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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79)화 (80/149)

79화

16. 뭐래. 내가 이길 거야

“율리안!”

“또 뭐야!”

이름을 외치자마자 휘잉 바람이 불더니 디디에가 나타났다.

이거 뭔가 소환 주문 같고 좋은데……? 세키나는 은근 기분이 좋아졌다.

“왜, 뭐야. 무슨 일이야?”

디디에는 당황해하며 세키나를 잡고 두리번거렸다.

“아. 율리안 방 위치 쫌 알려 달라구.”

“……지금 그것 때문에 나 부른 거야?”

“웅.”

세키나가 너무 태연하게 대답해서, 디디에는 순간 넋이 빠질 뻔했다.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죽을 뻔한 애 아니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해?

디디에는 코웃음을 뱉었다.

“야. 너…….”

“엉?”

“그, 뭐야. 괜찮아?”

세키나의 눈이 커졌다. 낯설어하는 게 뻔히 보여서 디디에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니, 물론 율리안 님이 너를 이기고 널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긴 한데.”

숨 쉬어라. 진짜 너무하네.

“그, 내 눈앞에서는 안 죽었으면 좋겠달까.”

“그럼 머 뒷산 가서 죽으면 대냐?”

하여간.

세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 안 죽어. 죽기 시러.”

“그, 근데 율리안 님한테는 왜 가려는 건데?”

“할 말 이써서.”

“또 싸우려고?”

“몰라. 난 싸우기 실은데 걔가 싸우자고 할 쑤도 이찌.”

“…….”

디디에는 입 안에서 말을 굴렸다.

“그으. 음.”

물론 율리안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다. 율리안이 세키나를 죽이기로 결심했다면 당연히 그걸 지지해야 함이 맞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디디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위험할 거 같은데.”

“모야.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아니거든! 절대 아니야!”

빽 소리를 지른 디디에는 복도 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절로 가서 한층 올라가면 방 있어! 거기가 율리안 님 방이야! 됐지? 가서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해! 흥!”

세키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디디에의 속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야야.”

그래서 세키나는 디디에의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아까 구해 조서 고마어. 나 간다.”

디디에는 자신을 지나쳐 가는 세키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어떡하지?

율리안 님을 너무 사랑해서 율리안 님의 선택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과, 또 그건 안 될 거 같다며 소리치는 마음이 양립했다.

어떡하지?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

율리안의 방문 앞에 다다른 세키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시스템 창을 통해 율리안이 협박당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겁낼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정말 율리안이 날 죽이고 싶어 하는 거라면?

내가 인간인 게 너무너무 싫어서 달려든 거라면?

고민하고 있었는데 협박이 온 김에 아싸 하고 죽이려고 하는 거라면?

‘에이씨.’

세키나는 머리를 헝클며 심호흡을 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똑똑

‘튀자.’

세키나는 열린 문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뭐야?”

세키나를 발견한 율리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싸늘한 눈빛을 한 채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왜 왔어?”

세키나는 그런 율리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맞닥뜨렸을 때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또 휘몰아쳤기에 여러모로 무서웠다. 흡사 뜬금없는 재해 같아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율리안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는 지금.

무섭지 않았다.

“너.”

그래서 세키나는 한 걸음 율리안에게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진짜 날 주기려는 이유가 머야?”

율리안의 입가가 살짝 굳었다.

그는 후우 한숨을 뱉으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네가 인간이니까. 아까도 말했잖아.”

“진짜로?”

세키나는 두 눈을 크게 올려 떴다.

“정말? 정말 내가 인간이니까 주기려는 거야? 한 치의 거짓도 업써?”

“너…….”

율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까와는 다른 기세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초라하게 없어질 잡초같이 보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마치 눈보라를 꿋꿋하게 견디는 고목 나무처럼 보였다. 율리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협박당하고 이찌?”

율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떻게?

“마침 너랑 비슷한 일 겪은 넘을 알고 이꺼든. 아. 그놈은 협박에 졌써. 그리구 모든 걸 잃어버렸꼬.”

세키나는 한을 떠올리며 말했다.

“너, 날 죽이면 어떠케 댈 거 같아?”

한은 황제를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래서 황제를 죽였다.

하지만 황제는 죽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황제의 탈을 쓴 ‘무언가’가 대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 거다.

세키나가 죽으면, 세키나의 탈을 쓴 ‘무언가’가 이 자리로 들어오리라.

“난 안 사라질 꺼야. 나랑 똑같이 생긴 먼가가 들어오게찌.”

“그게 무슨 말…….”

“그리고 넌 주글 거야.”

세키나는 율리안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대써?”

율리안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쪽지의 존재는 입 밖으로 꺼내 본 적 없다.

그런데 세키나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비슷한 일을 겪은 이를 안다니?

그럼, 이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건가?

‘여러 명이 겪은 일이라면…….’

발신자를 찾을 수 있어.

율리안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평소처럼 꼿꼿한 표정을 한 채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어디 한번 말해 봐.”

스윽.

율리안의 손바닥이 펼쳐졌다. 아까 전 보았던 바람의 흐름이 그의 손바닥에 맺혔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넌 여기서 죽을 거니까.”

***

쌍둥이의 방.

메르데스는 카펫 깔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넋을 놓고 있었다.

“형아. 뭐해?”

“공부해.”

책을 읽고 있던 파르데스가 대답했다.

“나는 뭐해?”

“너도 공부해.”

“아아! 싫어어!”

메르데스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나가고 싶어!”

“안 돼.”

그런 메르데스의 어깨를 짓누른 건 파르데스였다.

“세키나가 한 말 기억 안 나? 당분간 자중하라고.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안 걸린 거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지만!”

“한을 공격한 놈들을 제대로 캐낼 때까지만이랬어. 그때까지는 나가면 안 돼.”

“히잉…….”

메르데스는 훌쩍거리며 어깨를 축 떨어뜨렸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심심해.”

나가지 않으니 정말 심심했다.

한이 보고 싶었다.

조셉도, 유리도, 여관 주인장도, 카페 점원도.

“심심하다고!”

“시끄러워, 좀.”

“악! 아파!”

메르데스의 머리통을 거세게 후려친 파르데스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뒤진다. 닥쳐.”

“……힝.”

“씁.”

“…….”

메르데스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파르데스는 자신보다 강했으니까.

메르데스는 검사고, 파르데스는 연금술사다.

이렇게만 보면 메르데스가 더 강할 거라고들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절대적인 힘의 총량을 놓고 봤을 때 파르데스가 훨씬 더 강하다. 주먹싸움을 하면 100전 100승을 할 정도로.

검을 들고 싸운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은 형을 사랑하고, 형 역시 자신을 사랑……하나? 아무튼 그럴 테니까.

너무너무 심심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잠이나 잘까. 메르데스는 옆으로 돌아누워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그때였다.

“야야야! 너희 다 있어?”

벌컥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뛰쳐 들어왔다.

디디에였다.

“뭐야? 네가 왜 와?”

파르데스가 날카롭게 물었다. 메르데스 역시 디디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방금 전 한 마디만 더 하면 더 세게 때린다고 파르데스가 말하지 않았나. 그래서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 나랑 같이 좀 나가자!”

“뭔 개소리야. 나 공부하고 있으니까 꺼져.”

“세키나!”

디디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마법을 쓸 생각까지 차마 못하고 복도를 뛰어온 디디에는 땀에 절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세키나가 위험하다고!”

세키나의 안위가 더 중요했으니까.

“유, 율리안 님이 세키나를 죽이려고 해!”

“……와. X발.”

메르데스의 입이 열렸다.

“그 새끼, 내가 죽일 거야.”

퍼억!

파르데스의 주먹이 메르데스를 가격했다.

“내가 한 마디만 더 하면 뒤진다 했지.”

파르데스는 손목을 돌리며 쓰러진 메르데스의 몸을 넘었다.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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