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뮤지컬 <클라우 솔라스>의 3차 오디션 당일.
원작자인 프리우드 형제가 참여하기 때문일까.
연습실의 규모도 훨씬 커졌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상정하고 연습해야했기에 더더욱.
“반가워요, 엄.”
프랭크와 데이비드.
두 형제는 엄기현과 악수를 나눴다.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능숙하게 영어로 대답하는 엄기현.
“하하, 영광은 무슨. 전화로는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실제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한국도 올 수 있고, 기분이 좋네요.”
데이비드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반면.
“재능 있는 배우들을 만나볼 생각에 두근거리더군요. 부디 우리 극에 어울리는 훌륭한 배우들이 오디션장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랭크는 곧장 오디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비즈니스를 하러 왔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중.
“명단을 먼저 받아보고 싶군요.”
“아, 네. 여기 있습니다. 프랭크 씨.”
엄기현이 건넨 것은 2차 오디션을 통과해, 3차 오디션에 임하는 배우들이다.
주조연 캐릭터들을 모두 합하면 꽤 많기 때문에.
오디션에 응하는 배우들의 숫자도 꽤 많았다.
“역시 있군.”
그를 꼼꼼히 살펴보던 프랭크.
곧 한 사람의 이름에 멈춰섰다.
“박유진 말이지? 형의 와이프가 팬이라며.”
데이비드가 호응했다.
박유진.
프랭크는 그 이름을 제법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헨리 역에 지원한 배우들 중 유일한 미성년자.
최근 전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컨텐츠의 주인공.
“미스터 엄. 유진 팍이라는 배우의 프로필, 가지고 있는 게 있습니까?”
“박유진,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클라우 솔라스> 경력란엔 무대 경험만 적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에 현재 전세계적 인기 컨텐츠 <열다섯, 서른다섯>에 출연하고 있고.
제법 화려한 경력을 가진 유진이지만, 이번 프로필은 꽤 썰렁했다.
‘유진 팍. 그만큼 무대 연기와는 거리가 있는 배우지.’
본업에서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는 박유진이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대극장 뮤지컬에 지원했다니?
‘내 작품이 토니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지원한 건가?’
프로필을 보던 프랭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극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지만 소극장에, 2회 공연이 끝이었어. 뮤지컬 출연 경력은 전무. 이런 꼬맹이가 내 작품에서 주연을 맡겠다고?’
프랭크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바로 유명세를 이용해 주연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이다.
그가 혐오해 마지 않는 스타 캐스팅 말이다.
‘아직 어리다고 해도 똑같아. 아니, 그렇기에 더욱 불쾌해. 나이가 어려도, 유명하면 캐스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미 프랭크의 마음 속에서 이 아역스타는 ‘불합격’이었다.
“미스터 엄. 이 배우를 2차 오디션에 통과시킨 이유가 뭐죠? 헨리 역을 맡기엔 지나치게 어린 나이로 보이는데요.”
프랭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를 인정하듯 엄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우려를 받아들입니다, 프랭크. 하지만 오디션에서 충분한 실력을 보여준 배우였고, 그렇기에 합격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력이라. 대극장 무대 경험도 없는 16살의 배우가 보여줄 실력이라니. 기대되는군요.”
그가 이토록 무대경험에 집착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아내의 역할을 빼앗아간 배우가 그랬으니까.
드라마, 영화 경험은 풍부하지만 무대에선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엇다.
그런데 단순히 인지도 때문에 역할을 빼앗아가다니!
“이봐, 브라더. 좋은 날이잖아? 너무 그러지 말라고. 아직 오디션은 시작도 안 했어. 보면 알게 되겠지.”
데이비드가 프랭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데이비드 네 말이 맞아. 내가 한국에 오며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나봐.”
곧 프랭크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 오디션, 정말 기대가 됩니다.”
*
몇 시간 후.
“학살극이 따로 없군.”
조금 피곤한 표정의 오필승이 짧막한 오디션 소감을 내놓았다.
현재까지 조연은 물론, 주연급들의 오디션이 모두 끝났고.
헨리 역할의 오디션도 벌써 중반부다.
“인지도 좀 있는 배우들 중에서 살아남은 건 정성진 뿐이네요.”
“그나마 그쪽은 뮤지컬을 하다 매체로 넘어간 케이스니까.”
보통 오디션이 모두 끝난 이후 의견을 교환하지만.
프랭크는 의사전달이 매우 빨랐다.
배우 한 명이 끝날 때마다 자신의 호오를 가감없이 전달했으니 말이다.
그게 매체 쪽 연기자이고, 실력이 다소 애매할 경우.
프랭크는 가차없이 탈락 사인을 보냈다.
솔직히 제작자 입장에서는, 실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지도가 월등히 높은 쪽을 택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래야 홍보가 되고 돈이 되니까.
하다 못해 한 명만이라도 그런 배우를 뽑고 싶었거늘!
“그래서 데이비드 쪽에 희망을 걸어보려 했는데.”
“거긴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느낌이더라고. 아무래도 프랭크 쪽의 입김이 더 강한 모양이야.”
프랭크의 기조는 확실했다.
동생인 데이비드 역시 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동생된 입장으로, 형 내외가 겪은 일을 알고 있으니.
“그래도 배우 보는 눈은 확실하던데요? 실력 있고 포텐션 있는 애들만 쏙쏙 뽑던데.”
“그래. 분명 실력 있는 배우들로 채워지겠지. 문제는.”
“매회 세종 대극장 3천석을 어떻게 채우냐. 그거죠?”
관객평이 좋다고 해도, 3천석이다.
일반적 대극장의 2~3배 규모.
매진은 기대하지도 않고, 대극장 뮤지컬 성공의 기준이라는 객석점유율 70%만 달성해도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
“이젠 입소문 밖에 기댈 곳이 없는 걸까요?”
“극 올리기 전에 넙튜브 영업 좀 많이 뛰어야지.”
“지금 라인업만 보면 투자사들도 움직일지 의문이네요.”
“이러면 무대나 의상 쪽이 허접해질 수밖에 없는데. 또 이 극이 판타지적인데다 무대 연출도 중요해서 타협하기도 어렵고. 참 이거······.”
여러모로 두잇컴퍼니 입장에선 딜레마에 빠진 셈.
“아니. 아직 기댈 곳은 남아있어.”
그때 엄기현이 입을 열었다.
잠시 후.
“박유진 배우. 들어오세요.”
여러 사람이 기다리던 차례가 돌아왔다.
그 호명에 연습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한 인영人影.
“엥?”
오필승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게.
오디션 장소로 걸어오고 있는 건.
커다란 망토에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
“저, 저건 뭐야?”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갑자기 후드가 달린 망토를 쓰고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왔으니 말이다.
“혹시 박유진 배우 맞습니까?”
엄기현의 물음에 후드 쓴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엄기현 대표님!”
꾸벅 고개를 숙이는 유진.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 목소리는 영락없이 배우 박유진이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장난이라면 불쾌하군요.”
프랭크가 물었다.
눈치를 보던 통역이 입을 열려고 하는 그때.
“오디션을 위해 준비한 겁니다.”
유진이 능숙하게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프랭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신이 유진 팍.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렇게 정식으로 소개할 기회가 있어 기쁩니다, 프랭크 프리우드. 데이비드 프리우드 씨.”
유진은 가슴에 손을 얹고 정중히 인사했다.
“저는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박유진입니다. 올해로 16살이 되었습니다.”
막힘없이 쭉쭉 흘러나오는 영어.
그에 프랭크도 놀란 기색이 다분했다.
“영어를 매우 잘하는군요.”
“감사합니다. 아직 중학생 수준입니다.”
“당신은 지금 중학생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딱 제 수준에 맞다는 거죠.”
심지어 조크까지 곁들였다.
“저 친구, 벌써 심상치 않은 걸? 기대되는군!”
데이비드는 하하, 하고 웃었으나 프랭크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유진 팍. 헨리는 젊은 영웅과 은둔자를 오가는 배역으로, 16살의 소년이 맡기엔 어려운 역할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래서 준비한 게 바로 이 특별한 아이템입니다.”
유진은 그리 말하며 제 망토를 나풀거려보였다.
“특별한 아이템?”
“제가 입고 있는 이건, 마법의 망토입니다.”
“예?”
마법의 망토라니.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유진은 웃지도 않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뮤지컬 <클라우 솔라스> 속 클라우 솔라스는 빛의 검이죠. 뮤지컬 설정으로는, 검을 뽑는 자에게 영원불멸한 젊음과 빛의 힘을 준다고 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맞아요. 마법의 망토를 쓴 배우님.”
그에 대답한 건 데이비드 쪽이었다.
비범한 첫 등장에 언변까지.
그의 흥미를 끄는덴 성공한 모양.
“제가 입은 망토도 클라우 솔라스와 비슷하게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의 편견을 지워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데이비드가 물어보려는 순간.
“흥미롭군요.”
프랭크가 먼저 대답했다.
“과연. 무슨 뜻인지 이제 이해했습니다.”
2차 오디션에서도, 그리고 지금 3차 오디션에서도.
엄기현과 데이비드에게 공통적으로 지적받은 사항.
바로 주인공 헨리를 소화하기엔 지나치게 어린 나이 아니냐는 것.
그러나 저 망토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 쓴 순간.
유진은 16살의 어린 배우가 아닌, 당당히 2차 오디션을 통과한 배우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게다가 극중에서 은둔자 시절의 헨리가 후드를 쓰고 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현명한 오디션 준비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마법 아이템이 효과를 발휘할지 두고보도록 하죠.”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그럼 유진 팍. 마지막 질문입니다.”
프랭크가 턱을 괴고, 유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엄청난 업적을 이룬 스타입니다. 한국 미디어에서 당신의 위상이 대단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굳이 뮤지컬에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 하니까요.”
유진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매우 당돌한 대답이었다.
“노래도, 연기도 자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증명은, 지금부터 연기와 노래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되레 프랭크의 심기를 건드렸다.
‘잘 한다고? 그래, 스타라는 양반들은 다 그렇지. 오만이 기본으로 깔려있어. 저 16세의 소년도 별반 다르지 않군.’
나는 스타니까.
잘 나가니까.
뮤지컬 정도야 쉽게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런 오만, 자만.
박유진이라는 배우에 대한 인상이 더더욱 나빠지는 프랭크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아, 프랭크 씨. 저도 한 마디 드려도 될까요?”
갑자기 유진이 프랭크를 향해 말했다.
잠시 당황했던 프랭크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혹시 그거 아세요? 별이라고 다 똑같은 별이 아니라는 걸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죽은 별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반짝이며 어둠 속에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별도 있습니다.”
후드 속에서 유진이 싱긋,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지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전 준비 됐습니다. 곧장 MR 주세요.”
그 말의 의미를 묻기도 전에.
곧 지정곡의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3차 오디션 지정곡.
그건 <클라우 솔라스>의 핵심 넘버인 ‘빛의 길’이었다.
늙은 은둔자가 영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한 곡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장면.
당연히 배우의 역량이 극한으로 발휘되어야 하는 곡이다.
그렇기에 프랭크가 이 곡을 3차 오디션 지정곡으로 정한 것.
믿을 수가 없어 꿈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찾아온 운명의 굴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고
끝내 나를 다시 심판대 앞에 세우네
다소 어둡고 잔잔하게 시작하는 음악.
아직 각성해 사람들의 앞으로 나서기 전 헨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멜로디였다.
그리고 유진이 노래하는 그 순간.
“호우.”
데이비드가 흥미를 보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16세에 불과한 유진이지만, 그 목소리의 중후함과 울림이 장난 아니었던 것.
거기다 후드를 입고서 노래하고 있으니 몰입감이 엄청 났다.
‘과연. 마법의 망토라는 게 그런 뜻이었나? 저 16살 소년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와 노래에 집중하니, 정말 온전히 노인으로 느껴지는군.’
마치 저 안엔 정말 늙어버린 은둔자가 있을 것 같은 느낌.
오히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상상의 여지가 많아졌다.
목소리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감정 전달이 매우 뛰어나. 헨리가 은둔하며 느꼈을 두려움과 자책감, 다시 찾아온 기회에 대한 망설임이 모두 느껴져. 한글로 번안된 가사임에도 그 내용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로군.’
이 장면을 수백, 수천 번 봤을 데이비드이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도달한 곳은
결국 막다른 길 건널 수 없는 강
깊은 어둠의 시간
이제 더는 도망칠 수 없어
작사가인 데이비드는 물론이요.
부정적이었던 프랭크조차 숨을 죽이고 유진의 노래에 귀기울였다.
실제 공연처럼 유진이 후드를 쓰고 있기에 가능한 일.
즉.
저 후드 하나만으로 유진은 이곳을 오디션장이 아닌.
마치 실제 공연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시 빛날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영웅이 아니라
비참한 은둔자일 뿐인데
나를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저주의 말들은 이제 없어
원하는 건 승리 뿐이라고
클라우 솔라스
이 검이 나를 부르는 걸까
다시 일어서라고
모두 앞에 당당히 서라고
터덜터덜.
굽은 등과 떨리는 발걸음으로 움직이는 유진.
그의 앞에 있는 건 스티로폼에 꽂힌 플라스틱 검.
이번 오디션을 위해 준비해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건 플라스틱 따위가 아닌, 마치 눈앞에 바위산이 실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유진이 노인의 걸음걸이로,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힘겹게 움직이는 액션을 취해보였으니.
선택은 나의 몫
이 두 다리로 나는 걸어왔어
내 의지가 나를 이끄네
어둠을 뚫고 어둠 너머
저 편으로
유진은 그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으로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이 순간
이 검 앞에서
나는 맹세하리라
그 반동에 의해 후드가 벗겨지는 순간.
“······!!”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거기다.
후드를 벗고 나온 유진의 새하얀 금발머리가 나부꼈으니까.
더는 물러서지 않겠어
시대의 어둠을 가로질러
내게 쏟아지는 빛무리
후드를 벗고 나온 유진의 모습은.
‘빛의 길’의 가사처럼 빛무리가 쏟아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대장치 하나 없는 연습실에서.
오직 유진만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그 뿐이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노인과 같이 탁하고 중후했던 음색이 맑아졌다.
정말 유진은 노인에서 소년으로 젊어진 것처럼 ‘변신’했다.
이 검에 맹세해
다시 나 걸어가리라
검을 들고 일어서서 힘차게 외치는 유진. 아니, 헨리.
저 빛을 향해-
마지막 순간 유진의 성량이 폭발했다.
길게 이어지는 끝음.
치켜올린 검.
빛나고 있는 금발의 머리카락.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나 다름 없었다.
둥둥둥, 빠암, 빠암-!
넘버가 고조되었다가 끝맺음되고.
“······.”
정적이 찾아온 오디션장.
오필승과 조은아도.
유진을 높게 사고 있던 엄기현도.
시종일관 몰입했던 데이비드도.
심지어, 줄곧 유진에게 부정적이었던 프랭크마저.
입을 벌리고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WOW!”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한 사람.
데이비드의 입에서 터져나온, 날 것 그대로의 감탄사였다.
“브라보, 브라보!”
마치 커튼콜에서 배우에게 기립박수를 치듯.
데이비드는 힘껏 박수를 보내주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유진에게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존재감.
조명 없이도 빛이 나는 느낌.
그야말로 스스로 빛을 내는 배우.
‘말 그대로 스타.’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