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24화 (224/237)

[외전] 4화

“윤미야.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주방에서 장미소와 함께 아침을 준비 중인 차동석.

그는 제 딸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나 안 먹어.”

방문 너머로 들려온 건 퉁명스런 대답.

“우리 공주님. 아침 안 먹으면 키 안 큰다?”

“공주라고 부르지 좀 마, 진짜! 안 먹는다면 안 먹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차동석은 잔뜩 쫄아서 장미소에게 물었다.

“자기야. 윤미 왜 저렇게 저기압이야? 무슨 일 있어?”

“그것도 몰라? 오늘 그 뉴스 떴잖아.”

“뉴스?”

장미소는 대답 대신 TV를 가리켰다.

[서울돔 전석매진의 신화를 썼던 아이돌 빅터가 공식해체를 선언했습니다. 빅터는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멤버들은 제각기 홀로서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소감을 말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멤버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차윤미의 최애 아이돌.

시대를 풍미했던 남돌인 빅터가 해체를 선언한 것이다.

“으흐윽······.”

솔직히 마음의 준비는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

빅터 자체가 완전체로 모인지 꽤 됐고.

멤버들 모두 개인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니까.

팬들 역시 잠정해체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잠정해체와 공식해체 선언은, 그 파급력이 달랐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빅터라는 아이돌 그룹이 사라진다는 의미니까.

“이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얼른 일어나자, 오빠.”

“어, 응 그래. 윤미야! 학교 잘 다녀오고. 그리고 오늘 유진 오빠 전역하는 날이니까, 축하 메시지라도 보내줘. 알았지?”

빅터 해체의 충격 때문인지.

부모님의 말씀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차윤미.

곧 두 사람은 유진을 맞이하러 떠나고.

등교해야하는 차윤미만이 집에 남았다.

아직도 빅터 해체 뉴스의 충격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차윤미.

그러나.

‘그런데, 유진 오빠 전역일이라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빅터 해체 사실보다.

유진의 전역일이라는 것에 중심추가 옮겨갔다.

“······.”

고민하던 차윤미는 곧 톡 어플을 실행했다.

그리고 유진을 향해 메시지를 작성했다.

-차윤미(나) : 차윤미 님이 박유진 님에게 기프티콘을 보냈습니다!

상품명 – BBP 황급 올리버 치킨 세트(배달 가능)

-차윤미(나) : 밉상오빠 나라 지키느라 고생 많았어

그리고 몇 시간 뒤 돌아온 답은.

-박유진 오?빠놈 : 고마워 윤미야!

-박유진 오?빠놈 : 근데 나 치킨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박유진 오?빠놈 : 그 돈이면 든든하고 뜨끈한 국밥이 몇 그릇인데]

“아오, 이 놈의 국밥충!”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털어서 기프티콘 보낸 건데!

차윤미는 씩씩대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차윤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빅터 해체 뉴스로 싱숭생숭했던 기분이 눈 녹듯 사라진 상태였다.

“미워죽겠어, 정말! 아, 맞다. 학교! 이러다 지각하겠네!”

차윤미는 여전히 박유진이 밉다.

*

배우 박유진.

그는 <볼프강>을 3부작으로 마무리한 이후.

대학을 휴학하고 곧장 입대를 선택했다.

사실.

[국회, 병역특례법 손 보나? “박유진이 공백기를 갖는 건 문화적 손실”]

[박유진 팬카페 ‘대박유진’, 공식 성명서 발표 “우리 배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이를 어길 시 대박유진은 단호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

유진의 군면제에 대한 논의가 없던 것은 아니다.

유진이 이룬 것들이 좀 대단해야지.

고작 17세에 WU 속 최초 아시아 하이틴 히어로를 맡은 것으로도 모자라.

<볼프강>으로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봐도 초유의 일.

그러나.

[박유진, 직접 “입대 계획을 이미 다 잡아놓았다. 국방의 의무 성실히 수행할 것”이란 입장을 밝히다]

유진은 재지 않고 입대를 천명했다.

그게 여러모로 좋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거든.

물론.

회귀까지 하고 나서도 군대를 간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유진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소대장님.”

위병소를 나서는 순간.

유진은 위병소 조장을 맡고 있는 소대장과 악수를 나눴다.

“이야. 전역하면서 즐거웠다고 말하는 녀석은 또 처음 봤다.”

“사실 뻥입니다.”

“이놈 봐라. 너 혼자 도망가는 거야? 진짜 넌 아까운 인재인데. 이참에 말뚝이나 박지 그러냐?”

“하하. 선 넘으시면 곤란합니다.”

“그래, 미안하다. 한국 최고의 배우한테. 내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지.”

소대장은 장난스레 제 입가를 툭툭 쳐댔다.

“잘 가라. 함께 해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감사합니다. 군인끼리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인사라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말 하기는 낯뜨겁지만, 계속 응원할게. 참 내, 너 임마. 내가 여자 아이돌만 보는 거 알지? 이거 엄청 대단한 거다.”

“하하! 그럼요.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유진은 곧 위병소를 통과했다.

그러자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부대 앞에는 이미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심지어 그 국적도 여러 가지.

유진의 전역 소식은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하는 뉴스였으니.

“건강히 전역하신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유진 배우! 전역 후 계획에 대해 모두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이후 일정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음, 계획이라.”

마이크를 든 유진은 잠시 고민했다.

이내 곧 해사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선 순대국밥을 한 그릇 먹고 싶습니다. 이왕으면 특으로. 다데기에 새우젓갈 듬뿍 넣고. 아, 그리고 우리 집의 고양이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가자마자 우리 백룡이와 놀아줄 생각입니다.”

그러자.

“예?”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벙 쪄버렸다.

향후 활동계획을 물었더니.

순대국이니 고양이니 하는 엉뚱한 답변만 내놓지 않았던가.

“그게, 활동 계획에 대해선 하실 말씀이 없는지.”

“아직 정해진 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태까지 그저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차후 정해지면 빠르게 소식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유진.

곧 대기하고 있는 커다란 봉고차에 탑승했다.

“후아!”

차에 올라탄 유진.

모자를 벗자 시원하게 민 까까머리가 등장했다.

병장이 아니라 이등병 같은 머리.

“머리 좀 기르지 그랬어?”

“네? 아아. 부대가 머리 길이에 민감해서요. 신경 쓰기 귀찮아서.”

유진은 룸미러를 바라보며 제 머리를 슥슥 매만졌다.

“근데도 잘 생겼네. 늠름하고 멋있어.”

장미소의 말에 차동석이 동의했다.

“이야. 진짜 머리가 얼굴발을 받네.”

분명 빡빡머리 상태임에도,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강렬한 느낌을 주는 비주얼이 되었다.

그야말로 ‘상남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모습.

“하하! 탈모와도 괜찮겠다. 머리 밀고 다니면 되겠어요.”

그러자 차동석이 찔리는지.

덩달아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젠장! 20대 녀석이 벌써 탈모, 탈모 거릴래?”

“왜요? 사장님 찔리시는구나. 사장님 정도면 풍성한 편이죠.”

“내가 내 나이 되어봐라.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그래도 유진이 회귀하기 전을 생각해보면.

지금 차동석의 머리는 매우 풍성한 편이다.

아무래도 생활이 안정적이기 때문이겠지.

음.

역시 탈모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가 맞나보다.

“어릴 때만 해도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나이 먹고선 능구렁이가 똬리를 틀었는지, 아주 그냥 능글맞아.”

“오빠. 유진이 어릴 때도 저랬어.”

“그럼요. 저처럼 한결같은 사람도 없을걸요?”

“어······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유진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역대급 비주얼의 아역이란 칭호를 받으며 데뷔했고.

모두의 바람 덕분인지, 역변하는 일 없이 매우 잘 컸다.

어린 시절의 귀여운 외모도 남아있으면서.

동시에 탄탄해진 체격과 뚜렷해진 이목구비.

깊어진 눈가가 독보적인 매력을 풍겼다.

“아무튼, 너 없는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그런데 어떻게 시간이 흐르긴 한다.”

“하하. 그러게요. 벌써 전역하는 때가 다 오네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네. 어떻게 그 타이밍에 입대할 생각을 다 했냐? 그렇게 인기 절정의 순간인데.”

그때 장미소가 말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도 있지.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야.”

그리 말하는 장미소의 얼굴엔 제법 흡족함이 엿보였다.

세월이 제법 흐른 탓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일까.

장미소는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인상이 되었다.

“유진이는 스스로 파도를 만들고, 물의 흐름까지 조절할 줄 아는 애야.”

물론.

그녀 특유의 냉정한 통찰력은 어디 가지 않았지만.

“하긴. 군대만 다녀오면 평생까방권 획득. 그런 얘기가 돌던 와중이니, 시기도 매우 적절했어. 이제 유진이 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따로 없다는 거지.”

차동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기적절하게 이미지 환기도 하고. 이것도 다 예상한 거겠지? 우리 배우님.”

“네. 제 이미지가 너무 <볼프강> 쪽으로만 소비되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볼프강>은 유진에게 아카데미 2관왕을 안겨준 소중한 작품이지만.

그 때문에 대중들에게 ‘박유진=볼프강’이라는 공식이 세워져 버렸다.

수상소감까지 넙튜브 천만을 넘어버렸고.

영화는 무려 3편이나 제작되었다.

유진이 볼프강으로서, 그리고 팬시로서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강했기에.

배역이 배우를 잡아먹는 형국이 벌어질 수 있었다.

“연기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긴 쉽지 않으니까.”

유진은 볼프강으로서, 팬시로서 과하게 소비되고 싶지 않았다.

“맞아요. <볼프강>은 분명 소중한 배역이긴 하지만, 제게 계단일 뿐이지 목적지는 아니니까요.”

이 2년의 공백기 덕분에.

유진의 이미지는 다시 한번 환기되었다.

특히 유진의 팬카페 ‘대박유진’의 서포트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월간 박유진 – 이번 달의 작품은 드라마 <호구>입니다! <호구>는 SBW 미니시리즈 공모전 수상작으로, 박유진 배우는 여기서 주인공 중 한 명인······]

유진이 출연했던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젝트, ‘월간 박유진’을 진행한 것.

데뷔작 <유별난 친구들>부터.

볼프강을 맡기 전 마지막 작품이었던 <열다섯, 서른다섯>에 이르기까지.

덕분에 대중들은 유진이 히어로 볼프강이기 이전에.

얼마나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도, 역할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아역배우 시절에 말이다.

“시기가 딱 좋아요. 이제 전역했으니 이미지 변신 한 번 하려고요. 복귀작이니만큼 임팩트가 강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우리야 네 의견에 전적으로 따를게. 생각해둔 작품은 있고?”

“아직이요. 대본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염두해둔 작품이 몇 개 있다.

이 시기쯤에 개봉할 영화, 드라마들은 어느 정도 꿰고 있으니까.

‘군 생활을 하며 세웠던 첫 번째 계획. 그를 실행시키려면, 역시 그 작품이 제일 좋은데.’

유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아, 맞다. 재오 새 작품 들어가는 모양이던데?”

“진짜요? 나한텐 왜 말 안 해줬지?”

유진은 아직도 재오를 비롯한 빅터 멤버들과 친하게 지냈다.

빅터의 인맥을 이용, 여자 아이돌들의 사인을 받아냈고.

덕분에 군생활이 훨씬 쾌적해졌다는 후문.

“아마 도장 찍은 지 얼마 안 됐을 거야.”

인맥왕 차동석.

그의 인맥이 더 넓어졌으면 넓어졌지,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제 막 캐스팅 시작한 단계라 정확한 소스는 못 들었는데, 장르가 무슨······피카레스크였다고 했던 거 같은데?”

피카레스크.

그 단어에 유진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 얘기, 자세히 좀 해주실 수 있어요?”

*

유진의 데뷔작 <유별난 친구들>.

이를 제작하여 방영한 곳은 케이블 채널 온플러스다.

이제 지상파와 케이블의 경계가 별 의미를 갖지 못하고.

사람들은 TV보다 스마트폰, 인터넷으로 컨텐츠를 소비하시는 시대.

온플러스는 유진의 예상대로 양질의 드라마, 예능을 찍어냈고.

덕분에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드는 채널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놈의 넷플러스!”

그것도 넷플러스가 등장한 이후론 유명무실해졌다.

넷플러스가 한국지부를 세운 뒤.

공격적으로 파이를 키워나간 탓.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작가며 PD를 쓸어가버렸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온플러스도 제법 많이 빼앗긴 편.

자체 OTT 서비스 중이지만.

넷플러스 탓에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확실히 우리 채널도 좀 더 확실한 킬러 컨텐츠가 필요한 타이밍이었죠. 이목을 확 끌 수 있는.”

웰메이드도 좋지만.

의외로 대중들은 웰메이드에 관심이 없다.

“대중들은 결국 유행에 민감하니까. 뭐가 재밌다고 난리나면, 거기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그만큼 입소문을 타기 좋게 자극적인 작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칼을 갈았지.”

유진의 데뷔작, <유별난 친구들>을 연출했던 고석기PD.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당시만 해도 손미연 작가에게 쩔쩔매던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다수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중견PD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온플러스와의 의리를 지키고 남아있는, 몇 안 되는 PD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윗선에서도 뽑아만 내면 아주 전폭적으로 지원을 할거라고 하던데. 지하철이며 버스, 넙튜브며 메이버까지 광고로 도배할 거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작품을 선배님께서 맡으신 거고요.”

“그래. 덕분에 부담감이 아주 장난 아니다.”

고PD가 담배를 꺼내들자.

후배 PD가 잽싸게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만큼 국장님이나 윗분들이 선배님을 믿는 거겠죠.”

“말이라도 고맙다. 후우. 아무튼, 원기옥 한 번 제대로 쏘자는 거지.”

“아무래도 배우가 제일 중요할 거 같은데. 픽스된 건요?”

“재오가 일단 먼저 도장 찍었다.”

“재오? 그 빅터 출신이요? 하긴, 마스크도 훌륭하고 연기력도 꾸준하게 늘려왔으니까. 인지도도 엄청 높아서 해외에서도 잘 먹힐 테고. 좋은데요?”

지금은 빅터 공식 해체 직후 타이밍.

멤버들의 향후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 그걸론 부족하단 말이야.”

고PD가 힘껏 담배를 빨아들였다.

“재오로도 부족하다고요?”

“그래. 우리 경쟁 상대는 넷플러스니까 말이야.”

이내 곧 고PD는 담배를 비벼 끄고, 재떨이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재오급 네임드, 아니, 그 이상 가는 이름값을 가진 배우 세 넷은 더 박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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