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빨리 말해! 율리안 님이랑 무슨 사이냐니까?”
디디에는 으르렁거리는 개처럼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세키나는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내가 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어야 하지?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세키나는 흐려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난 율리안인지 먼지 만나본 적도 업써. 걔랑 먼 사이라고 할 게 업따는 뜻이야.”
“거짓말하지 마!”
어이가 없네. 안 믿을 거면 왜 물어 봐.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너 때문에 율리안 님이 돌아와? 분명 뭔가 있어!”
세키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로 세키나는 율리안이라는 호문쿨루스를 만난 적 없다.
물론 이전 생에서의 율리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전형적인 사이코 마법사라고.
그래서 세키나는 마왕성에 그가 없다는 사실에 안심을 했었다.
한데 그놈이, 나 때문에 돌아온다고?
‘이상한데.’
그래. 이상했다. 그것도 아주.
‘그러고 보니 니샤도 율리안을 조심하라고 했었지.’
그때는 그놈이 워낙 또라이니까 그러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세키나는 에휴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 설마, 나 몰래 둘이 편지 같은 걸 주고받았던 거야? 밀회를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
“상상력 머야. 그냥 너가 작가 해라.”
“너……!”
디디에는 삿대질을 하며 눈을 부라렸다. 세키나는 디디에의 고성을 더 듣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니, 애초에 너눈 율리안인가 먼가랑 무슨 사인데?”
“어, 어? 나, 나는…….”
디디에는 갑자기 쪼그라들면서 두 손으로 양 뺨을 감쌌다.
“율리안 님이 너무 좋아서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뿐이야…….”
“우리는 그걸 스토커라구 하기로 해써.”
“아니야! 나랑 율리안 님은, 꼭, 꼭 결혼을 할 거란 말이야!”
디디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나는 그분의 식성이나 취향, 버릇, 루틴, 모두 다 알고 있어. 나만큼 율리안 님을 생각하는 존재는 없어! 내가 율리안 님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데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 망쳤어! 너 때문이야!”
“오. 전형적인 스토커의 변명 같아. 구차해지니까 더 말하지 않는 게 조케써.”
“야!”
“머. 왜. 어쩌라구.”
너무 짜증이 나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해진 세키나는 배를 내밀며 턱을 치켜들었다. 디디에의 낯빛이 파리해진다.
“율리안 님이 돌아왔을 때 옆에 있기만 해 봐. 내가 딱 지켜볼 거야.”
“어어. 아라써. 그니까 좀 갈래?”
“만약 그분 옆에 네가 있으면 난 네 앞에서 콱 죽어 버릴 거야. 알았어?”
트라우마를 안겨 줄 계획이라면 아주 잘 됐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도 충분히 트라우마가 생길 거 같으니까…….
정말 여기는 왜 다 저런 애들만 모여있는 걸까.
빨리 가서 자야겠다. 자면 이 똥 같은 기억이 없어지겠지.
세키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
하암.
세키나는 하품을 길게 하며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 시선을 둔다.
“날씨가 조아졌네.”
폭풍이 한바탕 지나가고, 여전히 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전과 비슷하게 춥고 눈 내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키나는 아서가 만들어 두고 간 따뜻한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누워있는 마르틴을 향해서였다.
“말틴, 오늘은 안 나가?”
마르틴이 뒤척였다.
“나, 힘들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했다.”
어젯밤, 며칠 내내 안 보이던 마르틴이 갑자기 돌아왔다. 어디 흙탕물에서 구른 듯 온몸이 엉망인 상태로.
그를 보자마자 캘빈은 고양이를 안고 도망쳤다. 같은 공간에 있다간 콧구멍이 썩을 것 같다며.
세키나도 마르틴의 그런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란 상태였는데, 의외로 아서가 태연했다.
-또 거기 다녀오셨습니까?
아서는 익숙하다는 듯 마르틴을 대했다. 어딜 다녀온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마르틴이 너무 피곤해 보였기에 세키나는 얌전히 잠을 청했다. 그리고 둘만 남게 된 지금. 세키나는 마르틴에게 다가갔다.
“어디에서 멀 열씸히 했는데?”
“훈련했다.”
“어디서?”
“…….”
마르틴은 세키나의 시선을 피했다.
“비밀이다.”
세키나의 눈이 커졌다. 마르틴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아서가 말한 ‘거기’라는 장소가 꽤나 중요한 곳인 모양이다.
그래서 세키나는 더 알고 싶어졌고, 쪼르르 마르틴에게 달려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무해…… 나는 말틴 걱정대서 무러본 건데……. 어디 가눈지 내가 모르면 더 걱정댄단 말야…….”
마르틴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턱을 당기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훈련, 빙벽에서 했다. 마족들 거기 많이 간다.”
“……빙벽? 그 마물 시체가 있눈 거기?”
“그렇다. 그런데 시체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나?”
“…….”
세키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세바스찬이 알려 조써.”
미안, 세바스찬.
근데 내가 살아야지.
세키나는 마르틴의 굳은 눈가를 보며 애써 웃었다.
“거기서 훈련하면 머가 조은데?”
“그곳, 마기가 짙다. 마기를 상대하면서 훈련하는 거다.”
이미 장소까지 말했고 그곳에 뭐가 있는지 세키나가 알고 있다는 걸 파악한 이상,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으므로 마르틴은 대답해 주었다.
“또 갈 꺼야?”
“그렇다. 거기에 아직 1군단 마족들이 있다.”
“아하…….”
세키나는 슬그머니 웃었다.
“나두 가 보고 시퍼.”
“안 된다.”
“쳇.”
“아기, 위험하다.”
세키나는 입을 비죽였다.
“구럼 언제 훈련 끝나는데?”
이걸 물어보려고 일부러 가고 싶다고 말한 거였다. 내가 미쳤나, 마족이랑 같이 빙벽 가서 흑마법을 조사하게?
지금 그쪽에 마족들이 있는 거면 최대한 피해서 가야 했다. 세키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마르틴을 툭툭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아니, 나 오랜만에 말틴이랑 1군단 애들이랑 놀구 시퍼서. 훈련이 다 끝나야 놀자구 할 쑤 이쓰니까.”
마르틴의 뺨에 살짝 홍조가 돌았다.
“한 달 정도 걸릴 거다.”
“흐음……. 아라써!”
한 달이면 기다릴 만하다.
그렇게 생각한 세키나는 마르틴의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덮어 주며 그를 토닥였다.
“난 오늘 나가따 오께. 캘빈이랑!”
마르틴의 고개가 기울여졌다.
“어디? 그놈이랑? 왜?”
“아아. 마왕님이 시킨 일이야.”
드한과 유리엘을 만나러 가야 했다. 아우, 귀찮아. 세키나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인짜 만나기 시른 넘 만나러 가는 거야. 구럼 나 가께!”
마르틴은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가는 세키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싫은 놈을 만나러 가는 거라면서,
왜 저렇게 설렌다는 듯이 웃는 거지?
잘 이해가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