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이태민은 하얀 늑대의 간격, 3m 이내로 들어섰을 때 몸을 비틀며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팡!
이태민은 몸을 날리듯이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지만, 하얀 늑대는 왼손으로 가볍게 쳐냈다. 이태민은 주먹이 쳐내진 방향으로 회전해 그대로 뒤돌려차기를 했다.
텅-!
하얀 늑대고 오른발로 이태민의 왼쪽 다리를 걷어찼다. 왼쪽 다리 일부분이 사라져버렸고, 남은 부분이 잘려나가 바닥을 굴렀다. 이태민은 남은 오른쪽 다리 하나로도 몸을 지탱한 채 다시 왼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파파팡!
하얀 늑대가 세 번의 타격을 가했고, 이태민의 양팔과 남은 오른쪽 다리마저 잘려나갔다. 이태민은 몸통만 남은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쿠라마가 황급히 막아서려 했지만, 하얀 늑대가 손에서 하얀빛의 에너지파를 뿜어내 이태민을 소멸시켰다.
쿠라마는 이를 갈며 분노에 찬 눈으로 하얀 늑대를 노려봤다. 하얀 늑대는 쿠라마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얀 늑대와 강우는 똑같은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단 둘밖에 남지 않은 하터, 쿠라마와 또 다른 하터, 그 또 다른 놈이었다. 하터는 죽은 하터들을 헤집고 다녔다. 시체들에게서 심장을 꺼내 먹고 있는 것이었다.
강우는 하터를 공격하려 했다.
‘지금 죽여야 된다. 계속 놔두면 골치 아파져.’
하터는 심장을 먹으며 몸이 변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과 별 다를 바 없던 몸은 여기저기가 뒤틀리며 커지고 있었다. 강우가 발뒤꿈치를 들고 튀어나가기 직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디선가 굵은 한 줄기 은색 빛이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하터를 내리찍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곳에 시선이 집중돼있었다.
하터는 몸 절반 이상이 찢겨나간 채 바닥을 뒹굴었다. 하터는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은색 빛이 다시 빠르게 튀어올라 하터를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하터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퍼졌다. 오른팔과 가슴 일부분, 머리만 남은 하터는 그 상태로도 목숨이 붙어있었다. 하터는 꿈틀거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파앙-!
하얀 늑대가 손을 뻗어 하얀빛으로 하터를 소멸시켰다.
“바퀴벌레가 진화한 것 같네.”
어디선가 날아온 은색 빛은 하얀 늑대가 길들인 몬스터, 다이어 울프였다. 강우의 핫도그가 일반 헬하운드와 달랐던 것처럼 하얀 늑대의 다이어 울프 역시 달랐다.
일반적인 다이어 울프는 몸길이 4m 내외, 체중 400kg 내외에 연한 회색빛 털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하얀 늑대의 다이어 울프는 몸길이 최소 5m 이상, 체중 700kg 이상에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목의 갈기 또한 사방으로 뻗쳐 은색 불꽃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은빛 두 눈은 희미하게 동공과 홍채의 흔적만 있어 눈동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얀 늑대는 마츠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네 차례다.”
마츠모토는 “웃기지 마-!”하고 소리치며 무지갯빛을 강렬하게 뿜어냈다. 마츠모토는 씩씩거리며 쿠라마에게 말했다.
“네가 다이어 울프를 맡아. 내가 하얀 늑대를, 여기서 잡는다.”
쿠라마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전신에서 주황빛과 붉은빛을 뿜어냈다. 격돌 직전, 마츠모토가 무지갯빛을 최대치로 뿜어낼 때였다.
터텅!
하얀 늑대가 순식간에 쿠라마의 앞으로 다가섰다.
우선 쿠라마를 없애 숫자를 줄이려는 하얀 늑대의 선택이었다. 하얀 늑대는 자신 혼자서도 마츠모토와 쿠라마 둘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코 그 승부에 변수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기습으로 간단하게 목숨을 앗는 것, 최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단지 보다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한, 보다 쉬운 길을 택함이었다.
하얀 늑대의 양손이 하얗게 빛났다.
팡-!
쿠구구구구구구구궁-!
뒤로 튕겨나간 것은 하얀 늑대였다. 양발은 바닥을 갉으며 쭉 미끄러졌다. 하얀 늑대는 웅크렸던 몸을 피고, 고개를 들며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짓이냐?”
하얀 늑대가 쿠라마를 공격하기 직전, 앞을 막아선 것은 강우였다. 강우는 아무 대답도 않은 채 두 눈을 번뜩이며 하얀 늑대를 노려봤다. 하얀 늑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너하고 지금 바로 붙을 생각은 없었는데……. 뭐, 어차피 붙을 운명이지만…….”
강우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내 클랜원을 그냥 죽게 놔두지 않았을 뿐이다.”
강우의 뒤에 서있던 쿠라마가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대체 뭐하는 거야?”
강우는 쿠라마를 흘깃 쳐다본 뒤, 다시 하얀 늑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한 번 내 클랜원이었으면 마음대로 못 죽는다. 죽여도 내가 죽여.”
쿠라마는 강우의 뒤에 선 채 어찌할 바 몰랐다. 그러고 있는 사이, 마츠모토가 보이지 않았다. 하얀 늑대는 주변을 경계하며 마츠모토를 찾았다.
“이거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됐어.”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마츠모토가 무지갯빛을 전신에 두른 채 씩 웃고 있었다. 양발 아래로는 보랏빛이 감돌아 몸을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마츠모토는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강우를 힐끗 보며 말했다.
“대신 너는 이따가 고통 없이 죽여주지.”
마츠모토가 하얀 늑대에게로 양손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무지갯빛 에너지파가 소용돌이치며 하얀 늑대를 향해 날아갔다. 하얀 늑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에너지파를 보며 “방심했네……. 그런데 고작 이건가…….”라고 중얼거렸다.
퍼어어어어어엉-! 콰쾅, 콰콰콰쾅-!
굉음이 울렸고, 마츠모토의 에너지파는 하터들의 시체와 에스카 시설 일부를 모두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마츠모토는 씩 웃으며 말했다.
“병신 새끼! 죽였다! 내가 하얀 늑대를…….”
마츠모토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단하기는 너무 이른 거 아닌가?”
마츠모토는 황급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늑대가 뒤에서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터어어엉-!
하얀 늑대가 오른손을 수직으로 휘둘렀고, 마츠모토는 황급히 양팔을 들어 막아냈다. 마츠모토는 뒤로 멀리 날아가 바다에 빠졌다.
퍼엉-!
마츠모토는 곧바로 바다에서 튀어나와 자신이 날려보내진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하얀 늑대는 이미 바닥에 내려와 마츠모토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디를 가는 거지?”
마츠모토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 하얀 늑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죽인다-!”
마츠모토의 전신이 무지갯빛 회오리로 휘감겼다. 마츠모토는 그대로 하얀 늑대를 향해 돌진했다.
터엉-!
마츠모토의 옆으로 튕기며 방향이 틀어졌다. 다이어 울프가 입에서 바람을 뿜어내 마츠모토를 공격한 것이다. 마츠모토는 “저 개새끼가-!”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제 그만 끝내지.”
턱.
하얀 늑대가 마츠모토의 목을 붙들었다. 마츠모토는 전신의 회오리를 거세게 일으켰지만, 하얀 늑대는 눈 하나 깜빡 않았다.
우두둑-!
마츠모토의 목이 부러졌다.
뚜둑, 끼긱, 끼기긱.
마츠모토는 곧바로 목뼈를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콰득!
마츠모토의 목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부러져 고개가 뒤로 완전히 젖혀져 덜렁거렸다. 하얀 늑대의 손아귀에 쥐어진 목은 휴지심 정도로 얇아져있었다. 하얀 늑대의 손에서 하얀빛이 번쩍였다.
퍼어어어엉-!
하얀 늑대는 하얀빛과 함께 마츠모토를 집어던졌다. 마츠모토는 하얀빛과 함께 멀리 날아가 바다에 빠졌다. 마츠모토가 바다에 빠지기 전 머리는 물론, 몸 여기저기가 뜯겨나가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하얀 늑대는 도날드 일행과 클랜 집행, 강우를 훑어봤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도날드 일행들 중 서있는 것은 셋, 도날드와 존슨, 헬러뿐이었다. 따라왔던 예거들은 이미 하터들에게 모두 당해있었다.
쿠라마가 강우를 밀쳐내며 말했다.
“비켜. 내가 저 놈을 칠 거니까.”
“저 녀석과는 왜 싸우려고 하는데?”
“이태민을 죽였으니까.”
강우는 쿠라마의 양 어깨를 잡았다. 강우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몸을 만지는 것 같지 않은 느낌에 흠칫 놀랐지만, 곧바로 쿠라마와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똑바로 들어. 네가 강해진 건 알겠어. 하지만 저 녀석한테는 3초도 못 버틸 거다. 고집부리지 말고, 클랜원들에게로 가있어.”
쿠라마는 강우의 기백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클랜원들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나와 미츠하시는 얼른 오라는 듯한 눈빛으로 쿠라마를 바라봤다. 쿠라마와 알리사의 두 눈이 마주쳤다. 쿠라마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싫어!”
강우는 숨결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하고 눈을 마주쳤다.
“그럼 혼자서라도 뒤에 가있어.”
쿠라마는 일순 두근거림을 느꼈다. 아직도 강우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하터가 됐을 때, 감정의 증폭, 그것은 사랑마저 더욱 증폭시켰다. 쿠라마는 아무 말도 않은 채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강우는 쿠라마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하얀 늑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얀 늑대는 강우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와 나는 처음부터…….”
하얀 늑대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샷건.
퍼어어어엉-!
헬러가 붉은빛을 잔뜩 머금은 주먹을 휘둘러 하얀 늑대를 공격했다.
“일단 이놈부터 잡으면 되겠네!”
헬러가 일으킨 폭발에 하얀 늑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헬러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곧바로 왼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샷건.
퍼어어어엉-!
다시 한 번 붉은빛의 폭발이 거세게 일었다.
텅!
하얀 늑대가 붉은빛의 폭발을 뚫고 헬러에게로 뛰쳐나왔다. 헬러는 입가에 씩 미소를 머금었다.
헬러의 비기, 뉴클리어 밤(nuclear bomb).
헬러가 양 주먹을 맞부딪쳤고, 두 주먹 사이에서 작은 핵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붉은빛의 버섯구름이 생겨났다.
헬러가 양 주먹을 뒤로 당기고 하얀 늑대에게 휘두르기 직전이었다.
텅-!
헬러의 옆쪽을 향해 뛰어가던 존슨이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헬러가 존슨에게로 시선을 옮기려 할 때였다.
콰직-!
다이어 울프가 헬러의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었다. 헬러의 오른쪽 다리뼈가 으스러지며 균형이 무너졌다.
“크윽!”
하얀 늑대가 헬러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헬러는 황급히 두 주먹을 내지르려 했지만, 잠깐의 찰나가 너무나 큰 빈틈이 됐다.
하얀 늑대는 오른쪽 손끝을 세워 헬러의 안면을 향해 내질렀다.
퍼억-!
하얀 늑대의 손끝이 헬러의 안면을 관통해 뒤통수로 튀어나왔다. 하얀 늑대의 공격은 팔꿈치 바로 위까지 헬러의 얼굴을 뚫고 지나갔다.
하얀 늑대가 다시 손을 뺀 뒤, 오른팔을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얼굴과 뒤통수가 사라진 헬러는 여전히 양 주먹을 들고 있었다.
다이어 울프가 입에서 헬러의 오른쪽 다리를 놓았다.
털썩.
헬러는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하얀 늑대는 헬러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순간의 오싹함을 잊을 수 없었다. 헬러의 비기는 하얀 늑대라도 정통으로 맞았다면 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헬러는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공격력에만 치중됐기 때문에, 무너진 밸런스 때문에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하얀 늑대는 도날드와 존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세상을 바꾸기 전, 우선 귀찮은 것들부터 처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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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또 죽음.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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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