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마왕성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곳, 온실.
색색으로 펴있는 꽃밭의 한가운데에 있는 티테이블에 아서는 여유롭게 앉아있다.
풍미가 좋은 차,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잔잔한 음악. 평온한 분위기.
훈련장에서 땀을 빼고 모랫바닥을 구르던 걸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서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온실 한 가운데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여기가 네 집 앞마당이냐? 마왕님의 온실인데 네가 주인인 것처럼 굴고 있으면 쪽팔리지도 않냐?”
어둠 속에서 솟구친 인영은 아서를 향해 속사포로 욕을 쏟아냈다.
“후우.”
아서는 들어 올렸던 찻잔을 천천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욕을 할 거면 가까이서 해라. 그렇게 멀리 있으면 윙윙거리는 모깃소리로밖에 안 들리니까.”
그리고 저만치 멀리 서 있는 캘빈을 향해 말했다.
캘빈은 미쳐있는 놈이었다.
물론 마족들은 모두 다 미쳐있긴 하지만, 개중에서 가장 미친놈을 꼽으라 하면 저놈이 3위쯤으로 거론될 만큼 미친놈이라는 뜻이다.
마왕에 대한 충성심은 마족 제일이라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마왕을 제외한 모든 마족, 아니 모든 존재를 혐오하고 부정했다. 이 세상에 마왕과 자기 자신만 가장 깨끗하고 고결하다 생각하며 나머지를 버러지 취급했다.
이게 단순히 무시한다거나, 업신여긴다거나 하는 거라면 괜찮을 테지만…….
“싫다! 내가 왜 너 같은 놈 곁에 가야 하나! 더럽다! 오지 마!”
결벽증도 섞여 있다는 게 문제였다.
캘빈은 누군가가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오염된다며 싫어했고, 혹시나 손이라도 닿으면 게거품을 물며 쓰러질 정도였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생활하며 멀찍이서 모두의 정보를 캐내는 정보원의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전투 능력은 젬병이었다.
그래서 캘빈은 4군단의 군단장이었지만, 아서가 개길 수 있는 위치였다. 애초에 아서와 캘빈은 친구이기도 했고 말이다.
“찾아 와 놓고서는 곁에 오기는 싫다니. 참 예나 지금이나 등신 같은 놈이군.”
아서의 얼굴에는 웃음 한 점이 없다. 세키나를 대할 때와는 딴판인 태도다.
“할 말이 있어서 온 것뿐이다! 오지 마!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난 나가버리겠다!”
털을 곧추세운 채 왈왈 짖는 캘빈을 보며 아서는 귀를 후비고는 후, 불었다.
“좋지 않은 소식 전해 줄 거면 입 다물고 꺼져라. 난 지금 매우 기분이 좋거든.”
“그런 거 아니다! 으, 더러워! 내 쪽으로 바람 불지 마!”
후, 아서는 다시 그에게 바람을 불었다.
“더러운 새끼. 으.”
캘빈은 두 걸음 옆으로 물러선 후 손을 저었다.
“율리안이 곧 돌아올 거다.”
“율리안이?”
아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율리안은 첫 번째 호문쿨루스이자, 일반 마법에 두각을 보이고 있는 유능한 아이다. 그래서 마족들은 그의 마법을 더 향상시키고, 인간들 틈에서 인간에 대한 것을 배워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아카데미에 보냈다.
그러기를 3년.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되었나.’
없는 게 더 편했는데.
아서는 살짝 아쉬움을 표하며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율리안은 가장 작은 호문쿨루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가장 작은 호문쿨루스. 세키나를 뜻하는 것이다.
아서의 미간이 좁혀졌다.
“왜?”
어느새 공간을 밟고 나아간 아서는 캘빈의 뒷머리를 콱 움켜쥐었다.
“그 새끼가 왜 세키나 님한테?”
“으, 으으으……! 놔라!”
“제대로 대답 안 하면 네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을 거다.”
“더러운 자식 같으니라고!”
캘빈은 금방이라도 제 콧구멍에 닿을 것 같은 아서의 손가락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아카데미에서 소환술을 배웠다더군! 자신의 실력과 그 호문쿨루스의 실력을 겨뤄보고 싶은 모양이다! 대답했다! 이제 됐지? 놔라!”
발버둥 치는 캘빈을 뿌리친 아서는 흐음 비음을 내며 눈을 찡그렸다.
“우리 세키나 님한테 그런 야만스러운 짓을 시키면 안 되는데.”
“……뭐?”
“아직 3살이란 말이다. 3살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되는 나이야. 그런 저급한 실력 겨루기 같은 건 안 해도 되지. 안 되겠다. 율리안 놈보고 오지 말라고 해야겠어.”
“너…….”
캘빈은 입을 쩍 벌리며 아서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미쳤냐?”
아서는 그런 캘빈을 향해 손바닥을 쫙 펼쳤다.
“미친놈에게 손을 잡히고 싶은 건 아니겠지?”
“가까이 오지 마! 손대지 마!”
별로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캘빈은 아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서는 쯧 혀를 찼다.
“네 전투 능력은 정말 쓰레기로군.”
“난 다른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않나! 내 정보가 없으면 너는 백번도 더 죽었다!”
“그래. 너는 내 보호가 없었으면 이백 번도 더 죽었다.”
아서는 피식 웃으며 캘빈을 뿌리쳤다.
“으, 더러운 놈.”
캘빈은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선 후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러다 아차 하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신관 놈들이 근처에 와 있다.”
율리안을 중얼거리던 아서의 입매가 싹 굳었다.
신관 놈들이라 하면 얼마 전 영지를 방문한 북부성 신전의 놈들일 테다.
그걸 지금 말한다고? 아서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신전을 올릴 부지를 살핀다고 하던…… 표정이 왜 그러냐?”
“네놈의 그 같잖은 결벽증으로 낭비한 시간에 그 말을 해 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엥?”
캘빈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서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아, 아악! 싫어! 더러워!
“으아아악! 놔!”
“그 신관 놈들 중 하나가 세키나 님께 창을 겨눴다고 하더군.”
“놓으라고, 미친놈아!”
“이참에 죽이는 게 좋겠어.”
“나도 죽어! 죽어!”
아서의 눈이 번뜩였다.
***
세바스찬에게 다녀온 세키나는 별관의 빈방에 몸을 숨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거 별 문제업는 거게찌?”
세키나는 스크롤을 살피며 의뭉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스크롤을 건네주며 세바스찬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시선을 거뒀다.
-진짜, 진짜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제 사활을 걸었어요. 이거 만약에 오류 난다? 그냥 저 감옥에 다시 가두세요.
그래. 그 싫다는 감옥에 들어가도 된다고 할 정도로 맹세한 거니 쓸 만하겠지.
그래서 세키나는 믿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언제든 스크롤을 찢을 수 있게 잡은 채로.
공간을 이동할 거다.
‘도착지는…….’
촤악-!
‘북부 협곡.’
여기에는 유물이 있다.
세키나는 이곳에서 나온 유물을 니샤에게 쥐여 줄 생각이다.
마왕의 힘이 빠져나간 상태인 니샤이니까, 세키나가 유물을 발동시켜 건네주면 착용할 수 있겠지.
지금은 세바스찬의 스크롤에 환수를 가둬두긴 했지만, 오래가진 않을 테다. 서둘러 니샤의 도움을 받아 환수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고로 세키나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물건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아주 눈이 빠지게 좋아하게 될 거다.’
이 유물은 니샤의 능력치를 더 올려줄 수 있는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니샤두 나한테 반하면 어카지. 구럼 쌍둥이까지 해서 4각 관계 아닌지.”
세키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찢긴 스크롤 종이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리고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 세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후. 미끄러지면 디지니까 이것두 써야지.”
또 다른 스크롤을 꺼낸다. 협곡으로 간다고 하니 반드시 필요할 거라며 만들어 준 미끄럼방지 마법 스크롤이다. 세키나는 이것과 더불어 발열 마법을 이중으로 걸었다.
“준비는 요 정도면 댈 거 같꾸.”
세키나는 후우 숨을 들이켠 후 협곡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또 깊은 협곡.
자칫 잘못해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키나는 이곳으로 떨어져야 했다. 이 협곡 바닥에 이글루가 있고, 그 안에 유물이 있으니까.
‘진짜 찾기 엿같이 만들어놨어.’
세키나는 숨을 다시 한번 크게 들이켠 후 플라이 마법이 걸려있는 스크롤을 꺼냈다.
쫘악-! 스크롤을 찢은 세키나는 발끝에 맺히는 마법을 느끼며 협곡 아래로 몸을 던졌다.
‘유물만 챙겨서 빨리 돌아가자.’
세키나는 시야를 가리는 어둠을 헤치며 쭉쭉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당도했을 때,
“……엥.”
아주 익숙한 이를 볼 수 있었다.
“드한?”
다름 아닌 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