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50화 (150/237)

150화

주말 오후.

유진은 대본을 들고 거실에 앉아있었다.

“백룡아!”

유진은 곧 자신의 턱시도 고양이, 백룡이를 불렀다.

“냐아!”

백룡이는 집안 어디에 있든.

유진이가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온다.

정말 강아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충성심.

“아이구, 우리 백룡이.”

백룡이는 우다다 달려와 유진의 무릎에 이마를 비벼댔다.

유진은 그런 백룡이의 턱을 쓰다듬어주었다.

“자, 백룡아. 오늘 형 좀 도와줘야겠다.”

“냐아?”

“형이 이제 곧 영화를 찍거든. 작품이랑 캐릭터 분석을 할 거니까, 네가 잘 좀 봐줘.”

그리 말하며 유진은 <스마트 좀비>의 대본을 꺼내들었다.

평소 유진은 혼자 대본을 연구하는 편.

하지만 누구든 관객이 있으면 그를 붙잡고 연습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룡이는 훌륭한 관객이었다.

유진이 무슨 말만 해도 좋아하며, 눈을 맞춰오니까.

“잘 들어. 형이 참여하는 영화, <스마트 좀비>의 스토리는 간단해. 스마트폰으로 인해 스마트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 2G폰을 쓰는 남자, 여자, 그리고 꼬마 한 명이 세상을 구할 백신 VV3를 찾으러 여행을 더나는 내용.”

“웅냐앙.”

“여자는 은주 누나, 남자는 권주 삼촌이 맡을 예정이고. 형은 당연히 꼬마 역할! 석태 삼촌? 당연히 그냥 좀비 역할이지.”

“냐아아!”

“잘 어울린다고? 형도 그렇게 생각해.”

일면식도 없던 세 사람.

2G폰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생존을 위해 뭉쳐 유사가족을 형성하고.

끝내 어른인 두 사람이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내용이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소통은 기술로 이룰 수 없고.

결국 사람과 사람끼리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것.

단편영화이니만큼, 이 모든 전개가 스피디하고 임팩트 있게 이루어진다.

“아무튼, 듣기만 해도 재밌지? 너도 보고 싶지?”

“흐으음냐앙.”

듣고 있는 건지 아닌지.

쩍-하고 하품을 하는 백룡이.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형이 맡은 역할은 좀 애매해. 전형적인 공포영화 속 아이 캐릭터거든.”

“먀아?”

“영화 속 행동의 주체는 남녀 캐릭터란 말이지. 물론 이해하는 바야. 짧은 단편영화, 거기다 좀비물에서 어린이 캐릭터가 활약할 여지란 별로 없는 법이니까.”

좀비 영화에서 어린아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좀비물에서 어린아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죽거나 감염돼서 극의 비극성을 높이거나, 혹은 최우선적으로 지켜줘야 할 대상 정도.

<스마트 좀비>에서도 다를 바는 크게 없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또한 이 꼬마 캐릭터란 말이야.”

결국 남자와 여자가 희생한 이후.

살아남은 생존자는 아이뿐.

그래서 엔딩을 장식하는 것도 아이다.

“원래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야. 최후에 살아남은 아이는 새로운 희망, 밝은 미래, 시작. 그런 걸 의미하거든. 하지만 그러면 너무 밋밋하지 않겠어?”

여기서 캐릭터에 매력을 주고,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유진의 목표다.

작품의 전체적 결은 해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만 좀 더 유기적이고, 주체적으로 바꾼다면.

“나도, 작품도 윈윈할 수 있겠지.”

“냐아.”

“형 말이 맞다고? 역시. 백룡이는 똑똑하다니까? 자. 그럼 이제 형이랑 대본 연습 좀 해볼까? 백룡이는 좀비 역할 해. 형은 멀티맨(혼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것)을 할게.”

그렇게.

유진이 원맨쇼로 펼치는 <스마트 좀비>가 시작되었다.

백룡이라는 하나뿐인 관객을 위해서 말이다.

*

얼마 뒤.

<스마트 좀비>의 촬영지인 한국대 인근 공원.

촬영장비를 들고 있는 이새아와 김도희는 거의 폐인이 되어있었다.

“좀비영화 찍다가 우리가 좀비가 되게 생겼다.”

“내 말이.”

다크서클은 짙게 내려왔고.

안색은 매우 안 좋아졌다.

물론 영화 찍는 시기가 되면 영화과 학생들 몰골이 다 망가진다곤 하지만.

지금 이 둘은 그를 감안해도 심한 상태.

“너 몇 시간 잤냐?”

“나 30분.”

“이야. 대단하네. 난 한숨도 못 잤는데.”

“아, 진짜. 그냥 나도 밤 샐걸. 어중간하게 자니까 더 미치겠다.”

<스마트 좀비> 촬영도 어느 덧 중반에 다다랐다.

단편영화이긴 하지만 하루만에 촬영을 끝마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게다가 워낙 바쁜 배우들이라 스케줄 맞추기도 어렵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톱스타들과 함께하다보니 두 사람이 극도로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

출연진이 화려하니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막중한 부담감이 생겼다.

“그니까. 나 요즘 잠을 못 자가지고. 침대에 누우면 오늘 하루가 꿈인지 현실인지······핫세븐 하나 마실래?”

“오, 땡큐. 뭐야. 봉투에 든 게 다 핫세븐이야?”

“어. 이거 없으면 요즘 못 버티겠더라.”

에너지 드링크를 쭉쭉 들이키는 두 사람.

그래도 마음고생만큼 촬영이 순조로이 진행되는 중이라 다행이었다.

그렇게 얼굴이 반쪽이 된 두 사람에 반해.

“요즘 이거 촬영하면서 옛날 생각 많이 나더라. 특히 독립영화 찍을 때.”

“그러게. 하긴 그 당시 독립영화”

“하긴, 은주도 이른 나이에 데뷔했지 아마?”

톱배우들, 죽음조 멤버들은 오히려 이런 나이브한 환경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모양.

자신들도 모르게 ‘라떼는’을 시전하고 있었다.

첫 촬영 때부터 추억에 젖는 모습이 많았다.

“으. 다들 꼰대 같아요.”

유진이 질색하며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세 사람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꼬, 꼰대?”

“우리가?”

“아니, 유진아! 이렇게 멋진 꼰대 봤어? 으이?”

“계속 옛날 얘기만 하잖아요. 진짜 꼰대 같아요. 으, 아저씨들.”

사실 유진도 ‘라떼는’ 토크에 낄 자격이 있다.

지금

유진이 회귀 전 다 겪어봤던 것들이니까.

“아, 아저씨?”

“유진아. 누나는 아니지? 그치?”

“그것보다 이것 좀 보세요.”

“유진아? 누나 꼰대 아니지? 응?”

거의 호소하다시피 하는 나은주를 애써 무시했다.

유진은 재빠르게 화제를 돌려, 백룡이 자랑을 시작했다.

유진의 휴대폰 속 백룡이는 유진의 말에 따라 열심히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 특이한 광경에 세 사람이 눈을 못 떼는 것도 당연한 일.

“무슨 고양이가 이래? 왼손 오른손도 알아듣는다고?”

“완전 똑똑하죠? 저를 닮은 거 같아요. 왜 권주 삼촌이 모일 때마다 혜성이 자랑을 하는지 알겠어요.”

“내가 언제.”

“와, 한권주 이 자식. 모르는 척하는 거 봐라. 너 맨날 아들 얘기 밖에 안 하잖아.”

“맞아. 내가 혜성이 연애사까지 훤히 꿰고 있을 줄이야. 얼마 전엔 혜성이가 오빠랑 만날 때 여친도 데려왔다며?”

“그니까요. 요즘 애들이 참 빠르네요. 벌써 부모님한테 소개도 시켜주고.”

“너도 요즘애거든?”

“크흠.”

만담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간 뒤.

“근데 말이야. 우리 회사 분장팀 불러도 되는데.”

모여 있는 미용과 학생들을 흘끗거리며 나은주가 말했다.

오늘부터 좀비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라 분장을 해야하거든.

“아뇨. 괜찮아요. 이런 감성이 이 대본엔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참여 배우들을 제외하곤.

유진은 그 어떤 것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 영화의 정수는 바로 학생들의 실험정신과 빈티지함에 있어. 이미 배우들이 최상급인 상태에서, 다른 것들마저 최상급이 되어버리면 오히려 이상하지.’

그 조악한 좀비 분장, 저예산의 느낌을 지우려 카메라 워킹을 굉장히 독특하게 잡는다.

이는 <스마트 좀비>가 크게 호평을 받았던 부분.

그렇다면 그 부분을 굳이 드러낼 이유가 없다.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어.’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 미용과 학생들이 감히 죽음조 쪽으로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마트 좀비>에 좀비 및 단역으로 출연할 대학생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

첫 촬영을 마치고 유진이 느낀 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일종의 경계선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충무로에서 톱을 달리는 배우들에, 백룡영화제에서 상도 싹 쓸었으니까. 그 간극이 크긴 하지.’

비즈니스 클래스와 이코노미 좌석처럼 나뉜 기분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 심정 이해하지.’

회귀 전 유진 역시 톱급으로 올라가지 못했던 배우.

잘 나가는 주연배우들과 자신 사이에 어마어마한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단역 생활을 오래 해, 연차가 쌓은 뒤로는 유유연 등과 안면을 트곤 했으나.

아주 초짜 시절에는 감히 말도 걸지 못했다.

‘자본과 스케일이 빵빵한 작품이라면 모를까, 이런 작품에선 모두의 호흡이 중요해.’

이런 소규모 단편영화만큼 현장 분위기가 중요한 작품은 없을 터.

유진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대뜸 다른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기요!”

곧 유진은 대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고양이 좋아하시는 분 있어요?”

대학생들은 흠칫 놀라면서도 그리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 눈에 지금 유진이 톱스타가 아니라.

귀여운 고양이를 자랑하려는 어린아이로 보일 테니까.

‘세상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어린아이와 고양이.

이 두 가지가 가지는 보편적인 힘은 강력했다.

이만큼이나 집단 사이의 가교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존재들은 없을 터.

“배, 백룡이 영상 잘 보고 있어요!”

예상대로.

한 여학생이 용기를 내 유진에게 다가왔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 오늘 아침엔 백룡이가 저 깨워주는 거 영상으로 찍었는데. 보실래요?”

“헉! 정말요? 대박!”

여학생은 입을 틀어막으며 유진에게 다가왔고.

그를 시작으로 다른 대학생들도 슬금슬금 유진에게로 모여들었다.

“와, 진짜 귀여워요. 이름이 백룡이 맞죠?”

“힐링 대박.”

“나만 고양이 없어······.”

모두가 백룡이 영상에 한눈이 팔린 사이.

유진은 재빠르게 대학생들을 스캔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찾았다.’

순간, 유진은 한 여학생이 들고 있는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요! 어? 근데 그 가방이요. 은주 누나가 광고모델 한 브랜드 아니에요?”

“네? 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은주 누나 관련인데, 설마 제가 모를까요?”

그 말에 나은주의 시선이 날아왔다.

그를 눈치 챈 유진이 나은주에게 손짓했다.

“누나누나! 이거 누나가 광고한 그거 맞죠?”

“어. 맞아요. 뭔가 기분 좋네요. 여기서 이 제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시, 시, 실은. 저 배우님 광고 보고 산 거예요. 너무 예뻐 보여서. 반년 동안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요.”

“어머, 정말요? 기뻐요. 내가 광고를 좀 잘 했나보네?”

그러자 자연스럽게 시작된 대화.

곧 여학생들이 나은주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저도 정말 팬이에요! 저, 그 배우님 넙튜브 팩폭상담소도 올라올 때마다 보고요. 상담도 보냈어요.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하는 남친 때문에 보낸 사연, 배우님이 상담해주셨잖아요.”

“와. 그게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내 말대로 헤어졌어요?”

“그럼요! 와, 처음에는 어떻게 그러나 싶었는데. 막상 헤어지니까 훨씬 속이 편한 거 있죠?”

“그래요? 아, 그리고 나 언니라고 불러요. 우리 구독자들은 나 언니라고 불러야하는 거 알잖아요?”

그러자 고석태가 방정맞게 나섰다.

“여기 내 팬은? 내 팬은 없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손 들어봐!”

그러자 한 건장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저요! 저 진짜 고석태 배우님 팬입니다!”

“크으! 이거 봐! 내가 또 아직 젊은 애들에게 먹힌다 이 말이야. 그래, 임마. 애가 진짜 배우를 알아볼 줄 아네. 어때, 사인 해줄까?”

“아, 그건 괜찮습니다.”

건장한 남학생의 진중한 대답.

그러자 현장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저, 저기. 한권주 배우님 맞으시죠?”

“사인 부탁드려요!”

한편, 조용히 앉아있는 한권주에게도 대학생들이 다가갔다.

한권주는 대화를 주도하거나 하진 않았으나.

대학생들의 질문이나 사인요청에 성심성의껏 응해주었다.

‘그래, 이게 진정한 라떼는-이지.’

톱배우와 대학생 배우.

그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격의 없이 뒤섞이는 모습.

‘곧 좀비씬도 찍을 건데, 이러면 훨씬 좋은 그림이 뽑힐 거야.’

유진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

“저, 저기.”

그렇게 한참 대화하고 있을 무렵.

멀찍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이새아와 김도희도 슬쩍 다가왔다.

“고, 곧 촬영 들어갈 예정입니다. 다들 준비해달라고······.”

피로 때문인지, 과도한 긴장 때문인지.

말까지 더듬는 김도희.

유진은 편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강하게 디렉팅해주셔도 돼요! 저희는 배우고, 디렉팅은 전적으로 두 분 뜻에 따를 거니까요.”

“하, 하지만.”

“이미 계약서 다 썼잖아요? 저희 아빠가 그랬어요. 계약서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요! 그리고 <스마트 좀비>는 대본이 가진 힘이 분명 있어요! 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유진이 말이 맞아요.”

나은주가 거들었다.

“두 분, 곧 충무로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시겠죠. 그럼 배우들을 다루는 법도 익히셔야할 거예요. 감독이나 스탭이 굽실거리는 걸 좋아하는 배우들이 있으면 거르세요.”

뼈가 있는 나은주의 조언.

한권주와 고석태 역시 그에 동의했다.

“맞아요. 작품 재밌더만! 하필 절 좀비로 캐스팅한 것만 빼면.”

“유진이처럼 1인 2역하고 싶다고 좀비까지 떠맡은 게 누구였는데?”

“헐, 진짜요?”

“아아아악! 한권주! 널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넌 비밀이라는 것도 모르냐? 그와아아. 난 좀비다아.”

“오빠. 난 좀비다, 하는 좀비가 어디 있어?”

“그럼 뭐라고 하는데?”

“끄워어어. 라고 하겠지.”

“풉! 뭐? 야, 은주야. 방금 그거 다시 해봐.”

“안 해.”

“여러분! 와서 이거 좀 보세요. 백룡영화제 여우주연상께서 좀비 연기 시범을 보여주신대요!”

“유진아······?”

현장에서 터지는 폭소.

첫 촬영 때와 달리, 확실히 친근해진 분위기였다.

‘그래, 이제 진짜 시작이야.’

그렇게.

<스마트 좀비>의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

“야, 재오야.”

MBS에서 SBW로 달리는 차 안.

조실장이 뒷자리를 힐끔거리며 운을 띄웠다.

“이제 진짜 새 작품 좀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

그러자 뒷자리의 재오가 정색하며 대꾸했다.

“그 소리 지겨워, 형.”

“그럼 내 말 좀 들어, 자식아.”

“다 끝난 얘기잖아.”

“안 끝났어. 아직 그 작품 제대로 된 소식도 모르잖냐.”

조실장 역시 <주변인> 영화 오디션에 오케이한 입장이지만.

최근엔 상황이 바뀌었다.

설마 <주변인>의 제작 일정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

“유진이가 고른 작품이야.”

“그래, 박유진이 픽한 작품? 다 대박 터지는 거 잘 알지. 근데 이렇게 너 시간 썩이는 거 좋지 않아. 너 빅터의 재오야. 그냥 일반 배우 지망생이 아니라.”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일하잖아. 나 지금 예능에 화보에, 몇 개 뛰는지 알아? 지금도 MBS에서 토크쇼 뛰고 SBW에서 야외 예능 뛰러가는 거 아니야.”

“그래, 그건 참 좋은데 말이야. 너 배우할 거라며?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가볍게 이미지 소비할 거야?”

이미지 소비.

그 말에 재오도 흠칫 놀랐다.

조실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니까.

예능은 이미지 소모가 심한 분야니까.

“그리고 다른 애들 개인활동으로 잘 나가는 거 봐라. 회사에서는 너희 입대 시기도 제각기 다르게 해서, 그 기간 동안 개인활동으로 버티게 한다는 계획이야. 너 빅터 리더야. 다른 멤버들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거 아니냐.”

여기서 조실장이 추가한 방법.

바로 다른 멤버와의 비교다.

지난 1년간 다른 멤버들은 솔로 앨범, 솔로 콘서트 등 이미 괄목할 성과를 보여준 상황.

비교적 개인활동이 약했던 유이치마저 커버 OST로 일본에서 대박이 터지지 않았나?

“그리고 너 예능에서 엄청 잘 나가는 건 아는데, 그것도 고정이 아니라 게스트나 패널 위주였잖아.”

빅터라는 그룹이 아니라, 각자 개인으로 봤을 때.

현재 상황만 놓고 봐서 재오가 가장 뒤처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임마, 너 요즘 연기 잘하더라. 트레이닝의 성과가 보여. 그 능력, 일본 영화 하나 찍자고 계속 썩힐 거야?”

조실장은 갑자기 답지 않게 재오의 연기를 칭찬했다.

“‘첫사랑’ 뮤비에서 네 연기 호평하는 댓글 아직도 많이 달려. 너 잊지 마라. 네가 원하면 바로 지상파 드라마 주인공에도 꽂아줄 수 있어. 그냥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걸 왜 그리 힘들게 돌아가냐?”

마지막으로 적절히 당근을 제시하는 것까지.

과연 UB엔터테인먼트에서 빅터 담당을 맡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른 작품 준비할 수도 없어.”

재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새로 들어갈 작품에도, 오디션 준비 중인 작품에도 도리가 아니야.”

“야, 재오야. 너 진짜······.”

그때.

우웅! 우웅!

거치해놨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잠깐 기다려.”

잠시 차를 멈춰세운 후.

조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예?”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의 조실장.

그런데 잠시 후.

조실장이 대뜸 재오에게 휴대폰을 내미는 게 아닌가?

“뭐야. 무슨 전화인데?”

“됐으니까, 받아봐. 진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재오는 조실장이 건넨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재오 씨?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의 일본어.

재오는 단번에 그게 누구인지 눈치챘다.

“감독 아이자와입니다, 재오 씨. 연락이 늦어져 매우 송구합니다.”

“아, 아닙니다.”

재오는 자연스레 일본어로 대답했다.

이후 나온 아이자와의 말.

“영화 <주변인>, 아니. 새롭게 지어진 제목 <입김>. 그 오디션 일정이 나왔습니다.”

그건, 재오가 그토록 기다려온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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