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어……떻게?”
부정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수도 없었다.
율리안의 눈에 확신이 서려 있었으니까. 뭔가를 알고 있는 거니까.
세키나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고양이가 인간임을 지적했을 때에는 놀라긴 했지만 두렵진 않았다. 마족들이 고양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았고, 또한 고양이 자체도 사실을 밝히려고 발버둥 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율리안을 어찌어찌해서 쓰러뜨린다 해도, 살 수 없다. 죽을 거다. 난 인간이니까.
“유물을 그렇게 쓰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
유물?
세키나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가지고 있거든, 유물.”
율리안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가슴에 달려 있는 브로치를 가리켰다.
“이거, 인간에게만 반응하더라고. 나도 아카데미에서 알았어.”
말도 안 된다.
너는 몰라야 한다. 알 수가 없다.
유물이 인간에게만 반응한다는 건 마족들이 아주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런데 율리안이 대체 어떻게?
세키나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내가 뭘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나 싶지?”
율리안은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아까 전 방문을 박차고 몰아치던 때의 것과 똑같은 바람이 그의 손에 맺혔다.
“어차피 넌 여기서 죽으니까 알려 주는 거야.”
죽을 거다.
죽는다.
‘……아니.’
난 여기서 안 죽어.
절대 못 죽어.
세키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목청을 틔웠다.
“율리안!”
그러자마자 몰아치던 바람이 한순간 흩어졌다.
“꺄아악! 뭐야!”
디디에가 온 것이다. 율리안의 이름에 반응하는 디디에.
세키나는 디디에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율리안 님? 돌아오셨어요? 정말 기뻐요! 얼마 만에 보는 건지! 하아, 전 정말 행복해요!”
디디에는 일단 기뻐하며 율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디디에의 시선이 머리칼 너머의 세키나에게 향했다.
“왜…… 세키나를 죽이려고 하세요?”
디디에는 율리안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얘는 안 돼요! 아시잖아요! 얘가 소환술을 쓰는 거! 우, 우리 마, 마계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요! 죽이면 안 돼요!”
세키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율리안을 쳐다보았다.
디디에를 부른 건 반쯤 도박이었다.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율리안. 그리고 방 주변의 모든 인기척을 다 지워 버린 율리안. 살인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옷에 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으려는 율리안.
‘율리안은 나를 죽이려는 걸 들키지 않으려 해.’
그래서 디디에가 온다면 물러갈 거라 생각했다.
도박이 성공할까?
물러갈까, 아니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까.
세키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아…….”
율리안은 긴 한숨을 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게. 내가 잘못 생각했네.”
그리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세키나에게 다가왔다.
“미안, 세키나. 아팠지?”
세키나의 목덜미를 감싼 후 회복 마법을 발동한다. 분명 회복시켜주는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을진대, 그의 손바닥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조만간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 할 말이 많을 테니까.”
율리안은 생긋 웃은 후 디디에의 팔을 끌었다.
“디디에. 내가 방으로 데려다줄게. 나가자.”
“아…….”
디디에는 아직도 주저앉아있는 세키나를 쳐다보았다. 세키나는 그 시선을 눈치채고 손을 저었다. 빨리 가라는 뜻이었다.
“네. 조, 좋아요.”
그에 디디에는 율리안을 더 꽉 끌어안고 방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세키나는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와씨…….”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주글뻔했네.”
개무서워.
***
디디에를 보내고 방으로 돌아온 율리안은 목 언저리의 단추를 풀며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기분은 안 좋네.”
아직도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 같다.
비릿한 피 냄새가 폐에 가득 쌓인 것만 같다.
그대로 침대에 누운 율리안은 손등을 이마에 대며 입 안쪽 살을 혀로 짓눌렀다.
“세키나…….”
죽여야 한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인간이기 때문이냐고?
아니. 율리안은 호문쿨루스라는 자기 자신의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누가 인간이건 마물이건 무엇이건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유물에 관한 건 진즉 알고 있었다. 세키나가 인간이기 때문에 죽이려는 거라면 3년 전에 죽였으리라.
다만 지금 세키나를 죽이려 하는 이유는,
<세키나 다이몬을 죽여라.>
라는 쪽지가 왔기 때문이다.
처음 그 쪽지를 발견한 율리안은 그걸 무시했다. 누군가의 시답잖은 장난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튿날. 율리안의 룸메이트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쪽지가 왔다.
<그를 찾고 싶다면 세키나 다이몬을 죽여라.>
무시했다. 그럴 리 없을 테니까. 그 아이는 뛰어난 마법사라 쉽게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튿날. 율리안이 의지하던 교수가 사라졌다.
그리고 쪽지가 왔다.
<교수를 찾고 싶다면 세키나 다이몬을 죽여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내가 사람을 죽이지?
이튿날. 율리안이 존경하던 선배가 사라졌다.
쪽지가 왔다.
율리안과 함께 공부하던 도서관 사서가 사라졌다.
쪽지가 왔다.
율리안을 잘 챙겨주던 카페테리아의 점원이 사라졌다.
쪽지가 왔다.
사라지고, 쪽지가 오고, 사라지고, 쪽지가 오고…….
죽여야겠어.
그래야 이 굴레를 끊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차라리 조금 더 일찍 결심할 것을 그랬다. 그랬다면 사라진 인간들이 더 적었을 텐데. 그들은 죽지 않았을 텐데.
“빌어먹을.”
분했다.
너무나도 분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아무리 강한 마법사라고 해도 그저 아이일 뿐이다. 쪽지의 발신자를 추적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아카데미에 말해 보려 했다. 하지만 개중 어떤 자가 쪽지를 보냈는지 알 수 없어 말하지 못했다. 율리안의 주변인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마족들에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못한다.
마족들은 그깟 인간이 죽는 게 뭐가 아쉬운 거냐 되물을 놈들이다.
그래서, 율리안은 선택을 해야 했다.
세키나를 죽이는 선택을.
“하아…….”
오늘은 디디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아 주었지만, 다음번은 아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세키나를 죽이리라.
또 누가 사라질지 모르니까.
또 누가 없어질지 모르니까.
“짜증 나…….”
율리안의 꾹 감긴 눈가가 반짝였다.
***
“야. 시스템.”
이제 정신을 차린 세키나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너 머 알고 있찌.”
대답 없는 허공을 향해 이를 부득 간다.
“그래서 율리안이 올 때 나보고 도망치라 한 거자나. 맞찌?”
그간 죽음의 위기에서,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경고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율리안만 갑자기? 무슨 이유로?
‘뭔가 있어.’
분명 시스템과 관련 있는 일일 것이다. 세키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빤니 말해. 나 진짜 죽기 실으니까.”
띠링!
[SYSTEM]
저도 말하고 싶습니다만, 말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