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강우는 김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두 번이 채 울리기도 전에 김민지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안부를 물었으나, 김민지는 “돈은 이미 내가 전부 입금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는 말만을 남기고 뚝 끊어버렸다.
강우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 되게 쌀쌀맞네.’
강우는 계좌를 조회했고, 김민지의 이름으로 250만 겔드가 입금돼있었다.
‘그럼 40만 겔드 플러스네.’
강우의 마음에는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한소영은 괜찮으려나… 나중에 찾아가보자. 지금 당장은 연락해봐야 환대도 못 받으니까… 내가 신준섭을 처리했다는 걸 알면 이러진 않을 텐데.’
강우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계좌에 찍힌 250만 겔드를 보자 강우의 양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강우의 표정이 굳었다. 계좌에는 부모님이 입금한 100만 겔드가 들어와있었다.
‘이것도… 그만 받을 때가 됐지. 연락도 안 하면서 사는 사람들인데.’
강우는 부모님에게 같은 내용으로 문자를 보냈다.
-더 이상 돈 입금 안 해도 됩니다. 잘 사세요.-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강우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강우는 집에 도착해서는 블랙마켓 커뮤니티에 들어가 더 조사를 했다. 블랙마켓은 전국, 전 세계 각지에 뻗어있었다. 서울 인근에는 강우가 갔던 포천과 가평, 양평, 파주, 화성, 인천 등이 있었다.
‘뭐, 일단은 포천 쪽에서 거래를 잘 터봐야지.’
강우는 중식집에 전화를 해 음식을 주문했다. 강우가 주문한 음식들은 간짜장, 탕수육, 깐쇼새우였다.
음식들은 금세 도착했다. 강우는 간짜장을 비벼 탕수육과 먹기 시작했다. 깐쇼새우는 그냥 먹기도, 마요네즈에 찍어 먹기도 했다. 목이 막힐 때면 얼음을 띄운 제로 칼로리 콜라를 들이켰다.
‘요즘 먹는 양이 정말… 내가 생각해도 사람 새끼 같지가 않네.’
강우는 앉은자리에서 주문한 음식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그릇들을 내놨다.
‘이제 뭐하지….’
강우는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게임을 해도 재미가 없었다.
‘다 재미가 없네.’
강우는 가방에 운동화와 바지, 얇은 재킷 등을 넣어뒀다.
‘항상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놔야겠어.’
강우는 휴대폰을 꺼내 노예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노예빈에게 답장은 없었다. 강우는 딱히 연락할 곳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강우는 다시 블랙마켓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많은 블랙마켓 이용자들의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개중에는 익명성을 이용해 거짓말, 헛소문, 잘못된 정보도 많았다.
‘역시 직접 부딪쳐보는 게 최고군.’
강우는 하루 종일 인터넷과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통장에 있는 약 5,500만 겔드를 확인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다음 날이었다. 강우는 또다시 약 네 시간만 자고 눈이 떠졌다.
‘잠은 또 왜 이렇게 줄은 거야?’
강우는 다시 잠을 청해보려 해도 눈이 말똥말똥 떠졌다.
‘또 뭐하고 시간을 때우지.’
강우는 블랙마켓을 통해 일할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일을 하고 싶어 했더라….’
강우는 오후 1시가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오후 1시.
강우는 곧바로 이부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부선은 강우에게 2시까지 종합운동장 쪽으로 가라고 했다. 종합운동장에서 강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이부선이 전화를 끊었고, 강우의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메시지는 이부선이 보낸 것으로 정확한 위치의 좌표가 찍혀있었다. 강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강우는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강우는 천천히 뛰어서 이동했다. 잠실대교를 건너간 뒤, 한 건물의 옥상에 멈춰 서서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는 청바지에 신발은 운동화, 상의는 복면과 세트인 티셔츠였다. 강우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강우가 가야할 곳은 종합운동장역에서 걸어도 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강우는 잠시 종합운동장에 들렀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옮겨졌다. 강우는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사람들 중 몇몇은 강우의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강우는 지하철 사물함에 가방을 넣어두고, 역을 빠져나왔다.
강우가 좌표를 받은 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빨리 도착했나?’
그때 한 남자가 걸어왔다. 익숙한 얼굴, 예거 등록 시험을 같이 치렀던 김동준이었다.
‘이 녀석은 그때 입안에다 총을 쐈던….’
김동준이 강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진짜 복면을 뒤집어쓰고 오셨네.”
“오늘 같이 일하실 분입니까?”
“아, 네. 김동준입니다. 따라오시죠.”
김동준이 걸음을 옮겼고, 강우는 뒤를 따랐다. 김동준은 가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강우를 쳐다봤다. 신경이 거슬린 강우는 무시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김동준의 눈빛에 입을 열었다.
“뭐 문제 있습니까?”
김동준은 여전히 아니꼽다는 듯 쳐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뇨.”
“근데 왜 그 따위로 쳐다봅니까?”
김동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참나…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 나오셨나….”
강우는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건 너 같은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뭐하는 거야?”
짧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한 남자였다. 남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외부에서 오신 분하고 뭐하고 있는 건가?”
김동준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먼저 가봐. 클랜장님이 찾으신다.”
김동준은 강우를 슬쩍 째려보곤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남자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신참 녀석이 버릇이 없어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는 무투 클랜 한국지점의 부클랜장 이형철이라고 합니다. 집행자라고 불리길 원하신다고….”
“예, 맞습니다.”
이형철이 물었다.
“일에 대해서 설명은 듣고 오셨습니까?”
“아니요.”
이형철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시죠.”
강우와 이형철은 걸음을 옮겼다.
본래 블랙마켓에서 일을 받을 땐 자신이 지원할 수 있는 일들의 임무 내용을 보고 고른다. 하지만 강우의 경우 급하게 투입되는 것이기도 하고, 처음 일을 맡는 거라 선택권도 없었고, 설명을 들을 수도 없었다.
강우가 오늘 무투 클랜과 진행할 일은 일명 ‘고양이 사냥’이었다.
강우가 물었다.
“고양이 사냥이라뇨?”
이형철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스밀로돈 무리들을 잡는 일입니다.”
스밀로돈은 코끼리의 상아뿔처럼 큰 송곳니를 가진 몬스터들이었다. 입 밖으로도 튀어 나와 있는 검치는 그 길이만 50cm 이상이었다. 사자, 호랑이 등의 고양이과 맹수와 비슷한 용모였다.
스밀로돈은 세 종으로 나뉘었는데, 크기와 겉모습도 조금씩 달랐다.
가장 작은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는 주황색 털에 몸길이는 평균 180cm, 무게는 180kg에서 큰 녀석들은 280kg까지도 나갔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는 일성 중급이었다.
두 번째로 큰 것은 스밀로돈 파탈리스였다. 스밀로돈 파탈리스는 표범 무늬를 가지고 있었고, 몸길이는 평균 3m, 무게는 400kg 이상이었다. 스밀로돈 파탈리스는 일성 상급이었다.
제일 커다란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누르스름한 털과 회색빛 털이 섞여있었다. 몸길이는 5m가량 됐고, 무게는 700kg에서 1톤까지도 존재했다. 목덜미에는 짧은 갈기가 돋아나있었고, 이성 하급의 몬스터였다.
강우가 물었다.
“오늘 잡을 녀석은 어떤 녀석입니까?”
“스밀로돈 포풀라토르 부부가 인근 다리 밑을 거처로 삼은 모양입니다. 녀석들은 저희 클랜이 처리할 겁니다. 당신은 도망가는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나 스밀로돈 파탈리스들을 잡으시면 됩니다.”
이형철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기 있는 사람들이 저희 클랜입니다.”
약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L.W.W 클랜과는 달리 대부분 맨손이었고, 몇 명만 예거 전용 무기로 만들어진 너클이나 장갑 등을 끼고 있었다.
이형철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클랜장님은?”
한 여자가 말했다.
“지루하다고 가셨습니다.”
이형철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내가 못 살아… 그럼 내가 지휘해 작전을 수행하도록 하겠다. 최현아.”
“네, 여기 있습니다.”
“이리로 나와.”
최현아가 이형철의 옆으로 섰다. 최현아는 집업 재킷에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재킷의 지퍼는 반만 올렸는데, 안에 입은 티셔츠는 목이 깊게 파여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났다. 최현아는 태닝을 한 듯 까무잡잡했고, 근육질의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이형철이 말했다.
“스밀로돈이 총 몇 마리나 있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나와 최현아가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를 맡는다. 나머지는….”
이형철은 강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오늘 우리와 함께 임무를 수행할 집행자 씨와 함께 나머지 스밀로돈을 맡는다. 알겠나?”
모든 클랜원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가자.”
이형철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가시죠.”
최현아는 강우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무투 클랜과 강우는 스밀로돈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밀로돈들의 거처인 다리와 약 300m 떨어져있을 때였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 두 마리가 뒹굴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무투 클랜원 중 하나가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를 가리켰다.
“어… 저기, 저기 두 마리 있습니다.”
바닥을 뒹굴고 있단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들이 몸을 일으키며 등 털을 세웠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 두 마리는 클랜원들을 경계하며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의식한 듯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이형철이 스밀로돈 그라킬리스 두 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잡아!”
이형철과 최현아를 제외한 클랜원들이 동시에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들을 향해 달려갔다. 강우도 클랜원들을 쫓아가려 할 때 이형철이 말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따 저희가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를 상대할 때… 녀석들의 숫자가 많을 때 부탁합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 두 마리는 잠시 싸워보려고 몸을 낮췄지만, 수많은 클랜원들의 기세에 눌렸는지 이에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클랜원이 뛰어가는 스밀로돈 그라킬리스 두 마리의 위로 뛰어올랐다. 클랜원은 흰색 건틀렛을 낀 양 주먹을 지면으로 향했고, 커다란 흰색 부츠를 신은 두 발에서는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클랜원은 그대로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들을 향해 공중에서 수직으로 떨어졌다.
콰앙!
굉음이 울렸다. 클랜원의 두 주먹은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들에게 닿지 못하고, 땅을 내려찍었다. 클랜원은 두 주먹으로 물구나무를 서듯 서있었고, 주변의 땅은 움푹 파여 있었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 두 마리는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양옆으로 튕겨나갔다. 다른 클랜원들이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위협적으로 오른쪽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텅!
한 클랜원이 앞으로 튀어나가 휘두른 앞발을 왼팔을 들어 막아냈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는 입을 크게 벌려 커다란 클랜원을 물어뜯으려 했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의 앞에 있던 클랜원이 몸을 숙였다.
퍼억!
뒤에서 다른 클랜원이 달려와 입을 벌리고 있던 스밀로돈 그라킬리스의 코를 강타했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는 코피를 뿜어내며 몸을 웅크렸다. 몸을 숙였던 클랜원이 다시 앞으로 튀어나가 스밀로돈 그라킬리스의 커다란 두 검치를 손으로 잡았다. 클랜원의 전신에서 주황색 빛이 흘러나왔다.
빠직!
클랜원은 스밀로돈 그라킬리스의 두 검치를 부러트렸다. 스밀로돈 그라킬리스의 “크어어엉!”하는 울음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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