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78화 (178/195)

178화

강우는 잠시 제임스와 눈을 마주치다가 피식 웃었다.

“알았다.”

강우는 린첸과 제임스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뭐, 확실히 너희는 전력에 큰 보탬이 될 거 같아. 이렇게 높은 등급으로만 이뤄진 클랜도 드물 거야. 어느 정도 믿음도 가고…….”

강우가 두 눈을 번뜩였다.

갑작스레 검은색 힘이 강우의 얼굴을 뒤덮었고, 마치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집행자의 모습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클랜에 들어올 때는 따지는 것들이 있지만, 나갈 때는 자유롭다. 굳이 나가겠다는 녀석을 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배신하는 녀석은 반드시 죽인다. 두 번 다시 쿠라마 때와 같은 일은 생기지 않아.”

린첸이 따지듯이 말했다.

“왜 그 여자와 차별대우를 하는 거지?”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물어보는 건 배신할 거란 말이냐?”

알리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린첸의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

강우가 알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넌 빠져있어.”

강우의 한마디에 알리사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강우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말 잘 듣네. 좋아.’

강우는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답해.”

린첸은 눈썹을 찡그린 채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난 여기에 소속되지 않으면, 따로 연결된 클랜이나 어떠한 사람도 없어. 단지 왜 그 여자만 특별대우를 해줬었냐는 말이지.”

“어느 정도 내 책임도 있는 부분이었고, 그 자리에서 쿠라마를 죽일 거라면, 도날드도 죽여야 됐기 때문이지.”

강우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아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빠득!

핫도그가 등갈비를 씹어 먹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핫도그에게로 쏠렸다. 핫도그는 뼈를 씹다가 눈치를 살폈다. 이내 핫도그는 등갈비를 통째로 꿀꺽 삼켰다.

강우는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도날드와 쿠라마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다른 이유는 후에도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알리사가 부탁한 탓도 있지만, 이미 예거 파티는 주축 멤버들이 대부분 죽거나 빠져나와서 약화된 상태야. 에스카를 견제하는 것도 힘들 거야. 쿠라마의 경우 기껏해야 무투 클랜일 텐데, 대변혁이 일어나기 전에나 조금 세력이 큰 편이었지, 그 이후로는 약해빠진 클랜이야. 대부분 사라진 상태고.”

강우의 말에 다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우는 허공에 시선을 두며 중얼거렸다.

“뭐, 내가 모르는 다른 것들이 있어서 예상이 빗나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없길 바라야지.”

알리사가 강우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 팔짱을 꼈다. 강우가 알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알리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고마워.”

“갑자기 뭐가 고마워?”

“그냥……. 나도 그렇고, 모두 믿어주면서 클랜에 받아준 것도 그렇고, 아빠를 죽이지 않은 거도 그렇고……. 다 고마워.”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두는데, 다음은 없어. 만약 도날드를 적으로서 마주치게 된다면, 그땐 망설임 없이 죽일 거다. 쿠라마도 마찬가지고.”

알리사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자코 듣고 있던 미츠하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쿠라마 누님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안나는 나이프로 팬케이크를 썰면서 말했다.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싸우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을 거야.”

린첸이 말했다.

“나도 도날드와 맞붙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아.”

식사를 마친 제임스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음료를 홀짝거리다가 말했다.

“나는 아가씨에게 위협이 되는 자는 그게 누구든지 맞서 싸운다.”

안나가 물었다.

“너는 알리사를 좋아하는 거야?”

“좋아한다.”

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런데도 괜찮아? 알리사는 클랜장에게 푹 빠져있는데.”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딸이나 여동생 같은 느낌이지.”

“그런데 왜 그렇게 깍듯해?”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지금 와서 아가씨를 부르는 호칭이나 말투를 바꿀 생각은 없다.”

강우가 알리사에게 물었다.

“너는 어쩔 거지?”

“뭐를?”

“도날드와 우리가 싸우게 된다면 말이야.”

알리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아빠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해. 네가 충분한 경고도 했고. 만약 그러고도 맞붙게 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 내 손으로 직접 공격하지는 못해도, 다른 능력자들은 내가 맡을 거야. 그리고 아빠를 죽인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을 거고.”

강우는 알리사의 답변이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클랜 엑시큐션(집행)이 더 강해지며, 결속력을 다지는 순간이었다.

강우가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클랜원을 세 명 정도는 더 모으고 싶은데.”

미츠하시가 물었다.

“생각해둔 사람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을 가진 능력자들을 모으고 싶어.”

알리사가 물었다.

“왜 하필이면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이야?”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색깔별로 다 모이는 거니까?”

강우의 말에 다들 눈썹을 찡그리는 등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강우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냥 해본 소리야. 다들 너무 그러지 마.”

강우는 알리사의 목에 팔을 걸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색깔마다 모을 생각이었으면, 알리사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린첸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애초에 색깔로 구분 지어서 모으려던 것 자체가…….”

린첸이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식당 바깥쪽에서 콰앙, 하고 굉음이 울렸다. 식탁 위의 그릇들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꽤 멀리서 들려온 소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우 일행들은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 바깥쪽을 살폈다. 강렬한 주황빛이 번쩍였고,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것은 강우 일행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와장창창, 콰아아아앙-!

날아온 남자는 창문을 뚫고, 테이블을 부순 뒤, 가게의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식당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몇은 곧바로 식당에서 벗어나 줄행랑을 쳤다.

강우 일행은 좌우로 갈라져서 남자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안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뭐야,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야?”

미츠하시가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이봐, 괜찮아?”

남자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끄으…….”하고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미츠하시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상황이야? 뭔데?”

남자는 힘겹게 오른팔을 들었다. 남자는 검지를 세워 전방을 가리켰다.

“헝……. 헝거…….”

남자는 말을 마치고 다시 팔을 툭 떨어트렸다. 남자는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린첸이 전신에서 주황빛을 뿜어냈다.

스트레치 클로(stretch claw).

린첸의 양쪽 손등 위로는 기다란 세 개의 삐죽한 주황빛 칼날이 서있었다. 칼날은 약 40cm 정도였다. 린첸은 남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강우가 린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어디 가려는 거야?”

린첸이 다급하게 말했다.

“뭐하는 거야?”

“어디 가는 거냐고.”

“헝거래잖아. 당연히 놈을 잡으러 가야지.”

강우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왜?”

린첸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우리가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니잖아. 헝거는 일반 몬스터와는 달라. 돈이 되지도 않아. 굳이 우리가 가지 않아도 의뢰를 받은 예거 파티나 클랜 측에서 해결할 거다.”

린첸은 벽에 처박힌 채 숨이 끊어진 남자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뢰를 받은 사람이 저렇게 된 거잖아! 넌 버블 존에 접근할 거라며! 세상에 있는 모든 위협들을 제거하려는 거 아니었어?”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무엇보다 우린 자선단체가 아니라고. 저런 것들까지 우리가 일일이 다 없앨 필요는 없어.”

린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럴 필요가 있어.”

린첸은 강우를 지나쳐 남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강우는 미간을 찡그린 채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강우 일행들은 린첸의 뒤를 따랐다.

린첸이 직선으로 달려가던 중이었다. 하늘까지 닿을 듯 주황빛이 기다랗게 용솟았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주황빛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만나보는 헝거.

헝거들이나 하터들은 저마다 모두 모습이 다르다. 몬스터에 더 가까울 수도, 인간에 더 가까울 수도 있었다. 그나마 일반 몬스터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면, 인간의 형상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린첸 앞에 있는 헝거는 인간의 형태에 가까웠다. 전신은 진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갑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갑옷의 표면은 거칠어 보였다. 양손에는 두 개의 손가락밖에 없었고, 얼굴은 눈, 코, 입이 없었다. 얼굴은 중앙에 세로로 선이 그어져있었고, 전체에는 일정하게 빗금이 가있어 가면을 쓴 것 같은 모양이었다.

린첸이 헝거와 50m 이내의 거리에 들어섰다. 헝거가 하늘을 향해 “우오오오오오오오오-!”하고 괴성을 질렀다. 린첸은 양손의 클로를 내세워 헝거에게 달려들었다.

텅-!

린첸이 왼손을 휘둘렀고, 헝거는 오른팔로 클로를 튕겨냈다. 린첸은 곧바로 오른손을 뻗어 헝거의 가슴 중앙을 노렸다.

푹-!

린첸의 클로는 헝거의 가슴을 불과 2cm 내외밖에 파고들지 못했다. 린첸은 두 눈을 번뜩였다.

‘안 박혀?’

스트레치 클로.

린첸의 클로가 3m 이상으로 늘어났다.

타탁.

린첸은 믿을 수가 없다는 눈으로 헝거를 쳐다봤다. 클로는 헝거의 가슴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클로의 길이가 늘어나며 린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헝거가 “그오오오오오-!”하고 괴성을 지르며 얼굴을 린첸의 방향으로 들이밀었다. 그 순간 헝거의 안면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안쪽은 시뻘건 피가 잔뜩 머금어져있었고, 선홍색의 근육들이 뭉쳐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시뻘건 화산 분화구 같은 것이 솟아있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헝거의 안면에서 주황빛 에너지파가 뿜어져 나왔다. 린첸은 직감적으로 이 공격에 식당 안으로 날아든 남자가 죽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린첸이 양손을 모아 전방으로 뻗었다. 두 손목이 맞닿은 상태서 왼손은 위로, 오른손은 아래를 향했다.

파앙-!

린첸의 양손에 주황빛 부채 두 개가 쥐어져있었다.

백학량시(白鶴亮翅). (학이 날개를 핀 형상)린첸은 왼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부채를 든 양손을 X자로 교차시키며 전방으로 뻗었다.

파아앙!

헝거가 뿜어낸 주황빛 에너지파가 튕겨져 되돌아갔다.

퍼어어어어어어엉-!

헝거의 몸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린첸의 뒤에 도착한 강우 일행도 모두 볼 수 있었다. 헝거는 “크오, 오오…….”하며 앞뒤로 흔들거렸다.

털썩.

헝거는 앞으로 고꾸라진 뒤, 움직임이 없었다. 강우 일행은 천천히 헝거에게로 다가갔다. 강우가 헝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헝거인가?”

미츠하시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뭐 이렇게 생겼어? 진짜 뭐 같이 생겼네…….”

안나가 말했다.

“이게 진짜 인간이었던 건가…….”

제임스가 눈썹을 찡그린 채 나지막이 말했다.

“이상한 일이야. 왜 헝거가 이런 곳에서 돌아다니는 거지?”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이전에 진행된 내용에서 많은 분들이 안 좋아하시는...

일단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모두 계획된 플롯 안에서 진행되는 내용이고요.

나름의 이유들이 있는 진행입니다.

일단 연재 호흡에서 제가 답답함을 유발했으니, 저의 부족함이죠.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거듭할수록 더 재밌고,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쭉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신작 '소시오패스 : 두 개의 삶'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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