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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31)화 (132/149)

131화

세키나와 대화를 마친 후 또다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니샤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마왕 미친 거 아니야?”

그러며 다른 마족들이 들으면 난리를 피울 법한 말을 뱉는다.

하지만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니샤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쟤가 뭘 미워할 게 있다고 그딴 말을 해? 미친 새끼, 진짜.”

니샤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보쓰한테 말하라구? 그럼 또 캐물을 껄. 어케 알았냐, 내가 널 믿어두 대냐, 넌 지금 죽는 게 낫지 안냐, 머 이러면서.

이런 말을 들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세키나가 뭔가 수상쩍은 일을 벌이고 있다 한들, 모두 다 마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니샤는 이번 ‘교황에 대한 정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어차피 이건 우리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안 될 리는 없으니까.

또, 설사 마족에게 해가 되면 어떠한가?

어차피 저들은 우리를 내칠 생각만 가득한데 말이다.

그런고로…….

“짜증 나.”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뭐라도 해야겠어.”

니샤의 눈이 반짝였다.

***

다시금 혼자 방에 남은 세키나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루치페르 놈은 왜인지 모르지만 몸뚱이를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러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아이가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드한의 몸에 루치페르가 들어가겠지.

하지만 그걸 막아야 했기 때문에, 니샤에게 부탁한 것이다.

‘소문.’

루치페르 놈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어쨌거나 그놈은 인간계에서 살아가는 놈이다. 온전한 힘을 갖추지 못한 지금. 인간들의 눈치를 보며 그 속에서 군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황의 껍데기를 쓰고 그 난리를 피우는 게 아닌가.

‘소문이 난다면, 그놈을 더 고립시킬 수 있을 거야.’

중앙성 신전이 폭파돼서 도망친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납치해 일을 벌이고 있었다 하면 민심이 바닥으로 고꾸라지겠지. 그러면 전보다 더 쉽게 움직이지 못할 테다.

그런고로 니샤가 도와주는 건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었다. 잘된 일이기도 하고.

“대신 멀 바치긴 해야게찌만…….”

조공보다 결과가 좋으면 다 된 거다.

그렇게 생각한 세키나는 니샤에게 바칠 물건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리아트, 마르틴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넘 인기가 만타니까.”

세키나는 피식 웃으며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육중한 두 다리를 볼 수 있었다.

“……말틴?”

바로 마르틴이었다.

“아기!”

마르틴은 눈에 띄게 기분 좋아하는 얼굴로 세키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엉겁결에 마르틴에게 붙잡힌 세키나는 그대로 마르틴의 목에 매달렸다.

“엥?”

졸지에 목마를 타게 된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르틴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머야? 난 이런 거 해달라 한 적 업는디.”

“인간들이 그랬다. 아기들, 이거 좋아한다고.”

“오…… 마을에 나가써써?”

“그렇다.”

놀라운 일이다.

마르틴은 은근히 인간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을에 나간 걸까?

“캘빈이 그랬다. 아기와 쌍둥이 아기들이 인간들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이해가 안 가지만, 나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어째 말하는 게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

세키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구래서, 머라도 쫌 배워써?”

“음…….”

마르틴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족과 인간은 다르다.”

“머가 다른데?”

“이것저것…….”

말끝을 흐리다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아! 소리를 내며 말한다.

“가장 다른 건, 말을 한다는 거다.”

“응?”

말은 뭐 인간도 하고 마족도 하고 천족 같은 XX한 것들도 하는데 뭔 소리야.

세키나의 눈이 가늘어졌을 때, 놀라운 대답이 들려왔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

어…… 그런가.

내가 만났던 인간들은 전혀 그런 적이 없는데.

자신도 모르게 마르틴의 머리채를 꽉 잡은 세키나에게, 마르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 잘 왔다.”

그는 한껏 기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어 세키나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

이유를 모르겠지만, 세키나는 마음 한구석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라…… 세키나는 다소간의 멀미를 경험했다.

세상이 어지럽고, 심장이 빨리 뛰는 기분.

이 감정이 기쁨이라는 걸,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이에게서 받는 안정감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았다.

“꼬마어, 말틴.”

***

식당에 도착한 그들은 리아트의 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 뭘 하다 이제 온 것이냐? 기어 왔어? 어? 마르틴! 내가 분명 빨리 오라고 했는데!”

길길이 날뛰는 리아트의 면면은 세키나가 수도를 떠나기 전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세키나는 리아트를 다룰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세키나는 일부러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히잉, 애교를 부렸다.

“삼쫀. 왜케 화내여. 나 삼쫀 보고 시퍼서 빤니 온 건데.”

“……그으랬어?”

그러자마자 리아트의 얼굴이 푸딩처럼 풀어졌다;.

“세키나가 힘들게 빨리 온 건데 내가 괜히 재촉을 했구나. 미안하다. 응, 응. 이제 앉으렴. 주방장을 닦달해서 맛있는 음식을 내오라 했으니 말이야.”

오.

세키나 때문에 고용한 인간 주방장을 해고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 인간 주방장, 안 짤라써여?”

“그래. 1군단 놈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원. 그놈들은 마족도 아니라니까.”

1군단 마족이라 하면 세키나에게 꼬리를 방방 흔들던 그놈들을 말하는 걸 테다.

그러고 보니 걔네도 있었지.

한번 만나러 가긴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세키나가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앉힐 때, 리아트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여나 그놈들을 만나러 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놈들을 산으로 보내 버렸으니.”

“……넹? 왜여?”

“왜긴 왜야. 여기 있으면 네게 달라붙어 눈꼴 시린…… 아니, 사고를 칠까 그렇지.”

뭔가 본심이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머. 나중에 보면 대니까여.”

세키나는 으쓱 어깨를 올린 후, 포크와 나이프를 잡았다.

“잘 먹게씁니다.”

고기를 와작와작 먹고 샐러드까지 야무지게 먹는 세키나를 보며 리아트와 마르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수도는 어땠느냐?”

꿀꺽. 세키나는 입 안에 남아있던 스테이크를 배 속으로 집어넣은 후 대답했다.

“나쁘지 안아써여.”

“거기서 별별 일이 다 일어났다 하던데?”

그치.

일이 많기는 했지.

하지만 뭐, 결과적으로는 다 잘됐으니까!

“웅…… 그건 맞찌만, 갠차나여.”

그러자 리아트와 마르틴이 슬쩍 시선을 맞댔다.

이미 아서에게 몰래 전달받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르카이츠가 세키나를 예의주시한다는 말 말이다.

“그, 마왕님이랑은, 어떻게 잘 지냈느냐?”

그들의 속사정을 세키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별다를 것 없이 대답했다.

“구건 보쓰한테 무러보세여. 제가 머라 답할 쑤 있는 건 아닌 거 가타여.”

사실 세키나는 르카이츠가 합당한 의심을 하고 합당하게 추궁했다고 보지만…… 그렇게 말하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르카이츠에게 역할을 넘긴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괜한 오해를 산 모양이다.

“마왕님이 구박했나?”

“동의한다.”

“이…… 이……! 이 어린 애를!”

리아트와 마르틴이 분노했으니까.

당황한 세키나는 식기를 내려놓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 그케 구박은 안 당해써여!”

“그 말은 구박을 당하긴 했다는 것 아니냐! 이, 이……! 마왕님 그렇게 안 봤는데……!”

“나, 마왕님 만나러 가겠다. 따지러.”

“그래! 가라! 가서 아주 엎어 버리고 와!”

“아니, 머 하는 거야! 구만해여!”

나 밥 좀 먹자!

기겁한 세키나가 그들을 말리는 바로 그때.

쿵!

하고 식당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인영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보쓰?”

다름 아닌 르카이츠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군.”

그는 흥미롭다는 시선을 머금은 채 리아트와 마르틴을 직시했다.

“대체 내게 뭘 따지겠다는 거지?”

방금 전까지 길길이 날뛰던 리아트와 마르틴은 입을 꾹 다물었다.

르카이츠가 무서워서?

아니다.

어린 세키나 앞에서 혹여나 하극상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별일 없으면 가는 게.”

그들은 이를 바득바득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르카이츠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리아트와 마르틴을 보는 대신, 세키나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이 별관의 식당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넹?”

“세키나와 식사를 하러 왔다.”

“……넹?”

“안 되는가?”

세키나에게 직접 물어보는 터라, 이번에는 대답을 세키나가 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리아트와 마르틴이다.

방금 전 몽글몽글한 말을 들은 덕분에 세키나는 이들에 대한 호감이 많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조금 더 즐겁게 대화를 하고 싶었고, 조금 더 이 시간을 음미하고 싶었다.

“안 댄다 하면 가실 거예여?”

그래서 세키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같이 이쓰면 체할 거 같은디.”

그 말에 르카이츠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고, 리아트와 마르틴은 동시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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