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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51)화 (52/149)

50화

11. 이런 상처에 울면 상여자가 아니져

커다란 소파에 거의 파묻힌 듯이 앉아있는 세키나는 음료를 쪽쪽 빨아 먹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르카이츠는 턱을 괸 채 세키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꼬박 3년 만에 마왕성에 돌아온 것이니, 온실에 가 보고자 본관을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걷다 보니 얼음장 같은 바닥에 누워있는 호문쿨루스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 했다. 나름대로 궁금한 호문쿨루스이긴 했으나 그저 그뿐이었으니까. 어차피 내일 동굴 탐사를 가기로 했으니 그때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이리 생각한 그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르카이츠의 발을 잡은 것이 있었다.

-아우…… 시바…… 지짜 짱 나네…….

3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저렇게 욕을 잘하지……?

희한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보다 더 희한한 놈이었나?

르카이츠는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시바…… 지짜 인생 레전드다…… 거지 같아…….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이 호문쿨루스는 울고 있었다. 오열하며 엉엉 눈물을 쏟는 건 아니었지만, 그렁그렁 눈물이 달려 있는 게 퍽 신기했다.

마족은 울지 않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우는 행위에 따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까.

뭘까?

저 호문쿨루스는 대체 무엇이기에 저렇게도 감정을 마구잡이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르카이츠는 세키나를 데리고 왔다. 물론 세키나는 자신이 중얼거리며 욕을 한 걸 아예 모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르카이츠가 세키나를 관찰하고 있을 때, 세키나는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마왕이 왜 나를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저렇게 날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혹시 내가 인간인 걸 알아챘나? 의심하나?

처음 마왕을 만났을 때 느꼈던 압박감이나 마기 같은 건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세키나는 무서웠다.

세키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저, 보쓰.”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절 데꼬 온 거면 먼가 하실 말이 있눈 거 아니에여?”

르카이츠는 대답 대신 세키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키나는 재차 마른침을 삼켰다.

“할 말 업쓰시면 저 구냥 가까여? 저 할 일두 있눈데…….”

르카이츠는 헛웃음을 뱉었다.

고작 3살짜리 호문쿨루스가 할 일이 무엇 있겠나. 이 자리가 불편해 도망가고 싶다는 말을 아주 돌려 한다.

“너.”

르카이츠는 턱을 괴었던 손을 거두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1장로를 만난 적이 있나?”

“그 대머리… 아니, 노딜이여?”

르카이츠는 순간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노딜을 대머리라 부르는 건 이 호문쿨루스가 처음이다. 노딜은 자신의 민둥한 머리를 놀리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르카이츠는 겨우 입가를 정돈했다.

“그놈이 널 지지하겠다더군. 알고 있나?”

“어, 움. 네. 제가 그러케 해달라고 해써여.”

세키나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절 조아하는 장로가 업꺼든여. 구래서 중립이라는 노딜한테 저 지지해달라고 해써여.”

르카이츠는 기울였던 몸을 거두고 긴 다리를 쭉 뻗어 꼬았다.

“입력이 되지 않은 놈이라고 하던데, 그런 것치고는 꽤나 영리하게 행동하는군.”

이게 칭찬이라는 건 세키나도 알았다. 그래서 세키나는 다소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똑똑하디만 약하니까여. 절 지킬 쑤 있는 건 마니 만들어 놔야져.”

르카이츠는 세키나를 비스듬하게 내려다보았다.

약하다, 라고 말하기에는 이 호문쿨루스는 자신의 마기를 맞받아친 전적이 있다. 거기다 신관에게 ‘사악한 기운’이니 뭐니 의심을 받지 않았던가.

르카이츠는 이 호문쿨루스에게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확신을 했다. 그는 깍지를 낀 손을 무릎에 대었다.

“리아트나 마르틴에게 무슨 짓을 했나?”

“……넹?”

“무슨 짓을 했기에 그놈들이 널 끼고 도냐는 말이다.”

“걔네가 절 끼고 돌아여?”

세키나는 조금 당황했다.

리아트나 마르틴이 자기를 어느 정도 예뻐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끼고 돈다니? 마족이 호문쿨루스를? 왜지? 잘 이해가 안 됐다.

“우움. 제가 기여워서 아닐까여? 그거 말고는 이유가 업는데.”

뻔뻔하게 대꾸하는 세키나를 보며 르카이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 나사 빠진 꼬맹이와 더 대화하다간 자신이 말릴 것만 같다. 르카이츠는 몸을 일으켰다.

“일정을 하루 당기지.”

“넹?”

“지금 이동한다는 말이다.”

어디로 이동한다는 말인가, 잠깐 당황했지만 세키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서부로 간다는 말이에여? 이 티아라 발견한 곳으루?”

르카이츠는 대답 대신 흐트러진 옷을 정돈했다.

“어케여? 꽤 멀자나여. 마차 타고 가나? 저 마차 타본 적 업눈데. 멀미 나지 안아여?”

이곳은 북부의 끝.

하지만 이 티아라를 발견한 동굴, 던전은 서부 중앙에 있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3주는 족히 걸릴 터.

그러면 뭐라도 준비를 해야지 않겠나? 이렇게 갑자기 떠날 수는 없…….

“……엥.”

세키나는 갑자기 바뀐 풍경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방금까지 분명 마왕의 집무실에 있었는데, 지금은 바깥이다.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사막이라는 말이다.

‘텔레포트…….’

북부에서, 서부로.

시동어도 없이, 마법진도 없이 텔레포트가 시동됐다.

이 정도의 장거리 이동 마법은 자신이 대마법사일 때도 버거웠던 일이다.

그런데 르카이츠는 멀쩡해 보였다. 세키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이게 봉인된 수준이면 원래 힘은 어떻다는 거야? 세키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쓰. 힘 봉인 대따는 거 거짓말이져.”

“헛소리 말고 따라와라.”

“넹.”

민망해진 세키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티아라를 벗은 후 발을 내디뎠다.

***

꺼끌꺼끌한 모래가 담겨있는 바람이 분다.

북부에서는 눈보라였는데, 서부인 이곳은 모래바람이다.

이곳이 사막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람이 너무 거셌다. 모래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게, 흡사 한국에서의 미세먼지 돌풍과 비슷했다.

‘자석 대면 폐가 끌려 나오겠네.’

그뿐 아니라 걷는 것도 힘들었다.

일반적인 신발로 사막의 모래를 푹푹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내가 마법만 쓸 수 있어도 이런 건 껌인데.’

저 앞에 있는 르카이츠는 잘만 걷고 있지 않나. 분명 마법을 써서 몸을 띄우고 걷는 걸 테다.

부들부들. 세키나는 꽉 쥔 주먹을 파르르 떨며 발을 내디뎠다.

‘스크롤을 대량으로 만들어놔야지.’

물론 세바스찬이 조져지겠지만, 알 바인가? 세키나는 이를 아득바득 물며 다짐했다.

그때, 르카이츠는 세키나의 생각처럼 마법을 써 아주 잘 걷고 있었다. 폭풍과도 같은 모래바람을 가볍게 흘려보내며 말이다.

뒤이어 걸어오는 세키나가 얼마나 씩씩거리고 있건, 힘들어하건,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소 웃기는 호문쿨루스라 한들 자신이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는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르카이츠는 앞서 걸어갔고, 세키나는 꿍얼꿍얼 욕을 하며 그의 뒤를 간신히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헥…… 아우, 힘드러.”

간신히 도착지 근처에 다다른 세키나는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들이 있는 곳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산.

이 산의 중심에는 마을이 있다. 아니, 마을의 흔적으로 보이는 폐허가 있다.

‘드한이 살았던 곳이겠지.’

세키나는 건물 곳곳에 남아있는 핏자국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모두가 죽었으리라.

드한을 빼고.

그렇다면 드한은 왜 살아남은 것일까?

아니, 왜 드한을 살려둔 것일까?

세키나는 궁금해졌다.

“군데, 보쓰. 여기는 왜 이케 만든 거예여?”

르카이츠에게 가까이 다가간 세키나는 말을 덧붙였다.

“왜 주겼어여?”

르카이츠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머금는다.

“우습군.”

르카이츠는 조소했다.

“무지한 이들은 재해가 생기면 모두 다 마족의 탓을 하지. 자신들의 과오를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기에 급급해.”

“……넹?”

“우리가 한 짓이 아니다. 이곳을 찾을 때부터 저 모양이었어.”

“…….”

당연히 마족이 한 짓이라고 결정 내렸던 세키나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그럼 진짜로 그냥 도적 떼라고?’

그럼, 왜?

상식적으로 도적 떼가 여기까지 올 일이 없지 않은가. 사막 한복판에 살고 있는 이들이 무슨 재산이 있다고 이 꼴을 만드나? 

‘정말…… 드한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죽은 것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독을 먹고 죽었다.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산 적이 없었는데.

세키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때였다.

띠링!

[SYSTEM]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법입니다.

다만 그 아이에게는 더욱 불합리한 인과가 얽혀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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