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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43화 (43/195)

43화

강우는 돈과 케이스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건물을 빠져나와 멈춰 서서 꼭대기 층을 올려다봤다.

‘당분간 주시해야겠어. 스위스에 갔다 와서도 쭉… 여권도 만들어놔야겠군.’

강우는 몸을 돌리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 무렵, 회장실에서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건방진 새끼! 감히 누구 앞에서… 이런 개…….”

안 실장이 김현태에게 다가가 말했다.

“회장님… 진정하세…….”

짝!

김현태가 안 실장의 뺨을 올려붙였다.

“안석훈 이 개새끼야! 네가 똑바로 안 하니까 이런 거 아니야! 엉?”

“아니, 저는 그때 놈을 고용하는데 반대했었…….”

빡!

김현태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어 안석훈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안석훈은 두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안석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김현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스위스에서 돌아오면 처리해. 개새끼가 맞춰주니까 한도 끝도 없이 기어올라. 저런 새끼들은 크기 전에 밟아 죽여야 돼.”

“고작 저런 놈을 꼭 죽일 필요까지….”

“내가 죽이라고 하면 죽이는 거지, 뭔 말이 많아?”

“진작 저런 놈을 고용하지 않으셨어도 저 혼자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을 겁니다.”

김현태는 자신의 명패를 집어 들어 안석훈을 내리칠 듯 치켜들었다. 안석훈은 양손을 모은 채 김현태를 쳐다봤다. 김현태는 “어휴!”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며 명패를 다시 내려놨다.

“어쨌든 일이 더 쉽게 흘러갔잖아! 계산상으론 네가 일처리를 할 때 죽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나하고 너뿐이어야 돼! 그러니까 확실히 처리해!”

안석훈은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김현태는 신경질적으로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비행기는 준비됐나? 언제 출발하나?”

안석훈은 시계를 확인한 뒤 말했다.

“지금 바로 출발하셔도 됩니다.”

“그럼 다들 준비하라고 해. 10분 뒤에 출발한다고.”

“네.”

안석훈은 김현태에게 고개를 꾸벅인 뒤,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안석훈이 회장실에서 나오자 남자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 하나가 안석훈에게로 다가왔다.

“실장님… 헉.”

안석훈은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당장 누구라도 죽일 듯이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안석훈의 얼굴을 보자마자 뒤로 물러났다.

강우는 휴대폰으로 소아란 닉네임을 쓰는 유저의 연락처를 검색했다.

‘연락해볼까….’

그때 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은 강우는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지금 어디야?

전화를 건 사람은 한소영이었다. 한소영은 휴대폰을 바꿔서 연락을 바로 못했다며 사과했다. 강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 됐으니까, 일단 만나서 얘기하지. 어딘데?”

“좌표를 보내드릴게요.”

한소영이 전화를 끊고, 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소영이 보낸 주소지는 경기도 가평이었다. 강우는 우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집에 들어서기 전, 복면을 벗었다. 강우는 장롱 안쪽에 가방을 넣어둔 뒤, 곧바로 집을 나섰다. 강우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복면을 뒤집어쓰고, 한소영이 보낸 주소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강우는 서울 건대서부터 가평까지 약 40분만에 도착했다. 주소지까지 약 800m. 강우는 속도를 줄여 걸음을 옮겼다.

한소영이 알려준 주소지는 가평에 있는 블랙마켓이었다. 강우는 늘어선 펜션들을 보며 “포천이랑 비슷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가평의 블랙마켓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았다. 마련돼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 정자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 펜션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 등 다양했다. 몇몇은 강우를 의식하는 듯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강우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소영이 전화를 받았다. 강우가 말했다.

“어디야?”

“좌표 보내드렸잖아요.”

“지금 도착했어.”

“벌써 왔다고요?”

블랙마켓들 중 가장 초라하고 작은 건물의 문이 열렸다. 한소영이 전화를 귀에 댄 채 나왔다. 한소영은 강우를 확인하곤 손을 흔들었다. 강우는 한소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한소영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의 겉은 갈색벽돌로 이뤄져있었고, 2층이었다. 건물의 총 평수는 80평 내외에 옥상과 테라스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는데, 다른 블랙마켓들에 비하면 협소했다.

한소영이 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강우는 한소영의 건너편에 앉았다. 한소영의 얼굴은 예전과는 조금 달랐지만, 거의 완벽하게 복원돼있었다. 한소영의 외몬느 약간 부자연스럽게 성형을 한 여자의 얼굴 정도로 여겨졌다. 다만, 한소영은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턱과 목의 경계선은 피부색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강우는 한소영을 보며 말했다.

“수술이 잘 된 모양이네.”

한소영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눈가에는 주름이 아예 생기지 않았고, 입꼬리도 많이 올라가지 않았다. 마치 사방에서 얼굴을 잡아당겨 고정시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직 피부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아서 표정이 잘 지어지지 않으니 이해해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건가?”

“예전만큼은 안 되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예요.”

한소영은 강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복면을 쓰고 오실 줄은 몰랐네요.”

“오히려 블랙마켓에 오는데 안 쓰고 왔으면 그게 더 문제였겠지. 그리고 당신은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상관있나?”

강우는 다리를 꼬고, 양손 깍지를 껴 무릎에 얹으며 말했다.

“그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을 텐데?”

“당신의 정체를 퍼트릴 생각은 없었어요. 저도 민지가 그럴 줄은 몰랐고요.”

한소영이 김민지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놨다.

김민지는 L.W.W 클랜이 퍼플 헤드 클랜에 의해 박살이 났을 때 강우에게 불만이 많았다. 강우는 당시 김민지에게 그 와중에도 자신의 계약금을 챙기는 데 급급한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소영은 강우가 퍼플 헤드 클랜을 무너트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강우가 현장에 나타났었고, 한 클랜원의 머리를 한 번 짚고 간 뒤, 곧바로 퍼플 헤드 클랜이 회식을 하다가 나타난 집행자란 사내에게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물증은 없었지만, 한소영은 확신했다.

한소영은 강우가 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을 포함한 L.W.W 클랜 멤버들 중에선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우가 바시들 무리의 미끼 역할을 아무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것부터 그 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후에 강우가 실제로 보여준 몸놀림 역시 이미 일성 하급 수준이 아니었고, 일성 중급에서 상위권이었던 한소영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강우에겐 위기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고, 여유가 넘쳤으며, 적어도 일성 상급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고. 당시에 다른 L.W.W 멤버들은 대다수가 일성 하급이거나 갓 일성 중급으로 강우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

한소영은 계속되는 김민지의 불평에 답답했고, 결국 집행자가 강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김민지는 한소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한소영은 병원에 입원해있는 중 L.W.W 클랜 해체를 발표했다. L.W.W 멤버들은 슬퍼했지만, 퍼플 헤드에게 겪었던 일에 공포심을 느끼기도 했고, 한소영이 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터라 수긍했다. 하지만 김민지는 끝까지 클랜 해체를 반대했다.

한소영의 뜻은 확고했고, 김민지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그 시기에 김현태가 강우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김현태의 측근들 중 하나는 병원에 입원해있는 중에 찾아오기도 했다. 한소영은 당연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리고 측근들 중 하나가 김민지를 찾은 것이다. 김민지는 진실생명보험에 좋은 대우로 취업을 하는 것과 이와 관련해 다른 이에게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강우에 대한 모든 것을 말했다. 김민지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모든 것을 말했고, 여러 가지 조각들을 끼워 맞춘 결과, 집행자가 강우인 것을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도 김현태 측은 강우가 집행자란 확실한 물증까진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강우에 대한 정보들을 긁어모았고, 집행자일 확률이 높았을 뿐이었다. 김현태는 떠보기 식으로 강우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었고, 강우를 방문했다. 그것은 들어맞았고, 강우는 제 입으로 집행자임을 밝힌 것이다.

한소영이 말했다.

“저는 사비를 털어서 당신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고마움을 표했어요. 지금도 복수를 해준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고요. 제가 일부러 당신의 정체를 퍼트리고 다닐 리가 없잖아요.”

강우는 주먹을 쥔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김민지 이 개 같은 년….”

“민지와는 연락 안 한지 좀 됐어요. 제가 클랜을 해체할 때부터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죠. 민지가 당신의 정보를 팔아넘기면서 진실생명보험에 들어가고부터는 완전히 인연을 끊었고요.”

한소영은 양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래도… 해코지는 하지 말아줘요. 레드 헤드 클랜까지 혼자서 없애버린 당신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충분히 알지만….”

강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되지? 그리고 난 네 말도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아.”

“절 믿어줘요. 그리고 한 번만 참아줘요.”

한소영은 입을 굳게 다물고 강우를 쳐다봤다. 강우는 한소영과 눈을 마주치다가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말했다.

“어차피 계약한 내용이 있어서 지금 당장 어쩔 생각은 없어. 다만, 또다시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땐….”

한소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은 뭐 어떻게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그게 무슨 말이죠?”

“오늘 진실생명보험 회장이 스위스로 가거든. 자기 측근들을 모두 데리고 가는데, 비서인 김민지도 함께 가는 거 같더라고.”

“그렇군요.”

강우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한소영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나저나 여긴 뭐지? 웬 블랙마켓이야? 당신도 블랙마켓에서 활동을 하나? 여기 업자는 어디 가고? 저번에 거래했던 업자의 건물에는 이것저것 가득 차있었는데, 여긴 썰렁하네.”

한소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제가 여기 업자에요.”

“뭐?”

“클랜을 해체하고, 앞으로 뭐하면서 살까,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고민했었죠. 다른 클랜으로 들어가자니 그것도 성미에 안 맞고… 사실 제 능력으론 평생 일성 중급도 벗어나기 힘들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제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죠.”

강우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게 몬스터 관련 거래업자였나?”

“네, 그것도 블랙마켓으로요. 사실 몬스터 관련 거래업자 자격증을 따려고 했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한 클랜의 클랜장을 맡았을 정도로 이 바닥의 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요. 곧바로 업계에 뛰어들 수 있는 건 블랙마켓밖에 없었죠. 사실 수입적인 측면에서도 블랙마켓이 좀 더 나으니 잘 된 편이죠.”

한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가진 자본으론 블랙마켓에 끼어들고, 이 정도 펜션을 얻는 것도 빠듯했죠.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이니 힘내야죠. 곧 이 건물 전체를 몬스터 관련 물품으로 가득 채우고, 더 큰 건물도 얻고, 사업을 확장해나가야죠.”

“그럼 일을 공급 받을 곳하고,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나?”

“일을 공급 받을 곳들은 어느 정도 있어요. 한 클랜을 운영했었으니까요. 블랙마켓에 입점할 수 있던 것도 도움을 조금 받았죠. 덕분에 빚도 좀 생겼지만, 제 생각대로만 굴러간다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다른 곳에 있어요.”

“다른 곳?”

한소영은 강우의 앞에 다시 앉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당신을 부른 거예요.”

“뭐 때문에 날 불렀다는 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소영은 “흠, 흠.”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 작품 후기 ============================

연휴들은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을 먹고 싶었으나 결국은 파토를 내게 됐네요.

이제 또 주말이 다가오네요.

즐거운 금요일,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곧 크고 작은 일들을 맞이하며 변화들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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