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네?”
유리엘은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의 아서를 보자니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닌 것 같았다.
“그, 그러니까, 세, 세키나 님은 지금 북부로 도, 돌아가셨다는 말씀……?”
“네, 맞습니다. 백작님과 함께 가셨지요.”
“어, 어, 그, 그럼 화, 황후 폐하는……?”
“무시해야죠.”
아하. 무시하는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지 않은가!
유리엘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황후의 초대를 거절하다니.
아무리 다이몬 백작가가 난다 긴다 해도 황실을 이렇게까지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무슨 보복을 당하려고? 어쩌려고? 너네 그러다 멸문……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공격당하면?
유리엘은 이제 자신이 돌아갈 곳은 다이몬 백작가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기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래도 괘, 괜찮을까요?”
“안 괜찮겠죠.”
아서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황실에서 알게 되면 난리가 나겠죠.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이렇게 둘 수는 없다, 중앙 신전이 무너진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를 샅샅이 조사하려 들겠죠.”
“예, 예. 그, 그럴 것 가, 같습니다.”
“그래서요?”
하지만 그의 무심한 태도는 곧장 사라진다. 평범한 눈매에 살기가 가득한 이채가 맺힌다.
“뭐, 조사해서 이상한 게 나왔다 쳐요. 그래서요? 황실이 우리에게 덤벼들까요? 감히?”
으드득. 그는 이를 갈며 눈을 부라렸다.
“X까라 그러십쇼. 어딜 감히 황실 따위가.”
그래……. 다이몬 백작가 앞에서는 황실 따위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실은 황실이다.
황실보다 더 크고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다른 귀족들이, 교황청이 그래도 황실의 말에 복종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황실이 지닌 정통성 때문인데!
역사가 오십 년도 안 된 다이몬 백작가가 황실과 제대로 맞붙는다?
다른 이들이 어느 쪽 편을 들지는 명백하다.
유리엘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 그, 그, 그래도 안 되는…….”
“그럼.”
아서의 입꼬리가 픽 올라갔다.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세키나 님을 넘겨줘야 한다는 겁니까?”
“……예?”
그게 무슨 말인지?
유리엘은 눈을 크게 올려 떴다.
“황자도 함께 자리한다고 하더군요. 뭐, 뻔하죠. 황자 놈과 세키나 님을 엮어서 어떻게든 해 보려는 수작.”
“그, 그…… 마, 말도 안 되는……!”
입을 떡 벌린 유리엘이 더 말을 이으려는 때였다.
“안 돼요!”
쾅!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익숙한 아이가 뛰쳐 들어왔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요! 절대! 절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드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
휘이잉!
세키나는 제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차마 믿지 못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이게 말이 되냐?’
세키나는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허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북부로 돌아올 각을 재고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황후의 초대장이 온 이상 당장에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한 것처럼 황자와 연을 맺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북부로 와 버리다니?
거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이래도 되는 건가?
세키나는 아득함을 느끼며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았다.
“보쓰. 이거 쫌 에바 아닌지?”
르카이츠는 대답 대신 세키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북부로 돌아올 것 아니었느냐? 아니면 평생 수도에 있을 예정이었나?”
“맞는 말이긴 한데여, 그래두 먼가 일을 마무리하구 와야 하는 게 아니었는지 시퍼서여.”
“이미 모든 일은 마무리됐다.”
그는 세키나에게 체온 유지 마법을 걸어 주며 말했다.
“너는 더 이상 할 게 없다. 그러니 성에서 쉬거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러기에는 황후의 초대가 있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거듭 강조하는 르카이츠 때문에 세키나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힐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말자, 말을.’
세키나는 에휴 한숨을 쉬며 르카이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알게쓰니까 일딴 가져. 추운 것도 추운 건디 바람이 너무 쎄여.”
“…….”
르카이츠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세키나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바람이 아예 멈춰 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아. 무슨 마법이예여?”
바람 자체를 막아 버리는 마법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었기에 세키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르카이츠는 그런 세키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전이 마법.”
“……넹?”
세키나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전이 마법은 내가 느끼는 것들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마법이다. 이 경우 세키나가 느끼는 걸 르카이츠가 가져간 거겠지. 세키나가 찬 바람을 느끼는 감각을 르카이츠가 가져갔다는 말이다.
“어, 음…… 그럼 보쓰가 추울 거 같은디.”
우물쭈물하는 세키나의 뺨을 툭 친 르카이츠가 중얼거리듯 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린아이도 견디는 바람을 내가 견디지 못할 리는 없지.”
그런 말을 하는 르카이츠의 뒷모습은…… 꽤나 듬직해 보였다.
“엣취!”
응, 이건 모르는 척하자.
***
르카이츠가 떠나자마자 아서의 연락을 받은 마족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왕이 돌아오기 때문에?
그럴 리가!
“세키나 님이 오신다!”
“방 데워 놔! 방!”
“음식! 요리사 어디 있어!”
세키나가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세키나의 귀환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마족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뛰쳐나갔고, 덕분에 마왕성은 전에 없는 활기를 잔뜩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응, 나 지금 완전 신나죠?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죠?”
“마족은 원래 날 수 있어, 등신아.”
티격태격대는 1군단 마족들을 뒤로하고, 세바스찬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한 채 팔짱을 꼈다.
‘이런 때에 세키나 님이 돌아오는 게 맞는 건가.’
세키나의 귀환을 바라지 않는 게 아니다. 그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으니 세키나가 돌아온 게 기뻤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장로들.’
세바스찬은 세키나의 소식에 눈을 번뜩이고 있을 장로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야, 왜 그래?”
이때, 세바스찬 곁으로 온 마족이 말을 걸었다. 푸른 머리의 마족. 세키나가 종종 ‘블루’라고 부르던 그다. 세바스찬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래저래 걱정이 돼서요. 지금 세키나 님이 돌아온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장로들?”
“……네.”
블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나도 안심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진데.”
세키나가 마왕성을 떠난 순간부터 장로들은 세키나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키나를 죽이려 들었다.
이에 대해 1군단 마족들이 이를 갈고 덤벼들어 그나마 행동을 막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닌 걸 알고 있다. 이제 세키나가 돌아왔으니 장로들의 견제가 더 심해질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세바스찬도, 다른 마족들도 모두 다 걱정하고 있었다.
다만 걱정은 걱정일 뿐이다.
세키나가 돌아오는 지금.
세키나의 곁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마왕님이 이 모든 걸 모르실까?”
마왕이었으니까.
블루의 개구진 눈매가 곱게 접혀 올라갔다.
“걱정 말고 마왕님만 믿자고.”
마왕성을 비운 시간 동안 마왕님이 대체 어떻게 변했을지, 그게 너무나도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