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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69)화 (70/149)

69화

14. 애는 지키는 거랬어

언제 폭풍이 몰아쳤냐는 듯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다.

그 덕분에 드한은 오늘에야말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레했다.

하지만,

-오, 오늘은 백작가에서 소, 손님들이 오기로 했어…….

-하루만 더, 더 있어야 할 거 같아…….

유리엘의 말에 설렜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백작가의 일원에게 유리엘이 공격당했다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챈 드한은 그들을 꼭 만나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구해 준 것도 그들이었기에 차마 말하진 않았다.

더군다나 유리엘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서 신경 쓸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유리엘은 며칠 전부터 이상해졌다.

목숨의 위협을 받아서 예민해졌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만큼.

아무것도 없는데도 깜짝깜짝 놀라고, 밥도 물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기도만 하고, 그러다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이상한 중얼거림을 내뱉고, 영상구를 꺼내 다리에 올려놓다가 다시 넣어두고 올려놓고를 반복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드한은 유리엘이 며칠 전 영상구를 가지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이후부터 이상해졌다는 걸 알아챘다.

‘누구와 이야기를 했기에.’

짐작 가는 상대가 있긴 했지만, 그 상대와 대화를 했다 해서 유리엘이 저렇게 정신을 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드한은 입 안쪽 살을 지그시 누르며 고민에 빠졌다.

“아……! 버, 벌써 내려와 있었어?”

“네. 방에 있는 것도 지겨워서요.”

“으, 응…….”

계단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있는 드한에게 다가온 유리엘은 다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구, 구해 줬던 사람이랑…… 또 널 구해 줬던 아, 아이가 같이 올 거야. 너, 너는 아이랑 같이 있으면 돼……!”

아이? 드한은 미간을 좁혔다.

“세키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으, 응. 아마도.”

“……네. 알겠습니다.”

드한은 살짝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비몽사몽 했던 그 정신 속에서 세키나가 했던 이상한 말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러케 이쓰니까 옛날 생각나네.

-너는 기억 몬 하겠찌만. 내가 기억하니까 대써.

잘못 들은 거겠지?

애초에 나는 세키나인가 뭔가 하는 애와 만난 적이 없는데.

‘그러기에는 전에 봤을 때도 날 아는 듯이 말하긴 했어.’

그럼 대체…… 드한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왜, 왜?”

유리엘은 그런 드한을 보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띄웠다.

“표정이 아, 안 좋아서…… 뭐가 있나…….”

“아.”

드한은 빠르게 표정을 정돈했다.

“아닙니다. 그냥 긴장돼서 그래요.”

“그렇구나…….”

유리엘은 드한의 눈치를 조금 더 살피다가, 이내 의자를 밀며 몸을 일으켰다.

“바, 밥 먹어. 나는…… 기도하고 있을 테니까…….”

“백작가의 사람이 오면 올려보내라는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응…… 고마워…….”

드한은 유리엘이 2층으로 완전히 올라갈 때까지 그를 지켜보다가, 이내 그가 사라지자마자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세키나 다이몬.’

대체 뭘까.

그 아이는 대체 뭐길래 이렇게 자꾸만 자신과 얽히는 걸까.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문득 생각했지만, 드한은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마을을 떠나온 건 2년 전의 일이다. 세키나가 자신보다 어리니 2년 전이면 갓난아기였을 터.

갓난아기인 세키나가 자신을 본 다음에 기억하고, 옛날 생각이 난다는 말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므로 세키나는 자신과 만난 적이 없다. 아니, 자신이 애초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거다. 그때에 자신은 열이 올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환청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더 생각하지 마.’

다이몬 백작가와 이보다 더 얽히지 말자.

드한은 그렇게 다짐하며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세키나를 창문 너머로 응시했다.

***

“안녕. 또 보네.”

세키나는 드한이 밀어준 의자에 앉아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드한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자주 뵙네요.”

세키나는 턱을 괸 채 애써 웃으며 말하고 있는 드한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며칠 전보다 훨씬 더 야윈 얼굴이다.

잠을 못 잤나? 다크써클이 왜 저렇게 심하지? 볼은 또 왜 저렇게 움푹 파였어? 잘생긴 얼굴 관리 안 하냐? 봐 줄 게 얼굴밖에 없는데?

세키나는 나중에 유리엘에게 한마디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며 실내의 같은 공간에 있으면 더러워진다고 복면을 쓰고 유리엘을 찾아간 캘빈을 떠올렸다.

‘고양이보다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양이는 그렇게 끔찍하게 아끼면서 다른 이들에게 질색을 하는 캘빈을 떠올리며 세키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드한의 입술이 다시 한번 열렸다.

“일전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세키나 님이 아니었으면 전 죽었을 테니까요.”

“우웅. 그치. 감사해 해야디. 난 너까지 책임지느라 힘들어 디지는 줄 알아따구.”

“……네에.”

낯선 생색에 드한은 살짝 어색해했지만 곧 적응했다. 세키나와 몇 번 만난 적은 없지만 원래 이런 성격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죽게 둘까 고민하기도 했눈데, 나중에 나한테 먼 일 있음 나 한 번 구하라고 살려 준 거야.”

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구랭.”

대답한 세키나는 툭, 툭,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치며 다시 드한을 응시했다.

참 우습지.

백 년 가까이를 여기서 살았는데, 네 어린 시절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는 게.

그리고 지금 너와 나는 다른 진영의 존재라는 게.

세키나는 쓰게 웃었다.

“나, 궁금한 게 있눈데.”

“말씀하십시오.”

“너…….”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테이블에 기댄 세키나는 두 손에 턱을 괴며 물었다.

“머, 환각 같은 거는 안 보여?”

“……네?”

“환청 같은 거는?”

드한은 순간 뜨끔했다. 방금 전까지 세키나의 환청을 들었노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드한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뇨. 그런 건 안 보이고 안 들립니다만.”

“흐음.”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드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스템창’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거였다.

시스템은 2개라고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드한에게 시스템창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어떻게 드한을 보호하는 거지?

“구럼…….”

세키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가 막 너를 지켜 주거나 하는 느낌을 받아?”

드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의 가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가호가 벌써 이따고?!”

세키나는 자신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다. 그럴 수밖에. 게임상 드한의 가호는 지금보다 한참 더 뒤에 발현하니까.

‘확실히 엄청나게 달라지긴 했네.’

세키나는 다시 툭, 툭 테이블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 가호 말구…… 머라 해야 하지. 구냥 이 세계가 다 너를 위해 돌아간다는 느낌, 그런 거 업써?”

“…….”

드한은 잠시 머뭇거렸다.

“특이한 취향의 서적은 서점에 가면 많습니다만.”

“아우! 그런 거 아니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게!

세키나는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며 드한을 노려보았다. 드한은 그런 세키나의 시선을 비스듬하게 피하며 미세하게 미소 지었다.

“이 세계가 저를 위해 돌아간다라…….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테이블 아래에 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랬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죽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

갑자기 그런 슬픈 이야기는 왜 하는 건데.

세키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이 세계가 널 위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다 죽은 걸 알면…….’

드한은 미쳐 버리겠지?

그것만큼은 절대 알려지면 안 된다. 비밀로 두어야 했다.

“아, 죄송합니다. 괜한 소리를 했…….”

그때, 드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심하십시오!”

찰나의 순간 그는 몸을 던져 세키나를 잡고 바닥으로 뒹굴었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며 세키나가 앉아 있던 의자에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괜찮으십니까?”

살펴보니 다행히도 세키나는 다친 곳이 없었다. 드한은 후우 안도의 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 어…… 고마어. 근데 먼 일…….”

세키나는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려 했다.

그래서 깨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데,

“어?”

“어어?”

“어어어?”

그곳에는 쌍둥이가 있었다.

너네가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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