한 남자이기도 했다.

유진은 물론 나은주, 한권주까지.

매번 고석태를 놀리는 건, 그만큼 고석태가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석태 오빠.”

웬일로 잠자코 고석태의 말을 듣고만 있던 나은주.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 좀 멋있네.”

“이제 알았냐? 그러니까 평소에 좀 존경을 보이라, 이 말이야.”

“저런 말만 안 하면 참 좋은 오빠인데.”

“으헝헝······.”

곧 우는 소리를 내는 고석태.

레드카펫에서도 죽음조는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삼촌들, 누나. 우리 사진 찍어요. 셀카로!”

그때.

갑자기 유진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사진이야 기자들이 실컷 찍었는데?”

“에이. 우리가 찍는 거랑은 다르죠. 자, 얼른 모여봐요.”

유진이 휴대폰을 꺼냈고.

한권주와 고석태, 나은주는 옹기종기 얼굴을 모았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지금 이 순간이.

유진의 휴대폰 속 사진으로 남았다.

“석태 오빠 표정 좀 봐.”

“내가 뭐?”

“권주 삼촌은 언제, 어떤 각도로 찍어도 표정이 똑같네요. 로봇 아니에요?”

“삼촌 로봇 아니다.”

평소처럼 떠들던 네 사람.

그러나 곧 이곳이 백룡영화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내 웃음을 터뜨리는 나은주.

“푸훗! 이렇게 백룡에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하는 건 처음이야.”

“야 너두? 야 나두!”

“동감.”

킥킥대던 세 사람.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유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있잖아요. 저 <데드맨>에서 삼촌들, 누나를 알게 돼서 정말 좋아요!”

그러자 세 사람은 웃으며 유진을 바라보았다.

“누가 할 소리.”

그들은 진정 이 영화제를 즐기고 있었다.

*

백룡영화제가 진행되는 여의도 공개홀.

50주년을 맞이한 백룡영화제지만.

<데드맨>이 없었더라면 50주년이 참으로 초라해졌을 것이다.

“각본상. 축하합니다. <데드맨>!”

“편집상. 역시 이 작품이 받아가네요. <데드맨>!”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백룡영화제는 <데드맨>이 휩쓰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몇 번 정도의 예외도 존재했는데.

“제50회 백룡영화제. 음악상. <청춘의 거리>! 축하합니다!”

“편집상. <여름의 비밀> 팀입니다!”

음악상과 편집상.

해당 상을 수상하러 올라온 감독들은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수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모양.

“당연히 <데드맨>이 받을 줄 알았는데······.”

“<데드맨>이 있는데, 이 상을 정말 받아도 되는지······.”

그들마저 수상소감에서 <데드맨>을 언급할 정도.

그러나 그 두 번을 제외하곤.

<데드맨>은 나머지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대로 <데드맨>이 조연상, 주연상마저 휩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영화들의 약진이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지고 있을 무렵.

“자, 그럼 이제 1부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1부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바로 공로상 수상인데요. 공로상 시상에는 제48회 공로상 수상자인 권성택 감독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전년도 수상자가 시상자로 나서는 것이 관례인데.

작년에는 공로상을 수여하지 않았기에 가장 최근 수상자인 권성택이 나선 것이다.

“네. 그럼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제50회 백룡영화제, 공로상. 배우 이순철. 축하드립니다.”

시상자 권성택이 수상자 이순철에게 상을 건네는 것.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공로상을 받은 영화감독이, 2년 뒤 자신의 페르소나에게 시상자로서 상을 주는 것이니까.

그만큼 두 거목이 대한민국 영화판에 끼친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곧 말쑥하게 정작을 차려입은 이순철이 무대 위로 올랐다.

그런데 권성택은 상을 건네려다 말고 도로 손을 쏙 빼는 장난을 쳤다.

“상 주기 싫은데. 어쩌지?”

“허허허! 이 사람이.”

이순철은 소탈하게 웃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라지만.

두 사람에겐 백룡영화제는 안방처럼 드나든 곳이니까.

“축하하네.”

“고마워.”

그러다 이내 곧 포옹을 나누는 두 사람.

다른 사람 귀엔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대화했다.

“우리도 진짜 늙은이들인가봐.”

“오래 해먹었지.”

“은퇴할 때가 됐나?”

“됐어. 죽을 때까지 이 판에서 뒹굴어보자고.”

시상을 끝마치고.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을 나눴다.

곧 이순철은 꽃다발과 트로피를 들고서 마이크 앞에 섰다.

“예, 반갑습니다. 배우 이순철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제 배우 인생을 칭찬해주시는 의미로 주는 상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짝짝짝-

쏟아지는 박수 소리.

그게 잦아들 무렵, 이순철은 말을 이었다.

“이번엔 감사 인사보다, 하고 싶은 말을 좀 해보려 합니다. 저는 우리 업계를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시대정신, 기술의 발전, 대중들의 요구. 그에 따라 우리는 계속 흘러가야 합니다. 그게 컨텐츠이든, 사람이든. 우리 업계는 절대 고여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향하는 일침이기도 했다.

“만약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고 변화를 거부할 경우, 결국 업계 자체가 썩어문드러질 것입니다. 공멸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가진 게 많고, 누린 게 많을수록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잊어선 안됩니다. 우리 업계를 두고 정글이니 뭐니, 그래도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일 아닙니까.”

순간.

이순철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데드맨> 팀과 함께 앉아있는 유진에게로 말이다.

“저는 우리 영화판 사람들을 믿습니다. 올해 백룡영화제가 50주년이라죠? 대중들에게 50년간 사랑을 받아온 건, 분명 우리 영화인들이 계속 흘러왔기 때문일 겁니다. 앞으로 50년을 사랑받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 흘러가주길 바랍니다. 저 역시 고여있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짝짝짝-

영화인들에게 큰 울림을 남기는 수상소감.

누군가는 뜨끔해했고.

누군가는 감명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럼, 이제 2부로 넘어가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남우조연상 수상이 있겠습니다!”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

“어때. 좀 떨리나?”

공로상 수상을 마치고.

<데드맨> 팀 쪽으로 돌아온 권성택이 유진에게 물었다.

“넵. 많이 떨려요.”

“클클! 너 정도 담력이 되는 아이도 시상식은 긴장이 되는 모양이지?”

“그럼요. 연기는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트로피는 제 마음대로 못 갖잖아요?”

진심이었다.

지금 유진은 심장이 제법 두근거렸다.

그러나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다.

기분 좋은 예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49회 백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자, 주인경입니다.”

무대에는 유진이 깠던 <패왕사신기>의 주인공.

주인경이 시상자로 나섰다.

작년에 <서쪽 하늘>이라는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탔으니까.

“수상 후보로서 저 자리에 앉아있던 게 어제의 일만 같네요. 그럼 지체하지 않고 백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부터 만나보겠습니다.”

곧 무대 뒤 화면에 영상이 나타났다.

영화 속 장면과 함께 수상 후보들을 보여주는 연출.

이윽고 주인경이 후보자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청춘의 거리>의 김남훈.”

청춘의 거리 속 김남훈이 연기한 선생 역할.

<청춘의 거리>는 방황하는 청춘들이 홍대에서 버스킹을 통해 꿈과 자아를 실현한다는 이야기.

여기서 김남훈은 바른 소리만 하는 전형적인 선생이 아닌.

자신도 과거 음악에 심취했던 사람으로서 여러 현실적 조언을 하는 선생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는 흥행 참패했지만, 평론가로부터 김남훈의 연기 평은 호평을 받았다.

“<리마인드>의 추재현.”

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초능력자.

미스터리한 사진사 역할을 맡았다.

비록 복잡한 소재와 플롯 때문에 영화는 악평을 들었지만.

추재현이 연기한 미스테린 사진사 캐릭터만큼은 임팩트가 강하게 남은 편.

“<베테랑 추격자>의 정성진.”

유진과 함께 라앺에 출연한, 저승사자 단 역의 정성진.

저승사자 역에 잘 어울리는 차가운 페이스를 살리는 대신.

수염을 기르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잔혹한 깡패 역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혹자는 ‘인생 캐릭터’다 라고 할 정도.

물론 라앺이 방영되기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데드맨>의 박유진.”

유진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총 네 명의 후보.

화면은 곧 4분할 되어, 수상자들의 얼굴을 비췄다.

“네. 정말 기대되는 순간이죠.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제50회 백룡영화제. 남우조연상.”

두구두구두구-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북소리가 울리고.

곧 주인경이 봉투를 꺼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누군가는 침을 삼키고.

누군가는 마음을 비우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있는 순간.

곧 주인경의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축하합니다.”

그 짧은 순간.

모두의 숨이 멎은 듯 조용해졌고.

“박. 유. 진.”

그 한 마디가 울리고 나서야.

찰칵! 찰칵! 찰칵!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우와아아아아아!!”

방청객석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대한민국 최고라 일컬어지는 영화제.

그곳에 11살짜리가 깃발을 꽂은 것이다.

“<데드맨>의 박유진 배우는 11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연기력으로 1인 2역을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윤재하의 아들, 윤빈 역을 소화할때는 보호본능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영서 역일 때는 죽음이라는 관념의 의인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서라는 존재를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아버지 윤재하의 죄책감으로 해석하여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주는, 근래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냈다는 심사평이 있었습니다.

박유진 배우의 남우조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유진의 수상에 대한 심사평.

그게 사회자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다.

“축하해!”

그 직후.

죽음조 사람들의 격한 축하가 이어졌다.

“짜식, 그래. 그래 임마! 삼촌은 네가 받을 줄 알았어!”

고석태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축하해, 유진아. 누나가 다 자랑스러워.”

나은주는 유진을 꼬옥 안아주었고.

“축하한다, 유진아.”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잘 없는 한권주도.

유진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오랜만에 미소지었다.

“유진아! 정말 축하해!”

심지어 경쟁상대였던 정성진도 다가와 유진을 안아주었다.

제법 충혈된 눈으로 말이다.

감독 한권주는 말 없이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 뒤.

유진은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갔다.

키크고 늘씬한 배우들 사이에서.

아직은 키가 작은 유진은 단연 돋보였다.

그 존재감만큼은 다른 이들을 압도할 정도.

“축하합니다.”

시상자인 주인경은 웃으며 유진에게 트로피를 건넸고.

곧 유진의 키에 맞춰 마이크를 조정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안녕하세요.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

우렁찬 유진의 인사.

유진이 90도로 꾸벅 고개를 숙였고.

곧 그 위로 박수가 쏟아졌다.

“저번에 축하무대로 왔었는데, 이번엔 상을 받으러 왔네요. 음, 그때 그런 말씀을 드렸던 거 같아요. 내년엔 수상자로 오겠다고. 1년이 아니라 2년 걸렸지만, 아무튼 약속 지켰습니다!”

한양독립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당시.

유진은 제게 쏟아졌던 시선을 기억한다.

‘쟤가 왜 저런 상을 받아?’

그런 의심 어린 얼굴들.

그러나 유진은 이 짧은 시간 내에 증명해냈다.

더 높은 무대에서.

더 큰 상으로.

적어도 지금은 객석의 누구도.

유진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먼저,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는 팬카페 대박유진의 대박이들에게 먼저 감사인사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방청을 온 유진의 팬들이 함성을 내 질렀다.

유진은 그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실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일일이 말씀드리기엔 너무 많네요. 그럼 다들 지루하실테니까 과감히 생략할게요. 감사인사는 제가 개인적으로 한 분 한 분 찾아가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유진은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드리고 싶어요. 지금 저를 지켜보고 있고,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신 상이에요. 감사합니다!”

이윽고.

유진의 손은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엄마! 엄마한테 자랑할 수 있는 트로피가 하나 더 늘었어요. 다 엄마가 하늘에서 절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해요!”

짝짝짝-

두 모자를 축복하듯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가 멎은 뒤.

유진은 말을 이어갔다.

“전 아역배우입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함이 많아요. 하지만 그 사실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니까요. 그리고 아역배우로 불릴 날이, 그냥 배우로 불릴 날보다 훨씬 짧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순간을 마음껏 누리겠습니다!”

유진이 어린아이고, 아역배우라는 사실을 이용해 언플을 하던 관계자들.

그들에게 날리는 통쾌하고도 성숙한 한 방이었다.

이윽고 유진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주연상 받으러 오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을 모르는 유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게 아니라.

이번에도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유진의 수상소감이 마무리 된 줄 알았는데.

“아, 그리고 아빠! 안 울기로 약속한 거 잊지 않았죠? 정말 많이 사랑해요!”

뒤늦게 카메라를 향해 하트를 만드는 유진.

그리고 이 순간.

“여보. 보여?”

박태종은 유진의 어머니이자, 박태종의 아내가 잠든 곳.

그 무덤 앞에서, 태블릿PC로 백룡영화제 생중계를 틀어놓고 있었다.

셋이서 찍은 가족사진과 함께 말이다.

“우리 유진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커버렸네.”

이날만큼은.

박태종은 아주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유진이 지금 트로피를 들고 짓는 웃음과 똑닮아있었다.

박태종은 유진과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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