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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님이 만드는 파멸엔딩 (148)화 (149/149)

148화

원래 르카이츠는 당분간 설산에 있을 계획이었다.

수도에 나가 있던 시간이 예상보다 길었기 때문에 처리하지 못한 마물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그래서 세키나에게도 인사를 하고 성을 떠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며칠 되지 않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세키나 님이 블랙 스피넬을 구해 오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나설 필요가 없다고 하시네요.

하는 말 때문이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르카이츠는 아득한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고작 3살짜리 어린아이가 생각해 낼 만한 일이 아니라는 의심 같은 건 저버린 지 오래다. 그저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세키나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뿐.

블랙 스피넬, 마기의 보관, 마족의 사기 독려……와 같은 건 마왕인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더 나아가 고위 마족들이 할 일이었다. 3살짜리 호문쿨루스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세키나는 저 자신을 걱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달려 나가려 하는 것인가.

그래서 르카이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성으로 왔다. 그러자마자 바로 세키나를 찾았다.

“보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세키나의 얼굴은 일전에 보았을 때보다 뭔가 더 쇠약해져 있었다. 볼이 움푹 들어간 느낌이랄까. 르카이츠는 인상을 찌푸렸다.

“뭘 안 먹고 사나?”

“……넹?”

“분명 인간 요리사가 성에 있을 텐데. 그놈이 식사를 제때 안 주는 건가?”

르카이츠는 세키나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객관적으로 세키나의 팔은 오동통했으나 르카이츠의 눈에는 나뭇가지 정도로 보이고 있었다. 세키나는 허여멀건한 제 팔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 대게 잘 먹구 있는데여. 오늘두 두 끼나 머금.”

“네 끼는 먹어야지.”

“글케 머그면 살찔 거 가튼디.”

“지금의 두 배는 되는 게 좋겠군. 하루 다섯 끼 정도로 협상하지.”

협상은 원래 절충안이어야 하는 거 아닌지? 왜 내 말을 무시하는 건지? 세키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이렇게 말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주제를 바꿨다.

르카이츠가 자신을 찾아와 한 말에 대해서 말이다.

“어쨌든여, 저랑 같이 간다는 게 무쓴 말이에여?”

르카이츠는 여상히 대답했다.

“말 그대로다. 어린아이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

“혼자 아니구 드한이랑 유리엘도 가는디.”

“못 믿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약한 인간 따위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나도 인간인데……라고는 말하지 못하니 세키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제가 가눈 데가, 인어가 있는 곳이거든여.”

“그래서?”

“알고 계시자나여……. 걔네 마족 시러하는 거…….”

“그래서?”

“……같이 못 갈 거 가튼디.”

르카이츠는 헛웃음을 뱉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나의 동행을 거절한다는 말인가?”

“고작이 아닌데여……. 이거 나름 중요한디…….”

하급 마족도 끔찍하게 싫어해 꽥꽥 소리를 지르는 게 인어족인데, 마왕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테니까.

“블랙 스피넬 구하는 건 지짜 중요한 일이잔아여. 구니까 이번에는 제 말대루 해 주심 안 대까여?”

“…….”

르카이츠는 세키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지금껏, 세키나가 해 왔던 행동 중 자신들에게 해 되는 일은 없었다. 신의 흔적이 세키나에게서 느껴진다는 게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그것을 빼면 세키나는 언제나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원래의 르카이츠였다면 세키나를 더 이용해 먹을 수는 없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르카이츠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수도에서 세키나가 다쳤던 그 순간뿐.

세키나가 또 그렇게 다치게끔 두고 싶지 않다는 게 르카이츠의 마음이었다.

“인어들의 반응이 걱정되는 것이라면 방법이 있지.”

마음만 같아서는 인어족을 몰살시키고 스피넬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즉시 세키나가 자신을 경멸할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대신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마기를 숨기면 되는 일이지.”

“넹?”

세키나는 눈을 크게 올려 떴다.

물론 마족들이 인간계에서 살기 위해 마기를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마기라는 게 숨겨야지 한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머리에 힘을 주고 있어도 아주 조금씩은 마기가 흘러나온다. 세키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 그게 쉽게 대는 게 아닌…….”

그래서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키나는 작금의 르카이츠에게서 느껴지던 마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되네여.”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도, 느껴 보려 해도 마기가 밤톨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오…….”

역시 마왕은 마왕이라는 건가. 이렇게 쉽게 된다고?

세키나가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르카이츠는 비죽 웃으며 세키나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함께 가도록 하지.”

“……넹.”

이렇게까지 됐는데 여기서 안된다고 우기면 더 이상하겠지. 세키나는 어쩔 수 없이 마왕의 힘에 굴복했고, 르카이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부단장.”

그리고 아서를 불렀다.

“일단 세키나를 식당으로 데려가라.”

“식당이요?”

“그래. 밥을 더 먹여.”

르카이츠는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다음에 내가 볼 때까지 지금의 두 배는 만들어 두도록.”

오…….

살찌워서 잡아먹을 계획이라면 성공하겠는데.

세키나는 아직도 빵빵한 배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뱉었다.

***

“으, 으으! 추워!”

황자, 베니타는 입고 있는 털옷을 끌어안으며 외쳤다.

마차와 옷에 발열 마법을 걸고 몇 겹을 껴입고 있는데도 그는 너무나도 추웠다. 아니, 북부가 춥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지! 베니타는 이를 딱딱 부딪히며 어깨를 그러모았다.

“어마마마는 대체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물론 자신을 여기까지 보낸 이유는 알고 있다. 백작가의 막내딸, 세키나를 우리 편으로 만들라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추위는 너무하지 않은가! 베니타는 재채기를 하며 코를 훌쩍였다.

“빨리……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돌아가야겠어. 여기서는 더 못살아. 정말로.”

중얼거리는 베니타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베니타의 숙부, 페르다가 대답했다.

“저하.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지요. 성에 들어가면 또 다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네?”

베니타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이 안 돼요. 황실 마법사들이 직접 걸어 준 발열 마법을 두르고 있는데도 이렇게 추운데, 고작 백작가의 마법사들이 황실 마법사들보다 뛰어날까요? 절대 아니요! 성은 얼음장일 겁니다. 분명히!”

페르다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베니타를 응시했다.

이 철없는 황자를 어찌하면 좋을까.

고작 한기 하나로 이렇게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놈을 어떻게 황제 자리에 앉힐 수 있을까…… 이런 머저리를 왜 그리 끼고도는 건지, 원.

페르다는 묘했던 표정을 지우고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그래요……. 저하의 말이 맞길 바라야지요.”

그리고 가까워지는 백작성을 바라보는 동시에 황후, 다이애나의 말을 떠올렸다.

-다이몬 백작가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 오세요.

-만약 그들에게 꿍꿍이가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

페르다의 입매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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