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강우는 공항에 들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인천공항이라고만 했지, 정확히 어디서 볼지를 안 정했네. 무투 클랜이라고 했으니 아는 얼굴들도 있겠지만.’
강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는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우가 기대했던 무투 클랜 한국지점의 부클랜장 이형철이나 김동준이 아니었다. 강우가 맞닥뜨린 건 이현지였다.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이현지를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어, 너는….”
이현지 역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뭐야….”
이현지는 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왜 여기 있어?”
“일이 좀 있어서.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있어?”
이현지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도 일 때문에.”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일?”
“네가 알 거 없잖아.”
그때 이현지의 뒤쪽에서 이형철이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이형철은 강우에게로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셨군요.”
이형철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강우는 이형철과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이현지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이형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야, 설마 오늘 같이 간다는 게….”
이형철은 강우의 손을 놓고, 이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말 안 했던가? 이번 일본 출장은 집행자님과 함께라고 했었을 텐데.”
이현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런 녀석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강우는 이현지를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 같은 꼬맹이보다야 훨씬 많이 되겠지.”
“뭐? 지금 여기서 한 번 붙어볼래?”
“넌 원나잇 토너먼트 때도 기권했으면서 나랑 붙겠다고?”
이현지가 강우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현지는 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 같은 건 내가…….”
이형철이 이현지의 말허리를 끊었다.
“집행자님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한 손님이야. 그만해.”
이현지는 이형철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구시렁거렸다. 이형철이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가시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와 이현지, 이형철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오후 1시 일본행 비행기였다. 과거에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세 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됐지만, 절차가 많이 간소화돼 한 시간 전에만 와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여유를 갖고 싶다면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됐지만.
무투 클랜원들이 열 명 정도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스밀로돈들을 잡을 때 강우와 함께 했던 클랜원들도 있었다. 클랜원들은 하나같이 강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클랜원 중 하나가 양손으로 강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들 똑같이 고생했던 건데요, 뭐….”
“아니에요. 그때 당신이 아니었으면 분명히 사망자가 나왔을 겁니다.”
이형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비행기 놓치겠다. 가자.”
이형철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가시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현재의 공항은 무인항공에 가까울 정도였다. 몇몇 안내원들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기계로 이뤄졌다. 여권이나 비자 확인도 마찬가지였다. 여권을 몸에 지닌 채 전신스캐너를 통과하면, 본인의 여권이 맞는지, 기내에서 소지할 수 없는 물품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한 번에 처리했다.
근래 들어 나온 최신형 휴대폰에는 신분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내장할 수도 있어 더욱 간편했다.
무투 클랜 사람들이 먼저 하나하나씩 여권을 몸에 지닌 채 전신스캐너를 통과했다. 강우의 차례였다. 강우는 여권을 손에 쥔 채 전신스캐너를 지나갔다.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됐다.
실제로 출입국 기록에는 지강우라는 이름이 남는다. 하지만 그 사실은 전산에만 기록된다. 강우의 신분이 노출되기 위해선 최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했다. 강우가 전신스캐너에 통과할 때 T.C.C를 킨 채로 통과하는 것, 즉 집행자가 전신스캐너를 통과하는 시간을 체크해야 되고, 후에 전산에서 그 시각 통과한 것이 지강우라는 것을 조회해야 했다. 사실상 누군가 강우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찾지 않는 이상은 정체가 드러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강우와 무투 클랜원들은 비행기에 올랐다. 강우는 이형철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강우가 물었다.
“잘 지내셨나요?”
“아, 네. 그럼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F.N.C 원나잇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셨다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성 상급 랭커 수준까지 올라갔다던데요? 블랙마켓 커뮤니티 쪽에서도 난리던데요?”
강우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그런데 블랙마켓 커뮤니티 쪽도 자주 보시나요?”
“뭐, 저희 클랜이야 블랙마켓 쪽은 아니지만, 예거 커뮤니티보다는 블랙마켓 커뮤니티 쪽이 자료도 많은 편이고….”
이형철이 화제를 돌렸다.
“참. 저도 이번에 이성 상급으로 올라왔습니다.”
“오, 축하드려요.”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겁니다.”
강우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어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부클랜장님은 강한 전력이죠.”
“아닙니다. 무투 클랜은 스무 개가 넘는 나라에 지점이 있어요. 그 중 한국지점이 가장 약합니다.”
“그래요?”
이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한국지점의 경우 클랜장님을 제외하곤 모두 이성급이니까요. 부클랜장이라는 저도 이제 겨우 이성 상급에 다다랐고요.”
“이번엔 클랜장님도 계시겠네요?”
“클랜장님은 이미 일본에 가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번에 저희 클랜이 할 일은 탐색조나 다름없어요. 뭐, 자세한 건 가시면 여러 가지 얘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강우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댔다.
한 시간, 짧은 비행이었다. 일본에 도착헀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이형철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강우와 무투 클랜은 후지산으로 향했다.
강우는 후지산으로 향하는 중 이소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지금 일본에 왔어요!-
-일본에는 무슨 일로요? 여행?-
-아니요. 일이요.-
-그러시구나. 저도 지금 일하고 있어요. 참, 계좌는 확인했어요?--아니요. 아직이요. 조금 이따가 해볼게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거 있으면 사다줄게요.--괜찮아요.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요. 일 힘내서 하시고, 한국 오시면 연락해요. 같이 식사나 해요!-
-좋죠. 그럼 또 연락할게요.-
강우는 씩 웃으며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로 넣었다.
후지산을 중심으로 반경 500m가 통제되고 있었다. 이형철이 멈춰 서서 강우와 클랜원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여기서 짐을 맡기고, 바로 이동할 겁니다. 조금 더 가면 클랜장님이 기다리고 계실 거고, 거기서 조를 나눌 겁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동해서 듣기로 하고, 몸에 지녀야 할 것들만 빼고, 모두 가방 내려놓으세요.”
강우와 클랜원들이 짐을 내려놓자 통제를 하고 있던 사람들 몇몇이 몰려왔다. 이형철이 몰려오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들은 무투 클랜 일본지점 클랜원들입니다. 짐은 이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보관될 것입니다.”
이형철이 몸을 돌려 앞장섰고, 강우와 클랜원들은 뒤를 따랐다.
몇 분이 지나고, 후지산 등산로 초입에 다다랐다. 주변에도 무투 클랜 일본지점 클랜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서있었고, 이형철은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형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클랜장님!”
이형철은 생명의 은인이라도 마주친 듯 고개를 조아리며 예를 갖췄다. 남자는 씩 웃으며 이형철과 악수를 했다.
뒤에 서있는 강우와 클랜원들에게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형철의 커다란 덩치가 왜소한 남자의 모습을 가렸기 때문이다.
이형철이 남자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돌아섰다. 모습이 드러난 남자는 20대 초반처럼 보였다. 남자가 말했다.
“다들…. 왔나….”
클랜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네! 클랜장님!”
강우는 클랜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녀석이 클랜장이라고?’
클랜장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 보는데….”
이형철이 말했다.
“이번에 도와줄 집행자님입니다. 저번에 스밀로돈을 잡을 때도 도와줬던…….”
클랜장은 기억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아, 기억났다. 집행자. 오케이, 오케이….”
클랜장은 강우에게로 걸어왔다. 다른 클랜원들은 양옆으로 벌어져 자리를 만들었다. 클랜장이 강우를 올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이태민입니다.”
강우는 이태민의 손을 맞잡아 악수를 했다.
“아, 네. 집행자라고 불러주세요.”
강우는 이태민을 훑어봤다. 키는 170cm 정도, 체구는 60kg가 채 안 될 것처럼 말랐다. 햇볕을 안 쬐고 산 것처럼 하얀 피부였다.
‘정말 이런 녀석이 클랜장이라고? 나이도 어려 보이고…. 무투 클랜은 말 그대로 무투파 아니었나?’
이태민이 강우를 보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태민은 다시 이형철의 옆으로 돌아간 뒤, 입을 열었다.
“지금 후지산에서는 아주…. 매우 많이…. 다양한 몬스터들이 나오고 있어. 그 중에 제일 약한 게 이성 중급이었다.”
이태민의 말에 클랜원들이 웅성거렸다. 이태민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조를 나눌 건데…. 조마다 이성 중급 이상인 사람을 꼭 넣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또한 우리 클랜의 임무는 수색이야. 절대 사냥이 아니야. 때문에 몬스터를 발견하면 무사히 도망치는 걸 최우선 목표로 해.”
이형철이 말했다.
“다들 클랜장님 말 잘 들었지?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자리를 벗어나고, 나나 클랜장님에게 혹은 일본지점 클랜원들에게 알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된다! 지금부터 조를 나누겠다.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모이도록.”
이형철이 조원을 편성했다. 총 세 개의 조가 나뉘었고, 조에 편성되지 않은 채 남은 사람은 이현지와 강우뿐이었다. 이현지가 물었다.
“저는 아직 조를 배정받지 않았는데요.”
이형철이 말했다.
“집행자님과 너는 이성 상급이니 다른 조와는 달리, 두 명이서 임무를 수행한다.”
“네? 제가 왜요!”
“오히려 둘이서 움직이는 편이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일 거라는 판단에서 결정한 거니까 그대로 투입되도록 한다.”
이형철이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괜찮으시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형철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나는 클랜장님과 함께 수색이 아닌, 사냥에 나선다. 모두 명심해라. 최우선 목표는 수색 그리고 안전이다. 경우에 따라 사냥이 가능한 것들은 잡으면 좋지만, 조금도 무리해서는 안 된다. 알겠나?”
클랜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네, 알겠습니다!”
“끝으로 하이퍼타우로스를 발견하면 그 즉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다! 또한 하이퍼타우로스와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들 수색이 주임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그럼 각자 위치로 간다!”
이형철이 강우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심하시고요. 무리하게 사냥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저야 뭐,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형철은 이태민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시죠.”
이태민은 귀찮다는 듯 양손 깍지를 껴 팔을 쭉 피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에휴…. 그래, 가자.”
이태민과 이형철은 빠르게 후지산을 올랐다. 다른 클랜원들도 저마다 조를 지어 이동했다. 자리에 남은 것은 강우와 이현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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