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23화 (223/237)

[외전] 3화

한 초라한 단칸방.

신혼부부가 쓰기엔 비좁고 답답한 곳.

그러나.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두 남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우리 애 이름은 어떻게 할까?”

부푼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묻는 미모의 여성.

길에서 마주친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아볼 정도의 절세미인이었다.

“글쎄에.”

반면 그의 곁에 있는 것은, 다소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는 행색의 남자.

절세미인과 초라한 남자.

누군가 본다면 ‘남자 능력이 얼마나 좋은 거야?’하고 쑥덕댈 조합이다.

그러나.

그 절세미인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에선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야말로 사랑이 묻어나오는 얼굴.

“실은, 내가 아들을 낳으면 지어주고 싶은 이름이 있었는데.”

“오? 뭔데, 뭔데?”

그러자 남자가 매우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박식.”

“박식?”

“어. 박식! 외자 이름에 얼마나 똑똑해보여. 우리 아들 박식하게 살라고! 응?”

그러자 여자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아까 전 그 사랑스러운 눈빛과는 딴판인 얼굴.

“그, 그렇게 별로야?”

곧장 울상이 되어버리는 남자.

“아니면 우리 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떼서 짓는 건 어떨까? 그렇게들 많이 한다는데.”

“그럼 박태종이랑 이연희니까, 음. 연태? 희종이? 태희나 희태? 종연이?”

“으음. 다 마음에 안 들어.”

여자. 이연희의 대답에 박태종이란 이름의 남자는 턱을 괴며 고민에 빠졌다.

“으음. 그럼 뭘로 한다.”

그러자 여자가 슬쩍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박유진. 어때?”

“박유진?”

“응. 아름다운 옥 유瑜 자에 나아갈 진進.”

“뭐야. 여보. 이미 우리 애 이름까지 생각해둔 거야? 한자까지?”

“아름다운 곳만 거닐었으면 좋겠어서. 꽃길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 눈에 담으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네.”

이연희는 제 부푼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힘차게 울고.

두 발로 걸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때.

“부디 우리 아가가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어.”

그곳이 모두 아름다운 꽃만 가득한 곳이길 바랐다.

“꼭 내가 그렇게 해줄 거야. 만약 내가 그렇게 못 해준다면, 당신이 그렇게 해줘.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사랑해줘.”

“그럼, 당연하지.”

이연희의 부탁에 박태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진이는 우리 두 사람의 아들이잖아? 분명 잘 해낼 거야.”

그런데 잠시 후.

박태종이 입술을 오물거리다, 이내 곧 눈을 찌푸렸다.

곧 울음이 터질 것이라는 징조.

“왜 또 울려고 그래.”

그에 익숙한 듯, 이연희가 박태종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러자 박태종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흐윽! 그냥, 너무. 너무 기적 같잖아. 이제 곧 우리 아이가 나온다니. 나, 나 정말 잘 해줄 거야······.”

“으이구, 정말.”

그러자 이연희가 손을 뻗었다.

곧 박태종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우리 유진이가 누구 아들인데? 박태종과 이연희의 아들인데. 누구보다 잘 나가겠지! 분명 엄청 잘 나가고, 잔뜩 효도해줄 거야. 걱정 마!”

이연희가 호탕하게 말했다.

하지만.

“으허어어엉!”

그건 오히려 박태종의 눈물샘을 더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고마워.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결혼하자고 한 건 나인데, 왜 당신이 그런 말을 해?”

엉엉 우는 박태종을 토닥이는 이연희.

박태종이 울면 울수록.

오히려 이연희는 행복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

박태종은 힘들고 슬플 땐 오히려 강한 사람이 되고.

박태종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매력에 반해 절세미인 이연희가 박태종을 쫓아다닌 것 아닌가.

“나참. 내가 아들 둘 키우게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당신이 유진이보다 더 많이 우는 거 아니야?”

그리고.

비록 이연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게 자라난 두 사람의 아들은.

[아카데미의 새 역사를 쓰다! 박유진, 아카데미 최초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동시 수상!]

[“남우조연상만 주고 끝낼 줄 알았는데, 설마 2관왕을 줄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평론가들의 예측, 보기 좋게 빗나가다!]

[‘히어로 무비 최초 작품상 수상’ <볼프강>의 존 조그 감독, “모두의 상상력과 염원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중에서도 날 믿어준 벤 사장과 1인 2역이라는 중책을 맡은 박유진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아카데미가 아시아의 어린 소년에게 준 두 개의 트로피, 무슨 의미일까? “아카데미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 변화 의지 천명할 것일까?]

[할리우드와 미국 중심 영화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노력? 유진 팍의 2관왕은 지극히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견도]

[“의미? 그런 건 없다. 그냥 유진 팍의 연기력이 미쳤고, 그래서 두 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 기자 마이클 론도,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다]

[“어째서 평론가란 인간들은 어린아이의 성공을 폄하하지 못해 안달인가? 그의 연기는 미쳤다” 할리우드의 배우들, 유진 팍의 수상이 정치적이라는 의견에 한 마음으로 반발]

[“당신들은 히어로 무비에서 히어로와 빌런을 동시에 맡는 배우를 본 적 있는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휘슬의 사장 벤 케이지, 격분하며 평론가들을 비난하다]

성인이 되기까지.

아역배우로서 전설을 써내려갔다.

*

최근 몇 년간.

넙튜브에서 박유진 이름 세 글자는 치트키였다.

[미국이 전율하고 중국이 부러워하고 일본까지 박수세례! 한국의 아역배우, 아카데미를 정복하다!]

[박유진, 전세계 최초 배우로서 아카데미 2관왕! 일본 사람들 패닉에 빠져 그저 부러움만 “우리는 한국을 이길 수 없다”]

[무시받던 나라 한국, 전세계 문화강국으로 일어섰다! “우리는 박유진 보유국” 강대국들이 한국 컨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열다섯, 서른다섯> 이후 넷플러스에는 K-드라마 붐! “하루라도 한국 드라마 없으면 못 살겠어요” 눈물까지 보인 외국인?!]

특히.

온갖 국뽕 넙튜버들이 아주 호황이었다.

오글거리고 과장된 섬네일들이 알고리즘을 장악했다.

그러나.

[국뽕에 질식할 거 같아...근데 나쁘지 않아...

이런 국뽕이라면...기꺼이 취하고 싶을지도...?

이게 왜 국뽕임 ‘팩트’지 ㅋㅋ

ㄹㅇㅋㅋ 아 우리 박유진 보유국이라고 ㅋㅋ

인성도 그저 빛에 연기력 미쳤고 얼굴은 극천상계...진짜 이게 사람임? 천사가 아니라?]

박유진이 2관왕을 차지한 순간만큼은.

모두가 기꺼이 국뽕을 원샷했다.

WU 최초 아시아 히어로.

WU 최초 하이틴 히어로.

전세계 최초 히어로와 빌런 1인 2역.

전세계 최초 배우로서 아카데미 시상식 2관왕.

등등.

최초, 최초, 최초.

그 수식어는 모두 유진의 것이었으니.

게다가 유진의 수상소감 영상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박유진 수상소감

조회수 11,064,123]

무려 천만 조회수가 넘었다.

물론 국뽕 때문도 있지만.

박유진의 소상수감이 엄청난 화제가 되었거든.

“감사합니다.”

시상식에서 두 번째로 호명된 박유진.

한 번의 시상식에서 두 번이나 시상대로 올라가는 것.

이건 배우로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두 번째로 올라오니 첫 번째보다 주변 풍경이 잘 보이네요.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올라오고 싶네요.”

유진의 유머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음이 터지기까진 잠시 시간이 걸렸는데.

바로 통역 때문.

사실 충분히 영어로 수상소감을 말할 수 있는 유진이다.

실제로 남우조연상 수상 당시.

유진은 통역 없이 수상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이후.

그는 마이크 앞에서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몇 번 말했지만, 저는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 트로피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개나 갖고 갈 수 있어서 무척 기쁘네요. 제가 다른 것엔 욕심이 별로 없는데, 트로피는 탐이 나더라고요.”

이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었다.

왜 갑자기 한국어를 쓰는 것일까?

“먼저 제게 두 개의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 <볼프강>을 만드는데 힘써준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존 조그 감독님. 감독님과 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대답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어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곧 유진의 입에서.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영어가 흘러나왔다.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발음이었다.

곧 사람들은 박유진이 일부러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온 아역배우임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는 것.

“한 명의 아이가 자라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라는 한 명의 아이가 자라고,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아카데미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2개의 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 그건 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덕분일 것입니다.”

유진이 트로피를 꽉 쥐며 말을 이어갔다.

“여태 10년 넘게 든든히 저를 지원해주고 있는 주역 매니지먼트 식구들. 차동석 사장님과 장미소 실장님, 영상팀의 상헌 삼촌, 현중이 형이랑 호철이 형. 제게 수많은 도움을 준 빅터 형들, 제 가장 편안한 안식처인 죽음조 사람들. 그리고 저와 가장 친한 친구들인 넥스트 멤버들. 그 밖에 일일이 감사를 드려야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 그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른 나이에 성공했음에도.

결코 자만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는 유진.

그 누구보다 성숙한 모습에 아카데미 안에서도 갈채가 터져 나왔다.

“아역배우로 데뷔하기 전, 저는 그저 단칸방에 살고 있던 철부지 꼬마였습니다.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버지는 매일 저를 위해 일하셨죠. 하지만 전 그 시절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유진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를 추억하는 듯.

유진의 얼굴에 그리움이 섞였다.

예전에는 과거를 악몽처럼 여겼지만.

이젠 그조차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

유진은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저를 보고 있을, 저보다 어린 수많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분명 그 아이들의 환경은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풍족한 사랑을 받고, 걱정 없이 자란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저처럼 단칸방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도 분명 많겠죠.”

유진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이들이 꿈을 꾸고, 그를 이뤄나가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전 그들을 위한 마을이 되고 싶습니다.”

유진이 두 트로피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한국에는 장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을의 악귀를 쫓아내는 수호신과 같죠. 저는 이 두 개의 트로피를 그 마을의 장승으로 삼고 싶습니다.”

곧 그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드리웠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 수상소감이 끝난 뒤.

자리하고 있던 모든 참가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치 아주 대단한 영화를 본 것처럼, 그들의 얼굴엔 하나 같이 감동이 서려있었다.

단지 수상소감으로 이 공간을 장악해버린 것처럼.

어마어마한 열기가 시상식을 덮친 것이다.

*

그리고.

그 이후로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났고.

3년간 박유진은 <볼프강> 3부작 촬영에 매진했으며.

명문대학교에 입학, 아동복지학 전공의 대학생이 되었다.

이후 대중들은 그의 행보를 기대했다.

[ㄹㅇ 이제 아카데미 먹었으니 칸이랑 베니스도 가즈아

칸은 이미 애저녁에 먹음 ㅋㅋ 스마트좀비 상받았자너

ㄴ 그건 단편영화잖아 킹유진이면 장편 가야지

ㄹㅇ 할리우드 감독들이 제발 같이 작품하자고 빌빌댈 듯 ㅋ

ㄴ 국뽕튜브 너무 많이 본거 아니냐 정신 좀 차려라... 아무리 그래도 빌빌대겠냐]

할리우드 첫 진출부터 엄청난 족적을 남긴 박유진 아닌가.

대체 그의 후속작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런데.

박유진이 선택한 건.

[박유진, 현역으로 군대 간다······“최고의 전성기에 왜?” 대중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당혹]

[갑작스러운 입대 발표? 박유진 소속사 측, “의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뿐이다. 또래와 다를 것 없다”]

바로 입대였다.

그렇게 느리게, 혹은 빠르게.

약 2년의 시간이 흐르고.

한 군부대 근처.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

그곳을 레드카펫 걸어가듯 걷는 한 군복 입은 남자.

“충, 성!”

칼같이 잡힌 경례각.

베레모에 숨겨진 건 짧은 머리카락이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독보적 비주얼.

아니, 머리카락 덕분에 오히려 강렬하게 보일 지경이니.

머리가 얼굴빨을 받고 있는 쪽이겠지.

“병장 박유진은 오늘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아역시절부터 연예계를 씹어먹었던 배우, 박유진.

그가 군 생활을 마치고 연예계로 복귀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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