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95화 (95/195)

95화

이근수가 말했다.

“여기 성수역 부근에 있는 커피숍인데, 올 수 있나?”

“그러죠.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강우는 전화를 끊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강우는 가방을 짊어진 채 수원에서 성수역까지 내달렸다.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 달리기에 빙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강우는 성수역 부근에 가서야 뛰는 것을 멈추고 걸음을 옮겼다. 이근수는 커피숍의 흡연부스 안에 앉아있었다. 이근수는 유리벽을 통해 강우를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강우가 들어서자 이근수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씩 웃었다. 안 본 사이 이근수의 금니는 하나 더 늘어나있었다.

이근수는 자신의 건너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지?”

강우는 의자를 빼 털썩 앉았다. 이근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커피 한 잔 할 텐가?”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도 한 잔 하지?”

“그럼…. 아메리카노 한 잔…….”

이근수는 강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따뜻한 거? 시원한 거?”

“아니, 제가 사와도 되는데….”

“아냐, 아냐. 내가 불러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앉아서 좀 쉬고 있어. 따뜻한 거? 차가운 거?”

강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럼 차가운 걸로….”

“금방 갔다올게.”

이근수는 흡연부스를 빠져나가 커피를 주문했다. 이근수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카운터 앞에 서있었다.

커피 한 잔을 기다리는 것치곤 시간이 더 지났다. 혼자 흡연부스 안에 남은 강우는 커피숍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몇몇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튀긴 튀는구만…. 그래도 이제 내가 누군지는 다 아는 것 같네.’

이근수가 흡연부스로 돌아왔다. 이근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크로크무슈를 들고 왔다. 이근수는 강우 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크로크무슈를 놓으며 말했다.

“출출할 것 같아서. 이것도 좀 먹어.”

“아, 네. 고맙습니다.”

강우는 크로크무슈를 한입 베어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근수는 강우가 먹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강우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보시죠?”

“아, 예전부터 궁금했거든. 그 모습으로 어떻게 먹는지.”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궁금해서 보자고 하신 건 아닐 테고…. 왜 보자고 하신 거죠?”

이근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이근수의 손에 명품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며 핑-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칙, 이근수가 부싯돌을 굴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근수는 연속으로 필터를 쭉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고를 반복했다. 이근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흡연부스 안에는 강우와 이근수 둘만이 있었다. 이근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일 모레 있을 경기 말인데….”

“네, 경기가 왜요?”

“흠……. 자네가 이번에 삼성 하급으로 대우를 받잖아?”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죠.”

“자네도 알다시피 김태호도 삼성 하급이야.”

“알고 있습니다.”

이근수는 담배를 뻑뻑 펴대다가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말씀하시죠.”

“김태호 그 친구가 이번에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지 않은가?”

강우는 이근수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있었다. 강우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얘기의 요점이 뭡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을 말씀해보세요.”

“나는 이번 경기에서 김태호 그 친구가 이겼으면 좋겠어.”

이근수는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해는 하지 마. 자네가 지길 원하는 건 아니야.”

“그게 그 말 아닙니까? 김태호가 이기길 바란다면서요. 그럼 내가 져야 될 거 아닙니까?”

이근수는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이근수는 담배를 뻑뻑 피며 말했다.

“김태호는 이번 경기에 많은 것이 달려 있어.”

“왜요, 이번에 지면 해외에 못 나가게 됩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몸값에는 많은 영향을 미치지.”

이근수는 담배를 한 번 더 깊게 빨아들인 뒤, 연기를 흘리듯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김태호는 F.N.C 선수로서만 활동해.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하지만 자네는 다르지 않은가? F.N.C에도 그냥 돈 벌려고, 심심풀이로 나온 거잖아. 몬스터 사냥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요?”

이근수는 담배를 비벼 끈 뒤, 두 눈을 부릅뜨고 강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이번에 김태호에게 져줘.”

강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되죠?”

이근수는 옆에 있던 가방을 강우의 옆으로 밀었다. 강우는 다리 옆에 있는 가방을 내려다본 뒤, 이근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1억이야.”

“1억이요?”

이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1억. 김태호에게 져주는 대가야. 다치거나 할 필요도 없어. 적당히 스파링을 하듯이 경기를 치르다가 적당히 지면 돼.”

“1억이라……. 글쎄요….”

“1억이면 충분한 돈 아니야?”

“김태호 선수가 해외로 진출했을 때 몸값이 정해지는 경기 아닙니까? 임팩트 있게 이겨야 몸값도 더 오르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런 중요한 경기인데 좀 더 쓰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근수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이근수는 고개를 수깅고 바닥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근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알았어. 그럼 1억 더 줄게. 그리고 대전료는 이긴 것과 똑같이 한 것에 네가 임팩트 있게 진다는 것을 가정해서 5억을 주지. 그 외 배팅에 관한 배당금도 따로 챙겨주고. 이만하면 괜찮지?”

강우는 이근수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지만, 일부러 뜸을 들였다. 이근수는 초조한 듯 또다시 담배를 펴댔다.

강우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근수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정말?”

“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강우는 이근수가 건넨 가방을 집어 들며 말했다.

“더 챙겨주실 1억에 대전료에 알파 붙여서 5억은 지금 주십쇼. 배당금은 당일 줄 수밖에 없겠지만요.”

“뭐? 네가 그걸 갖고 튀면 난 어떡하라고?”

“제가 튀겠습니까? 그날 배당금은 또 엄청날 거 아닙니까? 내가 그 꿀통을 버리고 갈 리가 없죠.”

이근수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 전부 달라는 건 좀 곤란한데….”

“각서라도 쓸까요?”

“각서가 무슨 소용이겠어? 어차피 법적으로 인정이 안 되는데. 오히려 조작경기를 했다는 증거만 남기는 거잖아.”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요.”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몸을 기댔다. 강우는 잠시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근수가 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어디 가려고?”

“저는 선불이 아니면 조작경기를 할 마음은 없거든요. 김태호나 저나 똑같은 삼성 하급이니 누가 이길지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태호가 이길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그냥 경기하는 걸로 하시죠.”

“뭐? 잠깐만…….”

강우는 이근수를 등지고 몸을 돌렸다. 강우는 흡연부스를 빠져나가기 전, 고개를 돌려 이근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 제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말이죠.”

강우가 흡연부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이근수가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만, 잠깐만. 앉아봐.”

강우는 흡연부스 문 앞에서 이근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왜 그러시죠?”

이근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민을 하다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무표정하게 이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근수는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탁, 치고 말했다.

“알았어. 좋아. 지금 6억을 바로 주겠어.”

강우는 발걸음을 옮겨 이근수의 건너편에 앉았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진작 그러시지….”

이근수는 검지를 세우며 두 눈을 부릅떴다.

“단, 시합내용은 확실히 해줘야 돼. 약간의 부상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임팩트 있는 경기를 보여줘야 된다고.”

“그거야 걱정하지 마시고요.”

“합만 잘 맞추면 다칠 일은 없을 거야. 김태호에게도 미리 말을 해둘 거니까. 그리고 내일 모레 오후 6시 전에는 대기실에 도착해있어야 돼. 알겠지?”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죠. 그럼…….”

강우는 주먹을 쥔 채 엄지와 검지를 비볐다.

“계산은?”

“조금만 기다려.”

이근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흡연부스를 나섰다. 이근수는 잠깐의 통화를 마친 뒤, 다시 흡연부스로 돌아왔다.

이근수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야.”

“그 정도야 문제없죠.”

강우와 이근수는 잠시 앉아서 커피를 홀짝였다. 이근수는 기다리는 내내 연신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열 번을 넘게 되풀이했다.

약 15분 후, 한 남자가 커다란 원통형 가방을 들고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뒤로는 두 명의 남자가 더 따라붙었다.

가방을 든 남자가 흡연부스 안으로 들어왔고, 두 명의 남자는 흡연부스 문 밖에서 기다렸다. 남자는 이근수의 옆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말씀하신 것, 가져왔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또 부르십쇼.”

이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바깥쪽으로 저었다.

“알았어, 알았어. 얼른 가봐.”

남자는 곧바로 흡연부스를 빠져나갔다. 세 남자는 커피숍 밖으로 나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근수는 원통형 가방을 강우에게 주며 말했다.

“6억이야.”

강우는 가방 지퍼를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10만 겔드권이 가득 차있었다. 강우는 이근수가 처음에 준 1억 겔드가 든 가방을 열었다. 강우는 1억 겔드도 원통형 가방에 모두 쏟아 부었다. 강우는 무투 클랜에서 받아온 가방과 이근수에게 받은 가방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계산 끝난 거 같네요.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이근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 참…. 어쨌든 내일 모레 늦지 말고 와. 그리고 내 자꾸 말해서 미안한데, 잘 좀 부탁해. 정말 중요한 경기거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근수는 반쯤 눕다시피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 먼저 가봐. 난 담배나 하나 더 피고 가려고.”

“내일 모레 보죠.”

강우는 양손에 가방을 든 채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커피숍 앞에는 아직도 이근수의 부하직원들이 서있었다.

세 남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둘. 강우는 좌우로 눈알을 굴리며 남자들을 쳐다봤다.

강우는 잠시 멈춰서 있다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왠지 모르게 등 뒤로도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강우는 몸을 뒤로 돌렸다. 세 남자는 여전히 강우에게 시선이 고정돼있었다. 강우는 세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

“나한테 무슨 볼일 있습니까?”

돈가방을 들고 왔던 남자가 강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강우는 좌우로 고개를 까딱였다.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뭔가 볼일이 있는 거 같은데…….”

강우는 세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뭐지? 분명히 이근수의 부하직원들인데…. 아직 경기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돈을 줬다가 다시 뺏으려고 하는 건 아닐 거고….’

강우는 언제든 가방을 손에서 놓으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우의 정면에 서있는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저기…….”

강우는 여차하면 돈가방을 쥔 채라도 신속하게 공격 혹은 방어를 위해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말씀하시죠.”

남자가 안쪽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강우의 시선은 남자의 손에 고정돼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남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며 말했다.

“팬입니다. 사인 좀…….”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수첩과 볼펜이었다. 강우는 허탈함과 함께 상황이 웃겨 웃음을 터트렸다.

============================ 작품 후기 ============================

조금 늦었습니다.

자정에 맞춰서 보시는 독자님들도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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