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형아. 밖에 지금 폭풍이 온 거 같아.”
윈도우 시트에 앉아 창문에 코가 뭉개지도록 얼굴을 대고 있는 메르데스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바깥은 날씨가 처참했다.
원래부터 눈이 자주 내리는 지역이긴 했지만 오늘은 말 그대로 폭풍처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강풍에 휩쓸리는 나무들은 저러다 꼭 쓰러질 것 같다.
“눈이 이렇게 내리는 건 또 처음 보네. 무서워.”
메르데스는 꿍얼거리며 콧등을 떼어냈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바닥에 엎드려 책장을 넘기고 있던 파르데스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메르데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뭐 보고 있어?”
“인체해부학.”
“그거 재밌어?”
“응.”
“나랑 노는 것보다?”
“응.”
“너무해.”
메르데스는 발버둥을 치며 파르데스의 옆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나가고 싶은데……. 뭉뭉아. 너도 나가고 싶지?”
“왈!”
“그치이. 나가서 놀고 싶은데에.”
파르데스는 케르베로스인 뭉뭉이를 끌어안고 뒹굴거리는 메르데스를 안경 너머로 흘겨보았다.
“너 나가서 그 인간들 만나고 오려고 그러지?”
“어, 어?”
메르데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떻게 아, 알았어?”
“넌 바보라서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어? 진짜?”
“거울 안 봐도 돼.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후다닥 전신거울로 달려가려던 메르데스는 그제야 헤헤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비밀이야. 절대 말하면 안 돼. 이번에도 걸리면 정말 나 죽을지도 몰라…….”
“죽는 게 무서우면 안 나가면 되잖아?”
“싫어. 재미있단 말이야.”
흐음.
파르데스는 턱을 괴며 메르데스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얼마 전, 자신을 구해준 인간들의 심리가 궁금하다며 뛰쳐나갔던 메르데스는 그 뒤로 하루가 멀다 하고 영지에 나가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악독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하찮은 놈들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며칠 안 가고 질려할 거라고 생각했다. 메르데스는 단순한 구석이 있어서 뭐든 해 보다가 금세 싫증을 내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메르데스는 매일매일 인간을 만나기 위해 나갔고, 돌아올 때에는 전보다 훨씬 더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파르데스도 조금 호기심이 일었다.
“인간이랑 노는 게 재미있어?”
“응. 재밌어.”
“뭐가 재밌는데?”
“우움.”
뭉뭉이에게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교차해 끌어당긴 메르데스는 고개를 까딱가딱거리다 대답했다.
“뭐라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같이 있으면 편해져. 다들 친절해.”
“친절하다고?”
“응. 어제는 유리랑 같이 골목길 순찰을 했는데, 술 취한 인간들을 봤거든. 그 인간들이 나한테 같이 술 먹으면서 놀자고 해서 유리가 엄청 화냈어. 그리고 날 지켜야 한다고 인간들이랑 싸웠어.”
“지킨다고, 너를?”
“웅. 나한테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들인데, 나보고 끝까지 가만있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넌 가만히 있었어?”
“응. 말 안 들으면 유리가 엄청 화내거든.”
파르데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간이 메르데스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인간이 화를 낸다는 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메르데스도 어이가 없었다.
이놈은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있는 건가?
파르데스는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유리가 이기긴 했는데, 유리 눈탱이 밤탱이 됐어. 조셉이 엄청 놀렸는데 나도 너무 웃겨서 같이 놀렸어.”
“하?”
파르데스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 인간은 너를 왜 지킨 거라는데?”
“응, 그건 나 이유 알아.”
메르데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지키는 거래.”
“왜?”
“당연히, 그냥 지켜야 하는 존재래. 그래서 나도 지켜야 한대.”
“…….”
메르데스의 말을 듣자마자 파르데스는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따끔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호문쿨루스다.
마왕을 위해 만들어진 제3의 존재.
그래서 그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지키려는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 체스판에 올라간 말 그뿐이었으니까.
그런데…… 하찮은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파르데스는 쓰게 웃었다.
“형아. 관심 있으면 나랑 같이 나가 볼래?”
파르데스는 미간을 좁혔다.
“너 혼자 나가다 들키는 것보다 나랑 같이 있는 게 덜 혼날 거 같아서 그러는 거지.”
“앗. 들켰당.”
아이 같은 웃음을 뱉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린 메르데스가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도 걔네한테 형아 소개해 주고 싶단 말이야. 내가 형아 자랑 엄청 했거든! 나랑 똑같이 생겼는데 훠얼씬 똑똑하고 훠얼씬 멋지다고!”
파르데스는 헛웃음을 뱉었다.
자신과 메르데스는 쌍둥이 형제라 불린다.
하지만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다. 같은 배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다.
그저 만들어질 때에 ‘재료’가 같았던 것일 뿐.
이런 걸 형제라고 해도 되는 건가? 생김새가 같고, 나이가 같다고 하여 ‘형제’라는 가족적인 개념을 써도 되는 것인가?
파르데스는 언제나 이 사실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메르데스는 그러지 않았다.
메르데스는 씨익 웃으며 파르데스의 팔을 잡아끌었다.
“응? 그러니까 같이 나가 보자. 응?”
반짝반짝 빛나는 메르데스의 두 눈은 어쩐지 전보다 몇 단계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파르데스도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너보다 잘생겼다는 거 인정하면 나갈게.”
“아! 진짜!”
메르데스는 으으,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찡그리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형아가 더 잘생겼어. 형아가 최고야.”
파르데스는 피식 웃었다.
“어. 그럼 날 풀리면 나가보자.”
“아싸! 응!”
메르데스는 기쁘다는 듯 다시 바닥에 드러누우며 뭉뭉이를 꼭 껴안았다.
“그럼 형아랑 나가면 우리 또래 인간 같이 찾아보자!”
“왜?”
“한이 그랬어. 내 나이대 어린애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파르데스를 보곤 메르데스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아는데! 그래도 한번 만나 보고 싶어!”
“……뭐, 그래.”
파르데스는 문득 얼마 전 온실에서 보았던 신전 종자 놈, 드한을 떠올렸다.
‘또래……긴 한데.’
음.
아니야. 걔는 무리다.
더군다나 그놈은 신전에 있지 않겠는가?
파르데스는 떠오른 생각을 애써 지우며 다시 책에 집중했다.
***
세키나는 또다시 복도를 배회했다.
하루가 지난 지금.
니샤가 말한 시간이다.
어쩐지 초조함이 일어 세키나는 손톱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왜 이렇게 초조하냐고?
그야 환수를 사역마로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금 세키나가 고민하고 있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멍청한 나’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역마에게 마법을 쓰게 하면 되니까!
‘제발 멀쩡한 놈 나와라. 제발.’
세키나는 두 손을 꽉 맞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내가 말했지. 너 이렇게 빨빨거리면 방에서 다 들린다고.”
문을 벌컥 열고 나온 니샤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먄. 하지만 가만히 있을 쑤가 업서써.”
“쯧.”
니샤는 혀를 찬 후 세키나에게 손짓했다. 방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니샤의 뒤를 따라간 세키나는 눈을 크게 올려 뜨며 주변을 살폈다. 어제보다 다소 엉망이 된 듯한 방 안이었고, 공기 중의 마력 농도도 짙었다. 다시 보니 니샤의 눈가에 다크써클이 져 있었다. 꽤나 고생한 모양이다.
“구래서? 어케 대써? 환수는 어디써? 성공해써?”
“성공은 당연한 거고. 내가 누군데.”
니샤는 피식 웃으며 세키나의 눈앞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세키나는 니샤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이내 책장 맨 꼭대기에 앉아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엥?”
책장에 있던 장식품을 모조리 떨어뜨린 모양인지 평평해진 그곳에 여유롭게 앉아 앞발을 핥고 있는 생명체.
“고양이네.”
고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