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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67)화 (68/149)

67화

강의실 안에는 니샤, 쌍둥이, 프라이, 그리고 세키나가 알지 못하는 호문쿨루스가 앉아 있었다.

“세키나! 왔어?!”

“이쪽으로 와서 앉아.”

쌍둥이는 세키나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안내했고, 세키나는 그들과 비슷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대각선 앞자리에는 니샤가 있었는데, 니샤는 세키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옆머리에 꽂은 나비 모양 핀이 아주 예쁘게 빛나고 있다. 너는 싫어도 물건은 죄가 없다는 뜻인가. 세키나는 피식 웃었다.

“오늘 프라이도 나왔다?”

메르데스의 말에 세키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프라이가 보였다. 여전히 돼지 같은 들창코를 자랑하며 말이다. 하지만 전과 다른 건 팔과 목에 깁스를 하고 있는 것과 눈에 초록색 멍이 들어있는 거였다.

“쟤 꼴이 왜 저래?”

“말했잖아. 나랑 형아가 쟤 때려줬다고.”

“아하.”

그게 언젠데 아직도 저 꼴인가…… 얼마나 심하게 때린 거야……. 세키나는 살짝 오한을 느끼며 팔을 쓸었다.

“문제 봤어?”

파르데스의 말이다. 세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칠판을 쳐다보았다.

[다음 대화에서 적절한 반응으로 올바른 것은?

A : 여보. 오늘 외식하는 건 어때요?

B : __________________

(1) 내가 왜 너랑 밥을 먹어야 하는데?

(2) 아, 귀찮게.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3) 나 아까 남자 후배랑 같이 먹었어. 너도 나가서 다른 사람이랑 먹고 와.

(4) 넌 밥도 안 먹고 다니냐?]

“웅. 들어오면서 봐찌.”

“이번에는 내가 맞출 거야. 이미 난 답이 나왔거든!”

뭐라는 거야. 저 선택지에는 답이 없는데.

“질문지를 보면 부부관계라는 걸 알 수 있어. 인간들은 결혼을 하고 함께 사는 문화가 있고.”

파르데스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답은 3번이야! 나는 밥을 먹었으니 너도 어서 가서 다른 사람과 먹으렴, 이라고 권유하는 거잖아. 얼마나 다정해? 부부관계라고 볼 수 있는 대답이지.”

오…… 완전 틀렸는데.

세키나는 한심해하는 눈빛을 애써 지우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아니. 답은 2번이야.”

이번에는 니샤가 말했다.

“나중에 대화하자는 말로 약속을 한 거잖아. 추후에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까 정답으로 볼 수 있지.”

너도 틀렸는데 뭘 그렇게 으스대고 앉아있냐.

“우아. 둘 다 똑똑하다. 둘 다 맞는 거 같아. 그럼 정답이 2개인가?”

애초에 여긴 정답이 없다고!

메르데스까지 이 지경인 걸 보니 계속 듣고 있다간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세키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니. 다 틀렸어.”

낯선 목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뒤를 도니 남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한 아이가 보였다. 처음 보는 호문쿨루스인데, 누구지?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답은 4번이야. 왜냐고? 이건 흔히 말하는 ‘츤데레’라는 거야. 좋아하는 상대에게 틱틱대면서 은근하게 챙겨주는 거! 아마 저 뒤에 ‘그럼 어쩔 수 없으니 내가 먹으러 가 주지.’가 나올 거야. 확신해.”

넌 뭔데 이런 분야를 잘 아는 건데. 츤데레라는 용어는 또 어디서 배웠어. 애초에 그런 말을 마족이 써도 돼?

“오…… 그런 전문용어를 말하다니. 디디에, 너 공부 좀 했나 봐?”

“응. 난 인간계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모두 다 읽었으니까. 얼마 전 읽은 건 ‘못된 계모에게 죽었으므로 환생해서 복수하려 합니다’야. 이번 달에만 무려 4권을 읽었다고!”

그 정도면 그냥 오타쿠 아닌지. 서브컬쳐를 대놓고 얘기하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세키나는 현기증이 이는 걸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일딴은.”

그래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 틀려써. 선택지에는 정답이 업써.”

세키나는 칠판으로 다가가 추가로 내용을 적었다.

“정답은 ‘5번. 제가 좋은 식당 예약할게요.’ 야. 상대가 권유해쓰니 그거에 맞춰서 식당을 찾아보구 안내해야지. 그게 매너야.”

“오…….”

그러자 다른 호문쿨루스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세키나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러게. 또 틀렸네.”

세키나는 히잉 소리를 내며 시무룩해하는 파르데스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구래도 전보다는 나아. 그때는 진짜 너 빡대가리인 줄 알아꺼든.”

“세키나. 너 위로해 주는 거야, 아니면 놀리는 거야?”

“둘 다.”

“너무해.”

입술을 댓 발 내미는 파르데스를 보며 세키나는 씨익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참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다음 문제는 맞추면 대지. 물론 못 맞출 꺼 같긴 한데, 갠차나. 힘 내.”

“짜증 나, 너.”

세키나는 파르데스의 뺨을 쿡쿡 찌르며 킥킥 웃었다.

그때였다.

“안녕?”

갑자기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손이 너무 차갑고 가벼워서 세키나는 더 깜짝 놀랐다.

“어, 어. 안뇽?”

“난 디디에라고 해. 처음 보지?”

디디에는 남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이였다. 턱 끝까지 오는 앞머리에 맞춰진 단발머리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깡마르기까지 해서 멀리서 보면 귀신인 줄 착각할 만큼 으스스하다.

“우웅. 난 세키나라구 해.”

“알고 있어.”

디디에는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살짝 보이는 입술을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되게 인간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 같아.”

그러며 세키나의 손을 꽉 붙잡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응? 알려 줘. 나도 알고 싶어. 그러니까 옆에 앉아. 응?”

……어, 이거.

잘못 걸린 거 같은데.

***

교육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귀찮아하고 심드렁해하는 태도의 마족이 들어와 문제를 적고 나가고, 호문쿨루스들이 모여서 떠들기만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의 답이 없다는 게 문젠데.’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인간을 아예 모르는 마족 같은데, 저런 마족한테 교육을 맡겨도 되나……? 세키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세키나. 응? 어디가? 나랑 더 놀면 안 돼?”

졸졸 쫓아오고 있는 이 디디에라는 호문쿨루스였다.

교육 시간에도 이렇게 자꾸만 말을 걸어서 눈에 보일 만큼 무시를 했는데, 교육이 끝나고도 계속 따라온다.

세키나는 대체 이 아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정말 나랑 친해지고 싶거나 날 좋아한다면 진즉 찾아오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갑자기? 왜?

“세키나!”

또다시 자신을 부르는 디디에의 목소리에 세키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휙 뒤로 돌아 디디에와 마주 섰다.

“너. 왜 이러는 그야?”

“응? 나?”

“엉. 너.”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랑 친해지고 시펐던 거면 진즉 찾아왔게찌? 근데 오늘 갑자기 이런다구? 왜? 나한테 머 궁금한 거 이써? 아님 나랑 친해지라구 장로가 시켜써?”

그러자 디디에의 어깨가 살짝 오므라들었다.

어, 말이 조금 심했나? 세키나가 조금 걱정할 때, 디디에의 잇새에서 괴상망측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보 세키나. 정확히 말하면 난 너를 진즉 찾아갔었어.”

“……머라고?”

“너는 나를 못 봤지만, 나는 너를 봤거든.”

세키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몰래 지켜봤다는 거지? 그래 놓고서 당당한 거고?

“……스토커?”

세키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야! 그런 괴상한 단어로 날 지칭하지 말아 줄래? 난 그냥 너를 지켜본 것뿐이거든? 그리고 네가 좋아서 본 것도 아니야! 착각하지 마!”

아니, 그러니까 그게 스토커인데.

마족들, 호문쿨루스들이 다 제정신이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세키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 율리안 님이랑 무슨 사이야?”

갑자기 그놈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걸까. 만난 적도 없는데 무슨 사이랄 게 있겠나.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대로 말 안 하면…….”

뭐, 날 죽이기라도 하게?

“난 약해서 널 죽이진 못하니까 네 앞에서 죽어 버릴 거야.”

갑자기 아서가 보고 싶다…….

세키나는 먼 산을 쳐다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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