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쟤네 머하고 있눈 거냐.”
쌍둥이와 드한이 놀고 있는 걸 창문 너머로 보고 있던 세키나는 헛웃음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머리통만 한 눈덩이가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저걸 과연 눈싸움이라고만 명명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렇게 뛰어노는 걸 보니 영락없는 어린아이들이다. 셋 다 5살밖에 안 먹은 풋내기들이니 당연한 거겠지.
“저런 넘들이 나중에 미친 형제 어쩌구로 불리게 된다눈 게 안 믿기디.”
지난 6번의 삶에서 듣고 보았던 쌍둥이와 지금의 그들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전 생의 쌍둥이는 그야말로 미친개나 다름없었으니까.
‘이번에는 뭐가 달라져서 바뀐 건지 모르겠네.’
기껏 해 봤자 세키나, 자신밖에 달라진 게 없을 텐데 이게 엄청난 영향을 줄 거 같지는 않고…… 세키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드한도 많이 달라졌고.’
그의 변화 이유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전보다 훨씬 더 일찍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던 마을이 그대로 몰살당했으니까.
‘루치페르가 한 짓이겠지.’
세키나는 쓴웃음을 삼켰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성장하는 주인공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루치페르는 쌍팔년도 소설만 읽은 모양이다.
나를 여러 번 죽인 것도 화가 나는데 그로도 모자라 마을 사람들까지 몰살시킨 루치페르를 꼭 끝장내 줘야겠다고, 세키나는 다짐했다.
‘일단 수도에 가서 던전을 털면 마왕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러면서 황태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 다시 말해 황실과 흑마법이 결탁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신전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황실을 잘라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루치페르를 처리하면 진짜 퀘스트, <게임의 파멸엔딩을 향하여!>를 완료할 수 있겠지.
‘마왕이고 마족이고 빨리 힘을 되찾아야…….’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냐앙!”
세키나의 허벅지에 누워 몸을 말고 있던 세라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왜 갑자기 일어나느냐! 지금 자세가 내 매우 마음에 들었거늘!
“난 너 침대가 아니거등?”
-흥. 날 거두기로 했으면 얌전히 내 수발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너의 의무야!
“자꾸 그로면 캘빈한테 완저니 보내 버린다.”
-…….
세라는 꼬리를 바싹 세우고 크게 부풀렸다가, 이내 귀를 접으며 핑크색 발바닥을 핥았다.
-무슨 일이냐? 얼굴을 보아하니 마음이 급해 보이는데.
“나가 볼라구.”
-왜?
“확인해 볼게 이써서.”
세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추운 날, 굳이 밖으로 나가서 확인해 볼 만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냥 자기와 같이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게 최고지.
세키나 역시 추운 날 바깥에 나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한 번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기도 했거니와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마계 연결 통로룰 열어보려구.”
세키나는 씨익 웃으며 가볍게 손을 까딱였다.
“우리 영지에서두 멀어져 이쓰니까, 요기서 마기가 느껴진다 해서 잘못댈 건 업짜나?”
그간 마계 연결 통로를 쉽게 사용하지 못했던 건 마기의 유출 때문이었는데, 백작령에서도 멀어졌겠다 주변에 감시하는 이들도 없겠다,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머라도 캐낼 쑤 이쓰면 캐내야디.”
세키나의 두 눈이 반짝였다.
***
마계 연결 통로를 마지막으로 열었던 건 루치페르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율리안이 그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인지했을 때가 마지막이다.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통로를 열었는지 모르겠다.
자칫했다간 신관에게 들킬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하지만 그때에는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이유는 모른다. 뭐, 마기가 날아가는 걸 누가 막았던 걸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그랬기 때문에 세키나는 마계 연결 통로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세키나는 백작령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진 마을에 있다. 더군다나 여기는 아직 북부였다. 마물이 튀어나오는 북부.
이곳에서 마기가 느껴진다고 해도 신관들은 별다른 걸 의심할 수 없으리라.
‘유리엘도 자고 있으니까 마침 잘 됐지.’
자는 중에 마기를 감지한다 해도, 마물 소행이라고 둘러대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세키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마계 연결 통로 발똥.”
그러자마자 눈앞이 팟! 하고 어두워졌다. 세키나의 앞에 어둠이 가득한 커다란 구체가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세키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익숙한 기운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시야가 돌아왔다. 드리워진 어둠은 그대로였으나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쿵, 쿠웅!
거대한 마물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일전에 보았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세키나는 생각했다.
‘마기 농도가 어째 전보다 짙어진 것 같은데.’
세키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구멍 안으로 조금 더 얼굴을 들이밀었다.
“요 마기를 따른 마족들이 머글 수 있게 하면 조을 텐데.”
마기를 못 먹는 마족들은 항상 배가 곯아있다는 아서의 말을 떠올린 세키나는 쯧 혀를 차며 머리를 굴렸다.
“구러고 보니…….”
장로들을 견제하기 위해 블랙 스피넬을 구하려 했던 세키나였다.
블랙 스피넬은 마기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원석.
그 원석을 마계에 집어넣었다가 빼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원석에 이 순도 높은 마기를 그대로 담은 뒤에 마족들에게 주면…….
‘힘이 돌아오지 않을까?’
세키나의 두 눈이 반짝였다.
지금 상황으로는 루치페르를 상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루치페르는 흑마법을 쓰는 놈이고, 마왕은 그런 그로 인해 힘이 봉인된 상황이었으니까. 마족들도 마계에서 쫓겨나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기를 담은 스피넬을 쥐여 주면 훨씬 더 강해질 거야.’
그럼 루치페르가 뭐냐, 그 이상의 것이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스피넬을 구하러 가야겠어.’
수도행 이후로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아우, 짱이네. 기분 조아.”
세키나는 그렇게 머릿속에 입력하며 구체로 기울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음?”
세키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계 안에 있는 모든 마물이 세키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세키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날 보눈 건가?”
세키나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럴 때마다 마물들의 고개가 이리로, 저리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나를…… 왜?”
전에 통로를 열었을 때에는 세키나가 있는지 없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놈들인데, 갑자기 왜 세키나를 바라본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마물들이 지능이 있는 존재였나?
모든 이성과 감정을 빼앗긴 채 퇴화된 존재가 아니었나?
그런데, 왜…….
그때였다.
“꿰에에엑!”
“꾸에엑!”
저 끝에서부터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마치 파도가 이는 듯 앞쪽까지 울음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앞줄에 있던 마물들이 두 팔을 위로 뻗었다. 마치 세키나에게 닿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 어어?”
세키나는 재빨리 통로가 연결된 구체에서 몸을 떼어 내려 했지만, 어느새 제 손목을 붙잡은 마물 한 마리 때문에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야, 야! 잠깐만! 놔 바!”
열심히 발버둥을 쳤지만 고작 3살 인간이 마물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 세키나의 몸이 점점 끌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악! 왜 이래!”
소환한 마물들은 모두 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여기 마물들은 말을 안 듣는 거지? 아니, 애초에 왜 이놈들이 날 붙잡는 거지? 세키나의 등을 따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여기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소환술을 발동시키자.’
그럼 이놈들을 조종할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세키나의 손바닥에 소환진이 새겨지고, 세키나의 몸이 반쯤 구체 안으로 넘어가게 되는 바로 그때였다.
“세키나!”
훅, 하고 세키나의 몸이 낚아채져 허공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