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X바, 시X, 시XX…….’
한은 앞서 걸어가는 마르틴의 육중한 몸을 보며 거듭 욕설을 읊조렸다.
‘괴물이야? 저거 진짜 인간 맞아? 미친 거 아니야? 저건 인체 개조 수준 아니야?’
3미터가 넘는 마르틴의 신체는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해 주었다.
‘한 대라도 맞으면 난 죽는다. 진짜 죽어.’
상상만 해도 쓰러질 거 같다. 한은 이를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백작님인가?’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그랬지.
백작님을 만나면 분명 죽을 거라고.
이 분도 만나자마자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지 않았나?
그래. 백작님이다. 백작님인 게 확실했다. 백작님이 아니면 안 된다. 이보다 더 강한 이가 있다고 말해 주지 마, 제발.
“저…… 배, 백작님?”
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대답이 들려왔다.
“나, 마르틴이다.”
“……네?”
“나, 군단장. 백작 아니다.”
“…….”
한은 순간 정신이 나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이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다고? 아니, 아니. 그러진 않을 거다. 그냥 애들이 부풀려서 말한 걸 거야. 그럼, 그럼. 애들이니까. 어린 애들은 원래 과장하길 좋아하지.
“하, 하하하. 아니, 세키나 님이 그러셨거든요. 백작님을 만나면 얼굴 보자마자 죽을 거라고…… 마, 마르틴 님이 그만큼 강해 보이셔서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하하.”
그래서 한은 애써 웃어보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마르틴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한을 내려다보았다.
“백작님, 나보다 강하다.”
그러며 당당히 한마디를 한다.
“나도, 무섭다.”
“…….”
X바. 어떻게 된 집구석이길래 이런 괴물이 무서워하는 존재가 있어.
나 진짜 돌아가고 싶어.
나갈래.
무서워.
엄마…….
한은 이제 정말 혼절할 지경이었다.
“여기, 내려가라.”
그런 와중 마르틴이 가리킨 곳은 한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었으니까.
“…….”
한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체념했다.
“저를 죽이시려는 거군요……. 하긴…… 이상한 놈들을 영지로 끌고 들어온 제가 살아있길 바라면 욕심이겠지요…… 네…… 겸허히 죽음을 받들겠습니다…….”
그래. 그냥 죽자.
까짓거, 죽는 게 뭐 대수냐. 죽으면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내려가라.”
“네…….”
한은 터벅터벅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다. 까짓거 죽지, 뭐. 까짓거, 까짓거……가 아니잖아! 나 죽기 싫어! 죽는 거 대수 맞아!
한은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어 앞뒤를 둘러보았지만, 뒤에는 마르틴이 우뚝 서 있었다.
엄마…… 보고 싶어…….
한은 훌쩍이며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머야. 아조씨 왜 울어?”
세키나를 보게 되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된 한은 이곳이 감옥이라는 걸 알아챘고, 감옥 안에는 자신을 공격했던 인간들이 갇혀있는 걸 발견했다.
다시 말해 여기가 자신의 무덤이 아니라는 뜻이다.
“감옥이 습해서 그래. 이 온도, 조명, 습도. 아주 다 낭만적이야.”
“미쳤나 바.”
세키나는 헛웃음을 뱉으며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쩌기, 너 따라왔떤 인간들이야.”
알아보기는 진즉 알아봤지만, 한은 세키나에게 이끌려 창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우욱!”
그대로 속을 게워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옥 안에 있는 놈들은…… 정말 처참했으니까.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나, 저 꼴을?
그냥 사람인 척하는 뭔가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고?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에 한은 더 이상 저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는데, 바로 옆에 서 있는 세키나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너, 너…….”
한은 허, 소리를 내며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쪼끄마한 게 비위도 좋다…….”
듣기로는 3살이라는데, 3살짜리 애가 저런 걸 보고도 멀쩡하다는 게 너무…….
‘무서워, X바.’
한은 다시 코를 훌쩍였다.
“네, 네가 한 거야? 하하, 그럴 리 없겠지만. 아니, 제발 그러지 않았다고 해줘! 여기서 뭘 더 들으면 내가 미칠 거 같으니까!”
“……아조씨 지금도 쫌 미쳐있는 거 같아.”
세키나는 그런 한을 보며 으, 소리를 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써. 내가 말해떤 인간 데꼬 와써.”
그러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
그는 환하게 웃으며 한에게로 손을 뻗었다.
“안녕하세요? 아서라고 합니다. 편하게 불러 주세요.”
평범하게 생긴 남자.
인상도 좋고, 웃는 모습도 좋다.
정상인.
정상인이다.
한은 순간적으로 또 울컥했다.
“하, 한이라고 합니다…….”
“음? 왜 우시지?”
“습해서 그렇습니다…….”
한은 손등으로 눈가를 콕콕 찍으며 대답했다.
아서는 그런 한을 측은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감옥 쪽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틀 내내 쥐어짜 봤는데요, 딱히 나온 건 없었어요. 다들 입이 무거운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아서는 쓰읍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그 도망친 대장이라는 인간을 잡아 왔거든요.”
이 험준한 북부에 위치한 백작령에 발을 디딘 놈이 도망가봤자 어디로 갔겠는가?
아서는 정말 손쉽게 대장을 붙잡을 수 있었다.
“와, 진짜…… 진짜 최고십니다…….”
한은 다이몬 백작가의 능력에 다시 감탄하고는, 아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 창살 안에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구겨진 인간이 있었고.
“……저거 살아있기는 한가요?”
“대충은요.”
“아서 님이 하신 건가요?”
“네, 그럼요!”
“하, 하하…….”
한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경기 어린 웃음을 내뱉었다.
“저 잠깐 기절 좀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툭 쓰러져 버렸다.
한의 원맨쇼를 지켜보던 세키나는 에휴 한숨을 뱉었고, 아서는 그런 한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어구, 인간들은 정말 나약하다니까.”
제가 나약한 게 아니고 님들이 미친 거 같은데요…….
한은 멀어지는 정신을 느끼며 읊조렸다.
***
“허억!”
한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방금 전까지 괴기한 꿈을 꾼 탓이리라.
“와, 진짜. 진짜 미친 악몽.”
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내가 이상한 꿈을 꿨으아아아악!”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이는 거구의 남자, 마르틴이었으니까.
“오, 일어났다.”
흐어어엉. 진짜 도망치고 싶어.
한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크흥 코를 마셨다.
“아기. 인간 일어났다.”
“앗, 구래?”
옆방에 가 있던 세키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여전히 넋이 나가 있는 한을 향해 말했다.
“아조씨. 담이 그케 작아서 어케 암살 일을 해써?”
한은 그런 세키나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너네가…….”
“우리가?”
“너네가 특이한 거야!”
한은 있는 담력을 쥐어짜 내 소리쳤다.
“나도 나름대로 강심장이라고 유명했는데, 포커페이스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왜 날 이렇게 쭈구리로 만들어! 흐어어엉!”
그러면서 엉엉 운다.
다 큰 어른이 우는 게 참…… 참 꼴 보기 싫긴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착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세키나는 그를 내쫓지 않고 참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의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 때쯤, 세키나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고 가 앉았다.
“다 울어써?”
“크흥.”
“구럼 할 일 하쟈.”
“…….”
어쩌면 여기서 가장 무서운 건 세키나가 아닐까.
한은 섬찟한 생각을 했다.
“일딴 대장한테 캐낸 정보를 말해 주기 전에, 아조씨가 나한테 확인시켜 조야 하는 게 이써.”
한이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세키나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세키나의 눈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