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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55)화 (56/149)

55화

12. 너 인간이잖아?

“세키나 님?”

세키나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서가 달려 나왔다.

“어디 계셨던 거예요? 아무리 찾아도 안 계시던데! 나갈 거면 말을 하셔야지!”

아서는 잔뜩 걱정한 티를 냈다. 세키나는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보쓰랑 가티 있어써.”

“……마왕님이요? 왜요?”

“던전 가따 와꺼든.”

“던전……?”

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세키나의 꼴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옷은 왜 이렇게 엉망이에요? 모래가 왜 묻어있지? 어깨에 붙은 그건 뭐고? 아니, 다리는 또 왜 그래요?”

한나절 만에 이렇게 망가질 수 있나. 아서는 현기증이 핑 도는 걸 느끼며 세키나의 코트를 벗겨주었다.

“일단 치료부터 하죠. 의원을 불러올게요.”

“아냐. 요거 한 번 써 볼라구.”

세키나는 어깨에 붙어있는 환수 덩어리를 툭 떼어냈다.

“그거…… 환수예요?”

“웅. 찌꺼기한테 보쓰가 힘 조서 만들어 줘써.”

“마왕님이요?”

그 르카이츠가 이런 걸 만들어줬다고? 아서는 살짝 소름이 돋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왕님이 하는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건 대체 무슨 이유로 만들어 준 걸까. 혹시나 세키나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아서는 초조해졌다.

“환수는 정령이라 치유력이 있따고 해써.”

세키나는 떼어낸 환수 덩어리를 피가 나고 있는 다리에 찰싹 붙였다.

“오?”

그러자마자 다리가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쓰라리고 아팠던 상처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도 느껴졌다.

“이거 효과 짱이다.”

“……환수는 그렇게 탈부착하는 게 아니에요.”

“하디만 효과가 있는디.”

“그건 그러네요.”

아서는 신기하다는 듯 세키나의 말끔해진 상처와 환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리 환수가 정령이라 치유력이 있다 해도, 이 정도로 엄청나지는 않다. 작은 상처를 지혈하는 정도일 텐데.

마왕님이 만들어내서 그런 건가? 그분이 새로운 능력을 부여한 건가?

뭐가 됐든 세키나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아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군데 이거 이케 계속 달고 다녀도 대나? 인간이나 신관들한테 보이지 않을까?”

“아. 원래 환수는 정령이라서 활동할 때를 빼면 눈에 안 띄는 게 맞기는 한데요. 이건 마왕님의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형체가 명확하네요.”

아서는 환수 덩어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 경우는 차라리 환수에게 자아를 줘서 변형시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 분야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아서의 마법 능력은 정령과는 거리가 멀다. 제가 알고 있는 것도 과거 책에서 보았던 지식뿐이다.

“니샤 님이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정령술사니까. 한 번 가서 물어보시는 건 어때요?”

“우움.”

세키나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르카이츠가 이걸 만들어 주자마자 니샤를 바로 떠올리긴 했다.

니샤라면 이 환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곧바로 니샤에게 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걔 나 시러하는데. 과연 내게 알려 주까?”

니샤는 세키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니샤의 방에 몰래 침입했던 그때 이후로 니샤는 세키나에게 말 한 마디를 안 걸었다. ‘교육’에서도 질문만 할 뿐 그 외에 잡담도 한 적이 없었고 말이다.

세키나는 휴, 한숨을 뱉었다.

“음. 그러면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 저녁 먹을까요?”

“아써. 말 피하는 거 바.”

“그렇다고 니샤 님이 세키나 님을 좋아할 거라는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요.”

아서는 그렇게 안 생겨놓고 말을 막 한다. 상처야.

세키나는 꿍얼거리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밖에 나가 있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으니까.

“그래도 마왕님이 세키나 님을 예쁘게 보셨나 봐요. 이런 것도 만들어 주시고.”

“날 예뻐한다구?”

세키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절대 아닐걸. 나 죽일 듯이 노려보던디.”

던전에 있을 때 하도 째려봐서 정말 뚫리는 줄 알았다. 르카이츠의 눈빛이 닿을 때마다 얼마나 소름이 끼쳤던가.

그건 절대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의심해서 지켜보는 것일 뿐.

이 환수도 그 맥락일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니샤에게 정보를 얻어내야겠어.’

니샤가 봐주면 르카이츠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겠지.

“하하하. 우리 빨리 저녁 먹으러 가요.”

“또 말 피하는 거 바.”

“오늘은 스테이크랍니다!”

“알써. 넘어가 줄게.”

세키나는 피식 웃으며 아서에게 양팔을 뻗었다. 아서는 능숙하게 세키나를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피곤하실 텐데, 식사하고 씻고 바로 주무세요.”

“웅. 오늘은 오래 잘 꺼 가타.”

대충 대답한 세키나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아서의 목을 그러안았다.

그러다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마르틴과 메르데스와의 대화.

-세키나. 가족이 정확히 뭐야? 뭘 해야 하는 거야?

그 말 때문에 기억해 내고 싶지 않았던 옛날을 떠올려 버렸지. 결과로 자신은 가족이라는 걸 가져 본 적 없는, 어딘가 결여된 인간이라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세키나는 아서의 목을 조금 더 세게 그러안았다.

“아써. 너는 마계에 두고 온 자식이 이따고 해찌?”

그 질문에 아서는 살짝 움찔거렸지만, 그건 세키나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찰나였다.

“가족이라는 게 정확히 멀까?”

세키나는 뚱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오늘 메르데스가 나랑 마르틴이랑 같이 해서 가족 같따고 해꺼든. 근데 나는 가족이 먼지 모르니까……. 대답을 몬해써. 좀 짜증 나기도 해꼬.”

아서는 꿍얼거리는 세키나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마족은 태어나자마자 교육기관에 맡겨진다고 해도, 부모는 있다. 하지만 호문쿨루스는 부모가 없다.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서는 세키나가 부모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다고 판단했고, 곧 씁쓸해졌다. 이 작은 아이가 껴안기에는 너무 슬픈 짐인 것 같아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만 가족인 게 아니에요.”

아서는 세키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소중한 존재가 하나둘 모여서 만들어진 게 가족인 거죠. 그래서 메르데스 님도 세키나 님께 가족 같다는 말을 한 걸 거예요.”

그는 세키나의 뺨을 툭 건드렸다.

“저는 세키나 님을 가족으로 생각하는데.”

“…….”

“세키나 님은 안 그래요?”

세키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아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질끈 감을 뿐.

소중한 존재가 하나둘 모인 게 가족이라면,

이제껏 난 정말로 가족을 가져 본 적 없었던 거구나.

그리고 지금은…….

세키나는 제게 닿는 아서의 온기를 느끼고, 그의 다정한 손길을 느끼고, 다정한 목소리를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가족이 될 수는 없지.’

세키나는 인간이고, 인간인 걸 알게 된다면 마족인 아서는 배신감을 크게 느낄 테니까. 그리고 싫어하게 될 테니까.

“아냐. 구런 말 하디 마. 너 자식들이 시러할 거야.”

“…….”

세키나를 토닥이던 아서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다 그는 전보다 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고기 먹으러 가요. 맛있을 거예요.”

***

툭, 툭.

르카이츠는 책상을 손끝으로 치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인위적인 동굴.

그 안에 있던 유물.

인위적인 동굴 속 공간.

또한 그 안에 있던 보구.

그건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가. 또한 어떤 이유로 그 호문쿨루스가 알고 있는 것인가.

르카이츠는 입 안쪽 살을 씹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캘빈.”

그가 입을 열자마자 어둠 속에서 인영이 나타났다.

캘빈 모두아라. 정보수집 역할을 맡고 있는 4군단의 군단장.

그는 르카이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신 곳을 가 봤습니다만, 해당 공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르카이츠는 미간을 좁히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마왕님께서는 그곳에 다녀오신 것이지요.”

“그곳에서 이 보구를 찾았고.”

“네.”

캘빈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가정.

하지만 이 상황을 보건대 가정이 가정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캘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그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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