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64화 (164/195)

164화

도날드는 의자에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최후의 10인에 넣어달라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격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도날드는 팔짱을 낀 채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강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도날드와 눈을 마주쳤다. 도날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강우는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고, 도날드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담력은 제법이로구만. 십성급 예거들 중에서도 날 어려워하는 녀석들이 많은데 말이야.”

강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나요?”

도날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도날드는 강우와 눈을 마주치며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래도 어깨에 힘을 좀 뺄 필요는 있는 것 같은데…….”

강우와 도날드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긴장감을 죽 휘젓듯이 풀어버린 건 알리사였다.

“아빠! 우리 자기는 당연히 10대10에 가는 거지?”

강우는 당황하며 알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기?”

도날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손을 이마에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날드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네를 그냥 최후의 10인에 넣을 수는 없네.”

강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던 거 아닙니까?”

“보는 눈이 너무 많았어. 내가 자네를 그냥 꽂아주면 반발할 사람들이 많을 걸세. 특히…….”

도날드는 알리사를 힐끗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내 딸이 자네를 그렇게 꽂아주라고 했으니……. 누가 봐도 나와 알리사 덕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3대3에는 내보내주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경우가 다르지. 우선 목숨을 걸고 하는 결투였기에 다들 고려를 해야 되는 것이었으니까. 최후의 10인과 다르게 얻을 것도 없고 말이야.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저 예거 파티 소속의 예거들 중 하나가 내 명령에 의해 나갔겠지. 자네가 나간 것은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었지. 이미 제임스가 1승을 거둔 상태였으니, 부담도 적고, 예거 파티 소속이 아니기에 자네가 죽더라도 전력손실로 다가오지는 않았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마지막 경기는 내가 나가면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들을 하고 있었을 걸세.”

강우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날드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 자네 정도라면 충분히 최후의 10인에 꼽힐 것 같으니까. 상황도 상황인 만큼 시험도 한 가지 과정으로 줄일 거고 말이야.”

“어떤 시험이죠?”

“그건 공지를 통해 알릴 거니 기다리게.”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싸늘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솔직히 지금 결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도날드가 눈썹을 찡그리며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비꼬듯이 말했다.

“뭐, 제가 어쩌겠습니까? 실력으로 보여드려야겠죠.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도날드는 강우를 아니꼽다는 듯이 쳐다봤다. 강우는 그런 도날드의 시선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알리사는 강우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내일 봐.”

강우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귀찮게 시험이라니……. 그나저나 예거 파티 서열 1위의 딸이라……. 내 정체쯤이야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겠네.’

강우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도날드는 사무실에 알리사와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그래, 딸아. 할 말이란 게 뭐지?”

알리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나중에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지 말고 말해봐. 아빠한테 말 못할 게 어딨어?”

“나도 확인해볼 게 있어서 그래. 그건 나중에 얘기할게. 그나저나 다른 거 또 말할 게 있는데…….”

도날드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뭔데?”

“몬스터보호협회와 벌이는 10대10 결투에는 최후의 10인만 갈 수 있는 거지?”

도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외에는 아무도 못 간다.”

알리사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럼 나도 내일 시험 치를래.”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나도 최후의 10인에 들어가겠다고.”

도날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안 된다. 알리사, 이건 그냥 대련 같은 게 아니야. 목숨을 건 전쟁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 널 보낼 수는 없다.”

“아빠, 난 충분히 강해. 누구한테도 지지 않아.”

“넌 실전경험이 너무 부족해.”

“아빠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난 내일 시험을 치를 거야. 그리고 실력으로 증명하면 아빠도 별 수 없겠지.”

도날드는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이번 시험의 총괄자야. 내 권한으로 충분히 널 떨어트릴 수 있어.”

알리사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면 난 아빠를 평생 안 볼 거야.”

“알리사. 부탁이다.”

알리사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도날드를 바라봤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도날드는 타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 넌 힘을 가진지도 얼마 안 됐고, 나서는 걸 좋아하지도 않잖니. 그래서 예거 등록도 안 한 상태고. 집행자라는 놈 때문에 그러는 거냐?”

알리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아니, 오늘 처음 본 남자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리고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던 놈이야. 절대 너와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다.”

“내가 침대에 누워만 있을 때부터 계속 사랑해왔던 남자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알리사는 도날드가 말을 마치기도 전,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도날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머리가 아픈 듯이 손으로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우는 잠시 일행들을 만났다. 결국 시험을 치러야 된다는 소식에 일행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미츠하시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화를 냈다.

“아니, 그게 말이 돼? 그런 놈을 꺾어놨는데, 무슨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거야?”

안나가 말했다.

“뭐, 이해는 돼. 나도 얼마 전까지 예거 파티에 있었잖아.”

쿠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양새가 그럴 테지.”

강우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 스트레칭을 했다.

“시험 과정이 짧아졌다고 하니, 그거에 만족하는 수밖에.”

안나가 물었다.

“우린 뭘 하고 있으면 되지?”

강우가 말했다.

“너희는 이전에 말한 것처럼 계속 훈련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문자메시지 확인 잘하고.”

강우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였다.

“그 여자도 우리 클랜으로 받을 생각인 거야?”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쿠라마가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우는 속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능청을 떨었다.

“여자라니?”

“그 여자 말이야. 예거 파티 뉴욕지부장의 딸이라는 여자.”

미츠하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모델 같은 여자요?”

쿠라마가 눈썹을 찡그렸다.

“네 눈에는 그게 모델처럼 보여? 완전 미친년 같던데.”

안나가 말했다.

“솔직히 예쁘긴 했지.”

쿠라마가 눈을 흘겼다. 안나 역시 눈썹을 찡그렸다.

“솔직히 맞는 말이잖아. 나이도 어린 거 같고.”

강우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클랜에 들이는 기준의 첫 번째는 일단 강해야 돼.”

강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그 부분에서 알리사는 전혀 문제가 없긴 하지…….’

쿠라마가 물었다.

“그 여자 강해?”

미츠하시와 안나도 궁금한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이 녀석들 알리사가 싸우는 걸 못 봤구나.’

강우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건 너희들이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지.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여자가 클랜에 들어온다고 말한 적이 없어.”

쿠라마는 더 얘기를 하자고 강우를 불렀다. 하지만 강우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몸을 홱 돌려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미츠하시가 쿠라마의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

“어디가?”

쿠라마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크게 소리쳤다.

“훈련하러!”

미츠하시와 안나, 핫도그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어쩌겠냐는 듯이 한숨을 내쉰 뒤, 쿠라마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이었다.

최후의 10인을 뽑는 시험, 예거 파티 측에서는 응시자 숫자를 대폭 감소시켰다.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예거 파티 내규에 따라 선별된 인원만 시험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우선적으로 구성급 미만은 모두 탈락되셨습니다.-강우는 구성급 몬스터가드 아키라를 물리쳤기에 선별 인원에 속했다.

선별 인원들은 총 211명.

이들은 미국 할렘가로 이동하게 됐다.

시험의 내용은 단순했다. 할렘가에서 하루 지내기.

도날드를 제외한 예거 파티 소속 십성급 예거 네 명이 곳곳에서 상황을 지켜볼 것이고, 선별 인원들은 특수제작 초소형 카메라를 모두 가슴에 부착했다.

몇몇 응시생들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도날드는 “판단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그저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된다.”라고 말했다.

오후1시, 시험 시작. 시험 종료는 다음 날 오후 1시 이전.

종료시간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이 말의 뜻은 1분만에도 시험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선별 인원들은 다소 혼란스러워했다. 몇몇 선별 인원들은 자신만의 답을 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강우 역시 아무런 긴장감도 가지지 않았다.

‘뭐, 어쩌라는 거지? 여기서 몬스터라도 나오나? 카메라를 착용했으니까 힘 쓰는 걸 보여주면 되나?’

강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통제구역으로 넘어가있는 것이 확실했다. 주변에 일반인은 한 명도 없었다.

‘뭐가 나와도 나올 거란 말인데…….’

“헉!”

누군가 뒤에서 강우를 덮쳤다. 강우는 황급히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며 몸을 돌렸다.

“잠깐, 잠깐! 나야!”

알리사가 허리를 끌어안은 채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주먹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뭐야……. 너였어?”

알리사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별로 안 반가운 거 같네.”

“아니, 그냥 깜짝 놀라서 그렇지.”

강우는 문득 정신이 들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데 너도 이번 최후의 10인에 도전하는 거야?”

알리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꼭 붙을 거야.”

강우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는 어차피 아버지가 예거 파티 뉴욕지부장인데 이런 거 안 해도 되지 않아?”

“해야 돼. 그리고 난 예거로 등록도 안 했으니까.”

“그래?”

알리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등록을 할 필요도 없어졌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알리사는 아차 싶은 듯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강우는 굳이 더 물어보지 않았다. 강우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 시험은 대체 뭐하는 거야?”

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알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들 여기저기 흩어지기는 했는데…….”

알리사는 자신도 모른다는 듯이 양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아빠가 딸한테 그런 말도 안 해줘? 위험할 수도 있잖아.”

강우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떠올렸다.

‘하긴, 내 부모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 그냥 생활비만 보내주면서, 얼굴 한 번 안 보고 살았었던……. 뭐, 생활비라도 보내줬으니 나름 부모로서 역할을 다 한 건가?’

알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이번 최후의 10인에 참가하는 걸 싫어했거든.”

“그런데 넌 왜 하는 거야? 그리고 네 아빠가 널 충분히 떨어트릴 수도 있잖아.”

“아마 그러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하면 두 번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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