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율리안은 다소 잰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는 중이다.
그의 얼굴은 전에 없이 굳어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썩 나쁘지 않았던 기분이었지만, 방금 전 아서와 캘빈을 마주친 이후로 급격하게 기분이 안 좋아졌다.
-세키나 님이 블랙 스피넬을 구해 온다고 하시더군요. 뭐 들은 거 있으십니까?
블랙 스피넬.
마족들이 인간계로 내려오자마자 제일 먼저 뛰어들었던 게 블랙 스피넬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블랙 스피넬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세키나가 블랙 스피넬을 구해 온다니.
세키나는 대체 어떻게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니, 아니……. 세키나는 대체 언제까지 모든 걸 혼자 할 생각일까?
세키나는 루치페르도, 흑마법도, 수도의 일도, 모두 다 혼자 해결하려 들었다. 그러면서 다치기까지 했는데도, 또 나서려 한다. 우리 중 가장 어린 주제에.
이 사실이 율리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에는 단단히 말해야겠어.’
우리를 좀 믿어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쁜 걸음을 가고 있는 와중, 복도 코너에서 익숙한 어린아이 둘이 보였다. 쌍둥이였다.
“어, 형님?”
파르데스와 메르데스는 눈을 크게 뜨며 율리안에게 다가왔다.
“어디 가?”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가?”
율리안은 그들이 향하던 길을 되짚어 보았다. 세키나의 방으로 가는 복도였다.
“너희도 세키나를 보러 가는구나.”
“응, 걔가 또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걸 들어서.”
“블랙 스피넬?”
“어! 그거!”
파르데스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발을 굴렀다.
“걔는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니, 내가 분명 저번에 무슨 일 할 거면 우리한테 공유하라고 말했는데!”
“그니까. 걔는 왜 지 몸 다치면서 일을 벌이는 거야? 어차피 우리한테 득 될 것도 없는데.”
쌍둥이는 꿍얼거리며 같이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도 화를 내야 해.”
“세키나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끔.”
그들을 보던 율리안의 입매가 둥그렇게 올라갔다.
“역시 내 동생들이야. 아주 내 마음을 잘 알아.”
혼자 세키나를 혼내러 가면 기세에서 밀릴 수도 있는데, 쌍둥이가 함께 간다니 다행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밀리면 쌍둥이 중 하나가 대신 나서 줄 수 있을 테니까.
“세키나한테 밀리지 말자.”
“응.”
“이번에는 꼭!”
그들은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군처럼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세키나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음?”
그러자마자 날카로운 고함이 귀를 찔렀다.
“아니, 너는 신관이라는 넘이 먼 사람을 주긴다고 하고 이써! 디질래?”
세키나가 쾅쾅 바닥을 내리찍으며 드한에게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딴 소리 또 하기만 해 바! 아주 눈물 쏙 빠지게 혼꾸녕을 내줄 꺼니까!”
어…….
세키나 화나 있는 거 같은데…….
그냥 돌아갈까……?
“율리안 님!”
그때,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드한이 눈을 반짝거리며 외쳤다.
아니, 왜 지금 나를 불러. 우리 친한 사이 아니잖아.
“아앙?”
율리안과 쌍둥이의 기척을 알아챈 세키나의 고개가 기기긱 돌아갔다.
섬뜩하리만큼 번뜩이는 안광에 율리안과 쌍둥이는 꿀꺽 침을 삼켰다.
“머. 먼데. 왜 왔는데.”
“그…….”
율리안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제 옆에 서 있는 쌍둥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말했다.
“블랙 스피넬, 구하러 잘 다녀오라고.”
“아자아자. 파이팅!”
“힘내!”
결심이 다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제정신인가, 지짜.”
드한을 내보낸 세키나는 에휴 한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드한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유리엘 님을 괴롭히던 신관이 있습니다.
-그놈만큼은 제가 반드시 처리하고 싶습니다만.
드한 아가토는 용사다.
선의에 죽고 선의에 사는, 악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드는 분조장 용사.
그런데 뭐가 어째?
-어차피 나쁜 놈들인데, 제가 손을 대는 게 이상합니까?
이상해! 완전 이상해!
너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고!
아이고, 두야.
세키나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꿍얼거렸다.
“하도 마니 바껴 가지고 머가 먼지도 모르겟네, 지짜.”
이제 게임 속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움직이지 못한다. 일단 주인공인 드한부터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 세키나 자신의 존재도 에러나 다름없으니까.
‘보쓰를 성장시켜서 드한을 죽이는 게 원래 내 계획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게 가능할 거 같지는 않다.
‘루치페르를 해치우는 것만 생각하면 되겠지.’
그러고 보니 그놈이 요즘 잠잠하다.
‘뭔 일을 꾸미고 있나?’
그러고도 남을 자식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말했듯 지금의 세키나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물을 부리는 능력이 있고 마계 연결 통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들, 세키나는 아직 3살짜리 어린아이니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두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르카이츠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지금 시기는 루치페르가 뭔가의 사건을 일으킬 때가 아니니 괜찮겠지, 하고 가만히 있을 뿐.
“빨리 크구 싶따.”
이놈의 나이는 대체 언제 먹는 건지.
에휴.
세키나는 재차 한숨을 쉬었지만 그렇다고 해 주눅 들지는 않았다.
나이라는 건 어차피 상대적인 거라, 흐르는 시간만 버티면 금세 어른이 될 테니 말이다.
다가올 미래를 안달 내며 기다릴 바에야 현재의 일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그래서 세키나는 당장 내일 실행에 옮길 계획을 점검했다.
1장로, 노딜이 인어의 서식지로 통하는 연결통로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니 세키나는 드한과 유리엘의 손을 잡고 편하게 몸을 태우기만 하면 되었다. 이후 인어들을 만나, 그들에게 먼저 드한과 유리엘을 소개하고 그들이 환대받는 동안 몰래 빠져나와서 스피넬이 있는 광산을 둘러보면 된다.
그다음에 유리엘이 스피넬에 대한 운을 띄우면 되고 말이다.
‘아주 좋아.’
흠잡을 것 없는 계획이다.
물론, 그들이 스피넬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것까지 다 상정한 거니까.’
부디 그런 불운한 일만은 생기지 않기를, 세키나는 간절히 바라며 입술을 비죽 들어 올렸다.
아. 불운하다는 건 세키나 쪽이 아니라 인어 쪽이다.
그놈들이 불운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거다.
낄낄낄.
세키나는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러다 문득, 율리안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을 떠올린다.
-혼자 너무 무리하지 마.
-우리가 있잖아.
으음…….
세키나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눈을 도로록 굴렸다.
그들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이번에 세키나가 다쳤던 것처럼, 또 그런 일이 벌어질까 염려하는 거겠지.
하지만 세키나는 항변하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냐고. 내가 혼자 무리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냐고. 너네는 아무것도 모르는 엑스트라일 뿐인데,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노력해서 너희를 살려야지 않겠냐고.
뭐,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못하니까 애꿎은 드한만 구박한 것이지만 말이다.
‘나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안 되는 걸 어떡해.
애초에 도와줄 수 있을 법한 사람도 없고.
“에휴. 내 팔짜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부러 장난스러운 말을 읊조리던, 그때였다.
“어, 어어? 마왕님! 그렇게 노크도 안 하고 들어가시면 안 되는……!”
콰앙!
아서의 외침이 들리더니, 이내 문이 부서질 듯 거세게 열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세키나는 눈을 동그랗게 올려 떴다. 그럴 수밖에.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마왕, 르카이츠였으니까.
“보쓰?”
뭐야.
얼마 전에 당분간 안 돌아온다고 말하고 떠났잖아.
그런데 왜?
세키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쓰가 왜 와써여? 먼일 이써여?”
르카이츠는 대답하는 대신 성큼성큼 걸어와 세키나의 앞에 섰다.
“너.”
그리고 세키나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내일 바로 움직일 생각이냐?”
이게 무슨 말이지? 세키나가 다소 당황해하고 있을 때, 르카이츠의 뒤에 따라붙은 아서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블. 랙. 스. 피. 넬.’ 하고 말이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세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넴. 그럴 건데여. 빠르면 빠를 쑤록 조으니까.”
“그래?”
르카이츠의 눈이 샐쭉하니 가늘어졌다.
“나도 함께 간다.”
……엥?
“이런 일은 어른이 나서야 하니 말이다.”
저기요.
님 가면 인어들 다 도망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