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58화 (158/237)

158화

서울의 한 스튜디오.

세련된 분위기의 그곳엔 소파 두 개가 세팅되어 있었다.

바로 <찬란> 개봉 전, 이순철과의 대담 코너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제작발표회를 통해 영화를 홍보하는 게 우선이지만.

<찬란>의 경우 이순철과의 대담이 이를 대신했다.

이순철의 인생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

무엇보다 감독과 배급사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원로배우 이순철인만큼.

그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홍보방식이라는 것을.

“영화 <찬란>을 기대해주시는 관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깔끔한 딕션과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대담의 시작을 알렸다.

그 정체는 바로 제49회 백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자.

드라마 <패왕사신기>를 통해 명실상부 원톱 주인공으로 떠오른 배우.

“배우 주인경이라고 합니다. 이번 영화 <찬란> 개봉일 확정 기념 대담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주인경이 큐카드를 들고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그럼 곧장 주인공을 모셔보겠습니다. 영화 제목만큼이나 찬란한 삶을 사신 분이죠. 충무로의 왕, 배우 이순철 선생님입니다.”

짝짝짝.

주인경이 박수를 보냈고.

곧 이순철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배우 이순철입니다.”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배우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린다 평가 받는 이순철다운 담백한 인사였다.

“이렇게 선생님과 함께 자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제가 더 영광입니다. 이렇게 잘 나가는 배우가 대담 진행자를 맡아주다니.”

최근 영화, 광고,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가장 핫한 배우로 군림한 주인경이다.

각종 스케줄로 바쁜 그가 영화 홍보와 연계된 대담 진행자로 나선다니!

하지만, 그건 역으로 이순철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주인경 급은 되어야 이순철과의 일대일 대담이 가능하다.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과분한 칭찬입니다, 선생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같은 한참 후배에게.”

“그럴 수는 없죠. 나이 많이 먹은 게 뭐 자랑이라고. 사석이라면 모를까요! 허허. 그리고 시청자분들께서도 보고 계시는데, 감히 그럴 수는 없죠.”

“역시 이순철 선생님다우십니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의 연기를 보고 자라와 꿈을 키운 사람으로서, 이 자리가 무척 벅찹니다. 그럼 두근거림을 안고 본격적으로 대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영화 <찬란> 제작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찬란>. 참 특별한 작품이죠. 보통 죽은 사람에 대한 전기 영화를 만드는데. 산 사람의 인생을 갖다가 영화를 찍는다니까 처음엔 당황하기도 했고요. 불과 1~2년 전에는 은퇴를 생각했기에 더더욱 놀랐습니다. 허허!“

그 말에 대담을 지켜보고 있던 감독, 주승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 역시 영화를 구상할 때 이순철이 불쾌해하진 않을까, 그걸 가장 걱정했으니.

“처음엔 뭐 이런 늙은이의 인생으로 영화를 만드나 했습니다. 분명 아무도 보지 않을 재미없는 영화가 될 거라고요.”

그리 말하며 허허 웃던 이순철.

그러나 곧 눈빛이 돌변했다.

“그렇게 제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평생 남의 이야기 속에서. 타인을 연기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저도 인간인지라 여러 희노애락을 겪었습니다. 그것들 역시 모두 이야기가 될 수 있더군요. 일상에 녹아져 있는 예술적 순간, 그걸 포착하는 감독의 눈썰미와 실력에 감탄했습니다.”

“일상에 녹아져 있는 예술적 순간. 무척 멋진 표현입니다. 그럼 그런 면모가 가장 잘 나타난 장면을 하나 꼽아주신다면요?”

“아무래도 엔딩 장면을 꼽을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리 말하며 이순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때문에 주인경은 적잖이 놀랐다.

보통 이순철은 빈말로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을 표한 적이 없었는데.

그런 그가 엔딩 장면에 만족을 표할 정도라니?

“아. 그리고 또 개봉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된 소식이 있죠. <찬란>에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하는 배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맞습니다. 요즘 저보다 잘 나가는 배우죠. 박유진 배우입니다.”

이미 다큐멘터리 <나는 아역배우입니다>를 통해 공개된 사실이다.

다만 유진이 <찬란>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으나.

그게 어떤 장면인지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혹시 어떤 장면에 나오는지 힌트라도 주실 순 없을까요?”

“그러면 특별출연의 의미가 없겠죠.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기대하셔도 좋을 거란 사실입니다. 사실 이번 촬영을 하며 박유진 배우를 통해 많이 배웠죠.”

“이순철 선생님께서, 12살의 박유진 배우를 통해서요?”

“물론입니다. 이 역시 가타부타 설명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보는 순간, 관객 여러분도 분명 알게 되실 겁니다.”

그때 주인경의 머릿속에 스치는 한 생각.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엔딩이고, 박유진이 나오는 장면은 기대하라고 말씀하셨어. 설마, <찬란>의 엔딩을 박유진이?’

그러나 주인경은 설마, 하며 넘겼다.

이순철의 인생을 담은 영화에서, 그 중요한 엔딩 장면을 아역배우에게 맡겼을 리가.

‘하지만, 그 아이라면 또 모를 일이지.’

주인경은 큐카드를 정리하며 말을 이어갔다.

“하하. 점점 <찬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가고 있군요.”

이후 이순철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은 순간, 연기 철학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갔고.

어느덧 대담은 마지막을 향해 다가갔다.

“그럼 선생님. 마지막으로 <찬란>을 기대해주시는 관객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전 제 인생이 그리 찬란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순간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면, 모두 여러분이 빛내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담이 종료된 이후.

주인경과 이순철은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

“고맙군요. 갑작스러운 부탁이었는데.”

이순철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주인경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언젠가 식사 한 번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박유진 배우와 함께 말입니다.”

“유진이와? 허허! 참 재미있는 자리겠군요. 충무로의 대표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가 함께하는 자리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이순철이 먼저 자리를 뜬 이후.

주인경은 차로 돌아갔다.

차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한 여자의 목소리.

“인경 씨. 괜찮아?”

주인경의 매니저.

이제 막 40대가 된 여성, 최하나가 입을 열었다.

“뭐가요?”

“이번 대담 진행 말이야. 박유진 땜빵으로 들어간 거잖아. 자존심 상하지 않아?”

사실 <찬란> 측에서 이 대담 진행은 유진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유진이 <찬란>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순철도 가장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상대로 유진을 꼽았으니.

“지금 박유진이 일본에 있어서 못하고, 대신 우리한테 온 거잖아. 아무리 이순철 선생님이 부르신 거라고 해도 인경 씨가 급이라는 게 있는데. 누구 땜빵 뛸 위치 아닌 거 잘 알잖아?”

주인경 역시 백룡영화제 수상 이후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배우.

아역배우 박유진의 대타라는 사실에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괜찮아요.”

주인경은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아니, 오히려 호기심이 깃들어있다고나 할까.

“선생님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도 없잖아요. 또, 저도 그 아이에겐 관심이 많으니까요.”

“그 아이? 박유진한테?”

“네. 백룡영화제 때 보니까 진짜 잘생겼던데요?”

제50회 백룡영화제 당시.

남우조연상 시상자가 주인경, 수상자가 박유진이었다.

“잘생기면 뭐해. 그리고 인경 씨도 잘생겼으면서 뭐?”

“그 아이가 더 잘생겼어요. 크면 정말 대단할 걸요.”

“어휴. 그거 기만이야, 인경 씨. 잘생긴 사람들이 더하다니까. 아무튼, 난 박유진 별로야. 기껏 <패왕사신기>에서 인경 씨 아역으로 픽했더니. 고민하는 척하다 뻥 차버렸잖아?”

당시 박유진에게 들어갔던 <패왕사신기> 속 주인경 아역 제안.

주인경은 직접 박유진을 제 아역으로 선택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장 핫한 배우는 주인경이었고.

그 아역으로 제안이 온다는 건 아역배우로선 상당히 매력적인 일.

그러나 박유진은 거절했고, 이후 라앺 출연을 확정지었다.

그 때문에 주인경의 매니저, 최하나가 박유진에게 반감을 갖게된 것.

“결과적으로 그 아이의 선택이 옳았던 거잖아요? 라앺이 엄청 대박을 터뜨렸으니까.”

<패왕사신기>도 제법 훌륭한 성적을 얻었지만.

신드롬 수준이었던 라앺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론 박유진의 선택이 옳았던 것.

누구의 아역이 아닌.

자신만이 맡을 수 있는 캐릭터, 염라를 제대로 구현해냈으니.

“그리고 어린아이에게 원한을 가져봤자 좋을 거 없어요. 그런 아이와는 친구가 되어야죠.”

주인경은 차 시트에 몸을 묻었다.

그리곤 가방을 뒤적여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연예뉴스란에 보이는 헤드라인 하나.

[아역배우 박유진, 日 JG 매니지먼트와 계약 체결······일본 활동 본격 시동 건다]

*

다시 일본.

JG 매니지먼트의 사옥.

해외전략본부 부서의 부장, 와타베는 다시 수뇌부들 앞에 섰다.

“그간의 실적을 보고하게.”

“네. 박유진과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장윤, 김인호 등. 다른 한류배우 스타들과도 일본 활동 지원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현재도 다양한 한국 배우들, 가수들과 미팅을 잡았습니다.”

“확실히 알짜배기들이로군. 고생많았어, 와타베.”

“그런데 와타베. 자네가 가장 공을 들인 게 그 아역배우. 맞지?”

“그렇습니다.”

“그 박유진의 대리인들, 신뢰할 수 있겠나? 아이를 가지고 장사하려 하는 족속은 아니겠지?”

“인기가 많다곤 해도 고작 12살이야. 게다가 방학 중에만 일본 활동을 한다니. 그런 제약에 비해 정산비율과 개런티가 너무 높지 않았느냔 의견이 있어.”

그간 한류에 보수적이었던 만큼.

수뇌부가 가지고 있는 우려도 큰 편.

그러나 와타베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유진은 저희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 12살짜리 소년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

순진무구한 얼굴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능구렁이인지 악마인지.

비즈니스맨 와타베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이익을 JG 매니지먼트에 안겨줄 것인가, 그뿐.

와타베는 그에 대한 확신은 200% 가지고 있었다.

“박유진은 한국에서 다수의 선행으로 인해 호감도 또한 매우 높습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박유진의 목격담이 SNS상에 퍼지고 있고, 이게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하네다 공항 때의 팬서비스가 화제가 된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던 박유진이 다시 일본 스윗터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음식점에서 알아보는 주인장, 손님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줬고.

그게 발빠르게 SNS에 퍼져갔으니까.

어린아이가 매너 있고 친절하다며, 박유진에 대한 일본 대중들의 호감 여론이 점점 높아져가는 중이었다.

“그럼 박유진의 일본 활동 플랜은 준비된 게 있나?”

“실은, 저희와 계약하기 이전에 한 일본 영화에 출연을 확정지었다고 합니다.”

“우리 일본 영화 말인가?”

“예. 아이자와 감독의 <입김>이라는 영화입니다.”

그 말에 수뇌부들의 미간에 골이 잡혔다.

“아이자와라면, 내가 아는 그 영화감독 아이자와 료 맞나?”

“맞습니다. 한국의 <주변인>이라는 연극을 영화화하는데, 박유진이 그 연극에 출연했던 모양입니다. 그를 인연으로 이번 아이자와 감독의 영화까지 출연하는 모양입니다.”

“역시 알 수가 없군. 왜 하필 아이자와의 영화지? 일본 영화판에서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감독인데.”

아이자와 료.

미스테리 장르에서는 독자적 영역을 가지고 있다 평가받는 감독이지만.

흥행성이 보장된 감독은 아니었다.

“박유진은 이미 한국에서도 작품 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평이 자자하며, 미니시리즈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까지 이끌어냈습니다. 이번에도 의심할 여지는 없다고 자부합니다.”

우려하지 말라는 듯, 와타베가 말했다.

“와타베. 혹여나 박유진이 우리의 예상보다 저조한 모습을 보여줄 경우, 그 책임은 모두 자네가 지게될 거야.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박유진을 잡아야 한다고 제안한 것도, 협상한 것도, 계약을 맺은 것도.

모두 와타베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만큼 와타베는 자신이 있다는 얘기.

“박유진이 당장 영화에 투입된다면, ‘그 작품’에 출연하긴 힘들어진 것 아닌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조사해보니, 영화 촬영 기간과는 겹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그리 말하는 수뇌부들의 책상 앞에 놓인 것.

그건 바로 어떤 드라마의 대본이었다.

제본된 그 드라마의 가장 앞장엔 제목이 적혀있었다.

[메모라이즈 – 모든 것을 기억하는 소년]

*

얼마 후.

아이자와 감독의 영화사에 있는 협소한 회의실.

그곳엔 오랜만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ㄷ자 모양의 테이블.

그 중앙에 앉은 아이자와가 일어서서 인사했다.

아이자와를 중심으로 그 주위엔 유진과 재오을 비롯.

여러 배우가 앉아있었다.

“영화 <입김>을 통해 여러분과 한 배를 타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감독인 아이자와 료입니다.”

유진이 귀국하기 전.

다행히 영화 <입김>의 주조연 캐스팅이 모두 완료되었다.

재오의 캐스팅을 확정한 이후.

아이자와와 혼고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판을 짜고.

그를 통해 일찌감치 캐스팅을 완료할 수 있었던 것.

짧은 일정으로 일본에 방문한 유진과 재오다.

곧 한국에 돌아가야 했으니, 그 전에 미리 짧게나마 리딩을 해보기로 한 것.

"출연 배우가 적은 만큼, 여러분의 힘이 곧 영화의 힘입니다."

<입김>은 다른 영화에 비하면 참여 배우 수 자체가 적은 편이었다.

이번 <입김>이 그리 큰 규모의 영화도 아니고.

애당초 산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배경이니만큼 단역이나 엑스트라도 필요 없었으니.

“배우들과 스탭들이 하나로 똘똘 뭉친다면 분명 좋은 영화가 나오리라 자부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자와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 연예인들이 왜 여기 있는 거야?’

토종 일본 배우들이 박유진과 재오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했다.

‘아이자와 감독이 저런 핫한 연예인들을 기용한다고?’

아이자와는 항상 작품마다 무명 배우들과 함께 해왔고.

이는 오디션에 참가했던 모든 일본인 배우들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 그가 아이돌 빅터와 한류열풍의 중심에 있는 아역배우를 기용한다니?

다른 일본인 배우들이 반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 여기는 재오 배우입니다. 이번 미카미 역 오디션에서 뽑혔습니다. 여기는 모두가 다 알고 계실 박유진 배우. 한국에서 공연했던 원작 연극 흥행의 1등 공신입니다."

아이자와가 직접 설명을 했으나.

일본인 배우들의 반감을 잠재우기엔 무리였다.

누군가에겐 아이자와 영화답지 않게 스타 캐스팅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

박유진 한 명이라면 모르겠으나, 재오까지 뽑혔으니 심증이 더더욱 굳어지는 것.

‘저 둘, 한국에서도 콤비로 유명하다던데.’

‘결국 아이자와 감독도 자본에 굴복한 건가?’

'일본 작품에 대체 왜 외국인을 쓰는 거야?‘

그렇게 이방인을 향한 배척감이 알게 모르게 높아지고 있을 때.

“그럼 지금부터 리딩을 시작하겠습니다. 미리 공지했다시피 정식 리딩은 아닙니다. 가볍게 대사톤, 방향 등을 사전에 조율하기 위함이니 너무 부담은 갖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이자와는 그리 말했으나.

저 이방인들에게 밀릴 수 없다.

일본인 배우들 사이에선 그런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저기.”

그때.

갑자기 손을 번쩍 드는 박유진.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리딩하기 전에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박유진 배우. 뭐죠?”

“시작 전에,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제법 뜬금없는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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