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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76)화 (77/149)

76화

세키나는 일부러 한을 지하 감옥으로 데리고 간 거였다.

한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건 간에, 그는 암살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많은 고난을 헤쳐 왔을 거란 말이다.

그래서 방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를 죽여놔야 했다.

마르틴을 내보낸 것도, 감옥으로 데리고 와 끔찍한 광경을 보여준 것도. 모두 다 세키나의 계산 하에 벌어진 일들이다.

‘기절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담이 작아서야 쓰나.

아서가 고문한 인간들이 꽤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 세키나도 상자 안에 처박힌 대장이라는 인간을 봤을 때 아찔해지긴 했었다.

하지만 뭐, 세키나에게 있어 이건 혼절할 정도가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걸 봤었기 때문이냐고? 아니다. 세키나는 직접 그런 꼴이 되어 봤기에 무념무상인 거였다.

괴물보다도 더 흉측한 꼴이 된 자신의 모습보다 더 징그러운 게 있을까. 감히 아니라고 하고 싶다.

그래서 세키나는 한이 비위가 좋네 어쩌네 말을 하는 게 조금 우스웠다.

어쨌거나, 상념은 그만하고.

다시 한에게 집중했다.

“아조씨가 있었던 암살 길드.”

세키나는 한과 눈을 마주했다.

“하이럼. 맞찌?”

한의 입술이 반쯤 벌어졌다.

“너, 너…… 어떻게…….”

“그리구.”

세키나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조씨가 황태자 죽여써?”

***

조금 오래전의 이야기다.

하이럼이라는 암살 길드는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길드 중 하나였다. 남부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있는 길드. 한은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하이럼의 부길드장이 됐다.

길드장이 한을 자식처럼 아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한의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마법 실력이 뛰어나거나, 검술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었다. 그는 기척을 숨기는 데에 가히 천재적이었다.

암살을 주로 하는 길드에게 한의 기술은 그야말로 최고인 터.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단도를 잡았던 한은 그렇게 부길드장이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의뢰가 들어왔다.

곧 있을 황실 무도회에서 황제를 암살하라는 내용이었다.

길드장은 당연히 이를 거절했다.

제아무리 돈으로 사람 목숨을 사고판다고 해도, 제아무리 황실이 무너지고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 해도, 그러해도 황제는 황제였다. 황제는 모든 이의 우상이자 대륙의 정점이었다. 그런 이에게 감히 검을 겨눌 수 없다고 길드장은 판단했다.

그리고, 길드장의 남편이 사라졌다.

이튿날, 또다시 의뢰가 들어왔다.

남편을 찾고 싶다면 황제를 죽여라.

길드장은 깊게 고민했지만, 의뢰를 거절했다. 전과 같은 이유였다. 감히 황제에게 검을 겨눌 수 없노라고.

그리고, 길드장이 사라졌다.

이튿날 한의 앞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길드장을 찾고 싶다면 황제를 죽여라.

길드원 대부분은 길드장님의 뜻을 이어받아 의뢰를 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 길드장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는 한은, 유일하게 정을 준 사람이 길드장이었던 한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용감하지 못했다.

용감하지 못했기에 소중한 이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고, 겁이 많았기에 대의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살아야 하고, 당신이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황제를 죽였다.

그리고, 길드장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

“뭐, 그렇게 됐다는 거지.”

한의 장황한 이야기를 들으며 세키나는 잠시 눈을 내리감았다.

“그…….”

그의 말을 하나씩 되짚으며 생각해 본다.

“그니까 주겼다는 거지?”

“…….”

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너는 애가 마음이라는 게 없니? 눈물을 흘려야 할 타이밍 아니야?”

“아. 내가 눈물이 업써서.”

“내 엄마 같은 사람이 죽고 그랬는데?”

“난 엄마 업써.”

“미안하다.”

세키나의 태연한 말에 한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뒷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린 딱 걸린 거지. 황실 추격대가 길드를 쫓아오고, 뭐 그래서 다 뿔뿔이 흩어졌어. 나도 죽을 뻔했고. 그러다 유리가 날 살려준 거야. 유리가 아니었으면 난 그대로 죽었을걸?”

“그런 티엠아이 안 궁금하디만…… 알아써.”

티엠아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기분이 나쁘다. 한은 입을 비죽였다.

“근데, 황제 주긴 거 맞아? 난 황태자가 죽은 걸루 알고 있눈데?”

“아니.”

한은 단호히 대답했다.

“내가 죽인 건 황제야.”

세키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난 그날 황제를 죽였는데, 다음 날 황제가 있었어. 그리고 황태자가 죽었다고 발표됐지. 그런데 아니란 말이지. 난 정말 황제를 죽였거든. 그래서 생각해 봤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한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황태자가 황제인 척하고 있다가 죽은 걸 수도 있고.”

“……황제가 죽꼬 나서 황태자가 황제인 척을 한 걸 쑤도 있꼬.”

“그렇지!”

한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그런데 희한해. 난 절대 사람 얼굴을 착각하지 않거든?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해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는데. 뭘 어떻게 한 거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세키나는 불안한 가능성을 한 가지 생각해냈다.

‘흑마법.’

흑마법 중에 모습을 바꾸는 마법이 있다. 그건 머리 색이나 눈 색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인물 자체를 바꿔서 그 인물이 되게끔 만드는 마법이다.

‘흑마법을 쓴 걸 거야.’

가능성에 대한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아한 점이 있었다.

‘어떻게?’

이전 생에서, 흑마법은 세키나를 통한 연구 끝에 세상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들 중 오직 세키나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지금은 전생의 그때보다 한참 더 이전인데, 인간은 아예 흑마법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세키나는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이건…… 누구랑 의논을 해 봐야 할 거 같은데.’

일단 나중에 생각할 거리다. 지금은 그만큼 중요한 게 있으니까.

“그러면은 의뢰인은 누구였는데?”

“아! 내가 이 말 하면 모두 안 믿는데. 유리도 안 믿었거든.”

한은 검지를 쫙 펼친 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중앙성 신전.”

“…….”

“확실해. 정말로.”

신념을 가지고 확신하는 그를 보며, 세키나는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그걸…… 어떠케 아라써?”

“당연히.”

당연히?

“내 감이지. 딱 감이 말해 주더라고. 그쪽이라고.”

“미친넘…….”

에이 씨. 괜히 긴장했네.

세키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네 차례야.”

한은 씨익 웃으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세키나를 응시했다.

“대장 놈이 뭐라고 말했어?”

“아. 걔 말 몬 해써.”

세키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말하기 전에 아써가 혀를 잘라꺼든.”

“우욱! 야!”

“대신 필담을 해써. 진위를 가리는 마법을 걸어 가지구.”

“아, 진짜 이 미친 집안…….”

한은 아우, 진저리를 치며 눈을 흘겼다. 하지만 세키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잇는다.

“근데 그 대장 넘도 너랑 똑같은 걸 얘기하더라구.”

“뭘?”

“신관이 시켜따고.”

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와이씨! 내 말이 맞지? 그래! 내 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저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식한 신념이라 해야 할지.

세키나는 쯧쯧 혀를 찼다.

한은 그런 세키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이상, 그는 더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물러선 건 과거의 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돼?”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세키나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담은 작찌만 머리는 잘 돌아가네.”

“칭찬이지? 칭찬이라고 해 줘. 고마워. 응.”

세키나는 피식 웃으며 그와 똑같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일딴, 수도로 가보까?”

그놈들이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세키나의 입가에 비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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