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8화 (8/259)

4. 송도삼절 (2)

병오년 5월 22일. 경기도와 평안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연달아 사흘간 땅이 흔들리고, 그 범위는 뻗어나가 북으로는 압록강가 용천에 이르고 남으로는 한양을 지나 경기도 이천에 닿았으며, 동으로는 강릉까지 미쳤다.

5월 24일. 영의정 윤인경(尹仁鏡) 이하 고관들이 연이어 체직(遞職)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허하지 않았다.

대사간 권응정(權應挺)이 차자를 올려 이르기를, 변괴의 근원은 윤원로 이하 외척이 종사(宗社)에 죄를 얻었기 때문이니 마땅히 처벌하여야 한다 하였으나 임금은 듣지 않았다.

지진은 27일까지 이어졌다. 때마침 큰비가 내려 불어있던 물줄기는 진동을 따라 넘실거리며 벼와 보리를 휩쓸어갔다.

박연폭포를 구경하는 사람이라 하면 대개 그 아래에서 폭포수를 감상하곤 하므로, 그 위에 무엇이 있는가 궁금하여 올라와보는 이는 예나 지금이나 드물었다.

만약 지금 그런 사람이 있어, 바위 부여잡고 넝쿨 붙잡아가며 폭포 위로 올라온다면, 웬 젊은 장사 하나가 웃통을 까고서 통나무를 들고 가는 모양새를 볼 수 있으리라.

“옳지, 저놈이면 되겠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꺽정이 눈에 마침 적당한 바위가 들어왔다. 가운데께 금이 간 집채만한 바위가, 폭포를 향해 흘러가는 계곡물 굽어보는 곳에 떡하니 서 있었다.

눈대중으로 대충 가늠한 뒤, 마치 문 깨부술 때 하는 것처럼 통나무를 옆구리에 끼우고서 온힘을 다해 부딪힌다.

쿵 하는 소리 한 번. 두 번. 세 번.

바위가 생각보다 단단하여, 꺽정이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화담 선생 문하에서 지내면서 온힘을 다해 무언가 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나마 저는 옷만 조금 상했으니, 졸지에 뽑혀서는 파성추(破城椎), 아니, 파석추(破石椎) 신세가 된 나무보다는 낫다 해야 하리라.

“제기랄. 내가 여기서 지금 뭔 고생이냐.”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몸 추스르자마자 일어서서 다시 통나무를 들었다.

꺽정이는 석공이 아니므로, 쐐기를 박고 정으로 살살 쳐내가며 바위를 다루는 법은 알지 못하였다.

대신 지닌바 몸뚱이의 힘으로 때리고 또 때린다.

또 한 차례 쿵, 쿵, 쿵.

조금은 금이 깊어진 것 같기도 하였다.

꺽정이는 또 지쳐 나가떨어져서는, 숨 고르며 다른 방편 있을까 고민하였다. 쐐기 박듯 저 금에 나무를 끼워서는 지렛대처럼 밀어볼까 생각도 하고, 차라리 개성 저자에서 석공의 연장이나 구해볼까 생각도 하였다.

그때, 저기 폭포 아래쪽에서 누군가 저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꺽정아! 예 있느냐?”

“지함 사형이시오?”

“그럼 누구겠느냐! 어디 숨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고개나 내밀어 보아라!”

일전에, 대개 예의를 갖추어 사람을 부를 때면 그 이름을 곧이곧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자(字)니 호(號)니 하는 것으로 불러야 한다고 이지함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꼭 그 반대로 해야 성미 풀리는 놈이 바로 꺽정이라, 그때부터 줄곧 이지함을 부를 때 그 이름으로 불러대곤 하였다.

(따지고 보면 ‘꺽정이’도 아버지 말대가리가 지어준 별명이니 자(字)의 일종이라고 할 만도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다.)

마침내 참다 못한 이지함이 정색하고 꾸중하려는 차, 꺽정이가 내기 제안하기를, 저는 맨손으로, 지함은 환도 대신 쓰는 목검으로 대련 붙어서 지함이 세 합만 견디면 그때부터는 꼬박꼬박 예의 갖추어 불러드리겠노라 하였다.

이지함 생각에는 그사이 저도 꺽정이 상대하며 꽤 무예가 늘었고, 실제로 세 합까지 버텨본 적도 있으므로 해봄 직하다 싶었는데, 꺽정이가 진심으로 달려드니 마치 달려드는 황소에 부딪힌 것처럼 세 합은커녕 단매에 몸이 붕 떠서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내 여기 있소! 이쪽, 폭포 위에!”

차마 저의 사형에게 이 위로 올라오라고 할 만큼 뻔뻔하거나 모질지는 못한 꺽정이라, 폭포 위에서 손 한 번 흔들어주고는 곧장 껑충껑충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이만하면 되었거려니 싶었을 때,

“사람 내려가우!”

폭포 중턱 바위턱을 박차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마침 힘쓰느라 흠뻑 땀으로 젖어 있었기에, 곧 몸에 닿는 차가운 폭포수가 참으로 상쾌하였다.

“후! 시원타. 그래, 잘 다녀오셨소?”

족히 열 길은 될 높이에서 뛰어내려서는 마치 사립문 열고 마당으로 걸어들어온 사람처럼 평온하게 말을 거니, 보는 이지함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경신법(輕身法)이니 축지법이니 하는 것이 실제로는 다 이렇게 무식하게 뜀박질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인(異人)들의 도술에 대해 진지한 의심을 품게 되는 이지함이었다.

그러나 어디 이 천둥벌거숭이를 하루이틀 보았던가.

“오냐. 그리고 또 조만간 떠나야 하게 생겼다.”

“거 참 바쁘게도 사시는구려.”

“사정이 그리하니 어쩌겠느냐.”

이지함이 한숨을 푹 쉬고서는 행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꺽정이가 제목을 더듬더듬 읽어보니, 대충 무엇인지 알 만하였다.

“『화담자의(花潭自疑)』라. 필경 근래 스승님께서 밤 새워가며 쓰신 것이겠소.”

“옳게 짐작했다.”

“내가 글자나 더듬더듬 읽지, 문리는 어두워서 읽어도 뜻은 모르오. 무슨 내용이오?”

“이것은... 씨앗이다.”

“씨앗이라니, 책이면 책이고 아니면 아니지, 웬 씨앗이란 말이오?”

“새로운 학문, 지금껏 없던 학문을 만들어내고 나아가 치세(治世) 이룩할 수 있는 학문의 씨앗이란 말이다.”

힘 닿는 데까지 풀어서 설명해주는 이지함이었다.

“스승님께서는 그간 마침내 그간 깨우치셨던 학문의 장구(章句) 하나까지 모두 파헤쳐 의심하고 또 의심하신 끝에 이 책 한 권을 이루셨다.”

삼대(三代)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문헌(文獻) 가운데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 자체로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이치는 오직 하나뿐이라.

“... 아(我, 자아)가 스스로 천하의 사리를 궁구하니, 비로소 천하 가운데 아(我)가 있음이라.”

육왕(陸王, 양명학)의 학문에서 말하는 심즉리(心卽理)도 그러므로 확실치 않고, 정주(程朱, 성리학)의 학문에서 말하는 성즉리(性卽理)도 알 수 없음은 매한가지다. 오직 나 스스로 하늘과 땅 사이 있어, 만물을 직접 살피고 이치를 헤아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여러 서생들이 말하여온 치국(治國)의 계책 또한 믿을 수 없으니, 뜬구름 잡는 소리와 단단하니 실체 있는 소리를 스스로 분별하고, 취할 만한 것만을 취하여 발전시켜야만 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선비들 가운데에 이 글월이 풀린다면, 반드시 크나큰 다툼이 벌어지고야 말 것이다. 이단의 학설이라며 헐뜯고 공박하기를 그치지 않겠지.

그러나 이 글의 이치를 바탕으로 궁리하여 마침내 하나의 학(學)을 정립한다면, 꺽정이 네가 말하는 도적질하는 허황된 학문을 넘어서 실제로 세상에 보탬 될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왜 내게 주는 게요? 스승님께서도 그렇고 지금 사형도 그렇고, 이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라고들 했는데...”

“이건 스승님께서 직접 쓰신 초고다. 초당에 들렸을 때 네가 없기에, 스승님으로부터 받아서 네게 전해주러 여기 온 것이다. 나는 이미 내용을 모두 외워두어서, 이번에 고향 갔을 때 모두 책으로 정리해두었다. 그러니 이 초고는 내게 없어도 되지 않겠느냐.”

“그, 스승님. 음. 떠나시고 난 뒤에 내가 무얼 할 줄 알고 이렇게 맡긴단 말요?”

꺽정이 질문에 이지함이 한참을 망설이더니 답했다.

“실은, 요새 정세가 심상치 않다고들 하더라.”

“뭐, 그러니까 우박도 내리고 하는 것 아니겠소.”

“척신(戚臣)이 정사를 농단하고, 사류(士類)는 이를 미워하니, 조만간 크게 피바람이 불 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벼슬과 연이 없고, 내 가형(家兄)도 지난해에 벼슬 버리고 낙향하셨으니 딱히 연루될 일이야 없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찌 될지 모르는 법 아니겠느냐.

이 글에 담긴 것은 스승님께서 남은 수명을 불태워 터득하신 이치다. 나 한 사람이 잘못된다 해도, 여기 담긴 스승님의 고민과 깨달음은 반드시 이어져야만 한다. 그러니 네게 맡기는 것이다.”

하면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이 초고를 들고 찾아가야 할 선비들로 경주의 회재 선생이니 (이언적 李彦迪)이니 삼가(三嘉, 현 합천 삼가면)의 남명(조식) 선생이니 하는 사람들 이름을 죽 늘어놓았다.

“차라리 다른 사람 알아보시는 게 어떻겠소? 나는 도적질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네가 원하는 바가 정말로 소소하게 재물을 탐하는 것이 아님을 내 뻔히 알고 있는데, 또 그놈의 도적질 소리냐.”

꺽정이에 대한 걱정과 소소한 역정이 섞인 말투로 이지함이 타일렀다.

“나도 너와 여러 차례 드잡이질도 하고 했으니, 네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에 나서서 무언가 당장 이루어보고 싶은 그 욕심은 알겠지만, 선비 여럿이 모여 대대로 궁리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학문이 세워지고, 연후에 나아가 정사를 거들 때 비로소 나라의 도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바라건대 지금은 꾹 참고, 스승님의 뜻이 이어질 수 있게 힘을 보태다오. 따지고 보면 다 네가 시작한 일 아니더냐.”

간절하게 청하는 이지함의 말에, 차마 면전에서 ‘싫소’라 대꾸할 수는 없었다.

“쳇, 그놈의 정이 다 무엇인지.”

볼 사람 다 보고 줄 물건 다 건네준 이지함은 도로 내려가고, 다시 예의 그 바위 앞에 꺽정이는 돌아와 섰다.

혹시나 물이 튀길까, 이지함이 전해준 그 종이꾸러미는 멀리 양지바른 곳에 조심스럽게 놓아두고 왔다.

이지함도, 황진이도, 또 서경덕도 그가 지난 생에서는 만나본 적 없는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백정의 아들이라 밝히면 ‘아, 그러냐.’ 하고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더불어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 꺽정이 그가 모자란 소리를 해도, 또 무례한 소리를 해도 하하 받아주면서도 도리어 편하게 면박 줄 수 있는 사람들.

차마 낯부끄러워 그들 앞에서 말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꺽정이는 그들과 교유할 수 있게 된 것을 고맙게 여겼다. 서경덕이 자신을 만류하던 것도 저를 생각하였기에 하는 말이었음을 모르지 않으므로 차마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물가에서 큰 돌덩이 하나를 공깃돌 들듯 들어, 조금 벌어진 바위틈에 비집어 넣었다.

직접 바위를 때리는 것보다, 이 돌을 쐐기 삼아 때리는 쪽이 훨씬 나을 테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센 뒤, 통나무를 옆구리에 끼우고 또 한 차례 달려든다.

때릴 때마다 돌덩이가 틈 사이로 조금씩 더 깊게 파고든다. 그러나 그렇게 몇 번 쑥 들어가더니, 이제 통나무가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금 간 바위는 그저 금 간 채로 서 있을 뿐, 끄떡도 하지 않었다.

“노인네한테 힘자랑 한 번 하겠다고 이게 다 무슨 고생이냐. 에고.”

그러나 서경덕에게는 보여주고 싶었다.

하늘의 도리가 어쩌고, 저 폭포수가 저쩌고. 태허가 이러쿵, 인간사가 저러쿵.

일전에 과거 본답시고 고갯길 넘어가다 저의 앞에 무릎 꿇고서 애걸복걸 목숨 구걸하던 시골 서생들과는 달리, 서경덕이 저렇게 고담준론 늘어놓는 것은 정말로 심오한 이야기요 진지한 고민임을 꺽정이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 백날 고민한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음을, 도리어 윤원형 같은 작자들은 잘 먹고살고 애먼 백성들은 굶어죽거나 도적이 됨을 꺽정이는 또한 알았다.

이지함 말대로 정말로 사람이 열심히 궁리하여 하늘의 도를 바꿀 수 있다면, 그리고 그의 스승이 적었다는 저 글줄 안에 비법의 단초가 있다면, 어째서 그것을 당장 행하려 노력하지 않는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일자무식 백정도 해서대적 소리 들으며 한양의 임금도 걱정케 하는 몸이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저 세상을 미워하며 날뛰고 싶은 대로 날뛰었을 뿐이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해 동안 그만한 위세를 부리며 한껏 노략질하고 분탕질칠 수 있었다.

까짓것, 지난번보다 조금 더 머리 굴리고 조금 더 현명하게 처신하면, 정말로 나라 하나 못 뒤집겠는가?

자신이 능히 그리할 것임을, 지금까지 내려준 가르침에 감사하며 그 가르침을 뒤집어 엉뚱하게 이루는 데 앞으로 힘쓸 것임을 서경덕에게 보이고자, 지금 이렇게 통나무로 바위를 때리고 또 때리고 있었다.

“에휴, 꿈쩍도 안 하는구만.”

몇 번 더 두드려본 뒤, 힘이 빠진 꺽정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포기할까 생각도 몇 번 했지만, 서경덕에게 남은 수명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 않았던가. 그간의 정을 생각했을 때, 한 번쯤은 이 구경을 꼭 시켜주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집채만한 바윗돌을 둘로 쪼갤 수 있겠느냐. 그런 회의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려는 찰나.

우르르 울림소리와 함께, 천지가 갑작스레 진동하였다. 깜짝 놀란 꺽정이는 일어나다 말고 도로 주저앉았다.

계곡물도, 숲의 나무도 함께 부르르 떨고, 천둥소리 비슷한 것이 몇 번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지진 일어났던 것이 이맘때였다 했던가. 함경도 북변에 있었기에 지난 생에서는 직접 겪지 못하였다.

촌음의 진동이 지나간 뒤 몸을 고쳐세우던 때였다.

이번에는 쩌저적-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꿈쩍 않을 듯하던 바위였는데, 저 진동 덕에 틈이 꽤 벌어진 것이다.

“하하하! 하늘은 몰라도 땅은 돕는구나!”

들을 사람 없는 호쾌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병오년 여름, 송도의 삼절(三絶)이 다시 한데 모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박연폭포는 콸콸 쏟아져내려와 흘러나가고, 황진이 역시 화사한 미색이 아직 가시지 않았건만, 서경덕은 어찌 이리도 초췌하단 말인가.

눈물 감추고 억지 웃음 지으며 황진이가 스승 곁에서 거문고를 탄다.

꺽정이가 옮겨둔 폭포 연못가의 그 바윗돌에 서경덕은 기대어 누웠다.

어느새 시조 반주 가락으로 옮겨온 거문고 음률을 타고, 황진이가 노래하였다.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 풀빛 물)는 님의 정이니.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소냐.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면서 흘러가누나.”

눈 감은채, 서경덕도 화답하여 읊었다.

“그대가 가락을 치니 즐겁도다, 내 마음이여.

다섯 음이 어우러져 지나침이 없구나.

가락 높고 넓으나, 어느 사람이 들어줄까.

백아(伯牙)여, 백아여. 바라건대 그치지 마오.”

문득 그 시끄러운 제자 녀석, 말년에 그토록 그의 마음에 크나큰 파문을 남기고 간 거정이가 떠오른다.

“거정이는 어디 있느냐?”

황진이가 무언가 대꾸하려던 찰나.

벽력같은 괴성과 함께, 쿵 하는 진동이 서경덕 누운 곳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몇 번 더 구르는 듯 쿵쿵 연이어 울려오더니, 마침내 마지막 굉음과 함께 멈췄다.

“스승님, 보시오! 스승님! 이 제자가 천하의 도리를 바꾸었소!”

자못 통쾌한 웃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지난 오월 지진으로 금이 간 바위가, 몇 달을 꾸준히 올라와 때려댄 꺽정이 탓에 마침내 쪼개져 굴러떨어졌다.

그리하여 집채만 한 바윗돌이 갑작스레 폭포수 내려가는 길목을 가로막았으니, 끝없이 흘러내릴 것 같던 박연폭포의 한줄기 물은 잦아들다가 마침내 그쳤다.

“천하의 도리가 폭포수와 같다 하였건만, 이제 폭포수도 이렇게 끊어졌으니 어찌 사람이 천하의 도리를 못 바꾼다 하겠소!”

당연히 바윗돌이 계곡을 딱 맞게 틀어막을 리 없었으므로, 어느새 뒤에 고인 물이 새어나와 다시 졸졸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경덕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하하하! 거정이 네놈! 네가 이렇게 또 일을 벌이는구나! 꼭 마지막까지 스승의 마음에 의심만 일으키고 가니 고약한 제자 아니냐! 내가 더 오래 살아 네놈 하는 짓을 보고 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로구나. 하하하!”

폭포수 끊겨, 전례없이 고요해진 이 용추 연못가에 화담 선생의 청량한 웃음만 울렸다.

그렇게 웃고 또 웃다가, 마침내 기력이 다하니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스승님, 스승님!”

천고에 변함없을 듯하던 박연폭포 물줄기가 끊어지고,

스승을 사모하면서도 바로 그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차마 말 못하고 있던 황진이의 마음이 끊어지고,

기이한 구경에 끝까지 미소 지은 채 서경덕의 숨도 끊어진다.

송도삼절(松都三絶) 셋이 이렇게 모두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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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보다 약 90년 앞서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을 논하게 된 『화담자의』는 당연히 가공의 서책입니다.

명종대에는 이번 편에 등장한 지진을 포함하여 많은 자연재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실제로 각종 재난이 이때 유난히 자주 일어난 면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이의 발생을 군주의 실정과 연관 짓는 통념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어린 명종 대신 수렴청정을 행하는 문정왕후와 그 비호를 받는 윤원형 일파 국정을 농단하는 상황이니, 마땅히 재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송도삼절이라는 말은 야사에만 전합니다. 이에 따르면 황진이가 서경덕을 유혹할 때 ‘송도에 세 가지 빼어난 것이 있으니, 박연폭포와 선생님, 그리고 소인(小人)입니다.’라고 한 것이 출전이라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황진이가 저런 말을 했다기보다는, 이미 송도삼절이라는 말이 개성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고, 그것이 황진이 설화와 묶여 굳어지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쪽이 타당할 것입니다.

또한 이전에 등장한 『박연폭포』와 이번 편에 인용된 『청산은 내 뜻이요』 모두 정말로 황진이가 지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황진이와 서경덕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도 정황상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질 뿐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청산은 내 뜻이요』에 화답하는 서경덕의 시는 『금명(琴銘)』을 일부 고친 것입니다. 황진이를 백아라고 부른 것은,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지음(知音)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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