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30화 (30/259)

11. 군신유의 (1)

멸악산으로부터 뻗어 나온 산줄기는 동쪽으로 치달리다 예성강을 만나 멈추었다.

그 멈춘 곳에 산 하나 봉긋 솟아 그 주변에 산성을 쌓으니, 험한 능선은 곧 성벽이 되고, 흘러가는 강물은 곧 해자가 되었다.

예로부터 이곳의 입지를 알았는지 안에 큼직한 사당과 우물, 연못 따위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산성을 크게 쓰려 했음을 알기에 족하였다.

사당의 내력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태사사(太士祠) 현판 하나만 겨우 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퇴락하여, 인접한 평산부 부내 백성들이 간혹 올라와 고사 지내고 갈 뿐. 그리하여 산성의 본디 이름은 잊히고 성황당 있다 하여 성황산성(城皇山城)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만하면 족히 요해(要害)라 부름직하지. 그렇지 않으냐?”

꺽정이가 함께 데려온 졸개들 중 하나인 김원남(金元男)에게 물었다.

일이 터지면 청석골 사람들은 인접한 재령의 장수산성에 들어가고, 봉산 읍내 사람들은 정방산성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하여 꺽정이가 잘 아는 구월산 일대에도 이런저런 준비를 막 시작하던 차.

허나 그것만으로는 조금 아쉽고 또 봉산 바깥에서 일하는 당원들도 적지 않았으므로 이곳 평산 성황산성 한 군데를 더 선정하고자 하고 있었다.

전생이었다면 이렇게 읍내가 코앞인 곳을 소굴로 삼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테다. 이제 와서 보니 자리가 꽤 좋았다.

“그렇습니다. 이만한 곳이라면 변란이 있을 때 의지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과연 네가 병법을 잘 아는구나. 눈여겨본 보람이 있다.”

꺽정이의 치밀한 (또는 가혹한) 취재를 거쳐 패거리 열에서 스물 가량을 거느릴 만한 자들을 뽑았는데, 얼마 전 흘러들어온 이 김원남도 그중 하나였다.

“마음 같아서는 저쪽 우봉(牛峯), 강음(江陰) 두 현에도 좋은 산이 있으니 거점을 마련하고 싶으나, 그 현령들이 어리석어 우리 당을 기껍게 여기지 않으니 어찌하겠느냐. 그래도 이만하면 족하다 해야겠지.”

김원남이 눈 번뜩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분명 산성 안에 절도 하나 있고 밭도 몇 마지기 있다 들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여기 사당에나 인적이 조금 있고 나머지는 전혀 없습니다. 당수께서 이곳을 무엇에 쓰시려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을 하시든 분명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 역시 네 말이 맞다. 예컨대 사람 하나쯤 죽여 묻는 일이라던지.”

“예?”

“그간 어울리지 않게 천것들 사이에 섞여 계시느라 고생 많으셨소, 나리. 야, 다들 붙잡아라.”

꺽정이가 갑자기 어투를 바꾸니, 김원남 – 당연히 본명은 아니었다 – 은 어찌해볼 사이도 없이 다른 졸개들에게 붙들렸다.

지난 한 달 동안 졸개들 중 우두머리 노릇할 만한 자들을 골라내면서, 동시에 다른 상것들과 섞여 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을 함께 골라내고서는 은밀히 지켜보고 있던 꺽정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전생에 그렇게 몰래 관에서 붙인 이목 솎아내는 데 도가 튼 꺽정이 눈은 그리 쉽게 속일 수 없었다.

그런 이들 옆에는 이름만 들어도 천한 자들을 일부러 더 붙여두고서, 정말로 그들이 다른 졸개들처럼 땅 파먹고 살던 집안 사람인지, 아니면 손에 흙 별로 아니 묻히고 살던 이인지 분간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상놈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불편해 할 만한 이들이 굳이 의민당에 섞여서 어울리지 않는 완장 차고 있는 이유라면 뻔하지 않겠는가.

“이, 이 무슨! 놓아라! 놓아!”

“내 약조를 하나 해 드리지. 나리의 원래 이름, 윤원형이 아래에서 원래 하던 일, 그리고 윤원형이가 나리를 이리 보내면서 명했던 바. 이 세 가지만 곧이곧대로 말씀해주시면 편하게 보내드리리다.

싫다면야 무어. 그 두 눈으로 나리 뱃속에 들어 있는 오장육부를 구경하게 해 드리지. 숨은 붙어있어야 하니 염통은 맨 마지막에 꺼내야 하겠지만, 오줌보쯤은 지금 바로 들어내어 보여드릴 수도 있소.”

왕년의 그 가락대로 무시무시하게 엄포를 놓으니, 김원남 입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뚫리게 되었다.

본디 한양 사는 한량 박 아무개로, 서원군 대감 아래서 문객으로 있으며, 의민당 안쪽 사정 탐문코자 왔노라. 곧장 이실직고를 하였다.

이미 다른 이들 입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라, 적어도 이들이 그것을 사실이라 여기고 있음은 확실하였다.

“좋소. 다만 다 털어놓기 전 조금 뜸을 들였으니, 편하게만 보내드릴 수는 없겠소.”

꺽정이가 옆에 고갯짓을 했다. 함께 따라왔다가 갑자기 급변하는 상황에 어리벙벙해 있던 밤이 녀석이 그 고갯짓이 자신 향한 것임을 깨닫고서 화들짝 놀랐다.

“밤이 이놈아. 앞으로 나와라.”

“저, 저 말씀이십니까요?”

“그래. 네가 지난 번에 순전히 네 잘못만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거하게 실수를 하지 않았더냐? 그때 그 완장의 일을 갚는다 생각해라.

자,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그 창으로 이자를 찔러 죽여라.”

“하, 하지만...”

“지난번에도 다들 살육하는 판에 끼었는데 너 홀로 빠지지 않았더냐? 우리가 하는 일이 대개 이렇다. 사람의 피가 흘러야 하고 머리통이 깨져야 한다. 암만 곱상한 말로 계책이니 무어니 마련한들, 끊어질 명줄을 조금 줄일 수 있을 뿐.

당장 다음번에 일이 생겨 네 손으로 사람 명을 끊어야 한다면, 그때도 이리 주저할 테냐? 자, 내가 셋을 셀 테니 찔러라. 그렇지 않으면 창 대신 몽둥이로 때려죽이라 하겠다. 셋!”

“이, 이보시오! 당수! 당수!”

“똑바로 보아라. 이런 놈들이 너를 보고 천한 종놈이라고 침을 뱉고 욕을 본다. 그런 세상 뒤엎으려 하는 일이다. 그런데 피 좀 흐르는 것을 두렵게 여겨서야 되겠느냐? 둘!”

“나 좀 살려주시오! 제발!”

“하나!”

눈 질끈 감은 밤이가 박가 한량의 목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피 왈칵 흘리며 버둥대던 박가는 곧 풀썩 쓰러졌고, 그 모습 본 밤이도 창을 떨어뜨리곤 풀썩 자빠졌다.

둘 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둘 중 하나는 자신이 잃어버린 만큼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가자.”

다른 졸개들이 잽싸게 움직여 몸뚱이를 치우고, 핏자국 위에는 적당히 흙을 덮어 숨겼다.

봉산 읍내에는 어물전이 하나 있었는데, 이미 꺽정이 오기 전부터 어물 파는 것은 뒷전이요 술장사가 본업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이름만은 여전히 어물전이요, 딴에 구색 맞춘다고 안주로도 종종 해물 들어간 탕 따위를 내오곤 하였다.

그런 어물전 한구석에서 독상 앞에 앉아 주변의 떠드는 소리를 듣던 장돌뱅이 김가는 벌떡 일어나 무명으로 값을 치르고는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

올해 날씨는 지난 몇 해보다는 조금 나아서, 보리는 그럭저럭 걷혔고 가을걷이 또한 평작은 겨우 될 법하였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관에서는 지난 여러 해 흉년이라고 조금 봐주었던 것을 물렸으므로, 백성들에게 남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다.

그러나 이곳 봉산은 바깥에서 부럽게 여기든 말든 그저 저들끼리 잘 살고 있었다. 밥 짓는 연기가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그 기미를 알아챈 개들은 여기저기서 저도 달라며 집집마다 컹컹 짖어대고 있었다.

저기 멀리 동헌 돌아가는 군수 이원수 행차가 눈에 들어왔다. 행차라 해보아야 저 한 사람에 말구종 하나, 관노 두엇이 전부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면 저 또한 받아서 인사하니 체통이란 없었다.

따로 건드는 것 없이 이웃처럼 친하게 지내는 군수였으므로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 봉산 읍내 사람들은 그렇게들 말했는데, 장돌뱅이 김가, 아니, 두리손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마을길 거닐던 김가에게 곧 의민당 완장 찬 장정 하나가 다가와서는 목소리 낮추어 말을 걸었다.

“평산 갔던 당수가 돌아왔습니다. 사람 하나가 줄어 있었습죠.”

“문객들은 다 죽었군. 알겠다. 그 이후에 더 들어온 소식은?”

“능묘 옮기는 일 때문에 한양으로 일꾼들 올려보낼 준비 한다면서 아랫말이 시끄럽더이다.”

“잘 해주었다. 다음에는 한양에서 보도록 하마.”

살짝 고개 숙인 장정은 멀리 사라졌다.

두리손이 단양에서 의민당 완장을 찾아온 이후, 윤원형은 그의 말대로 의민당을 향한 이목을 크게 늘렸다.

황해도 곳곳이 그들 세도가의 전장(田莊)이니, 그곳에서 일하는 서리들은 곧 그들의 눈이요 귀이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닫게 된바, 의민당은 윤원형이 가볍게 생각했던 그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의민당이 도적을 때려잡기만 할 뿐이라 답하고, 또 누군가는 서책 들여오는 일을 하는데 종종 의주 넘어 요양까지 다녀오는 것 같다고 하고, 또한 향리들과 함께 방납과 대립(對立)으로 상당한 이문을 남기고 있다 하였다.

서리들마다 답하는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윤원형 생각보다도 의민당이 황해도 여기저기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그 당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도적을 추포할 때 데리고 다니는 무리는 얼마나 많은지 등에 대해서도 믿기 어려운 바가 많았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한양이나 교하 곳곳에서 사람을 뽑아 당 안에 집어넣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윤원형이 손수 부리는 만큼 천인(賤人)이 없었고 오히려 저의 뒷배에 서원군 대감 있으시다며 거들먹거리기가 몸에 익은 자들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붙잡혀 죽고, 윤원형의 허락 없이 두리손이 제멋대로 심은 천것들 두엇만 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 며칠간 발병이 나서 봉산군 읍내에 눌러앉아 있는 ‘장돌뱅이 김가’와 우연히 마주치고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는데,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눈치가 좋고 무엇보다 욕심 가득한 눈매가 두리손 저와 닮았기에 뽑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거두어 수족으로 부리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있었다.

좋은 점이라면, 항상 남의 눈치 보며 살아왔던 이들이기에, 어느 무리에 섞이든 그 중 우두머리가 누구이며 그 다음 순서는 누구인지, 그들 사이 섞여 있으면 저들에게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될지를 귀신처럼 알아맞춘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들이 물어온 중한 적정(賊情, 도적의 사정) 중에는, 이 의민당 패거리가 이미 봉산군수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있으며, 그 안사람과도 한통속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는 충분히 가한 일이었다.

또한 그 패거리는 당수 임 처사 아래에 별감 서림이 있고, 그 외 어딘가 있는 산채에 모주 이씨 – 임 처사의 사형이라고 하였으나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 가 있다 하였다.

봉산과 평산, 서흥, 재령 일대 장정들 중 그 당원이 무수히 많아 모두 헤아리면 족히 천은 넘을 것이요, 이번에 능묘 옮기는 일로 품삯 벌고자 모여들 떠돌이들까지 합하면 어쩌면 곧 이천이 될 지도 몰랐다.

여기까지는 믿을만 한 이야기였다.

반면 나쁜 점이라면, 결국 학식이 짧기에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역량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임 처사가 종종 양주 어느 백정네 집에 저의 사재 털어 비단이나 무명 따위를 챙겨주곤 하는데, 이는 그가 실지로는 처사가 아니요 일개 백정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두리손 자신부터가 그나마 천한 이들 중 기회를 잘 잡은 축에 드는데, 어디 고리백정 따위가 이만한 무리를 이끄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겠는가?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그런가 하면 임 처사가 천하장사라, 한 번 검법을 펼치면 하늘을 날다시피 하고 맨몸으로 장정 열을 족히 상대한다 하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두리손 본인이 단양에서 뼈저리게 – 아직도 조금은 저리는 듯했다 – 느낀바 분명 사실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저 거짓부렁 같은 소문들 중 무언가는 참일 것이요, 그처럼 거짓 가운데 있는 참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적정일진대, 배움 짧은 이들 통해 전해듣는 것만으로는 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뭐, 아무렴 어떻겠는가. 중한 것은 청석골 산채까지 향도(길잡이)해줄 이가 있다는 점이지.’

두리손 홀로 생각하였다.

그때까지는 그의 아비 아닌 아비 윤원형 역시 저 임 처사를 도모하는 데 성공해서는 아니 될 것이었다. 그리 되기를 은근히 하늘에 비는 두리손이었다.

손에 묻은 피 씻어내고 산채 돌아온 꺽정이는 곧장 사형을 찾아갔다.

“그때 말씀하신 이상한 놈들은 다 족치고 왔소.”

“끝내 반간계(反間計)는 아니 쓰기로 한 모양이로구나.”

사람 한둘 죽는 얘기에 눈 찌푸리기에는 이지함이 도적 사이에서 지낸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그렇소. 그것도 여력이 있고 또 회유할 깜냥이 될 때나 하는 일 아니겠소? 같은 상놈들이 세작이랍시고 붙는다면 우리 패거리와 함께하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라고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나리 소리 귀에 익은 작자들에게는 수작 걸어보아야 헛수고요.”

“뭐, 네가 당수이기도 하거니와, 네녀석 사람 보는 눈이 의외로 나보다 나을 때가 많으니 내 무어라 하지 않겠다.”

물론 유생이라는 이름값 하는 자들부터는 아무래도 이지함이 식견이 더 넓겠지만, 반대로 굳이 그 속을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상한(常漢, 상놈)이나 천민들의 사람 됨됨이 따지는 데는 꺽정이가 훨씬 나았다.

“그러나 윤원형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번 완장 넘어간 일에 이어, 이렇게 세작 들여보낸 것도 모두 끊어졌으니, 다음번에는 반드시 술책을 쓰려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아직 바깥에 알려지기로는 그냥 백성들 모임이잖소? 가끔 여기저기 다니면서 도적 때려잡기는 하지만, 엄연히 봉산 한 고을에만 묶여 있는 처지인데 어디 우리 서원군 대감께서 손수 걱정하실 만한 거리가 될까.

물론 윤원형이야 속으로는 퍽 경계하고 있겠지만, 적어도 겉보기로는 명분이 서지 않잖소? 그리고 어디 혼자 사는 선비들이야 오밤중에 사람 보내서 ‘슥’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상대로는 뭐.”

“그러나 이대로 세를 넓히다 보면 곧 명분으로 만들 만한 거리가 생길 것이다. 당장 우리 일에 엮인 서리들만 해도 이제 그 수가 족히 이삼백은 되고, 군현으로만 따져도 안악부터 평산까지 이르니 얽힌 수령의 수도 한둘이 아니다.”

본디 황주와 해주는 감영 또는 병영이 있어 도적 잡는 일을 스스로 하고 있었으나, 하도 의민당 명성이 자자해지니 결국 그들도 대세에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관찰사 선까지 가는 게 아닌, 그저 몇 가지 ‘사업’ - 이제 이서(吏胥)들 사이에는 모두 퍼진 말이었다 – 을 함께하는 것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쏠쏠한바 어느새 다들 한두 발씩 걸치게 되었다.

“또, 또 시작이다. 사형, 고민을 하려면 혼자 하시오. 왜 나를 말상대로 삼으려 그러시오?”

“이러다 보면 너 아니면 나, 둘 중 하나는 뾰족한 수를 내곤 하지 않더냐. 아니꼬우면 내 제자 녀석이 빨리 장성해서 이런 일들까지 한몫씩 꾀를 거들게 되기를 기원하려무나.”

멀리 동헌에 있는 신씨 부인이 들었다면,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역적과 도적의 제자로 만든 것으로도 족하거늘 이제 도적의 모주로까지 삼으려 하냐면서 쌍칼 들고 쫓아올 말을 태연히 하는 이지함이었다.

“어쨌든 큰 틀에서는 너도 동의하리라 본다. 이대로 준비가 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남은 삼사 년을 보내려 했다가는 반드시 큰 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 계속 윤원형이를 비롯해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자들을 먼저 찾고 계속 건드려야만 비로소 우리가 무사히 대계를 이룰 수 있을 터.”

“그건 맞지만...”

그때 엉뚱한 이가 나타나 꺽정이 머리통을 지끈거림으로부터 구해주었다.

“엇, 서 별감 아니신가.”

“헴헴. 모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요.”

꺽정이에게도 ‘하오’ 하는 서림이는 이지함에게는 여전히 공대를 유지하였는데, 그 우악스러운 꺽정이가 사형이라고 떠받드는 사람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제게 큰일(꺽정이가 얽힌)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아랫말에서만 보았지, 여기 산채에서는 올해 처음 만나는 듯허이.”

“아, 그것이... 모주님 꾀를 좀 빌리러 왔습니다요. 우봉현감이 또 우리네 당에서 성의 다해주겠다 넌지시 연통 넣은 것에 대놓고 퇴짜를 놓았다지 뭡니까.”

사연은 이러하였다.

이 무렵 수령들 중 조정의 권신에게 청탁하여 나아가서는 오직 저의 살림살이 불리는 데 열중하는 자들이 많았다.

특히 한양에 가까운 경기도나 청홍도 북쪽, 황해도 남쪽에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우봉현감으로 있는 김대(金<雨+對>)는 그 정도가 심하였다.

그런 사람이 또 의심도 많아, 의민당의 사업 거들게 되면 적잖이 챙길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미 저의 챙겨둔 것이 들통날까 두려워 – 의민당이라 하면 조정에서 포장까지 받은 그 임 처사가 이끄는 무리 아니었던가 – 꺼리고 있었다.

허나 이제 우봉과 강음 두 현만 어떻게 의민당 장사하는 데 끼워넣으면 황주부터 개성까지 모두 의민당이 아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라, 그 이득이 늘어날 것이 명백한바 서림 또한 이 일에 꽤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 당이 큰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당세가 너무 빨리 불어나다 보니 살림 어려워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요.

이번 가을 한양 올라가서 능묘 옮기는 일로 겨우 올해는 버티겠지만, 정말 당수님 생각하는 대로 머릿수 늘리려 했다가는 이듬해부터는 빠듯해질 겁니다.”

“거 참... 차라리 청렴하고 정직한 이가 수령으로 앉아 있다면야 우리 의민당이 정말로 군현 백성들 살림에도 도움 된다 설득이라도 할 텐데.”

“그럼 이렇게 된 김에 아예 갈아버리면 되지 않겠소?”

꺽정이가 단칼에 결론을 내리니, 다른 두 사람이 깜짝 놀라 꺽정이를 돌아봤다.

“아니, 우리가 지금껏 그 고생하면서 – 사형은 칼침도 맞았잖소 – 한양에 이런저런 연줄까지 마련해두었는데, 이럴 때 한 번쯤 써야지. 일이 풀리길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앞서 사형이 말씀하신 것 아니오?”

“거 봐라. 이러니까 내가 너를 데리고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지함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자승자박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꺽정이었다.

“잘만 하면 우리를 어떻게 해보려던 윤원형이 손길도 잠깐 붙잡아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내가 방금 전 무어라 했느냐.”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봉현감 김대가 의민당 고발하는 장계를 조정에 올렸다.

그들이 겉으로는 ‘의로운 백성(義民)’을 칭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저 도적 무리로, 관고를 축내고 백성을 괴롭게 할 뿐 아니라 이제는 우봉 경내까지 넘어와 행패를 부리려 하니 마땅히 국법으로 벌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림의 입김 닿은 우봉 아전들이 은근히 김대를 충동질하여 의민당 고발하도록 만든 것임은 한양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하다못해 어찌하면 일을 꾸며서, 의민당 쳐내는 길에 다른 눈에 거슬리는 종자들까지 없앨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던 윤원형조차도 모르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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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성황산성으로 나온 태백산성은 본디 고구려 시기에 축성된 산성으로, 이후에도 계속 보수되면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고려 개국공신들을 모신 사당인 태사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호란 이후 산성을 개축하기 전까지 성황산성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조선 중기에는 이러한 태사사의 내력이 잊혀지고 그저 민간신앙의 대상으로만 쓰였던 듯합니다.

실제로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종종 보수되곤 했던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의 산성은 이후 관리 부실로 인해 잊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만은 살아 있었기에 임꺽정 세력이 쏠쏠하게 활용하게 됩니다. 이후 양란을 거치며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산성의 관리와 보수가 진행되게 되지요.

김대는 실존인물로, 1549년 가을 우봉현을 감찰하러 나온 관리 정희홍에게 그의 부정을 담은 문서가 발각되자, 그것을 감영으로 옮기던 정희홍의 시종을 습격해 문서를 빼앗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여 결국 정희홍에게 다시 발각되었고, 딱히 권세가와 연줄이 없었거나 충분히 바치지 못하였던 모양인지 그대로 사건이 의금부로 넘어가 한양으로 압송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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