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69화 (169/237)

169화

“주인경 배우님?”

유진의 눈이 동그래진 것도 당연하다.

이 국밥집과 주인경.

그만큼 안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안녕하세요.”

유진은 일단 주인경이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백룡영화제 때가 생각나요. 많이 자라셨네요. 이제 곧 저와 키가 비슷해지겠어요.”

170cm이 훌쩍 넘는 유진의 키.

하지만 또래에 비해선 확실히 크다.

그러나 180cm가 넘는 주인경의 키에 비하면 작다.

“감사합니다. 아직 성장기니까요.”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설마 여기가 연예인들만 아는 맛집. 뭐 그런 건가?”

유진으로선 주인경이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던가 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우연인 듯 만날 리가 없으니까.

그때.

“인경이다.”

옆에 있던 이순철이 말했다.

“네?”

“너를 보고 싶다던 사람. 그게 바로 인경이야.”

그 말에 유진은 빤히 주인경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한국에서 자리를 비운 3년.

그동안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주인경이 어째서 자신을 찾는단 말인가?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주세요. 아, 형이라고 부르기엔 나이 차이가 좀 있나? 삼촌도 괜찮고요.”

서글서글 웃는 주인경.

그러나 그의 얼굴에선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운 포스가 느껴졌다.

톱스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일종의 아우라 말이다.

물론 유진에겐 별 상관 없는 감각이었지만.

“어······.”

잠시 고민하는 체하던 유진.

“형님?”

형도, 삼촌도 아닌 뜻밖의 호칭.

곧 눈이 동그래졌던 주인경이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재미있는 호칭이네요. 형님, 네.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불러주세요. 그럼 전 유진 동생이라고 부를게요.”

마치 유진의 발언에 대응책이라도 내놓듯.

제법 엉뚱한 대답을 하는 주인경.

그러나 동시에 형과 동생이라는 나이차이를 은근히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형님도 저한테 말 놓으세요.”

“제 쪽에서 말 놓는 건 잘 못하는 타입이라서요. 친해지면 그때 놓을게요.”

훌쩍 커버린 유진과 달리.

주인경은 얼굴이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저 유행에 따라 헤어스타일이 조금 달라진 게 전부라고나 할까.

“아, 식사 중이셨는데 제가 방해했나보네요. 죄송해요. 생각보다 스케줄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주인경은 재차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너도 한 그릇 할 거냐?”

“괜찮습니다. 차 안에서 김밥을 먹고 와서요.”

“그걸론 부족할 텐데. 든든히 먹어야 일을 하지. 젊다고 체력 믿고 일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걸?”

“하하. 든든히 먹었습니다. 권해주신만큼 한 그릇 먹고 싶은데. 제가 순대국밥을 잘 못 먹어서요. 죄송합니다.”

예의를 차리면서도 묘하게 선을 긋는 것 같은 태도.

이순철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건 단번에 잘라냈다.

“그래? 그렇구만.”

그러나 이순철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애당초 그는 후배들에게 크게 터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실은, 네가 일본에 나가있는 동안 인경이가 내게 도움을 좀 줬다. <찬란> 대담도 너 대신 인경이가 대신 해줬지.

“아아. 그러셨구나. 감사해요. 저도 그 대담 봤어요.”

유진이 주인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뇨, 감사는요. 오히려 덕분에 이순철 선생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제가 더 감사한 걸요.”

“그때 인경이가 그랬거든. 이렇게 셋이서 식사라도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이야. 그 말이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뤄진 셈이지.”

이순철의 말에 주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박유진 배우를 정말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요. 이번에 국내에 복귀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해요. 근데 저를 보고싶으셨다니. 이유가 있을까요?”

“유진 동생이랑 같이 작품을 하고 싶어서요.”

주인경은 빙빙 돌리지 않고.

곧장 돌직구를 꽂았다.

“데뷔했을 때부터 줄곧 눈여겨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패왕사신기> 촬영 때 함께하길 원했는데, 안타깝게도 불발이 되었죠.”

혹시 그걸 담아두고 있는 걸까.

유진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건 아쉬웠어요. 그래서 끝까지 고민했던 거고요.”

“하지만 유진 동생의 선택이 옳았죠. 그때 라앺을 선택하신 거잖아요? 유진 동생의 작품 보는 안목. 그게 참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에이. 옳고 그른 게 어디 있겠어요. 다 작품마다 장단점이 있는 걸요. <패왕사신기>도 좋은 평을 받았잖아요?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요.”

미묘한 워딩 차이를 가지고 이견을 드러내는 두 사람.

주인경은 흥행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평가하고 있고.

이는 곧 주인경이 주연이었던 <패왕사신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유진은 그를 에둘러 지적한 것.

“맞는 말이네요.”

결국 주인경 쪽이 한 발 물러났다.

“아무튼, 이번에는 꼭 같이 하고 싶어요.”

“하하. 저도요. 하지만 배우들은 선택받는 입장이니까요. 그럴 기회가 올지 모르겠네요.”

주인경은 물론이요.

유진 역시 몸값이 장난 아니다.

한 명만 캐스팅해도 흥행이 보장된다는 소리가 도는 마당에.

이 둘이 한 작품에서 만날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제 예감입니다만, 그 기회는 곧 올 것 같습니다.”

주인경의 말에 유진이 되물었다.

“예감이요?”

“네. 그러니 그런 기회가 오면, 부디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이죠! 저도 인경 형님이랑 꼭 같이 해보고 싶은걸요?”

“기쁘네요. 그리 말해주시니 감사해요.”

“음, 그런데 인경 형님.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저와 함께 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주인경은 유진의 서포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나간다.

유진이 한국에서 자리를 비운 3년 동안,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으니까.

굳이 유진에게 이리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

“단순합니다. 배우로서의 욕심이죠.”

주인경의 눈동가 번뜩였다.

“박유진 배우의 그 소름돋는 연기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

며칠 후.

유진과 박태종의 집.

“백룡아.”

“먀아?”

유진이 부르자 백룡이는 단숨에 달려왔다.

그리고 유진의 무릎 위에 자리잡곤 몸을 말았다.

“어구, 우리 백룡이. 이젠 무거워서 안기도 힘들겠네.”

제 무릎에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먹고.

유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덕인지.

백룡이는 마치 삵에 버금갈 정도로 몸이 길어졌다.

물론 유진이와 백룡이 팬들은 ‘왕크왕귀’라며 좋아했지만.

“네 야생의 감을 한 번 테스트해보자. 주인경이라는 사람, 어떤 거 같아? 자아. 얼굴을 보여줄게.”

유진은 그리 말하며 휴대폰으로 검색, 주인경의 사진을 띄워주었다.

그를 유심히 살피던 백룡이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뭐야. 별로야?”

백룡이는 대답 대신 머리를 유진의 가슴팍에 부벼댔다.

나이를 먹고, 몸이 커져도.

여전히 유진이 껌딱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주인경······아니, 인경 형님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진이 회귀하기 전, 조단역을 전전하던 시절.

주인경과도 같은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가갈 수 없는 별, 말 그대로 ‘스타’였다.

“촬영이 끝나면 인사만 간단히 하고 바로 이동하고, 쫑파티나 회식 때도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거든. 참여한다고 해도 얼마 안 가 먼저 가버리고.”

그러나 예의가 없거나, 오만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철저히 개인주의자라는 생각이 들 뿐.

그 과정에서 알게된 사실 하나.

바로 주인경은 스케줄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차동석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소처럼 일한다고.

아예 톱의 반열에 오른 사람 중에선.

그냥 광고나 찍으며 적당히 사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러나 주인경에겐 그런 면모가 없었다.

화보나 광고도 정말 가끔 찍고, 거의 드라마와 영화만 찍는 타입.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왔단 말이지. 스케줄까지 비워두고서.”

유진이 생각하기엔 분명.

“뭔가 목적이 있다는 뜻이겠지.”

유진이 아는 미래에도 주인경은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톱배우로서의 지위를 오랫동안 누린다.

[믿고 보는 배우, 주인경!]

[우리는 주인경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유진이 아는 미래에선 그런 평가를 받을 정도.

특히 지금 세대에선 명실상부 원톱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유진의 등장으로 인해 그 화제성을 좀 뺏긴 측면이 있다.

“좋은 작품만 있다면, 같이 참여하는 게 나쁘진 않을 거야. 그치?”

“먀아아.”

“나도 이제 한국에 복귀하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이왕 그렇게 되면······그 사람을 뛰어넘는 그림도 재밌을 것 같고?”

갸릉대는 백룡이의 턱을 살살 쓰다듬어주고 있던 그때.

유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매우 익숙한 번호.

“유, 유진아. 통화 괜찮아?”

유신애였다.

유진은 쾌활하게 전화를 받았다.

“응? 왜?”

“나 상담할 게 있는데.”

“응? 나한테? 무슨 일인데? 혹시 또 ”

“아니, 그게 아니라. 소설 관련된 일이야.”

유신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유진 한 명뿐.

그래서 소설 관련 일이 있을 때마다, 유신애는 유진에게 상담을 요청하곤 했다.

이번에도 아마 그럴 터.

“만나서 얘기하면 좋을 거 같은데. 너 많이 바쁘지?”

“아냐, 지금은 괜찮아. 스케줄 없거든.”

“그, 그럼 내가 너희 집쪽으로 갈게!”

“알았어. 근데 무슨 일인지 귀띔 먼저 해줄 수 있어? 되게 궁금한데.”

“응. 실은, 그게.”

전화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소곤소곤, 소곤소곤.

유진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유신애.

그런데, 곧 유진은 큰 소리로 되물었다.

“뭐? 넷플러스에서?”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으니까.

“응. 넷플러스에서 <열다섯, 서른다섯>을 드라마화하고 싶대.”

*

샤샤토끼의 로맨스 웹소설, <열다섯, 서른다섯>.

말 그대로 열다섯 때 만나 미성숙한 사랑을 하던 남녀가.

서른다섯이 되어 다시금 재회하는 내용이다.

어리고 서툴지만 순수하고 직접적이었던 열다섯 살의 사랑과.

이제는 세상에 닳고 달아버린 나이가 되어, 서로 시작하는 것조차 겁내는 서른다섯의 사랑.

초반부에는 열다섯.

후반부에는 서른다섯을 보여주며 남녀가 세월에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주는 로맨스 소설.

‘이걸 불과 15살의 나이로 썼단 말이지.’

물론 열다섯의 사랑이야 지금 유신애의 감성으로 가능하지만.

서른다섯의 사랑은 그야말로 상상의 영역 아닌가.

‘거기다 내가 알기론 이 소설, 한 3년 있다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벌써 나왔어. 게다가 캐릭터도 좀 다르고.’

분명 유진이 기억하기로.

회귀 전 <열다섯, 서른다섯> 속 남주는 다소 소심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혹자들에겐 고구마란 소리를 듣긴 하지만.

열다섯이란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남주는 다소 장난끼가 있고, 모두의 선망을 받고 인기도 있으나.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만 쑥맥인 캐릭터로 변모했다.

다소 능동적 캐릭터로 변화한 것.

‘신애가 무언가에 영향을 받은 걸까?’

유진이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나, 나 방금 엄마랑 같이 가서 계약하고 왔어! 넷플러스랑!”

유신애가 황급히 뛰어와 말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모양.

유진은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었다.

“축하해. 와, 너 진짜 대단하다. 넷플러스가 드라마를 만들어준다니.”

“으응. 아직 너한텐 부족하지만. 그래도 고마워.”

그런데 잠시 후.

유신애는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부릅 떴다.

그리고 유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유진아! 나 부탁이 있는데.”

“응? 뭔데?”

“이 드라마에서 열다섯의 남주 말인데. 유진이 네가 맡아주면 안될까?”

소심한 성격인 유신애답지 않은 돌직구.

“친구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부탁하는 거야.”

그녀는 지금 유신애가 아닌.

작가 샤샤토끼로서, 배우 박유진에게 캐스팅 제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자 유진 역시 꽤 뭉클한 감정이 들었는데.

‘드디어 이 순간이 오는구나.’

유신애와 만난지 8살 때니까, 7년 걸린 것이다.

언젠가 샤샤토끼 원작 소설 기반 영화,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싶다.

그 바람이 실현되기까지 말이다.

‘뭐, 신애가 샤샤토끼가 아니었다고 해도 평생 친구로 잘 지냈을 거 같아. 착하고 귀여운 애니까.’

아무튼.

바라마지 않던 순간이 찾아온 것임은 분명했다.

“남주 이름은 정은호고. 되게 멋있고, 자기 꿈이 뚜렷하고, 활기찬 애야. 근데 여주 앞에서만 좀 쑥맥이 되고.”

“아아. 응. 나도 원작 봤으니까 잘 알고 있어. 고마워, 신애야.”

유신애가 용기를 내 부탁한 만큼.

유진 역시 진심을 다해 그에 응했다.

“나한테 맡겨준다니까, 내가 혼신의 노력을 다 해서 연기할게.”

그러나 유진이 승낙하자.

곧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만연해졌다.

“저, 정말?”

“응. 그런데 다른 배우를 염두해둔 거 아니야? 나랑 친구라서 괜히 신경쓴 건 아닌지 걱정돼서.”

“아냐. 무조건 유진이 너야!”

유신애는 답지 않게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말했다.

“사실. 이 소설, 네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쓴 거란 말이야.”

“정말?”

“그럼! 8살 때부터, 네가 나한테 다가오고, 친구가 되어주고. 그리고 아역배우로서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캐릭터를 구상했던 거야.”

그리 말하며 유신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마워. 유진이 네 덕분에 나랑 내 소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거야.”

그제야 유진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아하. 이 소설이 빨리 나온 것도 나 때문인가? 그래서 내용도 조금 달랐고, 캐릭터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바뀌었던 거구나.’

듣기로 샤샤토끼, 유신애는 소재노트를 만들어 거기에 온갖 키워드, 소재를 적어놓고.

글을 쓰고 싶을 때 그 노트 속 키워드를 뽑아 조합한다고 들었다.

<열다섯, 서른다섯>이라는 키워드는 아마 오래 전부터 샤샤토끼의 소재노트에 적혀있던 모양.

‘그런데 내 존재로 인해 상상력에 살이 붙고, 원고가 되어 세상에 나온 거구나.’

그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유진은 분명 유신애의 인생에, 그리고 샤샤토끼의 작품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었다.

“고마워. 그러니까 더 책임감이 생기는데? 내가 멋지게 연기해낼게.”

“으, 응! 고마워, 진짜 고마워!”

이 순간은 유진이 기다려온 순간이기도 했지만.

유신애가 꿈꾸던 순간이기도 했다.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드라마화 된다면.

그 남주에 유진을 쓰고 싶다는 꿈.

그 꿈을 위해 노트에 글을 끄적였고, 자판으로 소설을 적어왔다.

그걸 15살에 이룬 것.

낙서장이나 다름없던 제 공책의 글.

그를 보고 처음으로 재밌다고 해준 게 유진 아니었나.

유신애는 항상 유진에게 고마움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훌쩍.”

감격스런 순간에 눈물이 날 뻔했으나.

유신애는 겨우겨우 참아냈다.

유진이 눈물 많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봐왔으니까.

“근데 너 진짜 대단하다. 댓글창 보니까 서른다섯 감정선도 미쳤다고 호평이 자자하던데.”

“다, 다 간접경험이지 뭐. 드라마나 소설이나, 웹툰 같은 거.”

“아아. 하긴. 나도 그래. 그런데 이렇게 캐스팅 곧바로 정하는 거야? 뭐 안 거쳐도 되나?”

“응. 넷플러스 쪽이랑 얘기했어. 열다섯의 남주는 내가 뽑고 싶다고 말했거든.”

넷플러스와 유신애도 미팅을 했을 거다.

그 화제의 샤샤토끼가 15살 중학생이라는 것도 알았을 거고.

그런데도 남주 캐스팅 권한을 줄 정도라면, 넷플러스에서도 확실히 유신애를 대우해주는 모양.

‘하긴,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능력이니까.’

그걸 제일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유진 아닌가.

“그럼 서른다섯의 남주는? 누구한테 맡길지 정했어?”

“응. 넷플러스 쪽에서 픽했는데 나한테 어떠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내가 오케이 했어.”

“그래? 누군지 물어봐도 돼?”

“응. 생각지도 못했는데, 엄청 대단한 배우님이 맡아주시기로 했어.”

유신애는 짝, 하고 손뼉까지 쳤다.

유신애가 놀라워할 정도로 대단한 캐스팅인 모양.

“주인경 배우님이래. 단번에 오케이했다는데. 대단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네. 그러니 그런 기회가 오면, 부디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유진의 귓가에 주인경이 했던 말이 다시금 재생되었다.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했으니.

“유, 유진아?”

유진의 표정을 보고선 유신애는 흠칫 놀랐다.

매번 싱긋 웃던 유진에게서 보기 드문 표정이었으니.

“좋아.”

호승심이 가득한 얼굴.

유진의 입꼬리가 크게 휘었다.

“이번 작품, 엄청 재미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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