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90화 (190/237)

190화

유진의 집.

유진은 태블릿PC를 통해 <열다섯, 서른다섯>의 모니터링 중이었다.

당연히 그의 무릎을 차지하고 있는 건 백룡이었고.

“흐음.”

곧 유진과 김선미, 두 사람의 포옹씬이 나올 차례.

작품 초반부만해도 민유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던 정은호지만.

이번에는 잔뜩 몸이 얼어, 자기가 로봇이 된 것처럼 뻣뻣하게 움직인다.

반면 점점 마음을 엔 민유라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점차 변해가는 것이 바로 <열다섯, 서른다섯>의 관전 포인트자 매력이다.

물론.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하고 있을 뿐인 유진은 설렘 없이, 담담하게 보고있을 따름이지만.

“샤아악.”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껴안으려는 그때.

꾸욱-

갑자기 태블릿PC의 홈버튼을 눌러버리는 백룡이.

“어?”

갑자기 홈화면으로 나오자 유진의 몰입도 깨져버렸다.

“백룡아. 그러면 못 써. 이 버튼은 누르는 거 아니야.”

다시 넷플러스 어플을 실행시키는 유진.

하지만 백룡이는 재차 홈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얘가 왜 이러지?”

여태 집에서 모니터링 할 때면 매번 백룡이와 함께 했던 유진이다.

그럴 때마다 백룡이는 얌전히 무릎 위를 지킬 뿐이었고.

더군다나 유진의 말도 매우 잘 듣는 아이였기에, 이번 행동은 좀 이상했다.

“백룡이 왜 그래? 뭐 문제라도 있어?”

“샤아아악.”

답지 않게 하악질을 하는 백룡이.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매우 온순해져서, 유진도 매우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갑자기 왜······.”

그러나 곧 유진은 깨달았다.

백룡이의 시선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바로 유진과 김선미가 포옹하기 직전인 화면에 말이다.

혹시나 싶어 유진이 재생 버튼을 누르려 하자.

꾸욱-

재차 홈버튼을 누르는 백룡이.

“뭐야. 너 질투하는 거야?”

“웅냐앙.”

그에 대한 대답을 하듯.

백룡이는 길어진 몸을 쭉 뻗어 유진의 어깨에 발을 얹더니.

곧 유진의 볼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까끌까끌한 고양이 혀가 볼에 닿자 유진은 간지러워 웃었다.

“아이고. 왜이리 질투하는 사람이 많을까. 기열이도 그렇고 말이야.”

참 멜로물 찍기 힘들다 싶었다.

안 그래도 ‘대박유진’에서도 종종 질투 어린 글들을 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연기는 연기일 뿐인데 말이야. 백룡이 너도 이제 넙튜버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냐아?”

“순진한 척하는 거 봐. 대체 누굴 닮아서······아. 날 닮은 건가?”

아무튼, 백룡이 때문에라도 더 이상 모니터링은 못할 것 같다.

키스신까지 보면 백룡이가 비싼 태블릿PC를 부숴버릴지도 모르니까.

삑, 삑, 삐비빅-

그때.

도어록 해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발소리만 듣고도 그게 누군지 알아맞혔다.

“아빠 왔어요?”

커다란 상자 하나를 들고온 박태종.

어째 박태종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아빠. 왜 그래요?”

“응? 내가 뭘?”

유진이 가자미 눈을 뜨며 박태종을 바라보았다.

“아빠. 또 울고 왔죠?”

“아, 아닌데?”

박태종은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울보니? 맨날 울게.”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어요.”

“헉! 진짜?”

그러자 박태종은 황급히 제 눈가를 벅벅 닦았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옷 소매가 축축해요. 오면서 계속 옷 소매로 닦은 거죠?”

거기에 유진이 추가타를 날리자.

결국 박태종은 한숨을 내쉬며 항복을 외쳤다.

“우리 유진이 셜록이니? 그걸 다 어떻게 알아.”

“배우의 기본은 관찰력이거든요.”

유진은 그리 말하며 박태종이 들고 있는 박스를 받았다.

“그리고 아빠 얼굴은 제가 제일 잘 알거든요? 조금만 변해도 알 수 있어요. 어구, 주름 많아진 것 좀 봐.”

그러자.

“으흐흐윽, 으흐흐흐허엉헝헝······.”

박태종은 갑자기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유진의 말이 퍽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모양.

“아니, 왜 또 울어요. 울지 말라니깐.”

“유진이 너가, 아빠를 울리니깐······흐윽!”

유진은 아이구, 아이구 하며 박태종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 아빠 얼굴이 뭐 좋다고, 그걸······.”

요즘엔 엉엉 우는 경우가 잘 없었는데.

한 번 터지니 아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박태종이다.

‘내가 아빠 얼굴을 어떻게 잊겠어.’

회귀 전,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하루하루 자신은 성장해가지만, 아버지는 늙어간다.

그러니 아버지의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할 수밖에.

“자, 뚝. 해요. 여기 휴지요.”

“······뚝.”

“그래서. 집에 오면서 왜 울었는데요? 혹시 사장님이 괴롭히기라도 했어요?”

“그럴 리가. 이, 이거······.”

박태종은 유진에게 건넨 박스를 가리켰다.

“그게 뭔데요?”

“흑, 흐그윽. 너, 너한테 온 편지들이야.”

“팬레터요?”

박태종 들고 온 상자 안에 가득한 형형색색의 편지지들.

그건 바로 팬들의 정성이었다.

겉에서 보이는 양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

“사무실 앞으로 온 거야. 우리 아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서. 보자마자 눈물이 나더라. 흑, 흐그윽!”

“그랬구나. 네. 고생 많았어요. 방에 들어가서 좀 쉬세요.”

그렇게 박태종을 안방으로 밀어넣고.

유진은 제 방으로 돌아와 편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진의 인기를 반영하듯, 정말 어마어마한 양.

유진은 차근차근 하나씩 뜯어보고, 내용들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백룡아?”

무릎에 있던 백룡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갔나 했더니, 편지를 모두 꺼내 비어버린 상자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쭈. 너 그래도 고양이였구나?”

각종 기행(?) 덕분에 고양이의 탈을 쓴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상자나 몸에 꽉 끼는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냐아앙.”

상자 안에서 느긋함을 즐기는 백룡이.

유진은 다시 팬레터로 시선을 돌렸다.

“하하.”

찬찬히 읽어보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가감없이 표현해준 팬레터들.

“어?”

그중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만만치 않은 악필이었다.

그 글씨로 쓴 ‘손준영’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준영이?”

영화 <찬란> 촬영 때 맺었던 인연.

팬미팅까지 왔던 그 소년 아닌가.

유진은 곧장 편지를 뜯어보았다.

[안녕 유진이 형!

형한테 사인 받고 나서 학교에서 연극을 했어

형의 조언은 진짜 짱이었어!

난쟁이 역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칭찬해줬어

엄마 아빠도 엄청 좋아했고!

나만의 난쟁이를 만들었어. 나밖에 할 수 없는, 엄청 익살맞은 난쟁이 말이야!]

팬미팅 때 했던 조언이 효과를 거둔 모양이었다.

유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형은 내 영웅이야!

얼마 전에 꿈에 형이 나왔어

꿈속에서 우린 같이 연기했어

함께 나쁜 악당들을 때려잡았지

그때 너무 기분 좋았어!]

팬미팅 당시에도 손준영은 그리 말했다.

유진은 자신의 영웅이라고.

배우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형은 진짜 슈퍼맨보다 멋진 거 같아

내 친구들도 형을 보고 배우가 되고 싶대

언제 소개해주고 싶어!

꿈꾸게 해줘서 고마워]

팬미팅, 이어진 팬레터까지.

손준영이라는 소년이 보내준 메시지는 유진의 가슴 속에 묵직하게 전해졌다.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 하하. 노잼 연기자 소리 듣던 내가 이런 말도 들어보네.”

아무래도 손준영에게 영웅이란.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주는 건 손준영뿐이 아니었다.

[오빠 너무 멋있어요. 저도 오빠 같은 아역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보다 2살 많은데 엄청 잘 나가서 부러워요!

나도 언젠가 형처럼 될 수 있을까요?

형처럼 열심히 살게요!]

[저도 아역배우로 활동중이에요

유진이 형 덕분에 아역배우 대우가 더 좋아졌대요!

맡을 수 있는 캐릭터도 많아졌고요

덕분에 하루하루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요

정말 고마워요!]

[장래희망에 박유진이라고 적었더니 선생님이랑 애들이 막 웃었어요.

하지만 전 진지해요

꼭 유진 오빠처럼 될래요!

내 히어로에요]

팬레터 중에는 미성년자, 특히 자라나는 유년기 아이들이 많았다.

모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 내려간 모습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유진이 매번 뉴스에 나오고,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으니.

그를 동경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히어로, 영웅이라.”

지난 8년간 유진의 행보는 아역배우, 더 나아가 아이들에 대한 시선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아직 어려서 불가능하다.

성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그런 편견과 우려를 모두 불식시키고.

성인 배우들을 뛰어넘는 인기와 영향력을 가진 게 바로 유진 아닌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회귀 전에는 그저 연기가 하고 싶었고.

거듭된 쓴맛을 본 이후로는 주목받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성공을 향해 달려왔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특히.

“이 아이들에겐 내가 영웅이란 말이지.”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만큼 진솔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울리는 건 없었다.

그 전엔 느껴보지 못한, 어떤 종류의 책임감.

그게 유진의 가슴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어? 잠깐.’

그때.

유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

‘<클라우 솔라스>. 영웅. 슈퍼스타. 스타 캐스팅 반대.’

순간.

“그래, 이거야.”

유진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팬레터 속 어린아이들이 준 영감이었다.

“고맙다, 얘들아.”

유진이 편지지에 입맞춤하며 중얼거렸다.

*

“흥, 흐응흥흥.”

콧노래가 울려퍼지는 이곳은 유진의 단골 편집숍 ‘포멀’.

유진이 8살 때부터 이용했으니.

벌써 햇수로만 따지면 8년 째 이용 중인 곳이었다.

사실 유진 전담 코디 영입에 대한 이야기도 예전에 오고 갔으나.

결국 흐지부지 된 것도 모두 이 포멀 덕분.

이곳만큼이나 유진을 찰떡으로 꾸며주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유진이 언제, 어느 때에 찾아오더라도 솔미 실장이 직접 헤어와 메이크업을 챙겨주었으니까.

“난 정말 행운아야.”

콧노래를 부르던 솔미 실장.

그녀가 갑자기 황홀하다는 듯 말했다.

솔미 실장에게 제 얼굴을 맡기고, 얌전히 앉아 보리차를 마시던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넵? 갑자기요?”

“우리 유진이는 진짜 꾸미는 맛이 나니까. 옛날에 유행하던 꾸미기 스티커 놀이가 생각나. 뭘 갖다 붙여도 찰떡이야.”

싱글벙글 웃는 솔미 실장.

솔미 실장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인 것처럼 보였다.

“자, 다 됐어. 오늘은 잡지 인터뷰라고 해서, 우리 가게 이름답게 ‘포멀’하게 꾸며봤는데. 어때?”

거울을 가리키는 솔미 실장.

그 속에서 유진은 반깐 머리를 하고, 제법 진중하게 메이크업을 한 상태.

이제 유진도 점점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어렸을 때의 젖살은 쫙 빠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덕분에 어린아이다운 귀여움이 줄어들었으나, 잘생김은 한층 업그레이드 된 상태.

그런 상태에서 이런 포멀한 헤메는 여러 누나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마음에 들어요. 진짜 솔미 실장님이 최고예요. 감사해요!”

“그럼, 그럼. 최고의 도화지와 최고의 크레파스가 만났는데 당연히 최고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크레파스는 솔미 실장.

최고의 도화지는 유진을 뜻한다.

“저, 실장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무슨 일이야. 우리 유진이?”

유진을 바라보는 눈빛부터 말투까지.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솔미 실장.

유진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온 그녀다.

당연히 유진을 제 친조카마냥 아끼는 것도 당연한 일.

“저요. 머릿결 어떤 편이에요?”

“그야말로 신이 내린 머릿결이지. 우리 숍에서 관리하고 있다곤 해도, 원체 타고 나기를 비단결이야.”

솔미 실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진 10년 전부터 유명 연예인들의 헤어, 메이크업을 전담해온 솔미 실장이다.

그런 그녀가 극찬할 정도로 유진의 비주얼은 특출났다.

“그러고보니 너 처음 왔을 때 생각난다. 그때 네 머리카락에서 살구비누 냄새가 났는데 말이야. 어떻게 비누로 감았는데도 뻑뻑하지 않고 그리 부드러웠는지 몰라?”

유진이 막 데뷔하던 시점.

그때는 샴푸 하나도 사기 힘들어서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지만.

“그게 제 머릿결 유지의 비결인가봐요. 살구비누!”

“아하하. 그런가? 나도 한 번 써봐야겠어.”

“어쨌거나 머릿결이 꽤 좋다는 뜻이죠? 그럼 염색해도 관리하기 괜찮을까요?”

“염색? 왜, 염색하려고?”

“네. 임팩트를 주려고요. 좀 중요한 자리가 있거든요.”

염색이라니!

유진의 어린 나이를 생각해 엄두도 못 냈는데.

유진 쪽에서 욕심을 내니, 솔미 실장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걱정 마. 케어 빡세게 해줄게. 우리 가게 아이돌들도 많이 쓰니까, 헤어 관리엔 도가 텄거든.”

“감사합니다. 실장님한테 맡길게요.”

“그런데 염색해도 괜찮은 거야? 아직 중학생이잖아.”

“네. 방학 기간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에 제대로 변신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요.”

유진은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는 스타니까, 제대로 빛나줘야죠.”

그때.

“유진아!”

편집숍 안으로 들어오는 거구의 남성.

차동석이 바쁜 걸음으로 유진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엔 커다란 비닐에 포장된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네가 주문한 거 도착했다.”

“어머, 사장님. 그건 뭐예요?”

그 모습을 본 솔미 실장이 물었다.

“아아. 유진이가 부탁한 겁니다. 후드가 달린 망토예요.”

“망토요?”

물건을 쫙 펼쳐보는 차동석.

RPG게임에서 마법사들이나 입을 법한 망토였다.

“근데 유진아. 이걸로 대체 뭐 하려고?”

생애 첫 염색, 그리고 후드가 달린 커다란 망토.

얼핏 들어서는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조합이다.

“당연히 오디션이죠.”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실장님! 그럼 염색으로 예약 좀 잡아주세요. 오디션 전날에 올게요.”

“그래. 그런데 무슨 색으로 하려고?”

솔미 실장의 말에 유진이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답했다.

“별처럼 밝은, 금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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