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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81화 (181/237)

181화

“그럼 먼저 서른다섯 살 파트부터 먼저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최희숙이 말했다.

“참고로 생중계로 여러분께 선보일 파트는 모두 배우들이 직접 선별했습니다. 배우들이 어떤 장면을 골랐을지 기대해주시는 것도 또 다른 재미 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물론 장면 선정에 어느 정도 제약은 있었다.

중대한 스포일러가 될 만한 장면, 하이라이트 장면 등.

이 리딩 생중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홍보에 있으니까.

“주인경 배우, 강사랑 배우. 준비 되면 시작해주세요.”

사락사락-

대본을 넘기는 소리만이 들리고.

시청자들은 다가올 연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벌써 설렌다 후욱후욱 주인경x강사랑 조합을 내가 살아생전 보다니 ㅠㅠㅠㅠ

얼굴합 벌써 미쳤다...

이 둘이 으른로맨스를 연기한다니

크읏...살아있어서 요캇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두 남녀 배우의 조합.

그에 대한 기대감인지, 순간 접속한 시청자는 7만명까지 치솟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 시간이란 뜻이리라.”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역시 주인경.

나레이션으로 이번 리딩 생중계의 시작을 알렸다.

“그렇다면 20년 동안, 사랑이란 감정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수 있을까. 신체가 성장하고, 아는 게 많아지고, 환경이 달라지는 와중에도. 사랑만큼은 영원할 수 있을까.”

듣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포근한 목소리였다.

이어서.

“하. 이 빌어먹을 직장.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잔뜩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리딩 현장에 울렸다.

단숨에 분위기가 반전된 것.

바로 강사랑의 목소리였다.

“지금 런칭한 게임 버그 터져서 난리도 아닌데, 얼마나 됐다고 또 무슨 새 프로젝트야? QA도 제대로 못하면서 일만 벌일 줄 알지.”

강사랑이 연기하는 민유라의 목소리엔 그야말로 직장인의 한이 맺혀있었다.

“이래놓고 또 개발팀만 욕하겠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기획인지.”

쯧, 혀를 차는 디테일까지.

강사랑은 단 몇 마디로 현장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단숨에 긴장감을 만들어낸 것.

그 직후.

“네. 정은호입니다.”

나레이션과는 또 다른 느낌의, 차분하고 진중함이 묻어나오는 남자 목소리.

주인경의 장점 중 하나인 듣기 좋은 목소리와 딕션이 강점을 발휘했다.

“네. 그 파트는 주인공과 적대 세력의 갈등이 가장 폭발하는 부분이라서요. 해당 부분을 수정하기보단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데요.”

예의를 차리고 있지만 동시에 물러섬이 없는 단호한 말투.

“하아. 이번 화에도 악플이 달려있네.”

서른다섯의 두 사람은 첫사랑의 풋풋한 기억 따윈 마모된지 오래.

나이를 먹으며 여러모로 세상에 찌들어있는 상태였다.

남주인 정은호는 인기 웹소설 작가가 되었고.

여주인 민유라는 게임개발 회사 코딩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러다.

정은호가 쓴 웹소설을 원작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바로 민유라가 소속된 회사.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다가.

미팅 자리에서 운명처럼 재회하게 되는 두 사람.

“어?”

“어?”

그 순간만큼은 서른다섯 현실에서 벗어나.

열다섯의 순간으로 돌아간 듯 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너, 너는.”

당황하는 정은호와 달리.

“반갑습니다. 타이거하트 스튜디오 개발팀 팀장 민유라라고 합니다.”

곧 현실로 돌아온 민유라.

매우 사무적인 어투로 정은호에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에 대한 원작팬들의 반응은.

[흠 원작이랑은 다른 맛인데

나 원작 찐팬인데 강사랑의 민유라는 좀 낯가리네;; 로봇이 아니라 K-직장인 그 잡채

내 생각보다 좀 날카롭고 재수없는 느낌]

다소 좀 갈리고 있었다.

원작 속 늙유라, 즉 서른다섯의 민유라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느낌인데 반해.

강사랑이 지금 연기하고 있는 다소 날이 서있고,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근데 연기력 좋은데?? 완전 이공계 언니 느낌 팍팍 남

ㄹㅇ 벌써 매력터지는데

또또 럽며든다... 사랑언니 ㅠㅠ]

이게 강사랑 연기의 특징이었다.

강사랑은 원작이 있어도 참고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기본적인 캐릭터성의 틀 위에서, 대사의 뉘앙스를 재해석하고.

그에 맞게 캐릭터를 자기화시키는 것.

그게 바로 강사랑식 연기다.

누가 보면 제멋대로인 연기법이라 할 수 있겠으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결국 납득하게 만든다.

이를 시청자들은 강사랑의 별명인 강러브에서 따와, ‘럽며든다’고 표현했다.

“저, 저기요!”

그리고 그를 받아 흐름을 이어가는 주인경의 연기.

과거엔 잘 나가고, 모두의 선망을 받는 청소년기를 보냈으나.

민유라와 떨어진 이후 진중하고 차분해져, 이젠 무뚝뚝한 서른다섯이 되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재회한 첫사랑.

그는 기꺼이 그때의 감정을 떠올렸다.

“하아, 하아. 저기요, 저기!”

뛰어가는 호흡까지 연기하는 주인경.

“너, 민유라 맞지? 민곡중 2학년 1반이었던.”

“그래, 맞아. 그런데 그게 뭐?”

“······뭐?”

“할 말 다 끝났으면 가보겠습니다.”

“아직 안 끝났어.”

단호한 목소리로 정은호가 말했다.

“다시 만나서 기쁘다. 그 말 하고 싶었던 거야.”

시종 까칠한 강사랑의 민유라와 달리.

민유라와 재회하기 전, 무기력한 모습과 재회한 이후 적극적인 모습이 대비되는 주인경.

강사랑이 원작과 다른 결의 캐릭터를 보여주어 의외성을 선보였다면.

주인경은 묵직하게 원작을 재현하고, 중심을 잡아주었다.

만일 주인경조차 원작과 다른 맛을 보여주었다면 다소 난잡해 보였을 것.

[내 머릿속 정은호 그 잡채 ㅠㅠㅠ

와 목소리만 들어도 벌써 좋다;; 심장떨림

와 유라가 철벽치는 느낌 강해지니까 넘 좋다 ㅎㅎㅎ 벌써 이집 관계도 맛집이네

벌써 ㅠㅠㅠ]

남녀 원탑답게.

두 사람의 연기는 리딩 때부터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

잠시 후.

‘역시 주인경과 강사랑이야.’

최희숙은 두 사람의 연기에 흡족함을 느꼈다.

두 사람이 캐스팅된 이후 합류한 최희숙이었기에.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와 두 배우의 싱크로율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던 것.

‘특히 강사랑. 뭔가 유진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기였어.’

물론 유진과 강사랑의 연기법엔 차이가 있었다.

강사랑은 캐릭터의 성격을 조금 비틀어 자기화시키는 쪽.

유진은 또 다르다.

대본에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이후 서사를 재창조하는 수준.

영화 <리플레이>가 그러했고, 연극 <주변인>이 그러했다.

‘강사랑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배우라면, 박유진은 무엇이든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란 거지.’

두 사람은 비슷한 듯하지만 가는 길이 미묘하게 달랐다.

“네. 오늘 리딩에서 보여드릴 서른다섯 파트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다음은 열다섯 파트입니다.”

서른다섯 파트의 리딩이 끝난 이후.

[아 주인경 강사랑 조합 너무 조아따...

열다섯 파트도 넘 기대됨 ㄷㄱㄷㄱ

근데연년생 남매 조합을 멜로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ㅋㅋ

이야 검색해보니까 이 둘도 진짜 많이 컸다 ㅋㅋㅋ

유진이 멜로만 염불 외웠는데 ㅠㅠㅠㅠ 진짜 넘 기대된다 ㅠㅠㅠ]

시청자들만큼이나 최희숙도 기대감이 앞섰다.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준 유진 아닌가.

특히 최희숙은 유진의 오디션 연기를 통해 <리플레이> 대본을 수정했고.

그로 인해 더욱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최희숙의 머릿속에 ‘유진=파격’이란 공식이 새겨진 것도 당연한 일.

‘자, 유진아. 이번엔 어떤 연기를 보여줄 거야?’

최희숙은 속으로 유진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고.

이제 유진이 연기로 대답할 차례였다.

“넵.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선미야, 준비 됐지?”

“어, 응.”

그런데.

리딩에 들어가기 전 김선미의 귀에 무어라 속닥이는 유진.

“뭐, 뭐어?”

그러자 김선미가 조금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어?”

“뭐, 괜찮긴 한데.”

“그래. 기열이한테 잘 좀 말해줘.”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기에 정기열의 이름까지 등장한 것일까.

최희숙은 그 내용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리딩이 시작되었다.

“전학 온 민유라입니다.”

열다섯의 두 사람이 마주치는 건 바로 교실 안.

민유라가 정은호의 반으로 전학을 오게 된 것.

김선미는 조금 긴장한 듯 보이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연기를 시작했다.

“안녕?”

반면 유진은 여유로움 그 자체.

레몬처럼 상큼한 목소리로 열다섯의 정은호를 연기해냈다.

“네가 그 전학생이구나. 내 짝꿍이네?”

낯가림도 없이 상대방에게 직진하는 스타일.

그러나 어린 민유라는 좀처럼 대답이 없다.

“야. 넌 사람이 말하는데 왜 대답을 안 해?”

그러자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아치는 민유라.

“너야말로, 왜 자꾸 말을 걸어?”

“우리 이제 친해져야 하잖아.”

“너랑 내가? 왜?”

“짝꿍이잖아.”

“짝꿍이라고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해야 하니? 비효율적인 건 딱 질색이야.”

확실히 서른다섯의 주인공들과 차이가 확 느껴졌다.

상큼하며 쾌활한 열다섯의 정은호.

무뚝뚝하긴 하지만 날카롭거나 차갑진 않은 말투의 민유라.

“너 로봇이야?”

“그래. 차라리 로봇이 되고 싶어.”

“흐음. 그럼 너 수학 잘하겠다. 잘하지? 그치?”

“당연하지.”

“그럼 전학생. 나 수학 좀 가르쳐줄래?”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러자 정은호가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왜긴? 우리 짝꿍이잖아. 그리고 나 부반장이거든. 전학생이 잘 적응하게 도와줘야지.”

[울 주인공들 아가시절 ㅠㅠㅠ

하 때 하나 안 묻은 순수한 시절 봐라...

비주얼 봐라 진심 둘 이목구비가 내 미래보다 뚜렷함ㅋㅋㅋ

이 둘이 자라서]

마치 순정만화와 같이.

10대 중반의 풋풋한 감성이 물씬 묻어나오는 연기였다.

“저리 좀 가.”

“왜? 짝꿍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짝꿍이 뭐 별거야?”

“별거지, 당연히. 옆자리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

그렇게 계속 밀어내기만 하던 민유라가 마음을 열게 된 계기.

민유라가 말도 없이 며칠 동안이나 결석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정은호가 민유라의 집을 찾아간다.

“왜 찾아왔어.”

민유라가 기계처럼 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바로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

텅 빈 집안에서 홀로 동생을 보호하고 있는 민유라의 모습을 목격하는 정은호.

“이런 거 보니 너도 정 다 떨어졌지? 이제 그만 가.”

“누가 그래? 우리 짝꿍이잖아. 나 아니면 널 누가 찾아?”

“아하하. 넌 아직도 그 얘기니?”

민유라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본 정은호.

그 미소에 심장이 거세게 뛰고, 그대로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어······.”

“왜 그래? 얼굴이 빨간데.”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비로소 이 시점부터.

정은호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쑥맥이 된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풋풋해서 좋긴 한데 어른로맨스에 비하면 너무 순하다 ㅋㅋ

역시 으른미는 못 당해내는 건가...

역시 열다섯 파트는 서른다섯 파트를 위한 징검다리일 뿐임 ㅇㅇ

ㄹㅇ 마라맛이지]

다소 심심하다는 여론이 강했다.

본래 어른들의 연애가 더욱 자극적인 법.

열다섯의 연애는 갈등 대신, 섬세한 감정교류와 풋풋한 로맨스가 강점인 파트다.

그렇기에 당장 리딩으로 보여주기엔 임팩트가 밀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희숙이 보기에.

‘유진이의 연기도 아직까지 특별한 게 없어.’

그렇다고 유진이 연기를 못한 건 아니다.

오히려 정석대로, 대본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최희숙이 아는 박유진이라면.

분명 이때쯤 무언가 하나 터뜨려줄 배우였다.

‘하긴. 파격적인 연기를 펼치기엔 장르도 상황도 맞지 않지.’

멜로는 두 사람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장르다.

섣불리 파격적인 해석을 보여줬다간 오히려 케미가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것.

“자, 마지막 리딩 장면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지막으로 리딩할 씬은 대사가 적었다.

“씬 넘버 34. 교실 안.”

최희숙이 해당 장면을 호명했다.

정은호의 방문 이후로 묘한 썸씽을 나누게 된 정은호와 민유라.

두 사람이 자리를 바꾸기 전 마지막 수업시간에서.

책상 밑으로 손가락을 얽히며 서로의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는 씬.

대사라고는 몇 마디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유진과 김선미는 이걸 마지막 리딩 장면으로 골랐다.

“야, 우리 이제 짝꿍 아니네?”

무뚝뚝한 말투로 괜히 한 번 떠보는 민유라.

“······응.”

그러나, 의외로 정은호 쪽이 드라이하게 반응하고.

이에 민유라는 저도 모르게 상처를 받는다.

“넌 좋겠다. 이제 로봇같은 애랑 짝꿍 안 해도 되고.”

그래서 더 툴툴대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정은호는 어딘지 혼이 나간 얼굴.

잠시 후, 수업이 시작되고.

두 사람 모두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인 가운데.

“책상 아래로 두 사람의 손이 살짝 맞닿는다.”

지문을 읽는 최희숙.

드라마 촬영장이었으면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 행동으로 보여줬을 테지만.

리딩 장면은 말 그대로 읽기만 하는 거라, 그럴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스윽-

“!”

정은호, 아니 유진이 스윽 테이블 위로 올라온 김선미의 손을 포개는 게 아닌가.

곧 빠져나가려는 민유라의 손가락.

그를 가지 말라는 듯, 쭈뼛대는 정은호의 손가락이 옭아매고.

테이블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들.

서로 꽉 깍지를 끼는 게 아니라.

마치 서로 유리를 만지는 것처럼 섬세한 손길.

겹쳐질 만하면 다시 떨어지고.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지지도 않아서, 다시 서로 얽혔다.

열다섯, 풋풋한 남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설렘이었다.

“거기, 수업 집중 안해?”

“네? 죄,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수업 도중 선생님께 지적까지 받은 민유라.

그 사실이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심장이 거세게 뛰기 때문인지.

얼굴이 전에 없이 붉어졌다.

“······.”

그건 정은호도 마찬가지.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되는 장면이지만.

그 설렘과 긴장감은 어마어마했다.

순간 시청자들은 물론이요.

현장에 있는 배우들까지, 지금 여기 리딩장이 교실이 된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꿀꺽.”

순간 리딩장엔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

그 정도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확 집중했다는 증거였다.

그를 보며.

최희숙은 유진이 노리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왜 이 장면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했는지 알겠어. 앞선 연기들은 이 순간을 위한 빌드업이었던 거야.’

재해석.

배우 박유진의 장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재해석‘도’ 할 줄 아는 배우일 뿐.

오히려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구현해냈을 때, 더욱 파괴력 있게 표현해내는 배우였다.

로맨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설레임과 두근거림.

유진은 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게 단순한 리딩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박유진과 김선미는 이 ‘리딩 중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이 중계는 오디오가 아닌, 비디오까지 같이 송출되고 있다는 것.

즉.

리딩이지만, 배우들의 비주얼과 행동 모두 예비 시청자들에게 공개된다는 소리.

이는 배우가 굳이 대사만 소화할 게 아니라.

대본 속 지문과 상황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너 로봇 아니야. 이렇게 손이 따뜻한데.”

그러니.

대사의 양이 적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손가락조차 섬세하게 연기해냈고.

그를 통해 더욱 큰 여운을 남겼다.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와 뭐야 내가 다 숨막혀;;;

유지나 누나 과몰입한다...

애기들 섬섬옥수 머야... 손 왤케 다들 예쁨...?

아니 리딩 아니었슴...? 손가락으로 일케 설레면 우짜냐 ㅠㅠㅠㅠㅠ

진심 유진이 멜로동공 숨막히게 설렌다...

멜로눈빛에 이은 멜로손가락 ㅠㅠㅠ]

폭발하기 시작하는 채팅창.

유진은 이 드라마의 장르가 ‘멜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히 각인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박유진 이런 미친놈!”

정기열은 집에서 극대노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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