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강우 일행은 헝거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우가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쨌든 너는 이제 끝이야.”
“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녀석은 필요 없어. 그럴 거면 너 혼자 행동해라.”
강우의 말에 린첸뿐만 아니라, 다른 클랜원들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츠하시가 강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형님, 그래도 그건 좀 너무 심하지 않나…….”
강우가 미간을 찡그린 채 눈을 흘겼고, 미츠하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리사가 강우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 말했다.
“린첸은 우리에게 큰 전력이 될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버리지 마. 린첸은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예거 파티에 들어온 사람이야. 그래서 그랬던 거야. 이해해줘.”
강우는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나쁘단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클랜과 함께 움직일 때는 내 말을 들어야 돼. 적어도 상의를 좀 더 해볼 수 있던 거잖아.”
린첸은 아무 대답도 않은 채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결코 도전적이거나 불만을 품은 눈빛은 아니었다.
강우는 린첸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너의 경우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예거들 중 하나였으니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이번 행동은 너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단순히 누구를 돕자, 돕지 말자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야.”
강우의 말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금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린첸은 십성급의 능력자, 그리고 나머지 클랜원들 역시 어디에 가도 빠지지 않을 힘을 갖고 있었다.
강우가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저 헝거, 강했지?”
린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적어도 구성급이었어. 내가 아니었다면, 웬만한 능력자들이 상대했더라면, 여러 사람들이 죽었을 수도…….”
강우가 린첸의 말허리를 잘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 생각해봐. 저 헝거가 몬스터의 심장을 먹기 전에도 구성급이었을까?”
“아니었겠지.”
“그래, 그거야. 몬스터의 심장을 먹으면 무조건적으로 더 강해지는 건 확실한 얘기지. 능력이 없던 사람도 능력이 생기거나 엄청나게 강해지기도 할 정도니까…….”
강우는 알리사를 흘낏 쳐다봤다. 강우는 다시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몬스터의 심장을 여러 번 먹은 이들도 있을 거다.”
알리사가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강우의 말은 이랬다. 몬스터의 심장으로 인해 헝거나 하터가 되는 경우는 최소 팔성에서 구성급 이상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특히 원래 상위급에 속하던 능력자가 더 강해지기 위해 몬스터의 심장을 먹었을 경우, 십성급, 그 어떤 몬스터나 능력자보다도 강한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강우가 말했다.
“만약 네가 상대한 헝거가 그런 놈이었다면 어쩔 뻔 했어?”
린첸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신 그런 일 없도록 할게.”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됐어.”
안나가 말했다.
“어쨌든…….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그 버블 존이라는 곳으로 가는 건가?”
“일단 그래야지. 아마 버블 존 주위는 에스카가 점령하고 있을 거다. 며칠 내로 예거 파티도 그쪽으로 향하겠지.”
미츠하시가 물었다.
“그쪽으로 가서 뭐하는 게 우리 목적이야?”
린첸이 말했다.
“당연히 그 버블 존을 막아야지. 거기서 몬스터가 나오잖아.”
강우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그쪽으로 가자고.”
강우 일행은 버블 존과 가까운 괌으로 향했다.
강우 일행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우선은 비행기를 빌리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며 이곳저곳과 연락을 취했다.
조금 이상한 점, 그저 길을 가는 중인데 몬스터들의 출몰이 잦았다. 우연히 몬스터와 맞닥뜨리는 일은 지금 이 세상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달랐다.
일성부터 칠성, 팔성에 달하는 몬스터까지 수 키로미터마다 나타났다. 강우는 눈앞의 몬스터를 주먹을 휘둘러 터트리며 생각했다.
‘뭔가 이상해.’
얼마 지나지 않아 끝없이 나타나던 몬스터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미츠하시가 미간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대체 뭐였지? 마치 몬스터를 모아놓은 것처럼…….”
알리사가 휴대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꼭 그런 거 같지는 않아.”
인터넷, 현재 세상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갑작스레 급증한 몬스터의 숫자 그리고 헝거들이 난무했다.
안나가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마치 세상이 멸망하려는 것처럼…….”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적어도 헝거들은 왜 그런지 알겠어. 이해할 수는 없지만.”
헝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에스카에서 뿌린 몬스터의 심장요리 덕분이었다. 에스카는 무슨 목적에서인지 몬스터의 심장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 물론, 무료라 하더라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몬스터의 심장을 무턱대고 먹는 사람들만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몬스터의 심장 말고는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안나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걸고 몬스터의 심장을 먹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알리사가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있어.”
강우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얼른 에스카의 본부가 있는 버블 존으로 가자. 몬스터까지 말도 안 되게 늘어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몬스터의 심장을 먹을 리가 없어.”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강우 일행은 서둘러 버블 존으로 향했다.
강우 일행이 공항을 수 키로미터 남겨뒀을 때였다. 공항 주변에도 헝거들과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리고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헝거들과 몬스터들이 싸우고 있었다. 헝거들과 몬스터들의 힘의 차이는 극명했다. 많은 몬스터들 중 거대한 놈 하나가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놈이 몸을 휘두를 때마다 헝거들과 몬스터들이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처럼 날아갔다.
놈은 십성급의 몬스터 오로치였다. 오로치는 일본의 옛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머리가 여덟 개에 꼬리도 여덟 개로 갈라져 있었다. 각 몸의 길이만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였다.
몸 전체, 등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있고, 눈은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었으며, 입에서는 붉은빛을 머금은 독기를 토해냈다. 오로치는 현재까지 발견된 십성급 몬스터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력한 놈이었다.
주변에 있는 팔성과 구성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오로치의 몸짓 한 번에 즉사 혹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몇몇 헝거들이 오로치에게 달려들기도 했지만, 꼬리에 쳐내지거나, 붉은빛을 머금은 독기에 녹아내렸다.
일행들은 멀리서 오로치를 올려다보며 두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미츠하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이거야 말로 진짜 괴물이구만…….”
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저런 걸 상대하는 건 무리야.”
린첸은 헛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내겐 저런 걸 베어낼 수 있는 무기는 없는 거 같은데 말이지…….”
제임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건 우리 숫자로 상대하기는 무리, 그냥 돌아가는 게 낫겠어.”
알리사는 눈썹을 찡그린 채 오로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오로치에게 쏠려있을 때였다. 강우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네 마리의 헝거들이었다.
그 헝거들은 전부 보랏빛을 뿜어냈는데, 이미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신은 자주색이었고, 두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얼굴의 전체적인 느낌은 해골바가지 같았는데, 아래턱이 없었는 대신 위턱이 발달해 길었고, 상어의 것과 같은 이빨이 길게 내려왔다.
몸 여기저기에는 가시가 솟아있었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배 중앙에 구멍이 나있었다. 그 구멍 주변으로는 이빨과 같이 삐죽한 가시들이 돋아나있었다.
네 마리의 헝거들은 다른 헝거나 몬스터와는 다르게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몰려다녔다. 노리는 것은 몬스터들의 시체였다. 헝거들은 훼손이 덜 된 몬스터들의 시체로 접근해 심장을 파먹었다. 어떤 놈은 양손으로 심장을 집어든 뒤, 위턱에 달린 이빨을 이용했다. 강판에 갈 듯이 심장을 긁어댔고, 그 즙을 꿀꺽꿀꺽 삼켰다.
어떤 놈은 몸 한 가운데 난 구멍으로 심장을 집어넣으면, 구멍이 마치 거대한 입처럼 오물거리며 삼켰다. 심장을 먹고 난 뒤의 헝거들은 더욱 강렬한 보랏빛을 뿜어냈다. 헝거 두 놈이 심장 하나를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헝거 하나가 오른손을 휘둘러 다른 헝거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맞은 헝거의 머리통이 힘없이 떨어져나갔다. 머리가 떨어져나간 헝거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른손으로 후려친 헝거가 머리가 떨어져나간 헝거에게 달려들었다.
턱.
머리가 떨어져나간 헝거가 양손을 뻗어 달려드는 헝거를 붙들었다.
콰자자자작-!
붙들린 헝거의 몸이 머리가 떨어져나간 헝거의 몸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기분쇄기에 갈아 넣는 것처럼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점점 사라졌고, 헝거는 쉬지 않고 괴성을 질러댔다.
다른 헝거를 먹어치운 헝거는 몸집이 두 배 이상 커져있었다. 사라졌던 머리도 다시 돋아나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위턱과 아래턱 모두 가지고 있었다.
흡수를 마친 헝거는 나머지 두 헝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두 헝거는 커다래진 놈의 눈치를 살피다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콰아아앙-!
커다란 헝거가 도망치는 두 놈을 붙들었다. 왼손에 잡힌 헝거는 입으로 뜯어먹었고, 오른손에 잡힌 헝거는 몸 가운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득, 쿠드득, 콰직, 빠작, 빠자자작.
네 마리의 헝거가 하나로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가 된 헝거는 일반적인 사람과 비슷한 크기에서 5m 이상의 키에 커다란 덩치로 변해있었다. 얼굴의 형태도 바뀌어있었다. 인간의 해골과 비슷했던 두상은 앞과 뒤로 길어져있었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간 흔적만 남아있었다. 커다란 입은 언제나 벌어져있었고, 수많은 이빨은 입천장과 혓바닥 아래까지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래진 헝거는 몬스터들의 심장은 물론, 다른 헝거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다녔다. 강우는 미간을 찡그린 채 헝거를 쳐다봤다.
‘미친……. 어디서 저런 게……. 오로치가 문제가 아니다. 저거부터 죽여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우 일행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로치는 주변의 몬스터들과 헝거들을 죽이고, 강우 일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임스가 소리쳤다.
“우리끼리 이놈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도망쳐야 돼!”
린첸이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말했다.
“하지만 이런 무지막지한 놈을 그냥 놔둘 순…….”
안나가 소리쳤다.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아마 예거 파티나 클랜에서 분명히 올 거야. 그전까지는 피해있는 게 맞아!”
미츠하시는 오로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제길……. 너무 크잖아.”
알리사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할 거야?”
강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일행들은 모두 ‘무슨 말을 하는 거지?’란 생각을 하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오로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저 녀석이 우리를 그냥 보내줄 것 같아? 저건 못 따돌려. 몇 명이 남아서 시간을 벌어준다면 모를까, 전부 무사하게 도망치는 건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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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리겠습니다.
예거 2부는 최대한 빠르게 완결까지 달릴 생각입니다.
3부에 관한 것은 차후 공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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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적.
멸망의 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