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62화 (62/259)

21. 발 없는 천리마 (1)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경칩(驚蟄).

통의부의 윤원형 의송도 그 남은 절차가 마무리되어, 윤원형을 삭탈관직하고 청홍도 유신현에 정배(定配)한다는 판결이 떨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좋다고 떠들면서, 이제 모든 조선국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터이니 곧 천하의 윤원형이도 명이 끊어질 것이라 말하곤 하였다.

물론 꺽정이가 두 눈에 불 켜고 있었으니, 윤원형이 살아서 한양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었지만.

한편, 죽을 사람은 죽더라도 산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하는 법. 마침내 정국이 조금 조용해진 틈을 타 사임당 신씨는 셋째아들 이이의 관례(冠禮)를 파주에서 올리기로 하였다.

본디 어질고 예법에 밝은 사람을 빈객으로 모셔와 예식을 주관케 하는 것이 반가의 상도(常道)인데, 신씨는 아들의 스승 이지함에게 이를 청하였다. 이지함은 예법에 통달한 화담 선생의 제자요, 의민당 때부터 이씨 문중과 연이 각별하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헌데 파주로 떠나려던 이지함 발목을 갑작스레 붙잡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동고 대감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구나. 뭐, 어쨌든 우리 가운데서는 꺽정이 네가 가장 먼저 당상관에 오르게 되었으니 축하할 일이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림이 끌고 그의 집에 찾아온 꺽정이에게, 이지함이 축하하는 말을 먼저 건네었다.

그간 통의부의 일에만 전념하며, 임꺽정과 그의 민주당이 벌이는 학당 놀음을 수수방관하는 듯하였던 조정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윤원형 판결의 재가를 받는 자리에서, 추관의 우두머리로 입시하였던 이준경이 갑작스레 시무(時務) 여러 가지를 아뢰어 덩달아 승낙을 받아내었던 것이다.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정책을, 이윤경이 꺽정이 따라 희한한 구경 한 뒤 불과 며칠 사이에 고안하여 밀어붙였으니, 과연 이준경다운 솜씨였다.

“분명 이대로 우리 당이 정국을 이끌어나가는 것을 좌시하지만은 않겠다는 뜻일 테요. 뭐, 덕분에 사형 말씀마따나 팔자에도 없는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지만.”

금년 시월, 흑의군이 궁궐을 지키기로 한 기한이 다할 때까지 우림위(羽林衛) 별장(別將)이라는 관직을 받게 된 꺽정이가 말했다.

우림위 별장이란 본디 없던 자리였는데, 이준경은 우림위장이 종2품이니 별장은 거기서 한 품계 낮추어 정3품으로 삼자 하였고, 그리하여 졸지에 꺽정이는 당상관 자리를 얻게 되었다. 궁을 지키던 흑의군들도 덩달아 1년짜리 체아직(遞兒職)으로 녹봉을 받게 되었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흑의군이 어쩌다 금군 대신 궁궐을 지키게 되었는지를 감추고, 마치 떳떳하게 조정에서 명하여 그들을 불러들인 것처럼 포장하려는 뜻이 확연하였다.

“벼슬을 그대로 받을 생각이십니까?”

임 당수의 배배 꼬인 성정이 결코 어지간한 사람과 같지 않음을 잘 아는 서림이 물었다.

“내가 백정이라고 밝히면서 사양한다면, 마치 엄청난 은혜 베푸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면천시키고는 다시 벼슬을 내릴 것이오. 그 꼴은 보기 싫소. 차라리 조용히 받았다가 나중에 내 출신 드러내어 조정에 망신을 주는 게 낫지.”

따지고 보면 영락없는 기군망상이건만, 이미 역적 소리까지 한 번 들었다가 그것을 힘으로 뒤엎은 바 있던 꺽정이는 개의치 않았다.

“꺽정이 네 말대로, 학당의 일로 인하여 도성 여론이 온통 민주당에 쏠리는 것을 막고 조정을 다시금 전면에 내세우고자 이러한 방책을 내세운 것일 테다.”

이지함이 서안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 말대로, 이준경이 추진하는 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간행하여 각 군현에 유포하고 향약 시행을 권면하는 것이 하나요, 지난날 윤원형과 이기 등을 탄핵하다가 죄를 받았던 이언적 등 여러 선비를 모두 해배(解配)하고 통의부에서 그 죄를 재심하는 것이 또 하나였다.

이어서 충주가 유신현으로 떨어지게 된 계기인 이홍남의 역모 고변까지 다시 살피겠노라 하였으니, 민주당이 어쩌고 학당이 저쩌고 하던 사람들의 관심이 절로 통의부로 쏠리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향약을 시행하고 회재 선생을 필두로 그간 죄 받았던 선비들을 모두 방면한다는 것은, 비단 도성 여론만을 노린 것은 아닐 테다. 오히려 각지 군현의 사족들에게 더 울리는 바가 있을 터.

이미 의민당이 봉기하면서 한 번 전국의 민심이 크게 뒤흔들리지 않았더냐. 윤원형과 그 일당에게 죄를 받았던 이들을 방면하고, 더불어 향약의 일을 널리 논하도록 함으로써 이를 다독이고 각지 사족들을 한데 묶으려는 심산일 것이다.”

“거 참, 녹록지 않구려.”

“동고 대감을 비롯하여 사림의 사람들도 그간 윤원형 아래에서 고초를 많이 겪지 않았느냐. 별러온 바가 없지 않겠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다. 동고 대감이 이토록 빨리 전면에 나섰으니, 우리 당에게 남은 시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흑의군이 궁궐을 지키기로 한 일 년 기한이 벌써 삼분지 일 가까이 지나지 않았느냐. 흑의군이 궁을 떠나게 되면, 민주당 역시 이름만 그럴듯할 뿐 조정의 정사에 관여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허나 그 전에 약조한 대로 중추부(中樞府)를 개편하겠노라 하지 않았소? 윤원형이 의송이 끝났으니 이제 약조한 바를 이행할 때가 다 되었는데...”

중추부의 개편은 궁궐 바깥에서 정사를 논할 자리를 만들라는 꺽정이 요구에 이준경이 제시한 방안이었다.

본디 당상관 이상으로서 실직(實職) 없는 이들이 그저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서 거쳐가는 곳이던 중추부 관제를 고쳐, 그곳에서 국정의 현안을 논하도록 하겠노라 공언한 바 있었다. 정3품 별장 자리를 꺽정이가 얻었으니, 중추부 첨지사(僉知事) 벼슬 겸직할 근거가 되는 셈이었다.

중추부는 적선방(積善坊) 저자에 그럴듯한 청사도 하나 있었기에 – 워낙 하는 일이 없는 곳이라, 지난날 변고에서도 화를 피해갔다 – 자리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추부 자체가 별 권한이 없는 관서라는 것이 이준경의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지금 미리 이렇게 사류(士類)의 마음을 한데 모아 세력으로 일구어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 남은 몇 달 동안 우리가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뜻일 터.”

물론 이준경의 성품을 고려하면, 아예 약조한 바를 어기고 꺽정이를 중추부에 들이지 않는다던가, 비열한 술수를 부려가며 민주당의 언로를 막는다던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꺽정이가 중추부에 들어가서 발의하는 바 중 취할 만한 것이 있다면 사감(私感) 제쳐두고 따를 공산이 컸다.

허나 꺽정이와 이지함이 바라는 바, 나라를 뜯어고치는 일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도 했다.

“아니,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예컨대 올해 지나간 다음에 그 동고 대감께서 조정의 여론을 모아서 우리네 당의 학당을 모조리 닫아버리라 명한다면, 그때는...”

서림이 발칵 놀라 물었다.

“동고 대감 성정에 일을 그리 다루지는 않을 것이지만... 사림의 중신들 중 동고 대감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니 지금 서 별감 걱정하는 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소.”

이지함이 담담하게 대꾸하니, 서림 입에서 절로 한숨과 푸념이 튀어나왔다.

“이놈의 세상은 참... 조선국 산하마냥 산 하나 넘으면 또 그 뒤에 산줄기가 하나 더 튀어나오는 격입니다그려.”

“뭐, 우리네 당은 처음부터 산 타고 물 건너는 도적들로 시작하지 않았소? 너무 낙담은 마시오. 동고 그 양반이야 말 그대로 양반이니 샌님같은 계책이나 내지만, 우리는 훨씬 지저분하고 점잖은 사람 입에서 육두문자 나올 만한 방편도 취할 수 있지 않소?”

꺽정이가 서림을 위로하며 운을 떼었다.

“지저분한 계책이라... 꺽정이 네가 생각하는 바가 있느냐?”

“아직은 잘 모르겠소.

헌데 그 향약인지 뭣인지를 널리 알리려고 책을 발간한다 하지 않았소? 그것부터 우선 훼방을 놓아보는 건 어떻겠소? 어차피 서책을 발행한다고 해도, 실제로 목판과 주자(鑄字, 금속활자)로 찍어내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니.”

꺽정이 말에 서림이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아, 그렇지! 임 당수, 좋은 게 하나 떠올랐습니다. 학당에 교재를 내려보내는 일 때문에 미리 사람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왕 이리 된 것 주자소(鑄字所) 장인들을 빼돌려 우리 쪽으로 데려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리되면 조정의 높으신 분들이 무엇을 찍어내려 마음을 먹어도 실제로 뜻을 이룰 수는 없겠지요. 스스로 서안에 종이 펼쳐놓고 필사를 한다면 모를까.”

이준경이 듣는다면 차라리 윤원형이 덜 음흉했다며 혀를 찰 만한 음모를 태연하게 꺼내는 서림이었다.

그때, 꺽정이와 서림이 말 나누던 것을 지켜보던 이지함이 한 마디 덧붙였다.

“어디 거기서 그치겠느냐. 이왕 이리된 것, 전국 각지의 사람들 이목을 완전히 우리 당에 끌어오는 수가 있을 법도 하다.”

“오, 그것이 무엇이오?”

“꺽정이 네가 일전에 말하기를, 윤원형이 만일 통의부 의송에서 목숨을 건져 나간다면 더 다행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이제 그 말대로 되었으니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이지함이 앞서 서림과 비슷하게 태연한 말로 음흉한 계책을 꺼내었다.

과연 근묵자흑이라 할 만하였는데, 이들 모두를 검게 물들이는 묵(墨)이 누구인지는 다소간 논쟁의 여지가 있을 법하였다.

“이렇게 끝나는가.”

윤원형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노기(怒氣)과 두려움 중 무엇으로 인하여 떠는 것인지는 윤원형 본인도 알지 못할 것이다.

“결정을 내려두신 줄 알았는데, 퍽 말이 길구려.”

부부 앞에 편하게 앉아 빈정대는 거한은 바로 꺽정이었다.

“그 술잔을 그냥 들이키면 끝날 것을 뭘 그리 길게 끄는지.”

남에게 비상 먹여본 적이 몇 번이나 되었던가. 그러나 한 번도 그가 비상을 삼키는 쪽이 되리라고 생각해보지는 못하였다.

“정 무섭다면 그냥 정해진 판결대로 귀양을 가시오. 여기서 차분하게 죽음을 맞는 대신 백성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초라하게 세상을 등지게 되겠지만.”

그러건 말건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아냥에, 마침내 윤원형이 독기를 담아 꺽정이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코웃음만이 돌아올 뿐.

“후환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대비전의 아우이자 나라의 훈척(勳戚)이야. 비록 지금 나라의 권세를 모두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겠지만, 언제고 이 원한은 자네를 노리고 돌아올 것이야.”

“원한이라. 누가 원한을 품는다는 말이오? 임금이?”

주상을 마치 동네 이웃처럼 입에 담는 거한의 무엄함에, 간신히 열렸던 윤원형의 입이 다시 막히고야 말았다.

“내가 이루려는 바는 원한 쌓지 않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이오. 나는 천하에서 가장 큰 도적이 되려 하거든. 고작 조선국 임금의 원한 따위가 무서워 손속을 아낀다면 어찌 그 꿈을 이루겠소?”

“천하에서 가장 큰 도적이라...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미친 것인가?”

“어리석은 놈이든 미친놈이든, 그런 놈에게 밀려나 이 꼴이 난 나리가 물을 바는 아닌 것 같소.”

그때, 방문이 열리며 윤원형의 마지막 주안상이 들어왔다. 거안제미(擧案齊眉)한 채로 상을 들고 온 정난정이 다소곳하게 상을 내려놓았다.

상 위에는 술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여보...”

“누군가는 함께 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 두 부부가 조선국에 미친 해악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애틋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꺽정이는 그것을 오래 봐줄 생각이 없었다.

“뭐, 정씨는 살려주려고 했는데 본인이 살 생각이 없는 듯하군. 내 알 바는 아니니 얼른 들이키기나 하시오들.”

“사랑하는 지아비를 잃고, 또 지아비를 사랑하던 만큼이나 함께 사랑하던 권세를 모두 잃게 되었는데 더 살아본들 무슨 빛을 보겠어요? 그조차 이해해주지 않으니, 임 당수는 참으로 모진 사람이군요.”

“뭐, 그렇소. 허나 죄 많은 임자네 부부에게 이만큼 대접해주는 것도 과분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소? 적어도 시체는 멀쩡하게 남겨드리려 하는데.”

정난정이 표독스럽게 꺽정이에게 따져 물었다.

“죄가 많다고요? 그러면 한 번 임 당수께서 말씀해 보시지요.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나요? 종묘사직이 어쩌고, 기군망상이 저쩌고 하는 그 고리타분한 말을 제쳐놓고 답해보세요.

결국 사람을 죽이고 권세를 빼앗는 것은 우리와 임 당수가 다를 바 없어요. 다만 임 당수가 운이 좋아 이겼을 뿐이지요. 사람이 태어나 권세를 노리는 것은 본성일 뿐이에요. 그게 죄라면,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죄인이겠지요.”

정난정의 항변을 들은 꺽정이는 잠시 고민하였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연놈 앞에서 저의 생각을 조금 더 털어놓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속마음을 풀어놓았다.

“임자네 부부의 죄는 그게 아니오. 변변찮은 도적 주제에 분수를 모르고 헛된 욕심이나 부린게 죄지.”

“뭐라고요?”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권세를 지니고 있었으면서, 임자네 두 사람이 한 일이 뭐요? 고작해야 집이나 여러 채 사들이고 걸리적거리는 사람 몇 명 죽였을 뿐이지.

그 권세가 만일 나 같은 사람에게 있었더라면, 훨씬 대단하고 거창한 일을 벌일 수 있었을 테요. 그러니까 내가 그 꼴을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난 것 아니겠소? 나는 천하의 큰 도적이 되려는데 같잖은 것들이 위를 막고 있으니.

임자나 여기 나리께서는 의민당이 눈에 거슬려 쳐내려다가 역으로 당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임자네들을 모두 족칠 생각뿐이었소.”

“대체... 임 당수 자네는 무슨...”

지금까지 윤원형과 정난정이 보여왔던 두려움과는 격이 다른, 마치 천 길 낭떠러지의 어두컴컴한 밑바닥을 들여다본 사람 같은 공포가 부부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그러나 꺽정이에게는 그저 일순 코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여기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음마저도 훔쳐서 내 이득 되는 쪽으로 쓸 생각이외다.

잡설이 길었는데, 얼른 그 비상이나 들이키시오. 나는 바쁜 사람이오. 열을 세겠소.”

“이, 이 매정한 사람 같으니...”

“열. 아홉. 여덟...”

결국 윤원형이 먼저 술잔을 들이키고, 이어서 정난정도 눈물을 흘리며 지아비를 따랐다.

“아, 그리고 염라대왕 만나면, 한 번 시작한 내기는 무를 수 없다고 말해주시오.”

“그 무슨... 커헉!”

벌써 독이 올랐을 리 없건만, 꺽정이에게 미처 다 묻기 전에 윤원형의 말이 끊겼다.

“무슨 말인지 곧 알게 될 것이오. 언제고 또 봅시다.”

파주 밤골의 어느 대갓집.

빈객 이지함이 관례자인 제자 이이에게 읍(揖)을 하였다.

이이는 예에 따라, 예복을 입고 띠를 부른 채 자리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세 차례 가례(加禮)가 이어지니, 첫 번째 가례에서 머리에는 상투가 틀어지고 건(巾)이 씌워졌으며, 두 번째 가례에서는 건이 벗겨지고 초립(草笠)이 씌워졌다. 이윽고 마지막 가례에서 초립이 벗겨지고 복두(幞頭)가 씌워지니, 비로소 의관이 한 사람의 어른과 같게 되었다.

이어서 남향을 하고 앉은 이이 앞에서 이지함이 축사를 하니, 이이가 두 번 절하고 이지함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이것이 초례(醮禮)다.

마침내 섬돌 아래로 내려가 마당에 돌아오니, 이지함이 말했다.

“이(珥)의 자(字)는 곧 숙헌(叔獻)이니, 부모님의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그 이름을 귀하게 여기거라.

숙(叔)의 뜻을 새겨 항상 제(悌)의 뜻으로 우애와 공경을 잃지 않으며, 헌(獻)의 뜻대로 항상 효(孝)를 다하고 훌륭한 덕을 세울지어다.”

“숙헌은 장차 두 글자를 항상 마음에 새기어 영영 잊지 않겠습니다.”

이이가 답하고 절을 올리니, 이지함은 예에 따라 그 절을 받되 답례하지 않았다.

이로써 관례의 큰 예식이 끝나니, 이이는 아버지 이원수와 함께 조상께 고사(告辭)를 올리러 가고, 그사이 내왕한 사람들은 저들끼리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기 시작하였다.

이지함은 모든 이들의 눈길이 제게 쏠리는 것을 뒤늦게 알고, 쓴웃음을 삼켰다.

덕수 이씨 문중은 이번 난리 속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집안의 기둥과 같던 풍성부원군 이기는 목숨을 잃었고, 이제 윤원형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면 이기 역시 그 뒤를 따라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가산마저 적잖이 피난길 도중에 흩뿌려졌다.

그러니 이제 밤골의 덕수 이씨들 눈길은 이원수 한 사람이 겨우 부여잡은 옛 의민당, 현 민주당 동아줄에 향할 수밖에 없었다.

“금일 이리 찾아와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어찌 형언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당에서 이이가 돌아오는 대로 절을 받기 위해 바깥마당에 나와 있던 신씨가 이지함에게 말을 걸었다.

내외의 법도가 아무리 엄격하다 하나, 지금 이곳에 모인 덕수 이씨 문중 가운데 신씨와 이지함을 두고 무어라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소생이야말로 부족한 스승으로서 이렇게 중한 자리에 초빙하여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자가 앞으로도 항상 나아가, 근세의 청출어람으로 이만한 사례가 없다고들 말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런데 가가례(家家禮, 집안마다 다른 풍습)라 하나, 숙헌의 이번 관례는 다소...”

“상투를 제대로 틀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요. 어찌 모르겠습니까.”

보통 장차 혼약할 상대의 집에 사주단자를 보낸 뒤 길일을 정하여 상투를 올리곤 하였으므로, 이지함이 조심스레 묻는 질문은 신씨도 족히 예상하고 있었다.

“허나 도성에서 전해오는 소식이 결코 가볍지 않으니, 한시라도 늦추기 어려웠습니다. 스승을 따라 언제 한양에서 또 정사에 깊게 관여할지 알 수 없는데, 의관을 능히 바르게 할 수 있어야 여러 사람들 눈앞에 부족함이 없겠지요.”

요컨대, ‘네가 아들 녀석을 하도 여기저기 끌고 다니니 어디 가서 꿇리지 않도록 서둘러 관례를 치렀다’ 하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지함을 힐난하는 어조는 아니요, 오히려 아들에 대한 대견함이 뚝뚝 묻어나왔다. (한창때 봉산 동헌에서 신씨와 자주 마주하면서 이제는 신씨 대하기가 조금은 익숙해진 이지함이었다.)

“그런데, 관례와 항상 함께 가는 예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우리 주변에도 그것을 치러야 하는 분이 한 분 계시지요. 그렇지 않나요?”

이지함 주변에 혼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은, 조카 산해와 제자 이이, 그리고 꺽정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씨가 칭하는 ‘그 분’이라 하면 역시...

결론에 당도한 이지함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그... 임씨 성을 쓰는 처사분 말씀이십니까?”

“그렇지요. 이미 가세의 흥망이 그분과 돌이킬 수 없이 엮였지요. 듣기로 마침 벼슬이 당상관에 당도하였다고 하던데요, 셋째 여식이 그분의 소식을 평소 많이 궁금하게 여기기에 이 사람도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답니다.

곧 상경할 심산인데, 아직 강릉에 있는 여식도 함께 데려갈 생각이지요.”

“허나... 임 처사는 집안이 한미하여...”

“집안이 한미하여 배움을 족히 쌓지 못하였다 하나, 이미 그 이름은 드놓고 나라에 세운 공도 크지 않나요? 그만하면...”

꺽정이는 사실 양주 백정이요, 성도 자신이 마음대로 지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또 털어놓지 않을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

다행히도 꺽정이가 한양에서 벌여둔 일이 있어 이 곤경에서 이지함을 구해주었다.

“큰일이 났습니다! 도성에서 큰일이 났답니다!”

관례가 다 끝난 줄 알고서 바깥에서 뛰어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행색을 보니 밤골 어느 집의 서자쯤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손에는 팔랑이는 종이 한 뭉치가 있었다.

서자를 꾸짖으러 간 덕수 이씨 집안 사람들도, 그 종이를 보더니 곧장 놀라서 저들끼리 떠들었다.

“아니, 이런 일이 다 있는가!”

“참, 권세의 무상함이 대개 이러허이.”

그리고 그 종이뭉치는 곧 여러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기 시작하였다.

“아, 임 당수와 서 별감이 손을 빨리 썼군요.”

“무엇인지 아시는 눈치로군요?”

“숙헌의 관례를 위해 내려오기 전, 미리 준비해놓은 바가 있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마치 조보(朝報)와 같이 도성과 전국 팔도의 중요한 소식을 정리하여 알리는 글을 한 순(旬)에 한두 번 꼴로 전하려고 하고 있지요.”

이준경과 그의 사림이 전국 여론을 다시 이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서 시작한 이 거창한 새 ‘사업’의 이름은 공보(公報).

그리고 그 공보의 첫 소식은 다름 아닌 서원군 윤원형의 죽음이었다.

그만한 소식이 담겨 있으니, 지금쯤 이곳 파주뿐 아니라 한양의 경주인들 통하여 소식이 전해지는 전국 각지 군현에서는 저 공보를 얻어다 보기 위해 슬슬 혈안이 되고 있을 것이다.

천하의 가장 큰 도적이 되려는 임꺽정은, 윤원형의 죽음조차 훔쳐내어 저의 뜻대로 쓰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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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례의 절차는 집안마다, 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대체로 15세에서 20세 사이, 혼처가 정해질 무렵에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중에 간략하게 서술된 세 차례 가례를 통해 아동의 복식에서 성인의 복식으로 환복하는 의식을 치르고, 이어서 술을 마시고 자를 지어준 뒤 조상과 부모, 그리고 스승과 다른 친족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의 대략적인 순서였지요.

원 역사의 율곡 이이는 그러나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작중에서보다 훨씬 더 통례를 벗어난 방식으로 통과의례를 거쳤습니다. 1551년 신사임당이 사망한 뒤 3년간 시묘살이를 했고, 이어서 1553년 관례를 치르자마자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게 되지요. 신씨가 사망한 뒤 이원수의 첩 권씨의 전횡으로 인해 이이와 이원수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이이의 관례 역시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관례를 치른 뒤 한참 지난 1557년에야 이이는 성주목사를 지낸 노경린의 딸과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시기를 고려하면 관례 당시에 혼담이 오갔다 하더라도 이이가 방황하던 시절 파혼하였을 공산이 클 것입니다.

작중에 언급된 ‘공보’는 원 역사에서도 수십 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실제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1577년, 본디 승정원에서 주요한 공사(公事)를 요약하여 펴내던 조보를 민간에서 인쇄하여 판매하였던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본디 조보는 관청과 각 군현의 사대부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일종의 관보였는데, 여기서 상업적 가능성을 발견한 민간의 인쇄업자들이 사헌부로부터 발행 허가를 얻어 목활자와 금속활자로 조보를 인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때의 민간인쇄 조보는 본래의 조보보다 훨씬 더 가십성 기사들 – 예컨대 왕실 주변 인물의 신상잡기, 특이한 자연현상, 공익에 관한 소식(가축 전염병 이야기 등) - 의 비중이 높았고, 그 문체에는 이두식 표현이 등장하여 발간 주체들이 단순히 조보를 복사하여 판매하는 것을 넘어 독자적인 편집을 가했음을 보여줍니다. (여담으로 우연의 일치로 인해 이때 발간된 조보는 딱 타블로이드 사이즈이기도 했습니다. 즉 세계 최초의 타블로이드 신문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이때 이 업자들의 사업 허가는 선조의 허락 없이 내려진 것이었고, 선조가 이를 발견하고서 대노하여 폐간을 명령하면서 고작 3개월 만에 조선 최초의 민간 언론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때 사헌부에 청탁하여 허락을 받아내었던 민간 인쇄업자 30여 명은 죄상에 따라 유배형에 처해졌고, 이들이 사적으로 가지고 있던 활자는 몰수되게 됩니다.

다만 이와는 별도로 조보 자체의 출간과 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초서체가 섞인 필사본 형태였기 때문에 유통에 한계는 있었으나, 고위 관료와 사대부를 대상으로 하는 조보의 특성상 이러한 형태로도 큰 문제인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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