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훌쩍, 힝…….”
메르데스는 하염없이 울었다.
야무지게 얻어맞은 메르데스의 얼굴은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 퉁퉁 부어있다. 세키나는 그런 그를 보며 으쓱 어깨를 올렸다.
“멀 이런 걸루 울고 구래. 뚝.”
“뚝이라 하기에는 너 너무 나 심하게 때렸어!”
입 안이 얼얼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라고 한 덕분에 이가 나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입술이고 뭐고 다 터져서 피 맛이 났다. 메르데스는 다시 훌쩍였다.
“뭐야, 진짜? 왜 이렇게 싸움을 잘해?”
그러면서도 궁금한 건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메르데스는 스스로가 꽤 강한 호문쿨루스라고 자부했다.
5살밖에 안 됐지만 벌써 검에 오러를 담을 수 있었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해가 넘기 전에 소드 익스퍼트가 될 수 있으리라. 이만큼의 성장은 상급 마족에도 비견한다는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메르데스는 자기 자신이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주먹도 안 보였어.’
어떻게 이렇게 야무지게 날 때릴 수 있지?
고작 3살짜리 어린아이가?
메르데스는 세키나를 좋아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키나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세키나는 2년 전, 마물을 소환해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때에 생명력을 다 쏟아부은 탓에 지금은 이렇다 할 능력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호문쿨루스. 딱 그뿐이었다.
그 뒤로 마법을 한다거나, 검을 쓴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으니…… 세키나는 약한 게 아니었나? 메르데스는 혼란스러웠다.
“말해짜나. 난 주먹찔을 잘해.”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멀 어떠케야. 잘하니까 잘하지.”
세키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메르데스의 얼굴이 점점 더 경악에 물들었지만, 세키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뭐 할 말이 있어야 해 주지 않겠나? 정말 말해 줄 게 없었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 싸움을 잘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일전에 프라이를 때려눕혔을 때도 그렇다. 그 이후에 아서가 대체 어떻게 한 거냐며 궁금해했지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게임에 빙의하기 전의 생에서 혈육상 오빠란 놈이 복싱 챔피언이어서 그놈에게 하도 처맞다 보니 싸움의 기술을 익혔다고 할까? 어떻게든 그놈에게 한방이라도 먹이고 싶어서 주먹질을 연습해 온 날만 십 년이 넘었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때의 기억이 머리에 박혀 지금까지도 쌈박질을 잘한다고 할까?
그런 말은 하지 못했으니, 세키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대꼬, 빤니 안내해. 너 때문에 시간 지체대쓰니까.”
“알았어…… 따라와.”
세키나는 메르데스가 뻗은 손을 잡고 그의 뒤를 따랐다.
자신을 언제 때렸냐는 듯, 아장아장 귀엽게 걷고 있는 세키나를 보니 메르데스는 조금 더 억울해졌다.
“우리가 프라이도 때려 줬는데…… 세키나는 뭐라고 하기만 해…… 너무해.”
세키나의 귀가 쫑긋해졌다.
“프라이? 그 돼지 넘?”
“웅. 나랑 형아가 걔 때렸어. 우리 앞에서 자꾸 너 가지고 욕하잖아!”
호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네,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놈 언젠가 한 번은 더 때려 주려 했으니 잘된 일이긴 했다.
“잘해ㅆ…….”
“죽이려고 했는데 장로가 와서 못 죽였어. 그건 아쉬워.”
“…….”
“다음에 기회 봐서 죽일게. 그러니까 넌 걱정하지 마.”
이 또라이 자식.
아무리 지금 귀엽고 만만해 보여도 이놈은 반쯤 돌아있는 자다. 여기서 더 크면 전생의 내가 알고 있었을 그 미친 살인귀 놈이 되겠지.
세키나는 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뱉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별관 뒤쪽의 숲에 다다랐을 때, 메르데스가 낡은 그루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야. 이쪽으로 나가서 빨간 리본 있는 나무만 보고 가면 영지가 나와.”
그루터기 뒤에 수풀은 어린아이 몸 하나만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구멍이 있었다.
개구멍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있네……. 세키나는 감탄했다.
“근디 리본은 율리안이 달아 노은 거야?”
“응. 길 잃지 말라고 큰형아가 달아놨대.”
“호오.”
율리안.
그놈은 무슨 생각으로 영지에 나갔던 걸까? 그리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키나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근데, 진짜 나랑 같이 안 나가?”
메르데스가 슬쩍 말을 건넸다.
“엉. 나 혼자 가 끄야.”
“…너무해.”
“얻어마즌 놈이 말이 만타.”
“힝.”
입술을 비죽거리는 메르데스를 보며 세키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턱 하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야. 멜데스.”
“응?”
“넌…….”
잠시 말을 고르던 세키나가 입을 열었다.
“글케 죽이는 거에 암 생각이 업써?”
메르데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무슨 생각?”
“아니, 구냥 구런 거 이짜나. 미안하다거나, 싫타거나…… 하는 구런 거.”
“없는데?”
오. 즉답.
예상하긴 했지만 직접 이런 반응을 보니 조금 씁쓸했다. 세키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내가 주그면?”
“너?”
“웅. 내가 주그면 넌 어떨 거 가튼데?”
팔짱 낀 채 잠시 고민하던 메르데스가 대답했다.
“널 죽인 놈을 똑같이 죽여 버리겠지. 화가 날 거고…… 그러게. 이상하네. 왜 네가 죽는 걸 상상하니까 화나지?”
메르데스가 지금까지 죽인 호문쿨루스는 열 정도가 됐다.
그놈들은 어차피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폐기 처리될 놈들이었으니 자신이 죽이지 않아도 죽을 놈들이었지만, 어쨌거나 숨통을 끊은 건 메르데스였다.
열 받아서, 거슬려서, 그냥 심심해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호문쿨루스를 죽였다. 그랬는데…….
‘왜 세키나는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 거지?’
우리 뭉뭉이를 쓰러뜨려서?
아니, 아니.
그보다 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메르데스는 흐음 비음을 내며 고민에 빠졌다.
“잘 생각해 바.”
세키나는 그런 메르데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입력댄 거 말구, 너 머리루 생각해 바. 구럼 답이 나올 꺼야.”
“답?”
“웅.”
문제가 뭐고, 답이 뭐란 말인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일단 메르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키나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나 가께. 따라나오면 디짐.”
세키나는 그렇게 수풀 너머로 사라졌고, 메르데스는 조금 오랜 시간 동안 그 앞에 서 생각에 빠졌다.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
부스럭.
“히유.”
얼굴에 묻은 이파리를 떼어낸 나는 휙휙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몸을 완전히 수풀에서 빼냈다.
오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메르데스가 말한 것처럼 리본이 곳곳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길이 꽝꽝 얼어있어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마법을 익히기는 해야 하눈데…….”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빙판길 따위야 문제가 안 될 텐데 말이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해야겠어. 불편해서 살 수가 없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발을 툴툴 털고 앞으로 나아갔다.
‘상업지구로 바로 나왔네.’
마왕성에서 곧장 나왔을 때는 거주지구였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빙 둘러서 나온 거 같지?’
종종 이 길을 이용해야겠다.
메르데스 놈이 아주 좋은 걸 알려줬어.
난 킬킬 웃으며 주변을 살폈다.
리아트와 나왔을 때에는 그놈 때문에 긴장해 주변을 잘 둘러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무도 날 감시하지 않으니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다.
“호옹.”
날씨가 상당히 추운데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마치 이 추위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두껍지 않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발열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걸 감안하면 꽤 대단한 거였다.
“안 춥나?”
쟤는 민소매를 입고 있네.
저러다 얼어 죽으면 어떡하려고.
인간의 적응력이란 뭘까.
새삼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가게를 살펴보았다.
“오아. 지짜 다 업써졌네.”
기괴한 모양의 장난감이나 마력이 깃든 가구라거나 하는 것들이 다 없어졌다.
개중 얼굴이 팅팅 부어있는 주인 놈들이 보였는데, 짐작건대 리아트에게 뒈지게 혼난 것 같았다. 그래서 저렇게 얻어맞아 얼굴이 엉망이지.
‘환수가 조금 보이긴 하는데.’
마계의 정령이라 불리는 환수.
그 환수들이 의태한 장식품들이 몇몇 보였다.
하지만 가게 주인들이 말하기를 이건 파는 게 아니고, 단지 바깥 구경을 시켜주는 것뿐이며 신관들이 방문하는 날에는 다 창고에 넣어두기로 하고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좀 영지가 정리된 거 같았다.
가게뿐 아니라 분수대도 가득 차 있던 독이 사라져 있었고, 길거리도 퍽 깔끔해져 있었다. 곳곳에 피어있던 이상한 꽃들도 다 없어진 상태.
“나름 잘 해꾸나. 그러케 자랑할 만 해써.”
당당히 말하던 리아트를 떠올린 나는 피식 웃었다.
“구럼 내가 요거에 대해 딱히 할 건 업쓸 거 가튼데.”
그래서 난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야, 시스템. 이쯤 대면 보상 내나야 하는 거 아니냐? 딱 봐도 성공할 각인디.”
띠링!
[SYSTEM]
‘신관의 의심을 피하는 것’까지가 퀘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