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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80)화 (81/149)

80화

“그러니까…….”

율리안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며 반문했다.

“내가 받은 그 쪽지가, 흑마법이라는 거야?”

“웅. 확실해.”

율리안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사라진 사람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찾을 수 있어?”

“…….”

세키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시체를 찾아보깨.”

“아, 아아악!”

율리안은 발광하며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나는 너 못 믿어. 다 거짓말이야. 말도 안 돼.”

그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주변인들이 하나하나씩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율리안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세키나를 죽이면 그들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그들은 그냥 납치된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세키나를 죽이고 아카데미에 가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 거라고.

그런데 흑마법이라고?

그들은 모두 다 죽었다고?

아니,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절대!

“말도 안 되잖아. 아무리 흑마법이 금기된 마법이라고 해도, 흔적도 없이 사람을 납치해 가는 건…… 말이 안 돼. 그냥, 그냥 암살 길드라거나 그런 걸 거야. 거짓말이야. 아니야.”

끝없이 현실을 부정하는 율리안을 보며 세키나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괴롭다.

너무나도 괴로워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죄스러워서. 미안해서. 모든 게 다 내 탓 같아서.

오랜만에 느껴본다, 이런 감정은.

세키나는 치미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차분히 대답했다.

“그 흑마법이 원래 그래.”

한 글자, 한 글자씩. 천천히. 하지만 의미는 명확하게.

그래야 상대를 동정하지 않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동정이란 것은 싸구려 연민밖에 안 되니까.

“지령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주변인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거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부터…… 천천히.”

율리안의 입이 뻐끔거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죽었다고, 모두 다?”

어물거리는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정말이야?”

“…….”

“정말, 흑마법이야? 아니야. 아니라고 해 줘. 그건 이미 없어진 마법이잖아. 쓸 수 있는 존재가 없…… 아. 있구나.”

율리안의 얼굴에 살기가 드리워졌다.

“있었어. 흑마법을 다루는 존재가.”

그는 으드득 이를 깨물며 읊조렸다.

“루치페르…… 개자식…….”

세키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었다.

“그게 누구야?”

“지금은 사라진 천족의 우두머리.”

율리안은 과거 르카이츠에게 들었던 기억을 되짚으며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새끼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었던 거야. 그놈이 감히……!”

당장 달려가 그놈의 목을 잘라 버리고 싶다.

그놈을 쓰러뜨리고 싶다. 심장을 빼내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아니, 아니야. 뭘 해도 죽은 사람들은 안 돌아와. 다 없어졌어. 모두 다.”

소용이 없다.

모두 죽었으니까.

다신 만날 수 없으니까.

“난 어떡하지?”

율리안은 세키나의 어깨를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나는 호문쿨루스인 걸 알면서도, 인간과 어울렸어. 사람들이 좋았어. 마족과는 달라서, 따뜻해서, 다정해서, 그래서 그들을 사랑했어.”

마왕성은 지옥 같았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마족들.

언제 어디서 날 노릴 지 모르는 다른 호문쿨루스들.

실력을 보이지 못하면 죽는 하루하루.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아카데미로 간 순간, 율리안은 비로소 제대로 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좋아했다. 그곳을 사랑했다.

“그런데 다 사라졌어. 내가 그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 사람들을 아껴서. 그래서 루치페르가 날 이용한 거야. 내가 다른 호문쿨루스랑은 다르니까. 나에겐 잃은 게 있으니까, 그래서!”

율리안은 자신의 가슴을 세게 치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나 때문에 죽었어. 나만 가까이 가지 않았어도 살았을 텐데…….”

세키나는 뜨거워지는 눈가를 느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율리안의 마음을, 안다. 감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해 주어야 할 말이 있다.

“먼 개소리야. 그게 왜 너 때문이야.”

그는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너한테 그런 주술을 건 놈이 잘몬한 거지. 왜 애꿎은 너를 탓해. 일어나. 울지마.”

그는 단지 이용당한 것뿐이니까.

만약, 과거에 세키나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일어나지 않은 과거를 생각하는 것보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에 집중하고 현재에 충실해야 했다.

세키나는 율리안의 뒷목을 꽉 움켜잡았다.

“울지마. 이럴 때 울면 안 대. 참아. 어떻게든 참아.”

우는 순간 분노가 흘러나오게 되니까.

불타오르는 복수심이 눈물에 희석되어 버리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울어. 너가 정말 마음이 놓일 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율리안은 세키나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마음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꼭 복수하자.”

“응.”

“꼭, 꼭 그놈을 죽이자.”

“응.”

“내가…… 내가 죽일 거야.”

“그래.”

“내가, 꼭…….”

율리안은 피가 줄줄 흐를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

“크흡! 율리안 님…….”

옆방에 숨어 대화를 엿듣고 있던 디디에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 일이……. 물론 인간 놈들을 아낀 건 정말 화가 나지만…… 크흡! 그래도 율리안 님이 행복했다면 되는 거였는데…… 루치페르인지 나발인지 새끼 때문에……!”

디디에의 방언과도 같은 말을 들으며, 메르데스와 파르데스는 서로 눈을 마주했다.

“형아.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해도 지금 저기 가면 안 된다는 건 알 거 같아.”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율리안을 때려눕혀 주겠노라 호기롭게 외치고 달려온 것치고는 허무한 결말이긴 하다.

아니, 슬픈 결말인 건가.

“형아. 울어?”

“아니? 절대? 안 우는데? 그러는 너는?”

“나도 안 울어. 이, 눈가가 촉촉한 건 습도가 높아서 그런 거랬어.”

“누가?”

“한이.”

“그래. 한 말이면 맞지.”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모르는 척을 했다.

크흡! 디디에의 코 삼키는 소리에 쌍둥이도 함께 코를 훌쩍인다.

“그, 형아는 루치페르가 누군지 알아?”

“응.”

파르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 전쟁을 일으킨 천족이야.”

마족에게 가장 싫어하는 종족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천족이라고.

그들은 스스로를 천사라 지칭하며 신의 대리인을 자청했는데, 하는 꼴은 천사가 아니라 마족 뺨치게 나쁜 짓만 해댔다. 그러다 진짜 신의 철퇴를 맞고 세계 저편으로 내쫓겼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계로 쳐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천마 전쟁.

당연히 마왕이 승리했다.

그리고 천족의 우두머리, 루치페르는 죽었다.

“마왕님한테 패배해서 죽었다고 들었어.”

“죽었다고?”

“그런데 지금 들어 보니까 안 죽은 거 같은데. 미친놈. 바퀴벌레도 아니고.”

파르데스는 한숨을 길게 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리아트 경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다.

결코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형아.”

이때, 메르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약에……. 그놈이 우리에게 흑마법을 걸면 어떡해?”

“뭐?”

“그럼 우리가 지금 같이 노는 인간들이 죽어?”

메르데스의 눈가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율리안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는 중이니 그의 슬픔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고, 그렇기에 더 끔찍한 상상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파르데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기 전에 그 새끼를 죽이자.”

“할 수 있을까?”

“해야지.”

파르데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는 어른을 지키는 거니까.”

“푸하하!”

웃음을 터뜨린 메르데스가 파르데스를 껴안았다.

“난 형아가 정말 좋아.”

파르데스는 그런 메르데스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주며 다짐했다.

바퀴벌레 새끼.

반드시 죽여 주겠노라고.

“크허헝! 율리안 니임!”

그리고 쟤는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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