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일본의 한 건물.
거기선 영화 <입김>의 오디션이 진행 중이었다.
“흐흐흥.”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아이자와.
그를 본 혼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분 좋아보이네.”
“그럼. 다들 연기를 잘 해주니까.”
그 말대로.
영화 <입김> 오디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연들 캐스팅은 매우 잘 이뤄질 거 같아.”
현재 오디션이 열린 캐릭터는 주인공을 비롯, 조연 캐릭터 4명.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들은 대부분 대본에 충실한, 그야말로 대본 속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해냈다.
그리고 그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아이자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박유진 배우. 어떻습니까?”
아이자와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오디션을 참관 중인 유진이 있었다.
“무척 재미있어요! 역시 국가별로 연기하는 방식이 좀 다르네요. 그 차이점을 찾아내는 게 엄청 흥미로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데요?”
박유진이 보기에도 이번 오디션은 꽤 수준이 높은 모양.
아이자와는 괜히 뿌듯함을 느끼는지 어깨가 올라갔다.
“다들 유명한 배우님이신가 봐요. 이렇게 연기들을 잘 하시는데.”
“아뇨. 대부분 무명이거나 신인입니다.”
유진의 말에 대답한 건 혼고 쪽이었다.
그러자 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헐. 정말요? 그런데 연기를 이렇게 잘 한다고요? 놀랍네요.”
“하하. 일본 배우들을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잘 나가는 배우들은 영화에 출연하길 꺼려합니다. 현재 일본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보단 VOD 시장이 활성화 되어있고, 배우들은 드라마에 욕심을 내죠. 그쪽이 화제성이 높으니까요.”
“여러모로 영화감독 해먹기 힘든 시기지.”
아이자와가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혼고는 그를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흥행은 이례적입니다. 오리지널 한국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이토록 인기를 끌다니. 가장 큰 공로는 역시 박유진 배우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유진 배우의 Y 연기는 정말 최고였어요!”
“헤헤. 매번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를 어지간히 감명깊게 봤는지.
혼고는 유진을 볼 때마다 그의 더빙 연기를 칭찬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 차라리 이런 오디션이 마음에 듭니다. 오히려 더 자유로우니까요.”
아이자와가 말했다.
숨겨진 원석을 발견하는 듯한 재미도 있고.
얼굴도, 연기도 신선한 쪽이 많았기 때문.
유명배우가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유명배우가 들어오면, 그만큼 영화 전반에 개입하려는 일도 많아서.”
그만큼 흥행이야 보장되겠지만, 개런티도 개런티고.
분량을 늘려라, 캐릭터를 바꿔라 등등.
여러모로 대형 기획사의 간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유진의 참여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현재 한일 양국을 뜨겁게 달구는 톱스타가 참여하면서, 어떤 압력도 들어오지 않았으니.
“이제 주인공인 미카미 역의 오디션만 남은 건가?”
“그러네.”
주인공 오디션.
그곳에 참여하는 배우 중, 확실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니.
‘재오’.
그 이름엔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에 원작자 급의 지분을 가진 박유진이 추천했고.
인기 아이돌 빅터의 멤버이자, 첫 연기 도전이니까.
‘설마 재오를 떨어뜨린다고 해서, 박유진 배우 쪽에서 조치를 취하진 않겠지.’
애당초 재오를 꽂을 생각이었다면 오디션이 아니라 캐스팅을 부탁했을 테니.
‘그렇다는 건, 박유진 배우는 이 재오라는 아이돌의 연기를 매우 신뢰한다는 거겠지. 이 오디션에 참가하는 유일한 외국 배우라는 점도 매력적이고.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는군.’
공교롭게도 재오의 오디션은 가장 마지막 순서.
재오의 순서가 다가오기까지.
앞서 배우들은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모두 오디션을 참관 중인 유진을 보고 흠칫 놀랐으나.
곧 자신만의 연기를 펼쳐나갔다.
미카미라는 캐릭터의 양면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게 이번 주인공 오디션의 핵심 키다.
“대, 대, 대. 대체 난, 누구란 말이야.”
누군가는 아예 유아퇴행 수준의 정신붕괴를 표현해냈고.
“제발, 누가 좀 알려줘······.”
눈의 초점을 잃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도 있었다.
모두 무너져버린 주인공 미카미의 심정을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
‘전체적으로 이번 오디션은 수준이 높군.’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대본에 대한 색다른 해석은 찾아볼 수가 없어.'
물론 오디션에서 색다른 해석을 바라는 건 문제가 있다.
배우란 모름지기 대본에 충실한 직업이니까.
그러나 아이자와가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되는 이유는.
'하긴. 그건 박유진 배우니까 가능했던 일이겠지.'
바로 박유진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
불쑥 번개 오디션에 찾아가.
하무열이라는 어른 배우가 맡았어야 할 역할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따냈다지.
그리고 그것이 결말부 대본까지 바꿔버렸고 말이다.
'그게 바로 원작 <주변인>의 수준을 더 높여주었어. 예술이란 기계장치가 아니야. 어느 날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가, 몇 달 동안 짜놓은 대본보다 나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창작은 감독과 각본가의 몫이지.
배우들이 짊어져야할 영역은 아니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주인공 미카미 역에 지원한 재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재오 씨.”
조실장이 재오 측 대리인으로 아이자와와 대면한 적은 있으나.
아이자와가 재오와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제법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준비가 되면 곧장 시작하시면 됩니다.”
“네.”
아이자와의 말에 재오는 숨을 골랐다.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박유진 배우가 힘을 불어넣어주려나.’
그리 생각하며 유진 쪽을 흘끗 바라본 아이자와.
그러나.
유진은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미건조한 눈으로 오디션 대본을 체크하고 있을 뿐.
‘뭐지? 긴장되거나 걱정되지 않나? 그만큼 믿고 있다는 걸까?’
아이자와가 그를 의아해하고 있을 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재오의 눈빛이 변했다.
“모두 안녕.”
아이돌 재오의 모습은 사라지고.
곧 친절하고 멀끔한 청년, 미카미가 등장했다.
“내가 잘 아는 지인이 하는 산장이 있어. 경치도 끝내주고 시설도 좋지. 이번 겨울에 다들 거기로 여행가지 않을래?”
그의 연기를 보며 아이자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지는 확실히 들어맞아. 모두에게 친절하고, 호감을 살 만한 청년. 비주얼과 분위기는 딱이야.’
아이돌로서 쌓아온, 재오만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자와가 머릿속에 그린 미카미의 이미지와는 가장 부합하는 모습.
“아하하. 그래. 덴고 너도 데리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나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면.
‘역시 일본어가 완벽하진 않군.’
역시 국적과 언어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
게다가 재오는 연기하며 그를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 현지 사람이 들으면 확연히 차이를 느낄, 어색한 일본어 억양.
아이자와나 혼고 같은 사람들이 그를 캐치해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얼핏 보기엔 마치 사교성이 높은, 일본어 좀 잘하는 외국인으로 보였다.
‘역시. 외국인이 표현하기엔 어려운 캐릭터가 분명하지.’
대본 변경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재오 한 명만을 위해 편의를 봐줄 수도 없는 노릇.
‘이대로 가면 후반부에서는 저 발음 문제가 더 심해지겠는데.’
아이자와의 우려는 적중했다.
“어디 있어. 나와. 나오라고!”
장면이 후반부로 장면되자 재오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고.
형체가 없는 범인에게 소리를 내지른다.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나야?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 거야?”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재오.
‘역시 감정이 격해지니 발음이 더 어색해지고, 고저도 신경쓰지 못하는군.’
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대사 전달이다.
물론 일본 활동을 계속 해왔고, 줄곧 공부해온 재오이지만.
토종 일본인들이 듣기엔 그의 일본어 구사는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
‘안타깝지만, 주인공으로 뽑기에는 무리가 있겠는데.’
빅터, 아이돌, 유진과의 인연.
그런 것들에 얽혀 망설일 아이자와가 아니었다.
아이자와가 마음 속으로 대강 결론을 내리고 있을 무렵.
“이, 이게 뭐야?”
재오는 계속 연기를 이어나갔다.
산장 안에서 자신의 과거 단서를 발견하는 장면.
그가 했던 가벼운 말들, 부풀려진 소문들이 스크랩되어 한데 모여있다.
“······나는 누구지?”
그 순간.
“나는 대체 누구지?”
갑자기.
재오가 한국말로 대사를 읊었다.
‘뭐지? 실수인가?’
흠칫 놀란 아이자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난 누구야? 僕は誰だろう? Who Am I? Qui suis-je?”
한국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등.
각종 나라의 언어로 자신이 누구냐 되묻는 재오.
이는 대본에 없는 대사다.
그 모습을 보며.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야.’
아이자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손으로 입까지 가리며 재오의 연기에 몰입한 상태.
“대체. 난 누구냔 말이야······.”
그리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는 재오.
아이자와는 순간, 재오의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연극 <주변인>에서 제목을 <입김>으로 바꾼 이유는, 입김이야 말로 소문의 특성을 가시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야.’
분명 눈으로 보이지만.
한순간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입김.
그 모습은 마치 소문과도 같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듯.
아이자와는 재오가 표현하려고 하는 미카미가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했다.
‘그래. 누가 알 수 있지? 주인공의 과거 자체가 미스테리라면,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조차 고정관념 아닌가? 그럼 아까, 일본어가 미숙했던 것도, 그걸 숨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
그러자 아이자와의 머리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아니. 내 고정관념을 깨버린 대본 해석과 연기.’
다른 배우들은 그저 미카미가 가지고 있는 명암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을 뿐.
하지만, 재오는 캐릭터의 근본적 미스테리를 파고들어 그를 구체화시켰다.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걸 이용해, 오히려 그에 맞게 캐릭터를 해석해낸 거군.’
애당초 원작 연극 자체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유진이 오디션에서 보여준 색다른 해석으로 결말부를 뒤바꿔놓았다고 하지 않았나.
‘이미 박유진 배우는 참여가 확정됐어. 이런 배우가 두 명이나 있다면.’
아이자와는 온몸이 짜릿해졌다.
내심 바라왔던 대본에 대한 색다른 해석.
그를 재오가 해낸 것이다.
박유진과 재오.
작품을 폭넓게 해석하고,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들.
그들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이 영화는 모두가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첨가해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영화가 될 거야. ’
그리고 그런 아이자와를 흘끗 쳐다보고 있는 사람.
옆자리에 있는 유진이었다.
곧 유진의 얼굴에 미소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
오디션이 끝난 직후.
유진은 곧장 재오를 찾아갔다.
재오는 오디션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형!”
“아. 유진아.”
“고생 많았어요, 재오 형. 정말 대단했어요!”
그러나.
유진의 칭찬에도 재오는 좀처럼 웃지 못했다.
“그래. 고마워. 아니. 뭐랄까.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드네.”
오디션이 끝나자, 내심 가지고 있던 불안함이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
자신이 내놓은 해석이 맞을까.
대본까지 다 나온 이 작품에 괜한 기교를 부린 건 아닐까.
“형.”
그러자.
갑자기 유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재오 앞에 섰다.
“응?”
“오디션 때 최선을 다했어요?”
“······응.”
“기분은 어땠어요?”
“솔직히, 짜릿했지.”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남들 앞에서 내보이고.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표현해냈다.
재오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그 감각.
바로 연기할 때의 카타르시스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어.”
팬들이 주는 환호성과 응원이 힘이 되었지.
아이돌 활동 자체에 기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오디션에서 펼치며 느낀 감각.
그건 온전히 재오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럼 된거죠!”
유진은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말했다.
“형의 아이디어 정말 좋았어요. 캐릭터를 무국적자로 만들다니.”
“다 우리 스승님의 조언 덕분에 떠올린 거지.”
처음에는 재일 한국인으로 잡았으나.
아예 미스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국적 자체를 없앴다.
초반부의 서툰 일본어가 일종의 복선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후반부에서 폭발하는 것.
재오가 가진 약점을 특색으로 살려낸 캐릭터 해석이었다.
“오디션도 일종의 쇼에요. 감독을 심사위원이 아니라 관객으로 만드는 거예요. 형이 보여준 쇼맨십은 분명 아이자와 감독님과 혼고 각본가님을 관객으로 만들었어요. 물론 저도요!”
그렇게 유진이 재오에게 잔뜩 자신감을 주입시키고 있을 무렵.
“아, 재오 씨. 여기 있었군요.”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오는 화들짝 놀라 벤치에서 일어섰다.
“가, 감독님!”
아이자와였다.
그러자 재오의 얼굴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결과가 나와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마침 근처에 계신다고 해서, 직접 보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온다고 들었습니다만······.”
“다른 배역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미카미의 경우 곧장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자와는 그리 말하며 손을 건넸다.
“재오 씨. 당신에게 미카미 역을 맡기고 싶습니다.”
“······예?”
재오가 멍청하게 대답하기까지 약 5초의 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이자와가 한 말의 뜻을 곧장 이해하지 못한 모양.
“하, 하지만 그러면 대본을 수정해야하지 않습니까?”
“대본이야 수정하면 그만입니다. 안 그래, 혼고?”
“남의 일이라고 참 쉽게 말하네.”
“남의 일이긴. 우리 일이지. 그러니까 쉽게 말하는 거라고.”
“그래, 그래. 아무튼,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식의 대본 수정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니까.”
그 말에 재오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언제나 제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할 지언정.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방법은 몰랐던 사람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연기라는 영역에서.
대본이 보여주는 것 그 이상의 연기를 펼쳐보였고.
감독과 각본가는 그를 수용해주었다.
“좋은 연기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탄했어요. 재오 씨가 미스테리를 만들 줄 아는 배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 말하며 악수를 건네는 아이자와.
재오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받아들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재오 배우님.”
배우님.
그 호칭이 주는 울림은 꽤 컸다.
“그럼 조만간 계약을 위해 스케줄을 잡겠습니다. 소속사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 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로 재오다운 포부.
그렇게 아이자와와 혼고가 떠나간 뒤.
“흣.”
재오는 주먹을 꽉 쥐더니, 점점 허리를 숙였다.
마치 무언가를 만끽하듯.
“······으아.”
처음 겪어보는 환희를 만끽하는 재오.
유진은 축하를 건네는 대신, 재오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 짜릿함을 재오가 온전히 혼자서 누릴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이돌 재오가 아니라.
배우 재오로서.
스스로의 힘으로 오디션에 합격한 것이니까.
분명 저 감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연기자로서 재오에게 큰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유진아! 내가 주인공이래! 내가!”
그런데 유진이 먼저 다가가기 전에.
재오가 먼저 유진에게 달려들어 힘껏 껴안았다.
“고마워, 고마워! 진짜 네가 내 스승님이라 다행이야!”
“아아악. 형, 재오 형! 저 숨막혀 죽겠어요.”
그리 투덜대긴 했지만.
유진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정말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순간일테니.
‘참 재미있는 형이야. 훨씬 유명하고 초호화로 세팅된 드라마나 영화에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위치인데.’
여러모로 재오는 참 올곧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이걸로 <입김> 흥행 요건은 충분히 갖춰졌어.’
그때.
“유, 유진아! 헥, 아이고. 여기 있었구나.”
뛰어왔는지 헥헥대며 숨을 고르는 차동석.
그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사장님? 무슨 일이에요?”
“연락을 받아서. 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데?”
그 말에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본에서요?”
한국도 아닌 이곳, 타지인 일본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다니?
“JG 매니지먼트라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