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본래 르카이츠는 세키나 일행에게 오지 않고 마왕성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긴 시간 동안 마물을 상대한 탓에 지친 것도 있거니와 자신이 굳이 그 일행에게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도행은 루치페르의 계획을 밝혀내기에 매우 중요한 여정이었지만, 아직 그들은 북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에 당도했을 때쯤 합류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라고, 르카이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지금 마왕성으로 돌아가도 될까?’
물론 돌아가는 데에 허락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묘한 찝찝함이 있었다. 이는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세키나는 어디쯤 갔을지 볼까? 아니, 아서 놈은 보내 놨더니 재깍재깍 보고도 안 하고! 이 새끼 이거 그냥 용암에 처넣어야 돼!
-나, 화난다. 아기, 보고 싶다.
-고양이…… 고양이…….
제 곁을 지키는 마족 놈들이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봤자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은데.
대체 그들은 왜 그렇게 세키나라는 호문쿨루스를 아끼는 걸까?
물론 캘빈은 세키나가 아닌 세키나의 고양이를 아끼고 있긴 하지만, 이거나 그거나 라는 생각이 있기에 르카이츠는 그들을 한데 묶어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리아트는 냉철한 마족이다. 그의 연구에 희생된 마족들이 몇인가? 그의 기분 따라 바뀌는 결정에 갈려 나간 마족들이 몇인가? 가끔 리아트의 성정이 더 마왕 자리에 걸맞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는 냉정하고, 잔인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키나가 보고 싶구나.
-별관에 세키나가 좋아하는 과자 같은 것 좀 가져다주거라.
-아니, 여기에 두고 세키나를 부를까?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마족 1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하여 마르틴은?
그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는 르카이츠 외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내려올 만큼 그 역시 흉포하고 험상궂은 자였다. 르카이츠 역시 그의 기개를 높게 사 1군단 군단장으로 임명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기, 보고 싶다.
-나, 안 무섭다. 아기가 그렇게 말했다.
-아기, 꽃 준다.
삶의 중심이 그 호문쿨루스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들 뿐 아니라 1군단 마족들도 호문쿨루스에게 홀딱 반해 있었고, 1장로 노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호문쿨루스들은 또 어떠한가? 서로 경쟁을 하라고 만든 놈들인데 그 호문쿨루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뭐가 문제인가?
아니, 모든 상황이 이렇게 바뀐 것이라면 문제는 다른 이들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르카이츠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향하는 곳은 세키나 일행이 있는 곳.
어떤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그저 한번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파악한 뒤에 느지막이 마왕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였다.
“야, 야! 잠깐만! 놔 바!”
익숙한 목소리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악! 왜 이래!”
르카이츠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세키나!”
아슬아슬하게 세키나를 낚아챈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세키나와 마계 연결 통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세키나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세키나가 방금 죽을 뻔했다는 것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보쓰?”
세키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르카이츠를 올려다보았다.
르카이츠가 여기 왜 있는가? 여기에는 분명 아서, 쌍둥이, 드한과 유리엘만 있을 텐데?
세키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르카이츠는 더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보라.”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세키나가 입을 열었다.
“몰게써여. 백짝령에서 나온 김에 통로를 열어 봤눈데 얘네가 절 끌고 가려 해써여.”
르카이츠는 잠시 고심했다.
이 호문쿨루스는 소환술에 재능이 있다. 하여 이제껏 마물을 소환한 뒤에 한 번도 위험해진 적이 없다. 소환한 마물들은 모두 다 뜻대로 움직였다.
그는 모두 다 마계에서 벗어나 소환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계에 있는 마물들은 모두를 적대시하니……. 아니, 뭐가 됐든 방금 전 이 호문쿨루스가 죽을 위기였다는 건 변함이 없다. 르카이츠는 긴 한숨을 뱉었다.
“위험하니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아니, 앞으로는 통로 사용을 금지한다. 안전해질 때까지는.”
이렇게 말하는 건 이 호문쿨루스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죽어 버린다면 마계와 연결돼 있는 작은 실마리를 잃어버리는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안 대여.”
세키나는 의연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블랙 스피넬에다가 마기 담을 꺼란 말이에여. 다른 마족들 주게. 그럴라면 요 통로 필요해여.”
스피넬에 마기를 담는다는 발상은 훌륭하다. 그것이 있다면 마족들의 사기도 올라갈 테고 힘도 일정량 찾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렇기에 르카이츠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넌 나에 대한 충성심이 입력된 개체가 아니다.”
그는 의아함을 머금은 채 질문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지? 네게 득 되는 것이 없는데?”
마기를 담은 스피넬. 좋다. 마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호문쿨루스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이 없다. 남 좋은 일만 실컷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른 호문쿨루스들처럼 ‘마왕에 대한 충성심’이 입력돼 있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게 아닌 상태인데, 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뼛속까지 마족이고 심장 속까지 마족인 그에게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세키나는 그런 르카이츠는 올려다보며 말했다.
“전 보쓰 위해서 하는 거 아닌데여. 인간계에 와 가지구 한 번도 배부른 적 업따는 아써나 다른 마족들 줄라고 하는 건데여.”
자의식 과잉이신지?
그렇게 질문하는 것 같다.
르카이츠는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까지 그들을 위하냐는 말이다.”
“소중하니까여.”
세키나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첨으로 가진 소중한 존재예여. 행복하게 만드러 주고 시퍼여. 아프지 안케 하고 싶꼬요. 그럴라면 보쓰 힘 찾아야 대구, 마계로 돌려보내야 대여. 제가 할 쑤 이써여.”
르카이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자신 말고 다른 누군가를?
이제껏 단 한 번도 마족들에게 들어 본 적 없는 말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마음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낯설었고, 어딘가 이상했다.
“그러다…… 네가 죽는다고 해도?”
그래서 꾸역꾸역 짜낸 질문이 이것이다. 목숨을 저울에 놓고 쟀을 때에도 아깝지 않느냐는 말.
하지만 세키나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저만 사는 게 더 시르니까여.”
그 순간, 르카이츠의 귓가에 노딜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진짜 마왕님의 것을 만들 때입니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
“흐읍!”
드한은 입을 틀어막으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뒤편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쌍둥이와 한참 눈싸움을 하던 드한은 아주 미묘하지만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껴 잠깐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물이 내려온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드한은 세키나의 오동통한 뒷모습을 멀찍이서 발견했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가가려 했다.
그때였다, 세키나의 앞에 새까만 구체가 떠오른 것은.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전신이 찢겨나갈 것처럼 어마어마한 마기가 흘러나온 것은.
드한은 저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마족.
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