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2장로, 빈센트는 때아니게 긴장한 상태였다.
수도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걸 전해 들었기 때문에 곧 르카이츠가 돌아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호문쿨루스 일행은 보다 늦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고?
‘당연히 마왕님이 그것들을 챙길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르카이츠가 직접 호문쿨루스를 데리고 마왕성에 돌아온 것이다!
왜?
분명 먼젓번 마왕님께서는,
-호문쿨루스들은 너희가 알아서 관리하도록.
-그런 것까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나?
라고 말하며 모든 권한을 일임하지 않았나!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빈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를 포함한 장로들은 세키나 일행을 죽이고자 무던히 노력했었다.
세키나를 없애려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내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이대로 저 호문쿨루스가 자라게 둔다면 자신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묘한 위기감.
당연히 일개 호문쿨루스가 장로인 그들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본능에서부터 울리는 경고음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실패한 원인은 총 3가지.
1. 아서가 생각보다 강했다.
그놈이 미친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미친놈인 줄로만 알았다. 강한 미친놈인 줄 몰랐지. 그게 왜 중요하냐고?
정신만 미친놈이면 그저 곁에 있는 놈만 힘들지만, 몸도 미친 것처럼 강하다면 말이 또 다르다. 그럼 곁에 있는 이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지니까.
아무튼, 그 미친놈이 생각보다 강했기 때문에 장로들의 함정은 계속 실패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2. 1군단 마족들이 지랄을 했다.
이것들은 위아래도 없나. 감히 일개 마족 주제에 장로에게 덤벼들다니! 1군단 군단장 놈처럼 정신머리가 없는 놈들이다.
그래서 장로들은 마르틴에게 저것들 좀 말려보라 명령했지만, 마르틴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 왜?
-굳이?
다시 생각해도 열이 뻗친다. 눈을 끔뻑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그 꼴을 당장에라도 으깨버리고 싶었지만, 장로들은 이를 꽉 깨물며 참았다. 절대 마르틴이 무섭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 체통을 지킨 것뿐이다.
어쨌거나 장로들은 아서의 방해를 피하고, 1군단 마족들의 지랄을 피하며 세키나를 죽일 계획을 세밀하게 세웠다.
그러나 역시 실패했다.
3. 마왕님이 직접 나섰다.
자신의 명령을 받고 나서는 일행이니 털끝 하나도 다치면 안 된다나 뭐라나.
그래서 장로들은 어쩔 수 없이 세키나를 노렸던 힘을 거둬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를 갈았다. 세키나가 마왕성에 돌아오는 순간을 노리자고!
‘한데 왜, 왜 마왕님이 저 호문쿨루스와 함께!’
아오, 진짜 미치겠네!
빈센트는 뒷목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씁씁후후 심호흡을 뱉었다.
“2장로님! 장로님!”
이때 5장로, 뮐러가 다가왔다. 빈센트는 언제 얼굴을 굳혔냐는 듯 정신을 차리곤 뮐러를 돌아보았다.
“보셨습니까? 밖에! 마왕님과 호문쿨루스가!”
“봐도 진즉에 봤으니 시끄럽게 굴지 말게. 중요한 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니.”
“아! 그렇죠!”
뮐러 바지새기는 눈을 도로록 굴리며 빈센트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은 건가?’
그가 다른 장로들과 손을 잡은 건, 어디까지나 세키나라는 호문쿨루스를 지지하는 이들의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기껏 해 봤자 1군단 마족 정도인데 그들을 다 합쳐도 장로들의 힘에 미치지 못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4군단 캘빈이 저쪽에 붙었다. 마왕성의 실질적 2인자라 불리는 리아트까지 저쪽에 붙었다. 그뿐이면 어떻게든 비벼 보겠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1장로 노딜까지도 저 호문쿨루스를 좋게 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여기서 마왕님까지 저 호문쿨루스에게 넘어간 것이라면?
얍삽하게 보이는 염소수염이 파르르 흔들린다.
‘빨리 살길을 찾아야겠어.’
뮐러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이 방법이 좋겠군.”
그런 뮐러의 생각을 꿈에도 모르는 빈센트는 씨익 입술을 비트며 중얼거렸다.
“모든 장로들에게 전하라.”
빈센트는 당당히 명령했다.
“저들의 귀환을 모르쇠로 일관하라고.”
“……예?”
뮐러는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빈센트의 얼굴에 번져있는 의기양양함을 보건대 말이다.
“저들이 왜 성 밖으로 나간 것 같은가? 수도에서의 일을 해결하려고? 그래.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문쿨루스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가 축하해 주어야 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귀환을 반겨 줄 이유가 없단 말이다.”
“하, 하지만 마왕님이…….”
“마왕님은 언제나 그렇듯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오신 것뿐이다. 그럴 때마다 굳이 귀환을 반기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지.”
“그들의 성과를 무시하고, 없었던 일로 만들라는 뜻이로군요.”
뮐러가 얍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5장로의 자리까지 차지한 마족이다. 그만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마왕성 내의 입지가 전과 달라지지 않을 테니…….”
“우리는 아무 일이 없던 것이지. 알겠나?”
“예!”
그래. 이러면 되는 것이다.
호문쿨루스들은 어디까지나 마족을 위해 만들어진 생명체일 뿐.
플라스크 속 배양 생물을 인정해 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빈센트와 뮐러는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 낄낄거렸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는지 미처 모르고.
***
“지랄 났네.”
정령을 불러들인 니샤는 쯧 혀를 차며 눈을 흘겼다.
세키나가 르카이츠와 함께 등장한 지금. 니샤는 누구보다 빠르게 2장로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세키나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무슨 짓을 할 거라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았다.
“다 큰 어른들이 쪼끄만 애 하나한테 못하는 짓이 없어. 안 죽고 뭐 하나.”
니샤는 쓰읍 침을 삼키며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어떻게 해야 저들의 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까…… 니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뭐해?”
“꺄아아악! 악!”
하지만 그 고민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율리안의 머리 때문에.
“미친놈아! 나타날 거면 통째로 나타나던가! 머리만 둥둥 떠 있는 게 뭔 지랄이야!”
“아니, 몸 전체 옮기면 힘들단 말이야. 머리만 돌아다니는 게 제일 편한데.”
“지랄하지 말고 빨리 제대로 안 해?”
“니샤는 참 입이 걸어. 세키나 같아…….”
슬픈 표정을 짓던 율리안의 머리 아래에서 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니샤는 그제야 긴장했던 어깨를 풀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우,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다.
“그래서, 뭐 하고 있었어?”
니샤는 대답해 주기 싫었지만, 자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장로들 염탐하고 있었다, 왜.”
“장로들?”
그를 듣자마자 율리안의 눈이 반짝였다.
“세키나 때문에? 세키나 도와주려고?”
“……아닌데?”
니샤는 뜨끔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걔를 왜 도와? 절대 아닌데. 무조건 아닌데.”
“강한 부정은 강한 긍…….”
“디디에! 율리안 여기 있다! 데리고 가!”
콰아앙!
순식간에 달려온 디디에가 율리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율리안 니임!”
“……너 진짜 너무한다. 내가 왜 머리만 떠다녔는지 알면서.”
“시끄러. 날 놀라게 한 벌이야.”
흥! 니샤는 콧방귀를 끼었고 율리안은 좌절했다. 개중 디디에만 밝은 표정이었다.
“왜, 왜? 둘이 뭐 하고 있던 건데? 뭐가 있어? 지금 세키나 왔는데 둘이 붙어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응? 응? 응?”
아우, 미친놈. 니샤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율리안이 끼어든다.
“디디에. 진정해. 니샤가 장로들이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발견해서 대화한 것뿐이야.”
“아아! 그렇군요! 네네, 저는 진정했어요. 그런데 무슨 이상한 짓이요?”
율리안과 디디에의 시선이 니샤에게 향한다.
니샤는 으쓱 어깨를 올리며 대꾸했다.
“단체로 세키나를 모르는 척하겠다는데.”
“뭐라고?”
율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키나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는 뜻인가?”
“아마도.”
“……그럼 세키나 쪽의 발언권이 많이 줄어들 텐데.”
“그걸 노린 거겠지.”
니샤는 체념한 표정으로 쯧 혀를 찼다.
“저치들이 그렇게 결정한 거니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그렇겠지…… 아니, 그래도 애들이 수도까지 가서 고생한 건데.”
“뭐 어쩌겠어? 장로 놈들이 그러겠다는데.”
율리안과 니샤 사이에 한숨이 오간다.
하지만 디디에는 그러지 않았다.
“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디디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세키나의 귀환을 장로들이 일부러 무시하고 반기지 않을 거란 거죠?”
“응, 맞아.”
“그럼 무시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음?”
율리안과 니샤의 시선이 한꺼번에 디디에에게 닿았다.
“방법이 있어?”
디디에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연하죠!”
***
“…….”
휘이잉!
휘잉!
바람이 휘몰아친다.
차가운 눈송이를 품고 있는 바람.
눈보라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바람.
“…….”
그 바람을 맞으며-르카이츠의 마법 덕분에 맞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세키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
세키나의 시선이 닿는 곳은 마왕성 정문에서 살짝 위쪽.
정문에 장식된 커다란 풍선과 리본, 그리고 큼지막한 현수막이 보인다.
[★축!★ 세키나 환영!]
휘이잉!
덕지덕지 붙여 놓은 리본이 바람에 흩날려 세키나의 얼굴에 붙었다.
“미친 건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